레코드 기술이 발명되기 이전, 음악은 ‘순간’이었다. 소나기 또는 뭉게구름처럼 한번 스치고 흘러가면 다시 되돌려 들을 수가 없었다. 애잔한 기쁨이나 슬픔을 다시 느끼고 싶을 때 어떤 방법으로 회상했을까. 아마 그림이 아니었을까.
18세기 네덜란드의 미술 작품들을 살펴보면 음악적 감동의 순간을 포착한 장면이 유난히 많다. 그림을 소비하고 음악을 즐겼던 당대의 중산층을 위한 작품들이다. 2013년 여름, 런던에서 열린 미술 전시 ‘베르메르와 음악’은 음악이 포착된 그림들 속 악기들을 미술작품과 함께 나란히 전시하여 주목을 받았다. 어쩌면 퍽 순수했을지 모를 당대 사람들의 감동을 현대인들은 그대로 전해 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잘 알려져 있는 베르메르는 그가 남긴 서른여섯 작품 중 열두 작품 속에서 음악적 요소를 부각시켰다. 그중 다섯 작품이 이번 전시의 주인공이었다. 베르메르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하피시코드ㆍ스피넷 등을 보고 있자면, 그 다양한 악기들의 소리를 직접 듣고 싶다는 욕구가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내 발길은 알렉 코브를 향하고 있었다.
코브 컬렉션의 관장인 알렉 코브는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건반악기 50점을 소장한 인물이다. 그의 컬렉션 중에는 명작곡가들이 소유했거나 그들과 연관성을 지닌 건반악기가 상당수다. 퍼셀ㆍ요한 크리스티안 바흐ㆍ하이든ㆍ모차르트ㆍ베토벤ㆍ쇼팽ㆍ리스트ㆍ비제ㆍ말러ㆍ엘가가 연주했던 건반악기들이 ‘그곳’에 있다. 코브 관장을 만나러 가는 길. 런던에서 서쪽으로 뻗은 고속도로 M4를 달리며 무의식적으로 음악을 틀었다. 합창단이 부르는 경음악이 건조한 차 안 공기를 상큼하게 바꿨다. 지휘자가 된 듯, 핸들을 잡은 손가락이 절로 움직였다. 어느덧 차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영국 전원의 시골길에 들어서고 있었다.
해치랜드에 모인 오래된 건반들
가문으로부터 물려받은 수많은 명화들과 자신이 모은 건반악기 컬렉션을 한자리에서 보여줄 수 있는 박물관을 설립하겠다는 알렉 코브의 뜻을 받아들인 영국 정부는 1983년 코브 컬렉션 전시장 겸 코브 가의 거주용으로 해치랜드 저택을 그에게 대여해줬다. 내셔널 트러스트가 운영하는 해치랜드 저택은 건축사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저택은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의 유행을 영국에 불러일으킨 로버트 애덤이 1750년대에 설계했다. 이후 유서 깊은 가문들이 해치랜드 저택에 머물렀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학교로 사용됐다. 1980년대부터 코브 가가 이곳에 살게 되면서 아일랜드에 있던 코브 가의 엄청난 미술 컬렉션이 옮겨졌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집 앞에 다다르자, 전형적인 영국 상류층 신사의 풍모를 풍기는 코브 관장이 나를 반겼다. 중후한 외모에 가벼운 정장을 걸친 알렉 코브는 대화를 하면 할수록 걷잡을 수 없는 지식의 폭에 상대를 놀라게 하는 매력을 지녔다. 곧 내 눈 앞에는 하이든ㆍ모차르트ㆍ베토벤ㆍ쇼팽ㆍ리스트가 직접 소유하고 연주했던 건반악기들이 나타났다. 코브 관장은 이 많은, 그것도 역사에 남을 만한 건반악기를 어떻게 모으게 됐을까.
옥스퍼드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몇 년간 병원에서 근무했던 알렉 코브는 어느 날 의사직을 버리고 미술을 택하게 된다.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의대에 진학했으나, 그는 어려서부터 미술에 뜻이 있었다. 모은 돈으로 미술품 복원 기술을 배운 코브는 테이트 미술관과 케임브리지의 피츠윌리엄 박물관에서 복원사로 일했다.
그가 피아노를 수집하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대학을 갓 졸업한 코브는 자금 사정상 중고 피아노를 사야 했는데, 그 중고 피아노의 제작자가 하이든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문득 ‘대작곡자들이 연주했던 피아노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미친 그는 미술을 넘어 음악으로 관심을 확장했다. 결국 새 피아노를 살 돈이 없어 중고 피아노를 사야 했던 청년이 세월이 흘러 말러의 피아노를 말러의 증손녀로부터 직접 구입하기에 이른다. 2007년에는 자신이 20년 전 헐값에 구입하여 소유하고 있는 1846년산 플레옐이 쇼팽이 영국에서의 콘서트를 위해 가져왔던 피아노였음을 밝혀냈다. 코브 관장은 스스로 음악사학자로서의 역할까지 해내고 있었다. 한편 수십 종 건반악기의 관리와 연주를 위해 1997년부터 자신이 수집한 악기들을 오늘날의 음악가들이 연주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물론 그의 음악적 호기심과 학구열이 불러온 연구 결과는 건반악기 컬렉션뿐 아니라 미술 컬렉션에도 연결된다. 일명 ‘코브 초상화’라 불리는 그림은 셰익스피어의 유일한 초상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편 코브 관장은 자신의 아일랜드 저택 복도에 걸려 있던 ‘레이디 노턴의 초상화’를 연구해 이 그림이 여성이 아닌, 셰익스피어가 사랑했던 남자이자 그의 선조인 얼 오브 사우스햄프턴 3세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2002년 영국 유수 언론들은 셰익스피어가 1593년 쓴 ‘비너스와 아도니스’, 그 이듬해 쓴 ‘루크리스의 능욕’이 이 그림의 주인공인 백작에게 헌정됐다는 주장을 보도했다.
코브 관장이 밝혀낸 ‘이야기’들은 하루 아침의 발견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친 연구의 결과이다. 그중 대표적인 또 다른 사례는 티치아노의 그림이다. 자신이 소장한 베네치아 화풍의 그림을 20년간 연구한 끝에 그 밑바탕에 티치아노의 작품이 있었음을 밝힌 것이다. 이를 위해 코브는 엄청난 모험을 감행했다. 2005년 100억 파운드의 예상가로 경매에 올랐던 ‘부인과 딸의 초상’은 결국 겉껍질이 벗겨졌다. 그러자 그 아래 숨어있던 1550년대 티치아노의 원작이 드러났다. 이미 그 자체로 훌륭하고 예술적 가치가 있던 18세기 베네치아 풍 회화를 파괴하면서까지 코브는 티치아노의 원화를 밝힌 것이다. 이를 위해 복원사의 기술, 복원 과정에 대한 확신을 부여하는 고미술학자, 그리고 복원 과정을 허락할 그림의 주인이 필요했는데, 알렉 코브는 홀로 이 세 역할을 섭렵했다.
인터뷰 내내 코브 관장은 하나라도 더 보여주기 위해 열심이었다. 베토벤이 치던 피아노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치고, 어떤 곡은 하프시코드를 치다가 피아노로 옮긴 후 음색의 차이를 설명하기도 했다. 알렉 코브는 그저 ‘옛 건반악기 수집가’가 아니라 그가 가진 거대한 미술 컬렉션, 음악에의 열정, 지칠 줄 모르는 연구로 평생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아티스트’였다. 그는 헌신적인 고전주의자인 동시에 현대예술가이다.
글 김승민(이스카이 컨템퍼러리 아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