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2월 1일 12:00 오전

고전 연극의 묘미

11월 4~22일
명동예술극장

재밌다. 160분의 공연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재밌다. 극장에 들어가기 전, 중국 고전인 ‘조씨고아’를 무대에 올린다기에 우선 걱정이 앞섰다. 고전이라, 그것도 중국의 고전. 아무리 한껏 물이 오른 고선웅이 연출을 맡았다 해도 2015년 대한민국 관객들과 어떻게 조우할 것인지, 그것이 가능하긴 할 것인지 염려가 되었다. 무대에서 만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그 걱정이 쓸데없는 기우였음을 여실히 증명했고, 고전을 무대화할 때 갖춰야 할 것들을 교과서처럼 보여주었다. 관극하는 내내 무릎을 쳤다. 이렇게 만들어야 하는구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의 겉을 감싼 이야기는 복수다. 도안고에 의해 도륙당한 조씨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 조씨고아가 장성하여 가문의 복수를 달성한다는 기본 서사는 철저히 복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신의 아들과 맞바꾸며 조씨고아의 복수를 도왔지만 그 성취가 결코 행복하지 않은 정영의 허무와 헛헛함은, 반복될수록 그 명분이나 이유가 사라진 채 복수 자체가 무한 증식하는 복수의 파괴적 본질을 잘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이 연극은 원작의 의도를 충실히 살려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복수의 겉껍질을 벗겼을 때 발견되는 동시대성이다. 아내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흔다섯에 얻은 귀한 아들을 조씨고아와 바꾼 정영의 명분은 ‘약속’이었다. 공주에게서 조씨고아를 건네받을 때 “그렇게 하겠다”고 내뱉은 말 때문이었다. 조씨 가문도 아닌 그저 떠돌이 약장사인 정영에게는 한번 내뱉은 말, 그것이 타인과의 약속일 때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오늘 내가 한 선택을 평생 동안 후회하며 산다 해도 지금은 어쩔 수가 없어”라는 정영의 대사가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약속을 지키는 일이 그만큼 고통스러운 것임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선거철마다 쏟아져 나오는 공약들, 자신의 입으로 내뱉었으면서도 기억조차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실망하고 불신을 쌓아가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인 약속의 실천을 보여줌으로써 먼 과거의 고전을 바로 이곳의 화두로 만들어냈다. 고전의 동시대성은 이렇게 성취된 것이다.

복수와 약속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연극은 비장미에 빠져들지 않는다. 곳곳에 연극적 놀이가 숨어 있어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효과적으로 주조하고 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무대의 역할이 컸다. 빨간 커튼이 드리운 텅 빈 무대. 이른바 ‘배우들이 기댈 곳’이 없는 무대는 그 자체로 오롯이 배우를 돋보이게 만들 뿐 아니라 자유로운 시공간의 이동, 다양한 놀이를 가능하게 한다. 몇 걸음으로 순식간에 다른 공간으로 옮겨가고, 자결하거나 처형당한 사람들이 묵자의 부채 뒤로 홀연히 퇴장하며, 술과 음식을 올리라고 했더니 무대 밑에서 잘 차려진 밥상이 올라오고, 높은 담장은 손으로 낮춰 사뿐히 넘어간다. 1막의 긴 역사가 무대 바닥을 가득 채운 두루마리로 요약되고, 아들과 부인의 무덤에 소복이 솟아 있는 강아지풀은 세월의 흐름을 보여준다. 음향과 음악을 최소화하여 배우의 연기와 무대의 상상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면서 연극이 놀이임을 상기시키는 고선웅 연출의 감각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조그만 체구에 약속의 버거움에서 벗어나려 고민도 하고 복수의 실현에 허탈해하는 정영을 연기하는 하성광의 놀랍도록 섬세한 연기가 감동적이다. 평범한 인물의 약속에 대한 실천이 보여준 희생과 고귀함이라는 이 작품의 주제는 하성광을 통해 진정성을 얻었다.

떠돌이 약장사도 약속을 지키려 자식의 목숨까지 버리던 시대가 있었다. 미천하다면 미천한 존재도 자기가 내뱉은 말에 책임을 지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어떤가? 어느 순간부터 약속의 소중함을 잊고 산 것은 아닌지, 먼 옛날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통해 아프고 쓰리게 반성해본다.

사진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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