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간 파가니니.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비드 개릿이 그의 음악과 삶을 연기한다 글 김태희 인턴 기자(thkim@gaeksuk.com) 사진 영화사 하늘
줄리아드 음대에서 이츠하크 펄먼을 사사하고 현재 팝·크로스오버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는 데이비드 개릿이 파가니니로 분해 연주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화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를 주목할 이유는 충분하다.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5번으로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 영화는 파란만장했던 음악가 니콜로 파가니니의 화려한 연주부터 비운의 말년까지, 그의 일생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기교로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린 파가니니는 일찍이 그의 재능을 발견한 부모에 의해 10대 시절부터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고난이도의 화려한 연주 실력 덕분에 점점 더 유명해진 그는 유럽 대륙을 돌며 쉬지 않고 공연을 해왔지만, 훗날 매독으로 인생 말년을 불행하게 마감했다.
이번 영화를 만든 버나드 로즈는 1994년 게리 올드먼이 베토벤을 연기해 화제를 모았던 ‘불멸의 사랑’을 연출한 인물이다. 평소에도 음악과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파가니니라는 인물의 뛰어난 연주 실력과 카리스마 때문에 그를 스크린에 옮기기로 결정했다. 전작을 통해 음악이라는 전문적인 영역을 영화로 다루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던 버나드 로즈가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주인공을 캐스팅하는 일이었다. 특히 관객에게 실제로 공연을 보는 듯한 생생함을 전하기 위해 파가니니의 곡을 탁월하게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인물을 찾는 데 주력했고, 외모나 연주 실력에 있어 파가니니와 흡사하다고 여긴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비드 개릿과 이 영화를 완성했다.
무대를 압도하는 큰 키, 흐트러진 머리칼, 다듬지 않은 수염. 완벽하게 파가니니로 분한 데이비드 개릿은 첫 장면에서 파가니니 ‘카프리스’를 선보인다. 관객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연주를 이어가는 모습은 강렬하다. 그는 술집에서는 홧김에 뺏어든 악사의 바이올린으로 ‘베니스의 카니발’을 연주한다. 세 줄의 현이 끊어지고 G선만 남았음에도 이전보다 더 화려한 음색을 뽐내는 그의 연주는 스크린 밖에 앉은 관객들까지도 과연 열광할 만하다.
데이비드 개릿은 이번 영화에 배우뿐 아니라 제작 총 프로듀서로 참여해 대본을 제작하는 과정부터 함께 작업했다. 개릿은 “훈련된 배우가 아니라 어느 정도 내 삶과 유사한 이야기를 선택하고 싶었고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인물을 원했다. 파가니니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라고 이 영화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전작 ‘안나 카레리나’에서 감각적이고 섬세한 화면 구성으로 찬사를 받았던 버나드 로즈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당시의 아름답고도 음울한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영화 속에서 데이비드 개릿이 연주한 ‘카프리스’ 5번과 24번, ‘베니스의 카니발’은 스크린뿐 아니라 음반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 최근 발매한 그의 열네 번째 음반에는 파가니니의 곡을 비롯해 직접 편곡한 클래식 음악이 포함되어 있다.
4월 2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