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세비야 &바르셀로나, 검붉은 정열의 땅에서 피어난 선율과 몸짓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7월 1일 12:00 오전

music 고혹적인, 너무나 고혹적인 무대 위 남과 여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중심도시 세비야는 실로 검붉은 정열의 땅이다. 이 지역에서 플라멩코가 시작됐으며, 격정적인 투우 경기로도 유명한 지역이다. 이러한 열정의 힘 때문인지 세비야는 유독 오페라 무대의 배경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재다능함의 대명사 플라시도 도밍고가 아예 세비야 배경의 오페라를 한데 모아 테너와 바리톤 배역을 모두 불러가며 영상물 하나를 만들기도 했으니, ‘세비야를 찬양하며’라는 작품이다.

세비야의 가장 유명한 오페라는 역시나 비제의 ‘카르멘’일 것이다.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집시 여인이 대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 죽어간다는 피날레는 너무도 고혹적이다. 흑장미처럼 뜨거운 그 열기는 베르디의 ‘운명의 힘’으로 이어지는데, 이 작품은 보다 어둡고 숙명론적이다. 남미 잉카 제국의 후예 돈 알바로는 세비야의 대귀족 칼라트라바 집안의 딸 레노오라와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곧 둘은 알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평생을 격통 속에 신음하게 된다.

세비야 출신 알마비바 백작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프랑스의 극작가 보마르쉐의 3부작 희곡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 로시니와 모차르트에 의해 오페라에서도 스타가 되었다.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에서는 청년 시절 백작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만나볼 수 있으며,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이 여자 저 여자 기웃거리는 실속 없는 중년 남성으로 등장해 배꼽을 잡게 만든다. 요즘은 아예 대서양 저 멀리 칠레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와인에 알마비바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니, 아마 세비야 땅에서 태어난(?) 남자 중에 가장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이가 아닌지 모르겠다.

세비야의 남자들은 죄다 바람둥이인 걸까. 모차르트 ‘돈 조반니’의 주인공 백작 조반니 또한 세비야를 홈그라운드 삼아 독일·터키·프랑스·이탈리아를 돌아다니며 엽색 행각을 벌인다. 그러나 결국 그에게 남은 건 허무와 회한뿐. 세비야에는 돈 조반니 백작의 실제 모델이었던 미겔 데 마냐라가 말년에 참회와 자선을 펼친 병원 건물이 남아있지만, 적어도 모차르트 오페라 속의 조반니는 반성 같은 건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인물이다.

유명 오페라가 잔뜩 쏟아져 나온 땅이지만, 세비야의 정서를 대표하는 음악이라면 오히려 이삭 알베니스의 고혹적인 기타곡 ‘세비야’가 최고 아닐까. 단지 기타 한 대로 아름답게 연주되는 이 음악은 세비야 특유의 이국적인 신비, 가슴 떨리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어느 날, 알카자르 왕궁의 안뜰에서 그늘을 찾아 누워보자. 지중해식 낮잠인 시에스타를 즐기며 귀로는 기타리스트가 연주하는 ‘세비야’를 듣는다면 이보다 더한 세비야 여행은 없을 것이다.

novel 바르셀로나 구석구석, 에두아르도 멘도사 ‘경이로운 도시’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가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인간의 잔인함으로 그리고 있다면, 에두아르도 멘도사는 자신의 고향인 바르셀로나의 욕망과 도시의 변천사를 오노프레라는 한 사람의 인생 굴곡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 뒷골목 부랑아에서 세계적인 거부로 성장한 사나이의 삶을 그려낸 ‘경이로운 도시’는 1980년대 중반에 발표되었는데, 소설 속 배경이자 오노프레의 야망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는 도시 바르셀로나는 자신의 존재를 전 세계에,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몸부림을 친다. 그 모습 그대로가 소설의 줄거리에 녹아들어 있다. 그렇기에 카탈루냐 자치권을 두고 스페인 중앙정부와 오랜 분쟁으로 시달린 바르셀로나가 두 번의 박람회를 통해 비상(飛上)하려는 시도는 오노프레의 성공에 대한 집착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오노프레가 성공을 위해 돌아다니는 항구·청과물 시장·조선소 등과 결국 선택하는 만국박람회 공사장 등의 모습이 소설 속에 그대로 담겨 있어 바르셀로나 구석구석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소설이다. 소설 ‘경이로운 도시’에서 바르셀로나는 잿빛이다.

play 작열하는 태양과 침묵의 언어로 쓴, 로르카 ‘피의 결혼’

17세기의 극작가 세르반테스와 함께 스페인이 자랑하는 대문호로 손꼽히는 현대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풍부한 감성과 섬세한 예술적 기질의 소유자였다. 그는 마드리드 대학에 진학해 기숙사에 기거하면서 여러 편의 시와 희곡을 집필하였다.

그의 대표작 ‘피의 결혼’은 안달루시아 지방의 거친 기질, 작열하는 태양과 침묵에 가까운 언어들이 드러난다. 결혼식 날 신랑을 버려두고 옛 애인을 따라간 신부가 맞이한 죽음에 관한 내용으로, 전통적인 사회 관습과 제도를 따르지 못하는 인간의 설명할 수 없는 욕망을 풀어냈다. 이 작품은 초연 당시 아쉽게도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으나 이후 바르셀로나에서 재연되었을 때에야 관객들이 그 진가를 알아보았고, 비로소 스페인을 대표하는 연극이 되었다.

로르카는 마드리드에서 활동하면서 사회로부터 금지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작품에 담아내고, 운명적 삶을 강렬하게 무대화했다. 이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그는 자신이 작품 속에서 그려낸 인물처럼 동족에 의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였다.

dance 치명적 매력의 팜므 파탈, 롤랑 프티 ‘카르멘’

정열의 도시 세비야 최고의 팜므 파탈은 누가 뭐래도 카르멘일 것이다. 롤랑 프티의 ‘카르멘’은 원작의 부수적인 이야기를 정리하고 돈 호세와 카르멘에게 집중한다. 붉은색의 커튼이 드리워진 무대 위 검은색의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스페인 남부의 강렬한 분위기를 살렸다. 여기에 원색을 사용한 소품들은 화려한 집시의 모습을 장식했다. 이 작품의 특색은 마지막 장면에 나타나는데, 사랑을 잃은 카르멘이 돈 호세에게 달려가 스스로 칼에 찔려 쓰러진다. 그 어떤 ‘카르멘’보다도 강한 스페인 여인의 면모다.

music 황지원(오페라 칼럼니스트)
play 정진세(작가·연극평론가)
novel 한송희(북칼럼니스트)
dance 김태희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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