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어린이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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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9월 1일 12:00 오전

14세 미만, 작고 앙증맞은 ‘어린이’ 100여 명이 말러 교향곡 1번을 잘츠부르크의 청중에게 선사했다. 무려 ‘래틀 아저씨’의 지휘로!

각종 페스티벌이 열리는 유럽의 여름,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다양한 만찬을 준비한 곳을 꼽자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얘기해야겠다.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돈 카를로’로 대표되는 오페라는 물론 말러를 조명하는 교향곡 전곡 시리즈, 하겐 4중주단의 베토벤 사이클, 5명의 마에스트로가 번갈아 가며 이끄는 빈 필하모닉의 연주, 마치 우리나라 교향악 축제처럼 각기 다른 교향악단과 마리스 얀손스ㆍ미하엘 길렌ㆍ다니엘 바렌보임ㆍ샤를 뒤투아ㆍ안토니오 파파노 등 최고의 지휘자들이 이끄는 오케스트라 콘서트 무대도 볼 만했다. 여기에 어윈 쇼트ㆍ크리스티안 게르하허ㆍ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등의 리더아벤트(가곡의 밤),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와 마우리치오 폴리니, 루돌프 부흐빈더, 예정되어 있던 예브게니 키신 대신 등장한 틸 펠너의 독주회까지… 크고 작지만 알찬 구성의 프로그램이 올해도 전세계로부터 관객을 끌어들였다. 연주자도, 프로그램도 화려하지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는 관객, 이들의 의상 또한 못지않다. 다채로운 성격의 공연이 펼쳐지는 ‘축제’이다 보니 여느 페스티벌보다 복장이 화려하고 특히 오페라 공연에는 리무진을 타고 오가며 화려한 드레스와 턱시도 차림으로 입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 역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화려함을 완성해준다.
올해 특별한 구성으로는 ‘엘 시스테마 2013’이 있었다. 구스타보 두다멜이 주축이 되어 이끄는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심포니 오케스트라,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 그리고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네수엘라 국립 어린이 교향악단(Orquesta Sinfonica Nacional Infantil de Venezuela)의 말러 교향곡 1번 연주까지, 이례적인 구성이지만 열 개 콘서트는 공연 전부터 매진을 기록했다. 그중에서도 사이먼 래틀의 지휘로 어린이 단원들이 연주한 말러 무대(8월 11일)가 화젯거리였다. 국내 한 언론사에서 이날 프로그램에 대해 ‘베네수엘라 국립 어린이 교향악단’으로 번역ㆍ소개한 것이 ‘청소년 오케스트라(youth orchestra)’의 오기가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을 정도로 ‘어린이’ 오케스트라와 말러 1번 구성은 일반적인 조합은 아니었다.


▲ 래틀과 베네수엘라 국립 어린이 교향악단 ⓒSilvia Lelli

뚜껑을 열어봤다. 14세 미만, 말 그대로 작고 앙증맞은 ‘어린이’ 100여 명이 등장했다. 인형 같은 외모의 첼로 수석은 자신의 키만한 3분의 4 사이즈 첼로를 들고 나왔다. 관악 파트는 그나마 고학년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어린이였다. 그런데 이들의 무대는 같은 프로그램을 연주하는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연주 못지않게 훌륭했다. 래틀은 말러 교향곡 1번과 거슈윈의 ‘쿠바 서곡’을 선보였고, 그 중간에 두다멜의 뒤를 잇는 지휘자 헤수스 파라가 히나스테라의 ‘에스탄시아 춤곡’ Op.8a를 연주했다. 거슈윈ㆍ히나스테라는 ‘엘 시스테마’ 산하 단원들의 장기 레퍼토리인데, 연령이 낮아져도 연주력은 여전했다.
래틀의 시선을 한시도 놓치지 않으려는 암팡진 손놀림,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될 만큼 빼어난 리듬감, 눈에 띄게 출중한 플루트 수석의 노련한 호흡 처리 등 새삼스럽지만 연주 내내 대견함, 뭉클함 이외의 감동이 몰려왔다. 당연하겠지만, 말러 연주에서는 ‘어린이’라는 한계가 보였다. 단원 중에는 분명 ‘천재’ ‘영재’도 있겠지만 전체 그림을 보고 원근을 조절하며 이미지를 완성하기에는 버거웠나 보다. 기술적으로도 훌륭하고 빠른 템포에서의 리듬감도, 음색도 좋았지만, 템포가 느려지거나 긴 호흡으로 여운을 끌어내야 하는 디테일에서는 집중도가 떨어지고 흐름이 끊겼다.
아쉬웠을까? 아니다. 수많은 명연에 익숙해 있던 귀가 소위 ‘거슬리는’ 부분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동안, 앞에 있는 연주자들을 바라보는 눈은 그때마다 현실적인 답을 찾아준 듯하다. 누구나 작품에 대한 최고의 해석을 듣고 싶겠지만 눈앞에 올망졸망 모여 있는 아이들의 말러 완주에는, 이 무대에 서기까지 숨어있던 진지함과 노력, 그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말러 1번에 대한 시선도 엿볼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신 난 표정으로 소리 지르며 방방 뛰고 ‘래틀 아저씨’에게 안겨 떠드는 천진함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다가왔다. 묘한 감동이다. 무대에 오른 100여 명의 아이들보다 몇 십 배 더 많은 아이들이 베네수엘라 전역에서 세계적인 지휘자, 빈 필하모닉 단원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여전히 부럽고 놀라우며 기적 같은 이야기다.


▲ 틸레만과 빈 필 ⓒSilvia Lelli

잘츠부르크로 간 크리스티안 틸레만
올해 피아니스트 리사이틀 무대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다. 현지 청중을 통해 전해들은 바로는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연주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예브게니 키신의 손 부상으로 급히 교체된 틸 펠너는 반할 만한 바흐ㆍ하이든 등의 작품으로 공연을 잘 마쳤고, 최근 뉴욕에서의 공연평이 좋지 않았다는 폴리니는 극과 극의 연주를 보여줬다. 폴리니의 1부 무대는 첫 패시지부터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음을 놓치거나 쫓기듯 연주하며 “이 사람 여기에서 은퇴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인터미션 이후 폴리니는 달라졌다. 5분이 지나도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고, 10분만 더 기다려달라, 그런데 폴리니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연주를 접을 수도 있다는 안내 멘트까지 있었지만, 다시 등장한 그의 ‘쇼팽’ 연주는 말 그대로 ‘대가’의 면모를 보여줬다. 감동해서 눈물까지 날 뻔했다는데 이 연주, 그리고 살아있는 전설, 그리고리 소콜로프의 연주를 놓친 게 참으로 아쉬웠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주인인 빈 필하모닉을 연주한 지휘자 중 누구의 연주가 최고였을까?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ㆍ주빈 메타ㆍ크리스티안 틸레만ㆍ리카르도 무티ㆍ로린 마젤? 현지 분위기는 메타와 무티 연주보다는 최근 빈 필하모닉과 베토벤 교향곡 전곡 녹음, 바그너의 ‘반지’ 전곡 녹음 등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춘 틸레만에 대한 반응이 가장 호의적이었다. 틸레만은 현 시대의 독일 음악, 독일 음악가를 대변하는 일종의 아이콘처럼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는 독일 순수 혈통이니 하는 수사를 붙여 미화한 것이 아니라 작품에 대한 그의 이해도와 표현력, 장악력 때문이다. 오케스트라 총보는 기본, 오페라는 각 역할에 따른 캐릭터 해석, 악보 구석구석까지 모조리 외워 피아노를 연주하며 진두지휘하는 통에 빼어난 가수들도 그의 카리스마에 늘 압도당한다.
지난 7월 말, 한국 출신의 베이스 사무엘 윤이 주역으로 출연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올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첫 개막작으로 진두지휘한 틸레만은 8월 5일 공연까지 마친 후 오스트리아로 이동, 8월 10일 빈 필하모닉과 함께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을 지휘했다. 오만한 표정, 각진 턱을 치켜들며 다이내믹하게 몰아치는데, 특히 3악장에서의 몰입도는 최고였다! 1시간 30분 넘도록 처지거나 흐트러짐 없이, 끝까지 아삭아삭한 느낌으로 연주하는 빈 필하모닉은 금빛 가루가 눈앞에서 부숴지는 것 같은 음색을 대축제극장에 가득 쏟아냈다.

글 이지영(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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