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대처하는 솔리스트의 자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4월 1일 12:00 오전

생방송 중 수없이 만난 위기에도 의연할 수 있었던 이유.
아나운서 이지연이 들려주는 대학 오케스트라 시절 아찔했던 공연 뒷이야기

열 살이 되던 해 저는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전공을 할 목적은 아니었지만 꽤 열심히 악기 연습을 했지요. 그리고는 남들처럼 열심히 입시에 매달렸고 연세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당연히 동아리에 관심이 가게 됐고, 당당히 오디션(그때는 첼로를 하는 학생이 많지도 않았지만)에 합격해 ‘유포니아’라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입단했답니다. 이후 ‘유포니아’는 제 대학 생활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선후배들과 좋은 연주가 있는 날이면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을 함께 오갔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아 열심히 공연을 보러 다녔습니다. 우리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무한한 열의에 불타는 학생들이었습니다. 몸에 밴 모범생 정신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지식 쌓기를 위해 똘똘 뭉친 진정한 음악 애호가들이었지요.
매년 신입생 연주회와 정기연주회를 하는 때가 오면 곡 선정부터 의견이 팽팽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좋은 곡을 향한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물론 곡의 수준과 실력의 차이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다고 봐야죠. 다들 귀가 트일 대로 트인 귀명창들인지라 정말 어려우면서도 좋은 곡들을 귀신같이 꿰고 있거든요.
그해 연주회 곡도 우여곡절 끝에 결정됐습니다. 최종 선정된 곡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였어요. 우리 단원들은 워낙 열심히 연습하는 사람들인지라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각 파트의 솔리스트들이 걱정이었죠. 일단 제1바이올린 수석, 그러니까 악장이 제일 부담이었고, 첼로 수석이던 저도 엄청난 부담을 안고 연습에 임해야 했습니다. 오케스트라 연습과 토론이 끝난 자리에는 늘 맥주 한 잔이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매주 연습을 하다가 방학이 되면 일주일간 다 함께 연주 캠프를 떠납니다. 아침 먹고 연습, 점심 먹고 파트 연습, 저녁 먹고 전체 연습, 그리고 또 맥주 마시기. 연습 결과가 맘 같지 않음에 서로 짜증도 내고, 종일 노력했던 것에 격려와 위로도 하고, ‘내가 이걸 왜 해서 받지 않아도 될 스트레스를 받고 있나’ 하는 갈등을 수도 없이 겪으며 캠프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2학기를 맞이하며 드디어 우리는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을 빌려 정기연주회를 하게 됐습니다. 이날은 부모님과 가족과 친구들, 고등학교 동창들을 포함해 너 나 할 것 없이 많은 손님들을 초대합니다. 저처럼 악기를 좀 배우다가 입단한 사람들도 있지만 음악에 대한 무한한 사랑 하나만으로 처음부터 배워서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한 단원도 있거든요. 그러니 얼마나 소중한 연주회 날이겠습니까! 여자 단원들은 학교 앞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하고, 남자 단원들은 멋진 턱시도를 입은 서로의 모습에 엄지를 치켜들며 함께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실은 모두들 너무나도 떨려서 안절부절못하고 살짝 흥분한 상태이기 때문에 무대 뒤 대기실은 엉망진창이랍니다. 조금씩 객석이 채워지고, 불어나는 관객을 보는 우리는 더 긴장이 돼 가고, 그러다 연주가 시작됐습니다.
서곡을 마치고 드디어 이번 연주의 하이라이트인 ‘셰에라자드’가 시작됐습니다. 긴장은 많이 했지만 지휘자의 움직임과 사인에 따라 연주는 차분히 잘 진행됐습니다. 너무나 열심히 연습해서 나달나달해진 악보는 빨간색 동그라미와 형광펜 표시들로 총천연색이었고, 표는 안 내지만 손가락 끝은 모두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서 제일 차분하고 집중력 좋은 악장이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곡 중반쯤에서 각 파트의 솔리스트들이 차례로 선율을 이어가야 하는 부분이었는데, 그만 한 마디를 먼저 차고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지휘자와 단원 전체가 동시에 얼굴이 파래졌죠. 악장 다음으로 제2바이올린 수석, 비올라 수석, 그리고 그 다음 차례인 제 솔로 연주 부분이 다가오는데 머릿속이 하얘져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는지… 솔로가 연주하는 메인 테마를 한 번 더, 그러니까 한 마디를 더 연주했습니다. 그랬더니 합주 부분과 솔로 부분이 딱 맞아떨어져 연주는 그대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 끝나게 됐습니다. 연주가 끝나니 모든 단원들이 저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어요. 저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주회 끝에 지휘자가 저 혼자만 일으켜 세워 인사를 시키고 박수를 한 몸에 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프로 오케스트라에서는 일어나지도 않는, 일어나서도 안 되는 어마어마하게 황당한 사건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때 연주회를 함께 했던 선후배들과 모이면 그날의 사건을 웃으며 추억합니다. 클래식 음악 공연장에서 저는 무대 위에서 새파랗게 질렸던 그 시절 우리들의 모습이 떠올라 혼자 웃곤 합니다. 그러면 저희 남편도 ‘풉’ 하고 함께 웃어요. 그때 트럼펫 수석을 하고 있었거든요.
방송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떨지 않고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지만, 가끔씩 그때의 설렘과 긴장된 마음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클래식 음악을 향한 순수한 사랑 하나만으로 부족한 실력을 극복했던 아름다운 아마추어들의 마음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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