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WAY
서초교향악단 예술감독 배종훈
하이든의 길을 완주하다
팬데믹 속에서 시작된 7년의 대장정.
하이든의 교향곡 107곡 완주를 앞두고 걸어온 길을 돌아보다

2020년, 팬데믹으로 공연장이 멈췄다. 서초교향악단의 배종훈 예술감독은 “음악으로 극복하자”는 마음 하나로, 관객 없는 무대에서 하이든 교향곡 전곡 연주를 시작했다. ‘107곡을 연주하는 동안에는 코로나가 끝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였다. 그로부터 7년째에 접어든 지금, 배 감독에게 하이든은 팬데믹의 시간을 견디게 한 음악이자, 악단의 정체성과 철학을 만들어준 존재가 되었다.
서초구는 2015년 서초문화재단을 설립했고, 2016년 서초교향악단을 상주예술단체로 출범시켰다. 이후 하이든으로 악단의 기초와 지금의 정체성을 다졌기에 이제는 ‘하이든악단’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107곡의 완주를 앞둔 배 감독은 “우리가 하이든을 살린 것이 아니라, 하이든이 우리를 살렸다”고 말한다.
오는 7월 9일, 서초교향악단은 하이든 교향곡 전곡 연주의 마지막 무대를 올린다. 팬데믹을 버티게 했던 음악은 이제 또 다른 출발점이 됐다.
단원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넘은 107개의 산
‘하이든 전곡 연주’라는 긴 여정을 시작할 때부터 완주를 확신했나요?
솔직히 처음에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과연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중간에 지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많았어요. 그런데 첫 작품을 연주하면서 단원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큰 위로를 받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가 하이든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이든이 우리를 이끌어주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7년 동안 새롭게 발견한 점도 많을 것 같습니다.
하이든이 구축한 음악 세계가 얼마나 거대한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작은 음악적 동기를 끝없이 발전시키는 동기 발전법을 이미 완성해 놓았다는 사실입니다. 흔히 베토벤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방식을 하이든이 먼저 정립했고, 베토벤이 이를 이어받아 확장한 것이죠. 연주하다 보면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하이든에게 받은 영향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오랜 시간 함께하며 느낀 하이든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자연스러움’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표현하기 어려운 것도 없죠. 하이든의 음악은 모차르트처럼 선율이 선명하지도, 베토벤처럼 강한 철학이 전면에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프레이징이 불규칙하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위트가 튀어나오기도 하죠. 이 자연스러움을 하나씩 풀어나가다 보면, 높은 산 정상에 올랐을 때와 같은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하이든을 연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는 뛰어난 연주자가 많지만, 조성이 가진 고유한 색채와 뉘앙스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이든은 조성의 감각을 철저하게 깨우쳐주는 작곡가입니다. 조성의 세계와 빛깔을 끝까지 파고들어 극대화하죠. 작곡가든 연주자든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하이든을 깊이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규모와 이해관계를 넘어, 가치 중심의 예술로
7년이라는 시간은 악단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을 것 같습니다.
앙상블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하이든의 음악은 한 사람만 흔들려도 전체가 무너지기 때문에 결코 묻어갈 수 없습니다. 7년 동안 단원들과 한 음 한 음 맞춰가며 연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중력과 균형감이 생겼습니다. 단원들 역시 힘들었지만 그만큼 얻은 것이 많았다고 입을 모읍니다.
관객들과 함께 쌓아온 시간도 특별했을 것 같은데요.
사실 걱정도 많았습니다. 한 공연에서 교향곡을 세 곡, 네 곡씩 연주하다 보니 관객들이 지루해하시지는 않을까 싶었죠. 그런데 놀랍게도 한 분도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주신 관객들도 생겼습니다.
긴 호흡의 프로젝트를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나요?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기초자치단체 산하 오케스트라가 이토록 긴 호흡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에도, 서초구와 서초문화재단이 저희의 예술적 방향을 끝까지 믿고 지원해 주었습니다.
하이든 이후에는 어떤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나요?
앞으로 모차르트와 베토벤, 브람스, 차이콥스키까지 이어지는 전곡 연주 시리즈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긴 호흡으로 레퍼토리를 하나씩 쌓아가고 싶어요. 그리고 2032년, 하이든 탄생 300주년이 되면 다시 하이든으로 돌아오고 싶습니다.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지금,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가치를 추구하면 반드시 열매가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열매를 따지 못하더라도 향기가 남고, 향기마저 사라진 뒤에도 이야기는 남죠. 그것이 문화라고 생각해요. 문화예술의 도시 서초에 누군가 목마를 때 언제든 마실 수 있는 마르지 않는 샘물 하나를 남기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음악을 하는 이유이자, 앞으로도 지켜가고 싶은 목표입니다.
글 홍예원 기자 사진 서초문화재단
배종훈(1963~) 빈 국립음대에서 작곡과 지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오페라와 음악원에서 오케스트라와 발레 지휘를 공부했으며, 미국 UCLA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2010년 국군교향악단을 창단해 초대 음악감독을 지냈으며, 현재 서초문화재단 예술총감독, 서초교향악단 예술감독 및 상임지휘자로 재임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배종훈/서초교향악단 ‘하이든 교향곡 전곡 시리즈 35’
7월 9일 오후 7시 30분 반포심산아트홀
하이든 교향곡 108·104번,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1번(협연 이경숙)
배종훈/서초교향악단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 시리즈 9’
8월 27일 오후 7시 30분 반포심산아트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8번(김상영)·19번(유혜영),
세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7번(나정혜·이경숙·김강호)
ABOUT
서초구청장 전성수
일상이 예술이 되는 문화도시 서초를 향해

서초교향악단의 하이든 교향곡 전곡 연주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이든 교향곡 전곡 시리즈’는 문화예술도시 서초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 콘텐츠다. 문화정책은 단기간에 성과를 확인하기 어려운 분야지만, 꾸준한 지원과 일관된 방향성이 있다면 결실을 맺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배종훈 예술감독과 서초교향악단의 끈기, 그리고 문화예술을 핵심 가치로 삼아온 서초구의 정책 철학이 함께 만들어낸 상징적인 성과다.
서초구가 전문예술단체를 꾸준히 육성해 온 배경과 문화정책의 핵심 철학이 궁금하다.
서초구는 예술의전당, 국립국악원, 전국 유일의 음악문화지구 등 문화 인프라가 집약된 도시다. 이를 체계적으로 뒷받침하고자 2015년 서초문화재단을 설립했고, 이듬해 서초교향악단을 상주단체로 출범시켰다. 우리의 철학은 ‘일상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일상이 되는 도시’다. 익숙한 동네에서 수준 높은 공연을 접할 수 있을 때 예술이 일상이 되는 기적이 시작된다.
해외 순회공연, 프랑스 칸의 세계AI영화제(WAIFF) 개막공연 등 서초교향악단의 국제적 성과와 서초구의 비전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서리풀 K-스트링 페어, 악기거리 토요브런치 투어 등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친근하게 접할 환경을 조성해 왔다. 서초교향악단의 국제적 활약 역시 서초구가 음악문화지구를 중심으로 K-클래식의 가능성을 키워온 노력이 맺은 결실이다. 이들이 앞으로도 세계 무대에서 서초의 역량을 알리는 문화외교의 주인공이 되길 기대한다.
서초구가 그리는 문화도시의 지향점과 앞으로 서초교향악단에 바라는 역할은?
누구나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을 자연스럽게 누리는 도시다. 서초교향악단은 지난 10년간 클래식 음악을 대중화하며 도시 가치를 높이는 핵심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로 자리매김하여, 구민과 호흡하고 서초의 문화예술을 세계로 확장하는 여정을 이어가길 응원한다.
글 홍예원 기자 사진 서초구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