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보이즈’

불안한 인간들의 성장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3월 1일 12:00 오전

영국 극작가 앨런 베넷의 ‘히스토리 보이즈’가 한국 초연된다. 남자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공부 좀 하는 소년들’이 등장하는 극은 얼핏 ‘죽은 시인의 사회’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 속에는 직설화법과 유머, 동성애가 치밀하게 짜인 가운데 서로 다른 결함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성장기가 담겨져 있다. 3월 8일~31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앨런 베넷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 2011년 명동예술극장에서 새롭게 소개된 ‘예술하는 습관’의 작가가 앨런 베넷이다. ‘히스토리 보이즈’는 이미 해외 유수 시상식에서 일곱 차례 상을 받았고, 2006년에는 초연 공연 연출가와 배우들이 그대로 참여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히스토리 보이즈’의 한국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범생들’에서 진지한 주제의식과 함께 공연의 재미를 잘 살렸다고 평가받는 김태형이 연출을 맡았다. 괴짜 문학 선생 헥터 역에는 최용민, 옥스퍼드 출신 3개월 속성 족집게 역사 논술 교사 어윈 역에는 이명행이 출연한다. 공연은 흡사 뮤지컬 공연으로 느껴질 정도로 노래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배우들 또한 여덟 명의 학생들 역할의 절반은 뮤지컬 배우로 캐스팅했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닥터 지바고’에 출연했던 이재균이 명민한 유태인 학생 포스너 역할을 맡고,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페임’에 출연했던 김찬호가 엘리트 중의 엘리트 학생 데이킨 역할을 맡았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위선이다!
‘히스토리 보이즈’는 앨런 베넷이 칠순에 쓴 작품이다. 노익장이라 할 만한 원숙함과 특유의 직설화법과 독설의 유머가 여전하다. 배경은 1980년대 초반 영국 북부 지방 셰필드의 한 공립고등학교 대학입시 준비반이다. 이른바 ‘옥스브리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명문대 입학 지원 대상자들만 모아놓은 특별반이다. 1930년대 영국 시인 오든의 시를 줄줄줄 외우고, 조지 오웰 언어의 비판 정신을 논하는 ‘공부 좀 하는 소년들’이 나온다. 자연스럽게 학교 문제를 다뤘던 영화로 유명한 ‘죽은 시인의 사회’가 떠오른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캡틴, 오 마이 캡틴” 키팅을 연상시키는 선생님도 나온다. 그런데 ‘죽은 시인의 사회’를 의도적으로 비꼬기라도 한 듯한 삐딱한 설정들이 많다.
우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명 사립고등학교가 아니라 평범한 공립고등학교가 배경이다. ‘빌리 엘리어트’의 영국 북부, ‘풀 몬티’의 영국 남부처럼 낙후된 지역의 평범한 지방 고등학교가 배경이다. 열두 명의 배우 중 유일한 홍일점으로 나오는 여선생 린톳 부인(추정화 분)이 예전에는 “공부 못하는 애들은 언젠가 예술가가 될 거라는 마음의 위로를 주는 신화”가 있었다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부분은 ‘빌리 엘리어트’에 대한 일종의 패러디처럼도 들린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개천에서 용 난다” 식의 학교 교육에 대한 어떠한 신화적 태도도 비틀어 뒤집어버리는 독설의 대사들이 많다.
“교육 자체가 교육의 적이다”라고 말하며 시(詩)가 ‘인생의 해독제’라는 전통적 방식의 문학 수업을 고수하는 헥터에게 린톳 부인은 시니컬하게 말한다. “심장으로 배운다는 게 도대체 뭔가요? 아이들이 결국 실패할지도 모르니까 보험 들어두는 것 아닌가요?” 독설의 강도가 세다. 가난한 동네, 드물게 똑똑한 학생들, 이 아이들에겐 성적이 곧 기회일 수 있다. 탄광촌의 파업이 아니더라도 이 아이들에겐 성적이 곧 다가올 미래의 계급투쟁일 수도 있다. 이 아이들에게 ‘가슴으로 배우는’ 전통적인 문학 수업이 과연 안전한 종신보험이 될 수 있을까? 이 아이들에게 과연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구조의 사회 속에서 교육의 역할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쏟아지는 독설의 대사 속에서 휘청거릴 정도의 강펀치들이 계속 날라온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강펀치. ‘히스토리 보이즈’의 선생과 학생, 그리고 학생들 사이의 기본적인 관계의 축은 동성애다. 남자고등학교의 동성애라? 그것도 사제지간의 동성애? 군대 내의 동성애 문제처럼 금기시되는 주제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일종의 퀴어 버전이라고 할까? ‘히스토리 보이즈’에서도, 키팅 선생님처럼 학생들의 절대적인 추앙을 받는 문학 교사 헥터가 나온다. 그런데 그는 인자하고 젠틀한 키팅과는 달리 늙고 뚱뚱한 동성애자다. 문학 수업 또한 조지 오웰·셰익스피어뿐만 아니라 1940~1950년대 멜로드라마 ‘밀회’나 텔레비전 코미디물과 대중가요들이 뒤범벅된, 잡동사니와 ‘쓰레기들’로 산만하게 진행된다.
헥터의 첫 등장은 ‘선생님’에 대한 고정관점을 깨뜨릴 만큼 파격적이다. 헥터는 오토바이 가죽 재킷과 헬멧 차림으로 등장한다. 동성애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것처럼 감각적인 패션이나 지적인 외모와도 거리가 먼, 오히려 마초적인 모습에 가깝다. 오토바이는 남자와 남자의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동성애의 성적 코드를 암시한다. 헥터는 오토바이 뒤에 학생들을 태우고 달리며 성추행한 혐의로 권고사직의 위기에 처한다. 그렇지만 동성애자로서 헥터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서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말한다. 헥터는 성추행 혐의를 추궁하는 교장에게 말한다. “지식의 전달은 원래 에로틱한 행동입니다.” 물론 교장(오대석 분)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다. “르네상스는 지랄. 문학이 또 뭐! 플라톤·미켈란젤로·오스카 와일드 뭐 이런 당신네들이 떠받드는 동성애 또라이들은 다 집어치워! 여기는 학교야. 그건 정상이 아니야.”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 ‘죽은 시인의 사회’가 말했던 순수한 열정과 낭만의 세계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 것은 선생도 학생들도 모두 잘 알고 있다. “문학 작품이 약이고 지혜고 반창고며 모든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치만 아니잖아요.” 전교 1등 포스너는 말한다. 헥터의 문학 수업에 감명 받긴 하지만 그것이 현실에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것은 일찌감치 눈치 채고 있다. “문학은 사실 패배자들에 대한 거야. 아무리 헥터가 뭐라고 그래도 문학은 사람을 우울하게 해.” 전교 2등 데이킨도 말한다. “시험에 쓰려고 누구 인용하는 거야, 진짜 네 생각이야?” 작가 지망생 스크립스가 한마디 덧붙인다. 독설과 유머가 촘촘히 교직되어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위선이다!” 공연을 준비하는 노네임씨어터컴퍼니의 기획 콘셉트다. “마이너판 ‘죽은 시인의 사회’” ‘히스토리 보이즈’의 영화를 본 관객들의 논평이다. 1990년 개봉되어 폭발적 반응을 이끌었던 ‘죽은 시인의 사회’에 이어 ‘히스토리 보이즈’가 지금의 현실에서 관객들에게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궁금하다.


▲ 이명행 오대석 최용민 추정화

논쟁의 극, 비윤리적 교육과 윤리적 동성애자
그런데 이 작품의 파격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동성애 삼각관계를 통해서 진행된다. 그런데 그 중심축은 헥터가 아니라 명문 옥스퍼드 출신의 젊은 역사학도 선생인 어윈, 소심한 전교 1등 유대인 학생 포스너 그리고 교장 비서와 사귈 정도로 성적(性的)으로도 우월하고 성적(成績)도 뛰어난 전교 2등 데이킨이다. 포스너는 데이킨을 좋아하지만, 데이킨은 어윈을 좋아한다. 그러나 어윈은 동성애자로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으며 데이킨과의 관계를 진전시키지 않는다. 유혹의 주체는 선생인 어윈이 아니라 학생 데이킨이다. “대담하고 충동적이고 비윤리적이고… 선생님이 가르치는 거하고 선생님이 사는 방식하고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어요? 당신은 선생님이고, 나는… 애라서?” 열여덟 살 데이킨은 스물다섯 살 어윈의 비윤리적 교육 방식을 비난하면서 어윈을 압박한다.
“스탈린에 대해서 알고 싶거든, 헨리 8세에 대해서 공부해라. 마거릿 대처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헨리 8세를 공부해라. 할리우드를 알고 싶다면, 헨리 8세를 공부해라.” 극중에서 반복되는 어윈의 대사다. 어윈은 고등학교 선생을 잠시 거쳐 텔레비전 역사 프로그램의 인기 진행자로 활동하다가 정계로 진출하여 유명 인사가 된다. 옥스퍼드 대학의 역사 전공자이자 역사 교사 경력은 작가인 앨런 베넷의 실제 경력이기도 하다. 어윈은 역사 논술 고사에 천편일률적인 모범 답안을 쓰기보다 종교개혁 당시 남아 있는 ‘예수의 음경 표피 열네 조각’과 같은 경쟁력 있는 답안을 쓰라는 ‘어윈의 테크닉’으로 학생들을 제압한다. 텔레비전에서는 진주만 기습 공격의 진정한 범인은 루스벨트 대통령이라는 도발적인 주장으로 유명해진다. 중세 수도원 유적에서 관광객들이 흥미로워하는 것은 수도원의 화장실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신은 죽었지만, 똥은 살아남았다”라는 독설을 날린다.
역사 교사 어윈이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진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뻔한 답안은 점수를 얻을 수 없다”는 태도는 흡사 단기 속성 족집게 강남 과외 선생의 화법을 연상시킨다. 동성애자이자 학생들을 성추행하긴 하지만 헥터가 전인교육을 강조하는 전통적으로 ‘바람직한’ 교사상을 보여주는 반면, 어윈은 ‘바른생활 사나이’이긴 하지만 그가 가르치는 교육 방식은 비윤리적이다. 헥터든, 어윈이든 모두 인간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고, 작가는 어느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작가의 냉정한 독설가적 면모가 엿보이는 지점이다.
반전은 데이킨에 의해서 일어난다. 데이킨은 원하던 옥스퍼드에 입학하고 나서 어윈을 유혹한다. 어윈이 유혹을 거절하자 데이킨은 어윈의 비윤리적 교육 방식과 다른 윤리적 삶의 태도를 비아냥거린다. 어윈은 결국 데이킨의 데이트 신청에 응하지만 그 둘의 관계는 성사되지 않는다. 학생들에 대한 성추행 혐의가 드러난 헥터의 오토바이에 학생들을 대신하여 어윈이 우연히 동승하게 되면서, 오토바이 사고가 일어났고, 헥터는 죽었고, 어윈은 휠체어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인생의 목적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씁쓸한 결말이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 진학한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판사가 되고 유명 저널리스트가 된 사람도 있지만 세탁소를 차리고 마약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이들도 있고, 실업 수당을 받으며 신경증을 앓으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데이킨은 돈 많이 버는 대가로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세금 전문 변호사가 되었다. 인생은 성적순이 아닌 것이다.


▲ 강기둥 이형훈 박성훈 임준식 김찬호 황호진 이재균 안재영

젊은 연출가 김태형의 중극장 도전기
남자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가벼운 일상의 웃음, 성 정체성에 관한 혼란스러운 질문, 홀로코스트에 대한 민감한 역사 논쟁 등 치밀하게 짜인 극 구조를 어떻게 이만큼 여유롭게 관조하며 풀어놓을 수 있을까. 새삼 앨런 베넷의 연륜의 깊이가 느껴진다. ‘히스토리 보이즈’의 연습이 진행되는 남산 연습실에서의 감상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젊은 연출가 김태형의 도발과 무기는 무엇일까? 치고 빠지는(?) ‘김태형의 테크닉’은 어떤 것일까? 김태형 연출에게 물었다.
“이 극은 불안한 인간들의 이야기다.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선생님들도 그렇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불안한 채로 죽고 늙고 타락한다. 헥터와 어윈과 포스너는 동성애자이고, 학생인 데이킨이 선생인 어윈을 유혹하지만 감정을 쥐어짜고 있지 않다. 그런 점이 현대적으로 느껴진다. 이전 작품들에선 소극장에서 통할 만한 유머로 승부를 해왔는데, 이번 작품은 중극장의 먼 거리에서 전달이 가능한 방법을 찾고 있다. 소극장 연극에서는 공간을 변화시키는 등 거대한 변화를 주었다면, 중극장 연극에선 오히려 정갈하고 정리된 무대에서 안정감 있게 전달하고자 하고 있다. 중극장에서 연극을 보는 재미는 무엇일까 계속 고민하고 있다. 일단 연기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가려고 한다. 그리고 무대 그림도 좀 더 과감하고 시원하게 가져갈 예정이다.”
연습실의 무대 공간에는 교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책상과 의자 몇몇이 놓여 있다. 이 공연은 별도의 암전 없이 인물들의 등장과 퇴장만으로 곧바로 시간과 공간이 전환된다. 그만큼 공연 진행의 속도가 빠르다. 등장인물들이 수시로 극중 상황에서 빠져나와 마치 해설자처럼 인물에 대해서, 자신의 느낌에 대해서 논평하기도 한다. 무대 공간 자체도 과감하고 시원시원하지만 진행 속도 또한 경쾌하다. 평균 나이 서른 살, 젊은 배우들의 에너지 넘치는 무대다. 얼핏 이런 빠른 속도감이 이들 젊은 연극인들의 무대의 가장 큰 ‘전략적 무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한편, 잘생기고 훈훈한 젊은 배우들이 너무 멋져서 관객들이 작품의 현실감 대신 무대 위의 아름다운 환상에 젖어 공연을 보고 돌아가게 되지나 않을지 괜한 걱정이 앞선다. 걱정 많은 사람의 노파심이다. 쉬는 시간에도 연습실의 이곳저곳에서 자연스럽게 화음을 이루는 노래 소리가 들려오니 막바지 겨울의 추위는 어느새 잊고 잠시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글 김옥란(연극평론가) 사진 노네임씨어터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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