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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협업자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8월 1일 12:00 오전

일 더하기 일은 둘이 아니다. 협업의 세계에서 일 더하기 일은 무한대다.
각자의 서로 다른 우주가 만나,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 1 장영규 1992~2013년 음악 아카이브


▲ 2 권병준 ‘공중정원’ 외


▲ 3 정영두 ‘추상적으로 걷다 – 한 지점으로부터 점차 멀어지는 나선형의 운동’


▲ 4 데이비드 디그레고리오 ‘룸 이즈 언 앨범’

홀로 또 더불어 창작하는 시대다. 예술이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어 더해지고 변이되는 일들은 이미 생겨난 지 오래. 각자의 영역에서 눈부신 결과물을 만들어내며, 빛에 빛을 더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어제와 오늘이 한자리에 모였다. 전시 ‘탁월한 협업자들’은 퍼포먼스·음악·안무·건축 영역에서 다양한 작업을 펼쳐온 권병준·데이비드 디그레고리오·장영규·정영두·최춘웅을 중심으로 마련됐다. 작가들의 독자적인 개별 작업과 협업 결과물을 아카이브 식으로 구성해 그간 미처 알기 어려웠던 개인의 작업 과정을 세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이자,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협업의 다양한 형태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전시장에서 먼저 마주하는 것은 안무가 정영두의 작품들이다. 작가 김소라와 협업한 ‘추상적으로 걷다 – 한 지점으로부터 점차 멀어지는 나선형의 운동’은 추상적으로 걷기라는 영역을 퍼포머가 재량 내에서 구현하도록 한 작품이다. 22분여간 이어지는 영상 속에서 정영두는 춤을 추듯, 때로는 비틀거리며 쓰러질 듯한 형태로 걷는다. 영상 옆에는 대형 무보(舞譜)가 함께 설치되어 의식과 퍼포먼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다. 영상으로 남겨진 퍼포먼스 ‘함녕전 프로젝트 – 동온돌’도 눈에 띈다. 지난해 서도호의 함녕전 프로젝트를 위해 두 사람이 협업한 퍼포먼스 기록물로, 고종이 취침 시에 보료 세 채를 깔았다는 궁녀들의 증언을 영감의 출발점으로 삼아 설치작품·영상작업 등과 함께 소개한 것이다. 정영두는 침실로서의 공간, 보료의 형태, 눕는 방법들을 감안해 다양한 동작들을 선보이며 독창적인 움직임을 완성했다. 여기에 그간 정영두가 선보인 다양한 작업들의 발상을 기록한 노트며 무보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안무가의 작업실로 초대받은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와 맞닿아 있는 작곡가 장영규의 공간은 다양한 음악 아카이브로 이어진다. 1992년부터 현재까지 작곡한 음악 중 여든 곡을 선별해, 각 음악마다 관람객이 헤드셋을 꽂아 주크박스처럼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반칙왕’ ‘복수는 나의 것’ 등 영화음악뿐 아니라 안무가 안은미와 함께 작업했던 음악들이며, 비빙을 통해 선보인 국악 및 불교음악 등이 다양하게 소개됐다. 더불어 2층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어어부 프로젝트의 오디오형 소설 ‘안성철’은 중독성 강한 백현진·권병준의 내레이션과 함께 중첩되는 텍스트 위에 노이즈와 다양한 사운드로 마치 독립영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장영규가 음악 및 연출을 맡은 ‘사다라니·향화게’는 바라춤·나비춤에 장영규의 음악이 더해졌고, 임민욱이 적외선을 감지하는 열 카메라로 촬영해 완성했다. ‘사다라니·향화게’는 전시 기간 중 관람객을 위한 연계 공연으로도 마련되었다.
데이비드 디그레고리오의 작품들은 독자적인 개인 영상 및 드로잉 작업과 더불어 이주요와의 비디오 작업, 김성환과 함께 만든 라디오 스테이션 작업 등으로 나눠져 전시된다. 그중에서도 ‘룸 이즈 언 앨범(Room is an Album)’은 이번 전시를 위해 설치된 작품이다. 작가가 이전에 작업한 드로잉과 음악으로 구성된 작업으로 방 안에는 ‘초록 소매’ ‘거기 있니?’ ‘맞댄 머리’ 등 각 요일별로 다른 곡들이 울려 퍼진다. 방 앞에는 매일 다른 노래에 대한 드로잉과 가사가 걸려 있다. 방 자체를 음악을 듣는 공간이자, 각기 다른 하나의 앨범으로 만든 콘셉트가 흥미롭다.
전시실 3층은 공간 전체가 하나의 실험 공간이자 아카이브로 존재한다. 이곳에는 다양한 소리를 내는 원리와 장치들을 연구하는 사운드 아티스트인 권병준의 다양한 작품들이 중첩되어 있다. 하지만 권병준은 하나의 방 안에서 설치 작품 각각의 소리들이 상충되지 않는 치밀함과 세밀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조도에 의해 음색이 변하는 신시사이저와 스피커로 구성된 장치 ‘공중정원(Garden In The Air)’과 2011년 달파란과 함께 작업한 공연 ‘여섯 개의 마네킹’의 퍼포먼스 기록 영상 등 다양한 설치 작품들이 각각의 소리를 순차적으로 내놓으며 개별의 작업을 거대한 하나의 작업으로 완성됐다.
건축가 최춘웅의 공간에서는 시각예술 프로젝트 곳곳에서 이름을 알려온 만큼 그의 다양한 행동반경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첫 디자인 작업인 점촌중학교를 비롯해 작가 김범과의 협업을 통해 설계한 ‘상하농장을 위한 마스터플랜’과 상하농장 미니 축사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 기간 중에는 작가들의 강연과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8월 16일에는 ‘촉각적 시각’이라는 주제로 건축가 최춘웅의 강연이 열리며, 안무가 정영두는 17일 ‘언어를 이용한 움직임 창작’ 워크숍을 갖는다. 참여를 원하는 사람은 일민미술관(02-2020-2083, ilminart@ilmin.org)으로 신청하면 된다. 8월 25일까지, 일민미술관.

글 김선영 기자(sykim@) 사진 일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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