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독극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배우 정동환, 지하 골방에서, 금서를 삼키며 인생을 즐기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7월 3일 6:36 오후

On The STAGE

악독극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배우 정동환

지하 골방에서, 금서를 삼키며 인생을 즐기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에 갇혀 사는 현대인들을 바라보는 괴짜 노인의 시선으로 빚은 금기된 연극이 오른다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1960년대 공산화된 체코, 그 속에서 사회주의 체제의 서글픈 부조리를 특유의 해학과 서정성으로 비틀어낸 체코 문학의 거장 보후밀 흐라발(1914~1997). 그가 남긴 대표작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배우 정동환의 묵직한 독백으로 연극 무대에 오른다.
35년간 폐지 압착공으로 일하며 버려지는 책들을 탐독하고 흡수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괴짜 노인 ‘한탸’의 이야기다. 이 무대에서 관객은 배우의 연기를 눈에 담고 자막으로 흐르는 글을 읽으며, 유도동기로 구성한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듣는다. 연출가 임야비가 이름 붙인 새로운 장르, ‘악독극(樂讀劇)’의 최전선에서 온 영혼을 쏟아붓고 있는 배우 정동환과 마주 앉았다.

 

세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1970년 중반 비공식적으로 유통된 뒤, 국내에는 지난 2016년에야 비로소 출판되었습니다. 연극을 준비하기 전, 소설을 알고 계셨나요?
임야비 연출가가 이 책을 전해 줘서 알게 되었어요. 그때 연극을 하겠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당시 내가 너무 바빠서 정독을 못 했습니다. 이제 막 들여다보고 있지요.

맡으신 배역은 주인공 한탸(Haňťa)입니다. 그는 지하실에서 홀로 폐지를 압착하며, 책을 탐독하는 인물이죠. 혹시 자신과 닮은 점이 있다고 느끼진 않으셨는지요?
홀로 있을 때 많이 했던 생각을 이 책이 그대로 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 역시 혼자 책 읽는 시간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요.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이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셨을 텐데, 연출가의 의견과 비슷한가요?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런 스타일의 연극(악독극)이 관객에게 얼마큼 잘 받아들여질지, 과연 설득력이 있는 건지, 제대로 소통이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일단 시도해 보는 거죠.

어떤 점에서 시도라고 생각하나요?
틀림없는 건, 작품이 요즘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는 전적으로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죠. 그런데 반드시 알려줘야 하는 얘기인 것만은 틀림없어요. 요즘에는 쉽게 소통하고 진중하게 깊이 생각하지 않는… 그런 경향이 있잖아요.

극의 시대적 배경이 나치 시절부터 1970년대 공산주의 사회까지인데, 현시대의 관객이 공감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지금 이 시대를 딱 겨냥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자신을 잘 모른 채 살고, 영혼 없이 그저 세류(世流)에 쓸려서, ‘인간의 사유나 영혼은 필요 없어’라고 말해버리는 시대잖아요. 인간은 결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걸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극은 그 묵직한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고 있나요?
내가 연기하는 중에 뒤에선 자막이 계속 흐르지요. 연출가는 이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책 한 권을 읽는 기회를 준다고 표현하는데, 제 생각에는 더 나아가 관객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연극 장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객관적 접근’이 이 연극의 특징일 수 있겠군요?
그렇죠. 거리를 두고 더 생각하게 하고, 더 고민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냥 말로 뱉어버리면 지나가지만, 무대 위에 글자로 적히는 건 관객과의 ‘거리 두기’에 아주 기가 막힌 연극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나는 이런 작업이 일종의 시도이고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혹시 한탸 역을 연습하면서 책을 읽었을 때와는 다른 면들이 보이는 것이 있었나요?
처음에 책을 볼 때는 생각을 무척이나 많이 해서 머리가 어지러운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연습을 하면서 ‘이 사람은 인생을 참 즐기는 사람이구나’라고 느꼈어요. 그 비극적인 지하실 안에서도 삶의 낭만을 찾아내는 것, 그게 바로 ‘현자(賢者)’가 되는 길 아니겠어요?

그것이 바로 이번 연극에서만 접할 수 있는 메시지일 것 같군요! 반면, 역설적인 제목이 암시하듯 유독 독백이 많습니다.
독백들이 한 편의 시라고 여겨져요. 깊이 있게 파고들어서, 나중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어떤 엄청난 사건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적이어야 하지요. 그래서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관객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겁니다.

특별히 깊은 울림을 주었던 장면이나 문구를 소개해 준다면요?
한탸가 사랑했던 여인을 회상하는 대목 중 “한 개비 장작처럼 성령의 숨결처럼 단순했던 내 집시 여인, 내 사랑하는 여자. 추우면 몸을 공처럼 말았던 아이. 침대에서 따뜻하게 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던 여자. 연이 자기를 하늘로 데려갈까봐 무서워했던 여자.” 다른 수식도 없고 설명도 없는데 그 대사가 대단히 크게 나한테 다가왔어. 그리고 그렇게 바라보는 이 사람의 심성이… 난 너무 아름다웠어. 이 대사는 비단 남녀의 관계만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사랑과 죽음을 통해 시대를, 국가 상황을 이야기하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을 시적으로 그려내요. 그래서 더 보편적인 이야기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악독극’이라는 새로운 장르 속에서

‘악독극’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대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큐시트를 보면서 생각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 거야. 어디서 뭘 해야 되고 뭘 움직여야 되고 뭘 맞춰야 되고… 그런데 자막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난 못 본단 말이에요. 그러면 그 시간을 내가 어떻게 연기로 쌓아나가야 되는지 계산해야 하죠. 그래서 연습이 필요한 거지요.

관객은 배우의 연기와 대사뿐 아니라 녹음·자막·음악까지 복합적인 감상을 동시에 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도가 관객에게 남다른 감흥을 줄 수 있을까요?
나는 확실히 그런 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관객이 극 중 감정에 마냥 함몰되지 않고, 거리를 두면서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들거든요. 또 깊이 있는 시로 본인을 찬찬히 돌아보게 만드는 그러한 연극이 될 겁니다.

이번 무대에는 한 악장으로 압축된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 등이 사용되는데, 음악이 장면들과 잘 어울리던가요?
당연히 그러리라고 생각하는 거지. 나는 임야비(각색·연출가)를 믿으니까!(웃음) 나는 사극을 하면 역사에 대해서 공부하게 되고, 철학적인 작품을 하면 철학을 공부하게 돼요. 이건 ‘악독극’이니까 음악에 대해서도 또 깊이 공부하게 되고, 배우로서 그 과정이 참 재미있죠.

이 연극에서 음악은 바그너의 ‘유도동기’처럼 사용됩니다. 사실상 또 하나의 배역이죠. 그런 점에서 음악이 극의 전개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나도 충분히 그 도움을 받으면서 움직이는 거니까.

그 수많은 음악 중에서도 특히 마음을 움직였던 장면이 있었나요?
아직 음악을 다 듣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있어요.

아, 트롬본 테마군요! 반복되는 선율들을 주의 깊게 들으면서 연극을 보면 훨씬 감흥이 클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연극을 기다리는 관객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연극의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실 겁니다. ‘아, 이렇게도 연극이 될 수 있고, 이렇게 사람들을 매혹시킬 수 있구나, 이렇게 빠져들게 할 수 있구나’ 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시대에 이 이상의 중요한 이야기가 없으리라’는 확신을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멋지게 해낼 연출자와 작가들이니까, 그렇게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극장을 찾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총체극단 여집합

음악 칼럼니스트 송주호와 정동환

 

 

 

 

 

 

 

 

정동환(1949~) 김제에서 태어나 서울연극학교(현 서울예술대학)를 졸업했다. 1965년 연극배우로 데뷔해, 1973년 KBS에 특채 탤런트로 입사하면서 다수의 드라마 ‘가을동화’ ‘상속자들’ 등과 영화 ‘사바하’ ‘서울의 봄’ 등에 출연했다. 지난해 서울시오페라단 ‘파우스트’에서 연극과 오페라를 결합한 ‘오플레이’ 형식의 무대에 참여해 노년의 파우스트를 연기하며 새로운 행보를 이어왔다.

 

PERFORMANCE INFORMATION
악독극 ‘너무 시끄러운 고독’
7월 4~19일 SH아트홀
보후밀 흐라발(원작)/손일훈(음악감독)/임야비(각색·연출)/정동환·곽소영·김동윤·최승언·원빈(출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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