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윌리엄 크리스티

오직 음악에 헌신하는 완벽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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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0월 7일 10:2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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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자르 플로리상 이끌고 내한하는 윌리엄 크리스티가 전하는 헨델 ‘메시아’의 감동

 

윌리엄 크리스티가 이끄는 프랑스 시대악기 앙상블 레자르 플로리상(Les Arts Florissant/LAF)과 한국의 인연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지막 오페라극장까지 완성한 뒤 예술의전당의 전면 개관기념 프로그램 중 한 무대를 장식했지만 이들의 공연을 기억하는 청중은 그리 많지 않다. 시대악기 악단 중에서도 매우 이른 시기 창단되어 당시 이미 중견에 이른 LAF는 흔들리지 않는 명성을 얻고 있었고, 윌리엄 크리스티 또한 고음악계의 세계적인 거장이었지만 이 분야는 1990년대 일반 한국 청중들에게 다소 낯설었기 때문이다. 2천석이 넘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객석 중 2백 여 석만을 채운 채 치러진 LAF의 공연은 물론 그렇다고 수준이 낮지는 않았다.

윌리엄 크리스티와 LAF가 바로 이웃한 일본에는 1년이 멀다 하고 초청받으며 슈퍼스타 대접을 받은 반면 한국에는 그로부터 23년 동안 발길을 끊은 이유는 아마도 이 첫 공연의 아픈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높은 개런티 또한 재회를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이런 LAF와 한국과의 관계는 20년도 넘은 다음에야 반전을 맞이했다. 2016년 또 다른 개관 기념 축제였던 롯데 콘서트홀 공연에서는 그래도 객석의 절반이 채워졌고, 2017년 예술의전당 공연은 양 이틀 모두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공연 주최자들의 입장에서는 조마조마 했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정원’이란 제목으로 마련된 16년 공연은 이탈리아의 희귀 고음악들로 구성되었고 17년 공연 또한 프랑스 작곡가 라모의 희귀 오페라들로 채워졌던 것을 보면, 프로그램에 관한 한 흥행을 고려한 교섭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문화공보부의 지원을 받으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화대사를 자처하는 이들의 행보는 어디서건 늘 충만한 예술적 자존심과 완성도를 발산해 왔다. 다행스러운 일은 그 사이 한국 청중들도 역사주의 연주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일 만큼 호기심도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화대사의 리더가 프랑스 국적의 망명한 미국인이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1944년 생 윌리엄 크리스티는 버팔로 출생의 미국인으로 하버드와 예일대에서 예술사와 하프시코드를 전공했다. 이때 그의 스승이 당대 유명한 하프시코드 연주자 랠프 커크패트릭이었다. 그가 1971년 프랑스로 이주한 계기는 당시 미국 젊은이들 모두의 골칫거리였던 베트남 전쟁 파병이었다. 전쟁에 반대하던 그는 다트머스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계약이 연장되지 않았고 결국 1970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프랑스에 정착한 크리스티는 마치 처음부터 프랑스 사람이었던 것처럼 프랑스 바로크 음악, 그중에서도 프랑스의 번영기였던 태양왕 루이 14세 시대 베르사이유 궁정 음악을 집중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륄리와 라모, 샤르팡티에가 미국인 크리스티에 의해 본격적으로 발굴되고 재해석되었다. 음악학자로서 출발했던 크리스티는 자신이 연구한 음악들을 실연으로 고증하고 싶었고, 그렇게 1979년 레자르 플로리상이 창단됐다. 예술의 번영, 혹은 개화를 의미하는 이 이름은 크리스티의 주력 레퍼토리 중 하나인 샤르팡티에의 1685년 오페라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내내 무덤 속에 묻혀 있던 프랑스 최고 번영기의 예술이 망명한 미국인에 의해 개화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프랑스에서 입지를 굳힌 크리스티는 1995년 시민권을 얻고 정식 프랑스인으로 귀화했다.

 

프랑스에서 세계 전역으로 퍼진 예술의 번영

레자르 플로리상의 특징은 성악과 기악이 함께하는 앙상블이라는 점이다. 이는 음악이 따로이 연주되지 않고 연극 및 무용과 결합해서 종합예술로 상연된 루이 14세 시대의 궁정예술을 온전히 재연하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티는 자신의 보물같은 악단을 데리고 프랑스 레퍼토리에만 안주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1993년 아르모니아 문디 음반에서 발매된 헨델의 ‘메시아’(1742년 더블린 버전)는 전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켰고 아직 시대악기 연주라든가 고음악이 낯설던 한국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이례적인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음반은 초판 이후로도 꾸준히 리마스터링 되어 아직까지도 이 레퍼토리에 관한 한 필수 음반으로 애청되고 있다. 심지어 헨델 음악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영국에서조차 그의 ‘메시아’ 음반과 공연은 인기가 높다.

그렇다고 크리스티의 해석을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2016년 12월 LAF가 런던 바비칸에서 연주한 ‘메시아’를 두고, 음악 평론가 올리비아 벨은 ‘지극히 프랑스적인 메시아’라고 평한 바 있다. 윌리엄 크리스티 특유의 가벼운 터치와 섬세한 감수성, 정제된 음색은 LAF의 트레이드 마크로 회자된다. 음정을 컨트롤하기 힘든 시대악기로 연주하면서도 일말의 미스터치도 허용하지 않는 크리스티의 완벽주의는 음악계에서 악명이 높다. 그는 연주자 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똑같은 자세를 요구하는 사람이다. 같은 2016년 마드리드에서 헨델의 ‘메시아’를 연주하던 중 객석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이제는 어디서나 벌어지는 참사 아닌 참사지만 크리스티는 연주를 중단하고 그 핸드폰 주인에게 “나가라!”고 외쳤다. 죄목은 이날 공연 중 가장 아름다운 패시지를 방해한 것이었다.

바로 이 ‘메시아’를 가지고 그들이 다시 2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창단 40주년의 일환으로 마련된 아시아 투어로 이번에는 지난 해 새롭게 개관한 인천 아트센터에서 공연을 가진다. 어쩐지 한국에서 새롭게 개관하는 모든 콘서트홀 마다 그들의 족적이 채워지는 분위기다. 네 번째 내한에서야 보편적인 레퍼토리를 감상하게 되었다며 애호가들은 안도의 한숨을 쉴지 모르겠지만, 그 경험은 결코 보편적이지 않을 것이다. 너무도 유명한 ‘할렐루야’ 파트에서 한국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중 기립도 소란스럽다며 금지될 것이다. 무엇보다 공연 중 핸드폰은 반드시 꺼두길 바란다.

노승림(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PRM

 

윌리엄 크리스티/레자르 플로리상 내한공연

10월 17일 오후 8시 아트센터 인천

헨델 ‘메시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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