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울산·전주에서 즐기는 가을 축제

생각의계절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0월 1일 12:00 오전


▲ 카 퓌블리크의 ‘베리에이션S-결투’ ⓒDamian Siqueiros

그곳에 똑같은 음악과 몸짓이 있다 하더라도, 지난여름의 것과 이 가을의 것은 다르다. 땀이 식은 자리에서 만끽하는 여유, 가을 축제. 피크닉 클래식 인 서울·서울세계무용축제·서울국제공연예술제,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 전주세계소리축제 등 세 도시에서 펼쳐지는 10월의 축제를 모았다.

피크닉 클래식 인 서울 | 음악, 배우며 누리며
음악 팬이라면 공원에서 펼쳐지는 클래식 음악회, 이른바 ‘파크 콘서트’ 소식을 몇 해 전부터 어렵지 않게 들어왔을 테다. 유니버설 뮤직의 주최로 올해 처음 열리는 ‘피크닉 클래식 인 서울’은 유럽 여러 도시에서 펼쳐지는 유수의 야외 음악축제를 표방하고 나섰는데, 사실 이 신생 프로젝트의 가장 큰 매력은 서울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열린다는 점이다. 10월 3일과 4일 양일간 월드컵공원 내 평화잔디광장 및 일원에서 오직 클래식 음악으로만 구성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누릴 수 있다. 물론 선선한 바람과 쨍쨍한 햇살이 늘 함께다.
10월 3일 오전 티켓 부스가 오픈하고, 오후 1시부터 피아니스트 김주영, 만돌린 주자 아비 아비탈, 더 필하모닉스의 첼리스트 슈테판 콘츠, 리코더리스트 권민석 등의 마스터클래스가 이어진다. 마스터클래스는 4일에도 계속된다. 바이올리니스트 조윤범과 기타리스트 이성우 등이 멋진 안내자이자 일일스승으로 나선다.
잔디밭에서 음악 공연과 음악에 관한 강연을 함께 접할 수 있다는 점도 피크닉 클래식의 매력이다. 3일에는 풍월당 대표이자 신경정신과 전문의 박종호의 강연, 4일에는 ‘이 한 장의 명반’ 저자 안동림과 음악 칼럼니스트 류태형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앞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한 피아니스트 김주영과 바이올리니스트 조윤범(콰르텟X)은 각각 3일과 4일, 음악 칼럼니스트와 해설자라는 ‘부업’을 살려 연주와 해설이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중증장애를 갖고 태어났지만 지금은 작곡가이자 가수로서 멋지게 무대에 서는 레나 마리아 역시 3일에 공연과 강연을 한 무대에서 선보인다.
가을의 해가 넘어갈 즈음, 본격적인 공연이 펼쳐진다. 3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 첼리스트 양성원, 성악가 고성현·신동원·김은경의 무대가 밤까지 이어진다. 4일의 시작은 단아함과 파격이라는 양면을 지닌 리코더리스트 권민석이 맡았으며, 만돌린 주자 아비 아비탈, 더 필하모닉스, 임형주의 연주를 차례로 들을 수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평화잔디광장 및 평화의정원 일대에서 펼쳐진다.


▲ 박인혜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전주세계소리축제 | 정체성의 음악
그 이름부터 ‘월드뮤직’ 네 글자가 꼭 박힌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 우리소리의 고장에서 열리는 전주세계소리축제. 울산과 전주는 각각 월드뮤직과 우리소리를 그 중심에 두고 있으리라 ‘예상’되며, 서로가 무척 다른 축제처럼 인식되곤 했다. 그러나 막상 속을 까면 두 축제는 여러모로 닮았다. 월드뮤직이 무엇인가. 서유럽의 클래식 음악, 영미권의 팝 음악, 그리고 이 두 영역의 영향 아래 놓은 오늘날 전 세계 음악들과 차별되는 ‘민족의 정체성을 담은 음악’이 아니던가. 그러니 우리의 정체성을 담은 음악, 즉 한국의 월드뮤직은 국악이며 ‘소리’이다.
외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는 어느 멸족 위기 부족민처럼, 세상 여러 월드뮤직들이 대중의 외면 속에 시름에 잠겨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타고난 생명력을 어쩌겠는가. 판이 벌어지면 어김없이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월드뮤직이다. 그 마력은 낯섦으로 시작해 공감으로 맺어진다. 플라멩코 보컬의 지존이 피를 토하기 직전까지 힘주어 노래하는 모습에 우리네 명창들이 겹쳐 보이는 식이다.
10월 3일부터 6일까지 울산문화예술회관 및 달동문화공원에서 펼쳐지는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은 그래서 판소리와 플라멩코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정가악회는 일찍이 우리의 판소리와 플라멩코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지난 몇 년간 수차례 스페인을 방문해 현지에서 플라멩코를 익혔다. 이외에도 레나카이·사비나 야나투와 프리마베라 엔 살로니코·발데마르 바스토스 등 해외 음악가들과 고래야·잠비나이·비빙 등 신선한 행보의 우리 젊은 음악가들이 울산을 찾는다.
한편 전주세계소리축제는 10월 2일부터 6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전주한옥마을 일대에서 펼쳐진다. ‘우리소리’의 중심을 꽉 잡은 것은 축제 기간 내내 이어지는 판소리 다섯 바탕 무대이다. 유수정·조주선·김미나·모보경·박지윤·임현빈 등 중견 명창, 김미진·박인혜·이소연·김도현·조선하 등 젊은 소리꾼들이 언제나처럼 판을 책임진다. 김영재와 강정열, 황은숙과 이항윤 등 기악 명인들이 선보이는 ‘산조의 밤’도 놓칠 수 없다. 축제 내내 전주에서는 일본·필리핀·인도·헝가리·아르헨티나 등 다양한 나라와 민족의 음악을 접할 수 있다. 한편 음반과 내한 공연을 통해 국내에 두터운 팬을 보유한 탱고 그룹 바호폰도는 울산과 전주, 두 도시를 모두 방문할 예정이다. 두 축제 대한 자세한 일정은 홈페이지 www.cheoyong.or.kr(울산), www.sorifestival.com(전주) 참조.


▲ 컴플렉션스 컨템퍼러리 발레 ‘회상’


▲ 테아트르 드 라 빌 ‘빅토르 혹은 권좌의 아이들’

서울세계무용축제·서울국제공연예술제 | 생각을 요구하는 몸짓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이 시 구절이야말로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소통’되는 무대 위의 몸짓 모두의 바람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음악마저 철저히 배제되고 매우 기괴한, 그럼에도 춤이라 불리는 몸짓이든, 비언어극이든, 아니면 마치 무대 위에서 말(言) 폭탄을 터뜨린 듯 고함으로 가득 찬 한 편의 연극이든… 무대 위의 몸짓들은 분명 관객으로부터 ‘의미’를 부여받고 싶어 하지 않을까.
오늘날 ‘몸짓’의 현주소를 느낄 수 있는 거대한 두 행사들이 서울의 10월을 꽉꽉 채운다. 서울세계무용축제(이하 시댄스)는 10월 7일부터 27일까지 강동아트센터·예술의전당·고양아람누리 및 도심 곳곳에서 펼쳐지며,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이하 스파프)는 10월 2일부터 26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대학로예술극장에서 펼쳐진다. 시댄스는 16개국 51개 작품을, 스파프는 7개국 19개 작품을 선보인다.
올해 시댄스에서 주목할 해외 단체는 미국의 컴플렉션스 컨템퍼러리 발레, 신성으로 급부상한 스페인의 라 베로날, 클럼핑을 추는 프랑스의 에디 말렘 무용단, 캐나다의 카 퓌블뤼크 등이다. 이중 컴플렉션스 컨템퍼러리 발레(공동 예술감독 드와이트 로든·데스먼드 리처드슨)는 한국인 무용수 주재만이 발레 마스터와 부예술감독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이목을 집중시킨다. 백인·흑인 공동 예술감독과 동양인 부예술감독 체제가 대변하듯, 이들은 NDT 등 컨템퍼러리 발레를 추는 유럽의 유수 단체들과 비교했을 때 다양한 장르를 유기적으로 넘나드는 매력을 지녔다고 평가된다. 특히 이번 시댄스 무대에서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음악을 사용한 ‘목성의 달빛’, U2의 음악과 함께 하는 ‘상승’, 앞서 소개한 주재만의 안무작이자 이번 무대를 통해 세계 초연되는 ‘회상’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10월 12·13일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 올해 시댄스에 오르는 51개 작품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 www.sidance.org 참고.
한편 다채로운 무대 장르를 만날 수 있는 공연예술축제 스파프는 ‘초현실 대 리얼리티’라는 주제하에, 초현실주의적 경향의 해외 작품과 현실에 기반을 둔 작가주의적 노선의 국내 작품을 대조한다. 프랑스의 테아트르 드 라 빌, 벨기에의 울티마 베즈 무용단, 미국의 빌더스 어소시에이션, 일본의 도가 스즈키 컴퍼니가 스파프를 위해 내한하며, 국내 작품으로는 권호성 연출의 ‘숙영낭자전을 읽다’, 김민정 연출의 ‘인생’, 김수진이 재해석한 노경식 작 ‘달집’이 나선다. 신창호·김보람·윤푸름·차진엽 등 오늘날 국내 현대무용의 젊은 피로 부상한 30대 안무가들의 작품 역시 만날 수 있다. 자세한 일정은 홈페이지 www.spaf.or.kr 참조.
10월, 서울의 무대 위에는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개념만이, 외면하고 싶은 현실의 자화상만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못해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몸짓만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 무대를 바라보는 우리는 분명 ‘생각’이란 것을 하고 있을 테다. 의미를 찾기 위한 과정이 이어질 가을, 의미를 찾되 정의하지 말자.

글 박용완 기자(spir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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