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1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서현석

현실을 지휘해내야 미래가 보인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4월 1일 12:00 오전

포디엄의 현역이면서 지휘자들의 ‘선배’인 서현석을 만나
고여 있는 문제점들과 지휘자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사진 심규태

한국 오케스트라의 발전을 묻는 이번 특집 기사를 위해 몇 명의 지휘자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많은 이들이 미안함과 함께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분명 음악 이야기지만 정치적인 사안들과 떼려야 뗄 수 없기에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들이 무의식 중에 튀어나올 거 같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연이은 인터뷰 거절을 겪으며 나 또한 그 한 줄로 정리될 답변이 그분들의 진로를 방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하게 되었다.
이 인터뷰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까 발을 동동 구르다가 안면도 없는 지휘자 서현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 이러한 맥락을 설명했을 때, 그는 후배 지휘자들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본지와의 인터뷰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지휘과 교수를 역임한 서현석은 서울대학교 재학 중인 1961년에 오디션을 통해 서울시향에 입단하여 트럼펫 주자로 활동했다. 이후 지휘자로 진로를 바꿔 1974년에 서울윈드앙상블을 창단했고, 1997년에 창단한 강남심포니의 상임지휘자를 창단 때부터 현재까지 맡고 있다. 포디엄의 현역이면서 지휘자들의 ‘선배’인 그를 만나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고여 있는 문제점들과 지휘자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단원은 오케스트라의 꽃이다
“오케스트라는 음악의 꽃이에요. 최적의 온도에서 꽃이 피죠. 그런데 사람들이 말은 그렇게 하지만 물 주고 거름 주는 것은 안 하죠. 그냥 꽃만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관심은 있지만 대접은 없달까요.”
‘대접’이라는 단어를 ‘예우’로 고친 서현석은 그것을 행하는 행정기관과 그것을 받는 단원들의 자세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가 교향악단에 입단했던 1960년대는 악단의 월급만으로는 먹고살기가 힘들었어요. 물론 그 때야 다 먹고살기 힘들었죠. 지금은 악단 상황이 좀 나아진 거 같죠? 그나마 서울시향과 KBS교향악단이 단원 예우가 나은 편이고, 전국적으로는 아직도 열악한 상황입니다.”
문제는 기본적으로 단원들의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단원 선발부터 연습까지 지휘자로 행할 수 있는 발전적인 제지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오디션을 할 때 어느 악단이나 엄선된 평가를 합니다. 하지만 그가 단원이 되어 호흡을 맞추다 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솔리스트로는 빛났지만 앙상블 점수에서는 부족함이 드러나는 단원들이 많아요. 때로는 그에 대한 제지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할 수가 없습니다. 단원들이 받는 월급이 터무니없이 적은데 그 이상의 수준과 노력을 지휘자로서 요구하기가 힘들다는 거예요.”
한국의 지휘자가 쥔 지휘봉의 무게는 참 무거운 것이리라. 지휘자라는 직업에는 권위라는 단어가 늘 따라붙어 다니지만 때로는 열악한 상황에서 이룰 수 없는 꿈만 향해 달리는 이상한 존재처럼 비춰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강남심포니는 단원들의 월급이 오를 때에만 지휘자의 월급도 오를 수 있다는 원칙 아닌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좀 불편한 질문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국내 교향악단에 응원을 보내고 싶을 적에도 그 마음이 사그라질 때가 있었다. 단원들의 타성을 볼 때다. 특히 매년 예술의전당에 오르는 ‘교향악 축제’를 가보면 급조된 무대부터, 연습이 제대로 안 된 악단과 두 시간을 때우고 고향으로 내려가서는 서울에서 성공적인 연주를 끝마쳤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악단도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 모든 것이 내가 낸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다.
“선생님. 그럼 단원들의 예우가 좋아진다면··· 만약 갑자기 좋아진다고 치면 오케스트라의 음악도 그에 따라 급성장할까요? 제가 봤을 때는 타성에 젖은 단원들도 많습니다.”
“그 문제를 행정적인 것 외에도 단원들 개개인에게 적용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험도 있었어요. 제가 단원으로 재직할 때 많은 사람들이 ‘지금 월급의 두 배를 주면 레슨도 강의도 안 하고 오직 이곳에 충실하겠다’라고 했어요. 점차 그 약속이 실현되어갔죠. 그런데 오르는 월급만큼이나 레슨도 강의도 더 하더군요. 예우도 중요하지만 단원들이 악단을 생각하는 마음과 음악을 접하는 프로페셔널한 자세가 중요해요. 그래야 물주는 사람도 신 나서 물을 주는 거 아니겠어요? 중요한 건 단원들의 책임감과 학습력입니다. 모든 연주에서 최고의 성과를 얻기는 힘들어요. 다만 전문가가 들었을 때 ‘들을 만한 음악’이 나오는 것은 단원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미래다
“그렇다면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서현석은 자신의 경험을 섞으며 몇 개의 답을 내놓았다.
첫째, 지휘자의 ‘절대공부론’과 지휘자와 악장·수석과의 ‘합심론’이다.
“한국 악단들이 ‘관악이 좋지 않아 오케스트라 전체 사운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듣죠? 지휘자들이 보통 그런 평가를 내리는데··· 생각해보면 그걸 조율해야 할 사람이 지휘자입니다. 평가 이전에 나 자신이 각 파트에 대해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으며 공부하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과 공부가 필요해요.”
흔히 지휘자 하면 모든 권력을 쥔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마음 맞는 단원들과 함께 공부하며 이끌어가는 운영의 묘도 필요하다고 한다. 현재 강남심포니는 서현석과 김경아 악장의 양분화된 노력이 끌고 가고 있다고 서슴없이 고백한다. 즉 “객원지휘자들이 눈독을 들이는 김경아 악장”이 현악을 풍성하게 하고, 관악 주자 출신 서현석의 노하우가 관악·타악 파트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린다고.
둘째, ‘상임지휘자 상주론’이다. 지휘자는 단원들이 음악을 하며 먹고사는 터전에서 함께 살며 굴러야 한다는 것이다.
“객원지휘자는 외국사람일수록 좋다고 봐요. 차이콥스키 할 때는 러시아 정통파 지휘자가, 베토벤 할 때는 독일의 지휘자가 오면 단원들도 많은 공부가 됩니다. 그런데 간혹 지방 오케스트라가 상임지휘자를 외국인 지휘자로 두는 경우가 있어요. 외국지휘자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한국에서 얼마만큼 단원들과 함께 하는가라는 ‘시간’의 문제가 걸려 있다고 봅니다. 지휘자와 단원들이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음악의 질은 높아진다고 봐요.”
현재 강남심포니는 서류상으로는 주말을 제외하고는 1주일에 3번 출근을 규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서현석은 단원들에게 주5일 연습을 제안했고 단원들 또한 흔쾌히 따르고 있기에 “정말 감사해야 할 단원”이라 덧붙인다.
셋째, ‘젊은 지휘자 양성론’이다. 강남심포니의 부지휘자가 이곳에서 단원들과 산 경험을 익히고 다른 악단에 상임지휘자로 임명될 때가 지휘자로서 느낄 수 있는 행복 중 하나라고 한다.
“상임지휘자 밑의 부지휘자 시스템은 젊은 지휘자를 배출하는 데 있어 학교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한국 오케스트라의 미래는 그들에게 달려 있죠. 그래서 잠시라도 공석이면 안 되고, 늘 젊은 지휘자들로 채워져 있어야 하며, 그들에게 지휘봉을 많이 쥘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음악을 배우면서 동시에 지혜를 배웁니다. 그들이 지휘봉을 잡으면 몇몇의 단원들은 거드름을 피우는 경우도 있죠. 그런 것들을 경험하며 지휘자로 커가는 것은 오로지 프로 오케스트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값진 것들입니다.”
부지휘자가 지휘봉을 잡았을 때 서현석은 더 바빠진다고 한다. 본인이 바통을 잡았을 때는 악단만 바라보면 되지만, 부지휘자나 젊은 객원지휘자가 잡았을 때는 연습 때마다 지휘자와 악단을 다 바라보는 선배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넷째, 지휘자를 돕는 ‘행정조직론’이다.
“서울시향을 보면 악단의 규모에 준하는 행정조직이 있습니다. 이 조직은 지휘자의 손과 발이 되어줍니다. 행정적인 업무에서 지휘자의 피로를 덜어주고 그것을 음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전문적인 인력들이죠. 사실 어느 악단이나 다 보유하고 있지만 오케스트라의 규모에 준하는 인력이 적절히 배치된 곳은 드뭅니다. 보통 CEO들에게 지휘자가 오케스트라 운영하듯 회사를 운영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이 말은··· 오케스트라는 정말 운영하기 힘든 것이기에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면 모든 회사를 다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일 겁니다. 음악을 관리하는 것이며, 사람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해결해야 하는 지휘자로서의 슬기로움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조직은 음악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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