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심포니 클라리넷 수석 박정환의 특강

개성 만점, 클라리넷 가족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2월 1일 12:00 오전

박정환과 인터뷰 날짜를 확정하는 전화 통화가 끝날 때, 나는 “부탁드립니다”로 끝맺었고 박정환은 “해보겠습니다”로 끝인사를 건넸다. 이 기회에 E♭조 클라리넷부터 베이스 클라리넷까지 클라리넷족(族)을 모아서 소개하자는 데 둘 다 동의했고, 따라서 각종 클라리넷을 공수해오는 박정환만의 작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며칠 뒤, 코리안심포니 연습실에 클라리넷 가족들이 모였다. 클라리넷 주자들이 기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B♭조와 A조가 보인다. 깜찍한 E♭조와 거구의 베이스는 악단 소유다. 박정환은 이 기회에 C조도 협찬(?) 받으려 했다. 악기를 잠시 빌려주기로 한 이는 전 서울시향 수석이자 현재 영남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채재일. 둘은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함께 수학했고, 재학 시절 박정환은 채재일과 그의 부친인 고(故) 채일희 선생이 기거하는 집에서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건네받기로 한 자리에서 채재일은 “아! 맞다”라며 깜빡 놓고 와서 인터뷰가 잘 되겠냐고 걱정했다고 박정환이 살짝 이른다. 그래도 각기 다른 네 개의 클라리넷이 눈앞에 펼쳐지니 신기하기만 하다.
보통 우리가 ‘클라리넷’이라 하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B♭조 클라리넷’이다. 모차르트 협주곡 K622나 브람스 소나타와 클라리넷 5중주의 경우 A조 악기를 위해 작곡되었기에 조를 옮기지 않으면 B♭조 클라리넷으로는 연주가 불가능하다. 낼 수 있는 음역에 따라 생긴 것도 제각각이다. 가장 짧은 것이 제일 높은 음역을 내고, 가장 긴 것이 제일 낮은 음을 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교향곡 연주 시 2~3대의 악기가 필요하고, 독주에서도 B♭조와 A조가 필요하다. 그럼 이제 악기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자.


▲ 왼쪽에서부터 베이스 클라리넷, E♭조 클라리넷, B♭조 클라리넷(들고 있는것), A조 클라리넷

B♭조 클라리넷과 A조 클라리넷 클라리넷은 곡마다 각기 다른 조의 악기를 사용한다. 베버 협주곡 1번과 2번, 코플런드 협주곡, 브람스 소나타를 연주할 때는 B♭조를, 모차르트의 협주곡과 클라리넷 5중주, 닐센 협주곡과 브람스 트리오를 연주할 때는 A조를 사용한다. 교향곡도 마찬가지다.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 도입부에 나오는 글리산도는 B♭조로,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과 푸치니의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의 클라리넷 솔로는 A조로 연주한다. 박정환이 A조로 모차르트 협주곡 1악장을 연주하고, 이조를 해서 B♭조로 같은 부분을 연주하며 두 악기의 다른 음색을 들려준다. “여러 소리가 섞이는 오케스트라에서는 별로 차이가 안 날 때도 있어요. B♭조가 낼 수 없는 음이 나오면 A조로 바꿔 연주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B♭조 악기에 맞게끔 이조해서 부는 경우도 있어요.”

E♭조 클라리넷 소프라노 클라리넷이라고도 한다. 깜찍한 생김새의 이 악기는 클라리넷 중 가장 높은 음역을 담당한다. 밝고 명쾌한 음색의 E♭조 클라리넷은 수석이 잘 연주하지 않는다. 하지만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5악장은 수석이 연주한다. 장례식장에서 마녀들이 춤추는 대목으로 날카로운 꾸밈음과 트릴이 영락없는 마녀들의 웃음소리를 닮아 있다. 악기의 길이가 작아지는 만큼 지공을 막는 손가락 사이도 좁아진다. 악기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곡으로 라벨 ‘볼레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2악장, 그리고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에서도 광기 어린 E♭조 클라리넷만의 독주를 맛볼 수 있다.

베이스 클라리넷 베이스 클라리넷은 땅을 울리고 두꺼운 소리로 다가온다. 하단에는 악기를 바닥에 고정하는 엔드핀이 부착되어 있다. 앉아서 연주를 하고, 서서 할 경우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목걸이를 착용하기도 한다. 운지법은 다른 악기들과 동일하다. 대신 저음을 내기 위한 몇 개의 키가 더 부착되어 있다. 박정환은 베이스 클라리넷의 묘미로 ‘슬랩 텅잉’ 주법을 꼽았다. “‘딱!’ 소리입니다. 혀로 마우스피스를 건드려 내는 소리가 악기 전체를 크게 울려요. 타악기 같은 소리인데 음정이 있어요. 진짜 멋있죠. 잠시만요. 정말 오랜만에 잡아보네요.” 주변인들의 기대에 찬 눈빛을 한 몸에 받는 박정환. 그리고··· “음. 요새 연습 중입니다. 다음 기회에.” 베이스 클라리넷은 보통 제3주자나 제4주자가 잡기에 수석이 연주할 일은 거의 없다.


▲ 악기수건, 그리스, 리드, 리드 케이스, 캡, 마우스피스, 배럴, 윗관, 아랫관,벨

분해된 클라리넷 클라리넷은 작은 케이스에 쏙 들어갈 만큼 여러 개로 분리된다. 조립하는 모습은 연주자보다는 수리공 같다. 악기 연결 부위에 있는 코르크에 그리스(윤활유)를 바르고, 각 부분들을 힘주어 연결한다. 조립하는 동안 입에 리드를 물어 적신다. 말러 교향곡 1번을 연주하기 위해서 제3주자는 네 대의 악기를 조립해야 한다.

재질 “클라리넷은 흑단이라는 나무로 만들어요.” 아프리카산 흑단은 물에 넣으면 가라앉는 새까만 나무다. “나무 자체마다 각각의 음색을 갖고 있어요. 갈색으로 된 클라리넷은 코코볼로로 만든 것입니다. 소리가 밝고 넓게 울리는 듯해요. 흑단은 뚜렷하고 선명한 소리를 내죠. 그 외에 회양목으로 만든 것도 있어요. 흑단으로 만들기 전에는 다 이걸로 만들었다고 해요. 문제는 나무가 잘 변해서 모양도 소리도 잘 변해요. 잘 터지고요. 나무가 결 따라 쭉 갈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보통 ‘터진다’라고 표현해요. 여기 한번 보세요.” 자세히 보니 결 따라 갈라져 수리한 자국이 선명하다. “예전에 찰스 니디치가 내한해서 브람스 클라리넷 5중주를 할 때였어요. 회양목으로 된 악기였는데 연주 중간에 악기가 쩍 갈라졌대요. 그냥 계속 연주했는데 더 벌어지고 결국에는 소리가 아예 안 났대요. 그래서 “혹시 클라리넷 가지고 계신 분 계시냐”라고 객석에 물어서 그것을 빌려서 연주를 했답니다.”


▲ 마우스피스, 리드

마우스피스와 리드 마우스피스와 리드의 조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 악기에 따라 마우스피스의 규격도 다르다. 다만 A조와 B♭조는 같은 크기를 쓴다. 갈대로 제작된 리드는 마우스피스에 부착되어 악기를 울린다. 오보에·바순은 두 개의 리드가 묶인 겹리드를 쓰고 클라리넷은 홑리드를 쓴다. 이 역시 E♭조부터 베이스까지 크기가 다 다르지만 B♭·A조 클라리넷의 크기는 같다. “리드 한 통에 10개가 들어 있고, 저에게 맞는 것은 1~2개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연습용으로 쓰고요.” 가장 빨리 소모되는 부품이라 자주 교체해야 하며 소리를 크게 좌우하기에 자신에게 맞는 리드를 골라야 한다. 가끔 고운 사포나 칼로 미세하게 갈아서 쓰는 경우도 있다. 해외에 나갈 때 이 도구들은 불법 무기로 간주된다. 그래서 걸리지 않는 손질 도구를 확보하는 것 또한 좋은 리드 고르는 것 못지않게 힘든 일이다.


▲ 리거처

리거처 리거처(ligature)는 리드를 마우스피스에 부착시킬 때 사용한다. “재질은 가죽과 쇠가 있어요. 재질에 따라 소리가 다른데 특히 연주자에게 작용하는 느낌도 많이 달라요. 쇠는 선명하고 소리를 쫙 뻗어줘요. 가죽은 따뜻해요. 대신 강하지는 않고요.” 박정환이 쇠 재질과 가죽 재질을 번갈아가며 모차르트 협주곡의 2악장을 연주한다. 각기 다른 음색이 난다. “저는 가죽만 썼는데 최근에는 쇠로 된 것도 쓰고 있어요. 지금 쓰고 있는 건 쇠 치고는 소리가 부드러운 편이죠.” 끈으로 된 것도 있어 마우스피스에 둘둘 감아 사용하기도 한다.

프랑스식과 독일식 클라리넷은 프랑스식과 독일식이 있다. 전자가 뵘 시스템이고, 후자가 욀러 시스템이다. “남자와 여자 같은 차이인가요?” “음··· 서양인과 동양인이라고 할까요? 마우스피스는 물론 악기, 리드, 주법이 완전히 다릅니다. 저는 뵘 시스템을 씁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뵘 시스템을 쓸 거예요. 소리도 굉장히 다릅니다. 독일식이 더 어둡다고 해야 할까요. 간혹 둘 다 쓰는 사람도 있고요. 혹은 악기는 뵘 시스템인데 욀러식 주법으로 연주하는 사람도 있어요.” “한 오케스트라에 누구는 뵘 시스템이고, 누구는 욀러 시스템이면 어떻게 되나요?” “한국의 오케스트라 주자들은 대부분 뵘 시스템을 씁니다. 독일은 입단 오디션에 욀러 시스템을 써야 한다는 전제가 붙어 있어요. ‘리폼 뵘’도 있어요. 악기는 독일식인데 뵘의 시스템과 주법을 얹어서 하는 것이죠.” “그럼 말러를 연주할 때는 욀러 식이 더 어울리겠네요?” “그렇죠. 프랑스식은 상대적으로 화려하니.” “그럼 독일에서 유학한 지휘자(최희준)와 독일 레퍼토리(말러)를 연주할 때, 지휘자 정면에 앉은 ‘미국에서 공부한 프랑스식’ 클라리넷 주자는 지휘자에게 있어 ‘반역자’ 같은 존재겠네요?”(웃음) “그렇죠. 눈엣가시?”(웃음)


▲ 배럴

배럴과 음정 악기의 온도와 배럴은 음정을 좌우한다. “다른 악기에 비해 음정이 높으면 윗관에서 배럴을 잡아당겨 악기 길이를 살짝 늘립니다. 악기가 길어지면 음정이 낮아지고 짧아지면 높아지는 원리죠. 문제는 그렇게 뺐을 때, 전체적으로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윗관에서 나오는 소리들만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벨을 아랫관에서 살짝 뽑아 길이를 늘려 균형을 맞춥니다.” 배럴은 겉보기에는 밍밍한 나무토막 같지만 재질과 내부 생김새에 따라 소리를 좌우하는 예민한 물건이다.

악기 수건과 ‘침 종이’
얼마만큼 잘 닦느냐에 따라 소리와 악기 수명이 달라진다. 악기 수건은 부드러운 헝겊으로 되어 있어 관 속에 넣고 밖으로 나온 줄을 쭉 당겨 사용한다. 그리고 각 키마다 종이나 가죽으로 된 패드가 부착되어 구멍을 덮는다. 간혹 구멍과 패드 사이에 기포막이 형성되어 연주를 방해하는데, 이때는 ‘침 종이’라 불리는 얇은 종이로 물기를 흡수한다.

운지법 왼손이 윗관을 오른손이 아랫관을 잡는다. 각 음마다 5~6개의 운지법이 있다. 손가락 하나가 맡는 키는 보통 1~2개고 많으면 4~7개다. 양손의 새끼손가락이 가장 많은 키를 누른다. 키는 손가락에 맞게끔 부드럽게 처리되어 있다. 보통 은색이 많고 그 외에 니켈·금이 사용된다.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코리안심포니는 1월 28일 말러 교향곡 1번을 선보인다. 말러 교향곡 1번은 판본에 따라 클라리넷 주자의 수가 다르다. 이번 무대는 네 명의 주자가 필요한 라츠판(1967년)을 연주했다. 1악장 초입에 현악군의 A음이 지속되고 클라리넷의 팡파르가 등장한다. 이 대목은 철학자 아도르노가 “클라리넷이 그 장막을 뚫어보려 하지만 그럴 만한 힘을 갖지 못한다”라고 언급하여 유명해진 부분이다. 중간마다 나오는 ‘뻐꾸기’ 소리도 클라리넷 주자의 몫이다. “관객은 제일 좋아하고 주자는 제일 싫어하는 부분이죠. 어려우니깐.” 3악장에서 제3주자는 B♭조 악기(악보의 ‘in B’)를 연주하다 베이스 클라리넷으로 바꾸고(악보의 ‘BassClar in B’), 다시 소프라노 클라리넷으로 바꾸며(악보의 ‘Clar. in Es’) 연주해야 한다. 미국의 어느 오케스트라는 연주하는 악기 수에 따라 연주 비용을 쳐주기도 한다고. 말러 교향곡을 보면 클라리넷 주자의 고개가 하늘을 향할 정도로 벨을 보면대 위로 높이 들고 연주하는 부분이 있다. “벨을 높게 들 것”이라고 말러가 적어놓은 부분이다.


▲ B♭조 클라리넷, 베이스 클라리넷, E♭조 클라리넷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사진 박진호(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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