뮈라이와 기

“나의 언어”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0월 1일 12:00 오전


▲ 작곡가 트리스탕 뮈라이

작곡가 트리스탕 뮈라이는 그의 음악과 가장 비슷한 결을 가진 작곡가로 쇼팽을 꼽았다. 쇼팽만큼 낭만적이지는 않지만 감정의 단상들이 모여 음악이 된다고 말하는 그는 두 세기 전의 낭만파 음악과 현대음악이 ‘음악’이라는 큰 범주 안에 포함된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었다. 10월 서울시향 ‘아르스 노바’ 무대에서 뮈라이 피아노 협주곡을 선보이는 프랑수아 프레데리크 기 역시 작곡가의 목소리에 적극적 동의를 표해왔다. 파리에서 만난 뮈라이와 기.

작곡가 트리스탕 뮈라이

파리 고등국립음악원에서 메시앙과 함께 작곡을 공부했고, 아랍어와 경제학ㆍ정치학을 전공했다. 그것도 가장 이름난 학교에서.
여섯 살에 부모님 덕에 피아노를 시작했지만 단 한 번도 완벽한 테크닉을 갖기 위해 연습에 몰두해본 적은 없다. 수없이 음계를 연습하고 반복하기에는, 나는 끈기도 없었고 게을렀다. 피아노를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게 된 아홉 살부터 즉흥연주에 빠져들었다. 혼자만의 음악을 만들어내고 싶은 열망에 어쩔 줄 모르는 어린 소년이었다. 당시 내가 쓴 곡들을 정식으로 ‘작곡’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때부터 내가 음악을 할 것이라는 어떤 예감이 들었다. 파리국립정치대학에서 경제학을, 프랑스 국립동양학학교에서 아랍어를 배운 것은 당시 나에게 필요한 배움이었기 때문이다. 음악만이 아니라 세계를 좀더 제대로 알게 되었으니까. 아랍어를 통해 당시만 해도 멀고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중동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경제학과 정치학을 통해 사회를 통찰하는 시선을 갖출 수 있었다.
유명한 작가 집안에서 태어나 유일한 작곡가로 활동 중이다. 작가와 작곡가들은 자신들만의 언어로 세계를 구성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신의 ‘고유 언어’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
나만의 음악 언어에 대해 단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거의 불가능한데(웃음). 곧 서울에서 연주될 피아노 협주곡은 리스트로부터 영감을 많이 받았다. 스크랴빈의 ‘프로메테우스; 불의 시’의 영향 역시 엿보인다. 특히 첫 화음이 가지고 있는 색채는 여전히 환상적이다. 사람들은 나를 스펙트럴 음악의 선두주자라고 생각하고 그런 스타일의 곡만 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선입견이다. 물론 음악의 구조에 천착하던 시기가 나에게도 있었다. 내가 작곡을 시작했던 1960년대 후반은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졌던 시기였다. 메시앙의 제자였지만 당시 음악계를 본다면 그 중 특히 음악에서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수학ㆍ물리학ㆍ천문학의 논리를 음악에 적용시키기도 했고, 이성에 바탕을 두고 음악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시도하기도 했다. 물론 그런 시도가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현대음악의 스타일이 나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이 얼마나 내 감정을 전달하느냐이다. 예를 들면 쇼팽의 음악을 들으면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엿듣는 듯한 기분이 되지 않는가. 나는 여전히 음악이 그렇게 작곡가의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새로운 문명이 출현하더라도, 여전히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예술로서 존재한다. 요즘같이 대단한 테크놀로지의 시대에도 결국 나를 매료시키는 것은 음악 속에 들어있는 감정들이다. 혹은 그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기억’ 역시 흥미로운 소재다. 나는 현대음악이 심장이 아니라 뇌로 향하는 음악이라는 명제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오늘날 현대음악은 대중으로부터 먼 곳에 있다. 소수를 위한 장르로서 존재하며 작곡가들은 전업 작곡가로서 생계를 유지하기가 무척 힘들다. 바그너 시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새로운 음악에 큰 관심을 쏟았고, 그의 ‘신음악’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날 정도로 당시 문화예술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요즘, 현대음악은 소수의 몇몇을 위한 음악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다수의 대중은 현대음악을 듣지 않는다. 작곡가로서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메시앙만 하더라도 평생을 작곡가이자 교수, 오르가니스트로서 살았다. 곡만 써서 먹고살 수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연주ㆍ지휘ㆍ교육자ㆍ예술감독 등 다른 직함을 하나 가지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컬럼비아 대학교와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젊은 작곡가들을 많이 만난다. 젊고 열정적인 그들을 지켜보면서 나 역시 영감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아주 소수의 작곡가들만이 살아남을 것이고, 전업 작곡가가 되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현대음악이 외면 받는 건,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유흥, 엔터테인먼트 장르가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음악만 하더라도 얼마나 장르가 다양해졌나. 팝ㆍ록ㆍ재즈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음악산업. MTV의 등장으로 비디오형 가수들이 등장하면서 우리가 경쟁해야 할 장르들이 너무 많아졌다. 그리고 그 장르들은 아주 강력하다. 현대사회 자체가 극한의 경쟁사회인데, 엔터테인먼트 장르에서의 경쟁 역시 지금 최고에 달한 것 같다. 영화ㆍTVㆍ인터넷에 쏟아지는 숱한 이미지들…. 이들과 견주었을 때 대중을 더욱 끌어당기는 힘이 음악에 과연 있는가, 순수예술로서 음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회의감은 꽤 오래전부터 나왔던 이야기들이다. ‘현대음악의 위기’라고 하기에는 반세기 정도 이 위기가 지속되어온 셈 아닌가. 프랑스에서도 현대음악은 소수를 위한 장르이다. 오랜 프랑스 음악의 전통과 작곡가들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이르캄(IRCAM)과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 등 현대음악을 위한 정책적 지원은 1970년대에서야 이뤄졌고, 이제 채 40년이 되지 않았다. 이르캄과 앵테르콩탕포랭이 우리의 음악적 영토를 얼마나 풍성하게 했는지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음악은 연약한 장르이기 때문에 보호ㆍ육성 정책이 더욱 필요하다. 현대음악의 대중화는 당분간 시간이 필요한 과제이다. 지금은 소수일지언정 명맥이 유지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와중에도 뛰어난 작품들은 탄생할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작곡가로서 가장 힘든 부분은 대중을 예측할 수가 없고, 내 음악이 과연 어떻게 가 닿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건 단지 현대음악만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2천여 명이 들어찬 살 플레옐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다고 치자. 그 2천 명이 어떻게 음악을 수용했을지, 그 각각의 수용과 감상에 대해 작곡가는 책임져야 하는가? 음이란, 어떻게 보면 한순간 존재하는 공기의 진동에 불과하다. 청각을 통해 전달될 뿐 곧 사라져버린다. 음악이 개별적 인간의 내면에서 어떤 작용을 하겠지만 그건 그 사 람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살아왔는가에 따라 제각기 다른 것이 된다.
곡이 끝나고 박수가 쏟아지는 순간에는 종종 관객들의 마음이 하나로 이어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관객들이 느끼는 감동이야 존재한다. 멀리서 날아온 공이 떨어지는 것처럼 음악이 한 사람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면, 공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무늬와 색채는 제각각 다를 것이다. 작곡가로서 할 수 있는 부분은 공이 날아가도록 하는 것뿐이다. 당연히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작곡이란 작업은 가장 효율성이 떨어지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과연 어떤 결과물을 가져올지 결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서울에서 연주될 피아노 협주곡의 위촉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직접 초연했던(2012년) 피에르 로랑 에마르는 이 협주곡을 자신의 아이와 같다고 말했다. 당신 역시 작곡가로서 스스로의 작품을 또 다른 분신이라고 여기는가.
그렇다면 나는 아주 자식이 많은 셈인데(웃음). 인간은 피와 살을 가진 존재이고, 음악은 추상 그 자체이므로 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아이를 낳는 것처럼 곡 하나를 세상에 내놓기까지 엄청난 고통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매일 작업을 하지만 늘 고민스럽다. 내 곡은 결국 ‘나의 언어’인데 과연 이 추상적인 언어가 어떻게 감정들을 실어 나를 수 있을까 싶어서.
당신은 염세주의자인가? 작곡가로서 현대음악계에 다소 회의적인 것 같다고 느껴진다.
염세주의자는 아니지만 긍정주의자도 아니다. 회의를 품었으나 한편으로는 긍정적이다. 오늘도 어제 그랬듯이 곡을 썼으니까(웃음).


▲ 피아니스트 프랑수아 프레데리크 기 ⓒBenjamin De Diesbach

피아니스트 프랑수아 프레데리크 기

베토벤 사이클을 완성한 이 시점에서 뮈라이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작품은 근 작곡된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손꼽히는 수작이다. 처음 연주 제의가 왔을 때, 준비 시간이 촉박하다 싶었지만 이 곡이 가진 아름다움을 한국의 청중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피에르 로랑 에마르의 연주를 듣고서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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