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벌어지는 일상다반사

“내가 누군지 알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5월 1일 12:00 오전

공연을 만들고 올리는 과정에서 공연기획자는 아티스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관객과의 관계일 것이다. 공연이란 결국 관객에게 보이기 위해 만드는 것이기에 기획자들은 공연의 내용이나 서비스에 있어 무엇을 더 드릴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한다. 하지만 머릿속의 생각을 모두 실현시키기란 결코 쉽지 않고, 관객과의 관계도 표면적으로 크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지속적이기보다 일시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이름과 얼굴은 몰라도 공연기획자와 함께 하는 수많은 분들, 우리에게 기쁨과 보람과 감사 그리고 때때로 시련을 안겨주는 분들. 그 잊지 못할 관객들을 다시 떠올려보고자 한다.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어느 날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극장에 도착하니 매표소로 화분이 도착해 있었다. 낯선 이름과 글씨체. 잘못 배달된 것이 아닌가 싶어 물어보니, 제대로 온 것이 맞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카드를 열어보니 지난밤 공연을 관람한 관객으로부터 온 화분이었다. 화분을 보낸 사람은 이틀 전 공연장을 다녀간 관객이었다. 당시 그분은 극장에 늦게 도착해 공연을 관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오신 분을 돌려보내는 것은 아니다 싶어 관람 날짜를 변경해드렸는데, 그것이 참 고마우셨단다. 공연을 두 번 본 것이나 다름없고, 현장에서의 배려가 고마워 화분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그 화분은 누구의 칭찬보다 큰 선물이었다. 사실 관객이 느끼는 감동은 공연 그 자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매표소나 로비에서 어쩌면 공연장을 향해 출발할 때부터 집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서로가 주고받는 것임을 새삼 느꼈다.

“검은 봉투를 열어라!”
‘그분’이 로비에 등장한 순간, 하우스 스태프와 매표소 스태프 사이에 무전이 열심히 오가기 시작했다. 소극장 로비에서 심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며 계단을 내려오는 그분의 정체를 한눈에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상기된 뺨, 한 손에 들린 검정색 봉투. 왠지 그 안에는 다른 관객들의 공연 관람에 방해가 될 법한 미심쩍은 무언가가 들어 있을 거란 확신이 본능적으로 내리꽂혔다. 그러나 물증 없이 심증만 갖고 관객의 소지품을 함부로 보여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 한 스태프가 물품 보관을 부탁드렸으나 완강하게 거부하여 모두들 걱정만 하고 있었다. 관객 입장이 시작되고 검은 봉투의 그분이 입장하는 순간, 손에 쥔 봉투 사이로 삐져나온 마른 오징어 다리! 티켓 수표를 맡은 스태프가 발견한 것은 오징어 다리뿐이 아니었다. 미심쩍은 검은 봉투를 열어보니 그 속에는 팩 소주·새우깡도 함께 들어 있었다. 봉투를 들고 입장은 못 한다고 말씀 드리니 관객 분 왈 “아… 먹으면서 연극 보려고 했는데 정말 안 되는 거예요?”

“이런 자리에서는 못 봅니다”
공연이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게 되면 다양한 곳에서 티켓 요청이 쇄도한다. 어떻게든 모든 분들이 관람할 수 있게, 또 가능하면 좋은 자리를 안내해드리고 싶지만 자리는 늘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고 다른 관객들의 예매를 막을 수도 없으니, 좌석 수가 적은 소극장 공연일 경우에 사정은 뻔하다. 기억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매진 행렬을 이어가던 공연을 담당하던 시절 한 평론가가 공연 하루 전날 관람을 요청해왔다. 판매 좌석조차 거의 남아있지 않았던지라 유보석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자리를 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본의 아니게 자리가 좋지 않음을 말씀드리고, 그분의 티켓을 예약해드렸다. 문제는 공연 당일에 벌어졌다. 공연장을 찾은 평론가는 당신 생각보다 자리가 좋지 않았는지 다른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공연 프로그램과 티켓을 내던지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누군지 알아요? 이런 자리에서는 못 봅니다!”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자리 변경이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했으나, 결국 그분은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 순간 든 생각. ‘우리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공연을 하는가?’
이 모든 일들이 이제는 추억으로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됐다. 하나의 공연이 무대에 올라가고 또 내려오기까지 객석 저편에서 벌어지는 긴박하고도 흥미진진한 순간들… 현장을 지키는 이들에겐 그것 자체가 한 편의 연극 같은 일상이다.

글 이수현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