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오래 산 ‘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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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6월 1일 12:00 오전

나보다 오래 산 ‘바하’

사무실 개인 책장에 두었던 포르켈 바흐 평전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편집부 사방을 들쑤셔도 보이지 않아 곧장 아래층 서고로 달려가 “바흐, 바흐, 바흐” 눈을 뒤집고 찾았습니다. 여러 책등 위에 쓰인 여러 바흐들을 볼 때마다 “아니야, 파랗고 작은 바흐란 말이야!” 짜증을 부리고 서 있는데, 그때 누렇게 색이 바랜 ‘바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1973년, 무려 40년 전 음악평론가 이순열 선생님이 쓰신 바흐 평전. 포르켈은 나중에 찾기로 하고, 이 책을 잡자마자 읽어 내려갔습니다. ‘읽어 내리다.’ 말 그대로 ‘우종서’에 적응하느라 미간을 움찔거리는 것도 잠시, 이순열 선생님 특유의 고고하지만 따스한 문장에 깊이 빠져 마치 한 편의 이야기책을 읽는 기분입니다.
글쓰기, 즉 말하고자 하는 바를 풀어가는 방식과 문체는 꽤 어린 시절에 정해지는 것 같다는 평소의 추측 혹은 믿음에 확신이 더해졌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쓴 일기장을 뒤늦게 보고 절감한 사실인데, 마찬가지로 선생님 40년 전 글이 지금 쓰시는 글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1973년 이전, 청년과 소년 시절에도 이렇듯 격 있고 따스한 문체로 쓰셨겠지요.
하필이면 이순열, 하필이면 바흐. 평생 자신의 글과 음악 앞에 치열했던 두 ‘개인’의 일생에 눌려 삼십 중반의 저는 이런 생각에 이릅니다. 너는.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

네 고만고만한 글솜씨
네 고만고만한 지식과 딱 그만큼의 게으름
네 고만고만한 아웃풋과 인풋
네 고만고만한 인류애와 자기현시욕
네 고만고만한 강과 약, 장과 단
그걸 가지고, 이제 더 무엇이 되려는 것이냐.

우리가 지금 꿈꾸는 것 앞에 ‘감히’라는 두 글자를 붙이거나 혹은 무엇이 되려는지조차 망각한 채, 한숨 속에 훠이훠이 보내버린 짧은 봄이었습니다. 북스테후데를 만나러 봇짐을 쌀 수 있었던 바흐의 용단이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종종 텃밭에 찾아와 노래를 부르는 작은 새에게 파파게노라는 이름을 붙여주신, 세상 모든 존재가 음악이고 문학인 이순열 선생님의 오늘이 부럽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여기까지가, 저보다 긴 세월을 살아낸 한 권의 책을 앞에 두고, 아주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던 5월의 기억입니다.

박용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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