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턴/계몽시대 오케스트라의 바흐 ‘요한 수난곡’

모든 것에 절실함을 더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7월 1일 12:00 오전

하이페리온 레이블에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요한 수난곡’을 출시했다.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고 있는 영국의 계몽시대 오케스트라와 영국 출신의 스티븐 레이턴이 창립한 성악 앙상블 폴리포니가 연주에 참여하고 있다. 독창자로 등장하는 연주가들의 이름도 화려하다. 우리 시대 최고의 테너인 이언 보스트리지와 소프라노 캐럴린 샘슨이 그들이다. 그래서 과연 이들이 이 표현하기 어려운 음악을 어떻게 풀어낼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음반이다.
이들의 연주는 최근 한국을 방문한 고음악 연주가의 조언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그저 음악이 말하게 연주하라”라고 말했다. 연주자의 기량·재주·테크닉으로 음악의 본질을 훼손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연주자는 텍스트의 형태로 우리에게 남겨진 음악을 드러내는 것이지, 음악을 넘어서는 자신의 기량을 드러내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조언이다. 이 음반을 듣노라면 과장도 수식도 포장도 모두 배제된, 바흐가 남긴 바로 그 음악이 연주되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기쁘다. ‘요한 수난곡’이 전달하는 거친 음악적 표현, 수난곡이 담고 있는 음악적이고도 서사적인 급박함, 이를 통해 전달되는 복음서의 모순적인 메시지를 연주자의 음악적 수사라는 장치를 배제한 채 있는 모습 그대로의 음악만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바흐의 대규모 종교음악이 그러한 것처럼 그의 ‘요한 수난곡’ 역시 문제작이다. 과연 누가 이 수난곡의 가사를 편찬하였는지, 왜 바흐는 이 수난곡을 스물다섯 해라는 긴 세월을 통해 네 차례나 수정하였는지, 바흐가 진정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원했던 ‘요한 수난곡’의 모습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이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미스터리들이 그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마태 수난곡’이 아닌 무엇인가 부족해보이는, 또는 의문투성이의 ‘요한 수난곡’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인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문제작이라고 하여 이 작품에 담겨 있는 음악적 설득력이 작은 것은 아니다.
비록 문제작이지만 바흐의 ‘요한 수난곡’은 그가 남긴 가장 절실한 음악 중 하나이다. 시작합창부터 예수가 숨을 거두기 직전 연주되는 알토 아리아, ‘모든 것이 이루어졌도다’ 그리고 마지막 코랄 악장까지 어느 악장 하나도 음악과 가사에서 절실하지 않은 것이 없다. ‘마태 수난곡’보다 더 자주 등장하는 4성부 코랄 악장도, 그리고 군중합창들도 이 수난곡에 절실함과 동시에 긴박함을 더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음악이 지니고 있는 절실함과 긴박함의 수위를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일관성 있게 유지해나가고 있는 지휘자 스티븐 레이턴의 작품 통제력이 무척이나 돋보인다.
마지막으로 이 음반에 참여한 이언 보스트리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명인은 재능과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에 틀림없나 보다. 그의 타고난 재능과 함께 음악을 넘어서지 않으려는 노력을 읽을 수 있다. 낭만예술 가곡을 연주하던 평소 모습을 버리고 이 음반에서 보스트리지는 18세기 초반 라이프치히로 온전히 돌아가 있다. 그는 음악에 대한 통찰력은 시대를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연주가이다.

글 이가영(음악사학자)


▲ 샘슨(소프라노)/보스트리지(테너)/데이비스(카운터테너)/레이턴(지휘)/계몽시대 오케스트라·폴리포니
Hyperion CDA 679012 (D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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