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과정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0월 1일 12:00 오전

장영규의 음악은 ‘춤추는 안은미’가 그려낸 춤의 풍경 속 음악적 속살이었다. 때로는 그의 음악만을 들을 적에도, 안은미의 춤과 색채는 어김없이 음표 사이로 찾아와 춤을 추었다. 이런 장영규가 이끄는 비빙은 전통음악이 나아갈 새로운 길을 담고 있는 ‘봉인된 지도’ 같은, 신비롭고 묘한 그룹이다.
지난여름, 두산아트센터에 오른 비빙의 공연을 봤다. 공연 뒤 나는 어찌된 일인지 그들의 음악과 함께 이름을 되뇌어보았다. 비빙(Be-Being). 이름 하나 잘 지었다. ‘비(be)’는 ‘있다’를 뜻하고, 빙(being)은 ‘존재’ ‘실재’를 뜻한다. 먼저 살펴보면, 이들의 음악은 지금까지 행해온 ‘창작국악’의 문법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볼 수 있겠다. 대부분 ‘국악 작곡가’들은 창작의 과정(ing)을 밀실에서 ‘창작의 고통’과 함께 진행해왔다. 그리고 최종 결과물(be)만을 관객에게 선보였다. 하지만 비빙은 ‘이다’로 규정된 (전통)음악들이 새로운 ‘존재’가 되어가는, 그 생성의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즉 이들은 불교음악이건, 민속음악이건, 궁중음악이건 주어진 음악이 또 다른 존재(be)로 변해가는 과정(ing)을 전시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관객이 매료되는 지점도 잘 ‘쓰인 곡’이 아닌 이 ‘과정 자체’인 것. 그리고 그들은 매 공연마다 악기 거치대와 보면대 대신 테이블을 사용하는데, 이 또한 전통음악이라는 재료를 해체·재조립·분해·재구성하는 과정을 즐기기 위한 실험대 같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그 유희(遊戱)와 몰아(沒我)의 연출력이 일군 음악의 진풍경. 전통음악이 한 개인으로 하여금 현대화되는 것도 음악적 우주의 진화라 반길 일이지만, 전통음악으로 하여금 한 개인의 음악이 진화하는, 즉 장영규 같은 ‘개인’이 일군 풍경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사진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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