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동 커피한잔

정성 담긴 손길이 그리울 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4월 1일 12:00 오전

직접 제작한 로스터기와 인테리어,
빼곡한 LP판들 사이로 사람 향기 가득한 곳

글 조원진 사진 박진호(studio BoB)

로스팅 카페를 중심으로 커피 본연의 맛과 향을 강조하는 흐름인 ‘제3의 물결’의 등장은 생두의 엄격한 품질관리와 보증을 요구하고 있다. 증명해야 하는 건 생두의 등급뿐만이 아니다. 생두 구매자에게 큐 그레이더(Q-grader)라는 커피 감별 자격증은 어느새 필수 요건이 되었다. 우리나라 커피시장에서 어느덧 수상 경력이나 자격 증명은 카페에 들여놓은 고급 머신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되어버렸다. 2003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의 우승자 폴 바셋이 국내 유통기업과 손을 잡아 보여준 성공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자격증도, 이렇다 할 고급 머신도 없는 로스터 이형춘은 8년째 종로에서 커피를 팔고 있다. 직접 수집한 물건과 손수 제작한 가구들로 꾸민 사직동의 카페 ‘커피한잔’은 좀처럼 보기 드물게 숯불로 커피를 볶는다. 숯불 로스팅은 독특한 향미와 보디감으로 마시는 이의 혀를 사로잡는 것이 특징이다.
“숯불 로스팅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훈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훈연과는 다르게 탄화배전은 연기가 모두 빠진 후 남은 열원을 이용해요. 가스 불과는 다른 숯의 깊은 열기는 커피를 전혀 다른 맛의 세계로 이끌죠.”
로스터 이형춘의 얼굴에는 종종 숯검정이 묻어있다. 로스팅에 열중할 때다. 숯불로 로스팅을 하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우선 좋은 숯을 골라 인내를 가지고 불을 붙여야 하고, 전자동 로스터와 달리 온도 측정은 경험과 감각에 의존해야 한다. 전동 로스터가 전기밥솥이라면 숯불 로스터는 가마솥이랄까. 커피가 익을 때까지 세심하게 불길을 조절해야 하고 연기가 나도 참으며 로스터의 곁을 지켜야 한다. 로스터 이형춘은 숯불 로스팅 커피가 “감성과 경험의 결정체”라고 말한다. 조심스럽게 잡은 물줄기로 곱게 내리는 드립 커피는 직접 볶은 커피의 맛을 돋운다.
핸드드립을 고집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기계에 의존한 커피는 손맛이 반감되기 때문이다. 로스터 이형춘은 옛 된장, 어머니의 손맛을 예로 들어가며 핸드드립의 매력을 설명한다. 엄선한 생두는 커피한잔 커피의 또 다른 맛의 비결이다. 처음 가게를 시작했을 때는 일본에서 생두를 공수했으나 요즘에는 나인티플러스라는 스페셜티 커피를 사용한다. 말 그대로 100점 만점에서 90점 이상을 얻은 커피를 의미하는 나인티플러스는 커피의 수확부터 가공까지 농부와 함께 호흡하고자 한다. 나인티플러스는 지역 문화와 시장에 대한 이해를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화려한 맛의 커피들을 찾아내고 있다. 맛있는 커피를 위한 노력,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부분은 커피한잔의 지향점과 닮아있다.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며 가게를 돌아보자. 눈을 떼지 못하는 작은 소품들부터 가구, 로스터기까지 그의 손을 거친 인테리어는 화룡점정이다.
로스터 이형춘은 젊은 시절, 사람과 함께하는 일이 좋아 연극을 시작했다. 동료 배우들과 호흡을 하며 관객의 마음을 얻는 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막연한 로망으로 이형춘은 대학로에 음악다방 샘쿡을 오픈한다. 좋아하는 1970년대 음악과 영화음악부터 최신 가요까지 그는 닥치는 대로 모은 LP를 틀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소통에 대한 그의 열망은 샘쿡에서 멈추지 않았다. 좀더 조용한 분위기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려면 카페가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는 종로 계동 구석에 커피한잔을 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두 번 자리를 옮겨 사직동에 오기까지, 그는 카페를 찾는 사람들을 위해 커피를 볶고 내렸다. 그는 손님들과 이야기하며 그들이 원하는 커피를 내려주는 순간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카페로 돈을 벌고, 커피업계에서 인정받는 바리스타가 되는 건 그의 목표가 아니다.
“꼭 그렇진 않았지만 구름 위에 뜬 기분이었어.”
산울림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에 담긴 아련한 가사는 이형춘이 가진 이상향이다. 진지하지 않은 것 같지만 깊은 감동을 이끌어내는 산울림의 노래처럼 커피한잔은 오늘도 애타는 마음을 가지고 커피를 주문한 손님들의 마음을 위로해준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밥을 지어주는 어머니에게 우리는 자격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증명해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람의 힘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그 한잔에 손님들은 사직동 골목길까지 힘든 발걸음을 마다하지 않는다.

조원진은 커피 블로거로서 좋은 카페를 찾아 돌아다니며 소개한다. 각종 웹진, 커피 잡지에 ‘커피와 문화’를 주제로 글을 쓰는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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