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에 예술꽃이 피었습니다

철공소 골목에서 예술의 거리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3월 1일 12:00 오전

‘철꽃(鐵花)’이 만발하던 거리에 예술이 활짝 피었다. 기계며, 철을 다듬는 소리가 울려 퍼지던 골목골목에는 벽화가 보물처럼 숨어 있다. 이곳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이다

지하철 2호선 문래역 7번 출구로 나와 영등포초등학교 방향으로 10분만 걸어보자. 시대를 조금은 비껴간 듯한 거리 풍경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면,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이 맞다. 이곳이 바로 문래창작촌이다.

‘초상권을 존중하는 매너 있는 촬영 문화를 만들어주세요’

철에 아로새긴 문구가 눈에 띈다. 문래동을 거닐면서 종종 발견하게 되는 표지판과 이정표의 재료는 역시 ‘철’이다. 동네 터줏대감의 기술과 이주한 아티스트가 힘을 모아 만든 이 패널은 오늘의 문래동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협업으로 완성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골목길마다 철공업 종사자와 관광객을 위한 ‘아트 화장실’이 세워져 있고, 어지럽게 배포된 우편물을 해결하기 위해 빨간 우편함도 걸려 있다.

현재 준공업지역인 문래동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산업 구조가 변하면서 자생적으로 예술촌이 형성됐다. 여기에 2010년부터 서울문화재단의 ‘문래예술공장’이 들어서면서 정부와 민간이 더불어 사는 예술촌을 모색하고 있다.

 

방직공장에서 철재공장으로, 다시 예술촌으로

‘예술촌’을 표방하는 많은 지역의 경우 정부 주도 아래 계획적으로 탄생한 곳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문래동은 자생적으로 형성된 예술촌에 나중에 정부가 개입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조금 특별하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왜 문래동으로 오게 되었을까? 문래동의 현재를 살펴보기 전에 문래동의 과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1930년대, 일제 강점기 당시 방직공장이 들어섰던 현재의 영등포구 일대는 광복 이후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다. 그중 한 곳이 방적기계 ‘물레’의 발음을 가져와 ‘문래동’이라 명명된다. 1960년대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계획으로 인해 이곳엔 철재상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지역 주민은 자신들의 집을 임대 공장으로 개조한다. 공해나 소음 문제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임대료 상승과 그로 인한 수익의 영향이 컸다. 이 기류를 타고 상당수 철재 제조업체들이 속속들이 이주하면서 1980년대에 이르러 문래동은 은색빛 ‘철꽃’(鐵花)이 만발한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IT를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변하고, 외환 위기까지 더해지면서 이곳에 입주해 있던 업체들은 수도권 밖으로 점차 빠져나간다. 문래동을 대표하던 철공업이 하락세를 찍자 한껏 치솟았던 임대료도 덩달아 낮아졌다.

한편 비슷한 시기, 인근 지역인 홍대와 그보다 멀리 떨어진 대학로는 젊은 세대의 문화 메카로 자리 잡으면서 상권이 급속히 성장한다. 이 말인즉슨, 임대료 역시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는 이야기다. 예술가들은 하나 둘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나기 시작한다. 그중 상당수는 유휴지역이 된 문래동으로 자연스레 흘러오게 된다.

저렴한 임대료와 편리한 교통. 예술가에게 문래동의 철재상가는 매력적인 장소였다. 소음이 많은 공업지역 특성상 ‘시끄러운’ 작업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점도 예술가에겐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 1층만 불이 켜진 철재상가 2·3층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됐다. 이러한 풍경이 그 옆 건물, 그 앞 건물로 이어지고 입소문을 따라 삼삼오오 예술가가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문래창작촌이 움트기 시작했다. 이것이 2000년 무렵의 풍경이다.

이후 정부는 2007년 도시 재생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능과 용도를 상실한 건물을 ‘문화 예술 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 이를 통해 예술가에게 안정적인 창작 공간을 지원하는 동시에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이 교류하는 장이 된다. 이러한 목적에 따라 서울문화재단 산하 대표적인 창작 공간으로 서교예술실험센터·금천예술공장·신당창작아케이드·연희문학창작촌이 2009년 개관했다. 그리고 이듬해 문래예술공장을 비롯해 성북예술창작센터·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가, 2011년 홍은예술창작센터·잠실창작스튜디오가 개관했다.

문래창작촌의 고민

이렇게 몰려든 예술가들이 남겨놓은 흔적, 골목골목 그려진 벽화와 철재 조형물 덕에 최근 몇 년간 문래동은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의 출사 장소로 떠올랐다. 관광객이 갑작스레 늘어나면서 이곳을 일터로 삼은 철공업 종사자들에겐 의지와 상관없이 초상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늘어났다. 앞서 말한 ‘촬영 주의 문구’ 패널은 철공업 종사자들이 먼저 아이디어를 내고, 문래예술공장과 예술가들이 힘을 합쳐 내놓은 작품이다. 여기에 서울시는 관광객을 위한 안내센터를 새롭게 조성했다. ‘눈요기’를 위해 문래동을 찾는 이가 많다지만 그럼에도 문래동은 일터이자 쉼터요, 공존이 필요한 곳이다. 이것은 토박이나 이방인 모두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는 부분이다.

“관광객이 늘어날수록 철공소 직원들과 예술가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문래동의 정체성은 ‘시장’이 아니라 ‘작업장’이거든요. 문래동이 세간의 주목을 받을수록 임대료는 비싸지고, 주민들의 초상권 역시 침해받는 일이 늘어나죠. 그 간극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서울문화재단이 문래예술공장을 세운 이래 지난 2년간 지역민과 소통해온 매니저 이현아 씨의 말에서 오늘날 문래동이 안고 있는 무게가 느껴진다. 사실 자생적으로 형성된 예술촌에 공공 기관인 문래예술공장이 들어서던 초창기, 예술가들과 문래예술공장 사이엔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문래예술공장은 2013년부터 서울문화재단과 지역 예술가·상공인·주민·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를 조직했다. 서로의 필요와 고충을 확인하고, 긍정적인 협력 관계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 밖에도 예술가들과 문래동 철강 산업 종사자들은 거리예술축제, 문화 예술 일상 체험 등을 통해 관계 맺기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문래동이 직면한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2008년 서울시가 공업지역 내 공동주택의 건설에 관한 조례를 개정하고, 이듬해 준공업지역 종합발전계획 수립을 발표한 이래 문래동에는 재개발을 둘러싼 임대인(지주)과 임차인(상공인·예술가) 사이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2년 여간 문래동의 산업 생태계와 예술 활동을 조사하고 있는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남기범 교수는 문래동의 문제를 ‘지주들이 원하는 상업화’에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 재개발은 철강 산업 종사자와 예술가들의 문제가 아니라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입니다. 물론 자본주의사회에 살면서 지가와 관련된 재개발의 문제를 도외시한 채 이상적인 주장만 하긴 힘들죠. 따라서 민간과 공공 기관의 타협이 중요합니다.”

남기범 교수는 문래동을 두고 예술가의 활발한 활동이 이뤄지는 지역에 공공지원이 더해져 상당한 장소성을 획득한 곳이라 설명했다. 문래예술공장의 경우 현재 협업의 가능성과 공공성 추구가 함께 이뤄지고 있지만, 이렇게 자생적으로 형성된 예술마을에 정부가 개입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원하되 개입하지 않는 것’임을 강조했다.

“지역의 문화적 재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대규모 문화시설을 만들기보다 자생적 문화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지역 주민의 문화 참여로 공동체성을 강화하고, 다양한 사회 집단의 접촉을 이끌어내 지역 통합과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지역 주민은 지역 발전을 부지세 상승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예술가들은 시니컬한 관점과 내적 지향성을 완화해 지역 사회를 포용하는 움직임을 보여야겠죠. 여기에 정부는 자본의 극대화와 지역 발전이 공생하는 절묘한 접점을 찾아야 합니다.”

문화 예술을 통한 지역 재생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 새로운 도시로 변화시키는 작업이다. 과거의 기능을 상실한 도시가 현재에 유효한 문화 예술 도시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지역의 랜드마크가 조성되고,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며, 지역 주민의 삶은 향상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상호 간 소통뿐 아니라 구성원의 인식과 문화가 중요하며, 장기적 안목을 갖고 이를 지켜볼 공적인 흐름 또한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공장’이 아닙니다! 서울문화재단 문래예술공장

서울시 창작 공간 사업의 일환인 문래예술공장은 문래창작촌과 예술가 지원을 위해 설립했다. 문래동 철공소 거리 옛 철재공장 부지에 지하 1층과 지상 4층의 연면적 2820㎡(약 853평) 규모로 조성했다.

문래동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에게 작품 기획과 발표를 지원하는 다양한 사업이 이곳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공연장과 연습실을 겸한 박스씨어터·스튜디오M30·녹음실·영상편집실 등 공간 시설을 운영 중이다. 여기에 예술가를 위한 호스텔을 갖춰 해외 작가들과의 국제 교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지역 예술생태계 역량강화 사업 MEET

문래동지역(문래창작촌 중심)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단체), 기획자, 지역예술생태계 구성원의 창작 역량을 개발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프로그램이다. 예술 창작과 발표, 예술가 간 교류 및 지역주민, 인근 상공인과의 소통 프로그램을 지원함으로써 지역예술생태계의 자생적 문화 예술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된 사업이다.

문래창작촌 커뮤니티 및 프로모션 사업

문래창작촌의 대안 공간 및 예술가(단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문화 커뮤니티 활동과 발표 활동·홍보·프로모션을 지원하고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지역 문화 예술 활동의 자생력과 지속 가능한 동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이다.

예술가 지원 프로젝트 MAP(Mullae Arts Plus)

다원예술, 전통기반창작예술, 음악·사운드 분야의 신작 창작 및 작품 업그레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가의 역량을 강화하고 잠재력 있는 예술가의 성장을 도모하는 장르 특화 예술가 지원 프로젝트. 작품 제작 지원금, 공간·장비, 멘토링 등을 포괄적으로 제공하며, 향후 프로모션과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입체적 예술 창작 지원한다.

국제 교류 프로그램

호주 REM극장과 싱가포르 서브스테이션(the substation) 기관 간 예술가 교환을 기반으로 공동 창작 워크숍을 진행해 장기적인 국제 창작 활동 기반을 마련하고 예술가 간 협업 환경과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프로그램이다.

굴뚝 없는 공장! 21세기 예술 도시 사례

유럽과 아시아에서 발견한 지역 재생 열쇠를 살펴본다

영국 게이츠헤드

영국 북부 타인 위어 주, 인구 19만의 작은 도시 게이츠헤드. 1970년대까지만 해도 타인 강변에는 곡물 창고와 제분 공장이 자리하고, 인근 탄광에서 채취한 석탄을 실은 배가 강을 오갔다. 이후 공업도시로서 수명이 끝나면서 이곳은 우범지대로 변해갔다. 1990년대에 쇠락해가는 도시를 되살리기 위해 게이츠헤드와 타인 강을 사이에 둔 뉴캐슬의 의회는 강변에 세 개의 문화 랜드마크를 세운다. 뉴캐슬과 연결된 눈썹 모양의 게이츠헤드 밀레니엄 브리지(2001), 1950년대 곡물 창고와 제분 공장을 개조한 발틱 현대미술센터(2002), 100m 길이의 유리 지붕으로 뒤덮은 공연장 세이지 게이츠헤드(2004)가 바로 그것이다. 게이츠헤드는 영국에서 낙후된 35개 지역 중 하나였으나, 현재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힌다.

독일 우파파브리크

독일 수도 베를린의 남쪽에 위치한 우파파브리크의 ‘우파’(ufa)는 1920년대 포츠담 템펠호프 지역에서 성업했던 영화사 이름이다. 베를린이 분단되면서 이 지역은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고, 지역 산업이 완전히 정지되면서 30년 가까이 폐허로 방치되었다. 이후 1978년부터 청년 예술가들이 모여 공장 문화 페스티벌을 열었다. 공연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금으로 버려진 건물을 수리하고, 풍력·태양열 발전 장치를 갖추면서 구색을 잡아간 우파파브리크는 예술 활동과 자족적 마을 운영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연 방문객 20만 명에 달하는 명소가 됐다.

중국 다산쯔 798 예술구

1950년대 전자산업 공장 부지였던 다산쯔 798 예술구는 베이징 중심부에서 약 5km 떨어진 위치에 자리해 있다. 이곳은 1980년대만 해도 민간용품 생산지였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주변을 주거 단지로 개발하면서 정부의 공장지대 철거 명령이 떨어지는데, 당시 지역에 자리 잡은 칠성전자그룹이 지역을 순차적으로 개발하면서 일부 공간을 예술가에게 임대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이곳을 찾는 예술가가 늘어났고, 2006년 문화창의산업특구로 지정됐다. 현재 200개가 넘는 창작 공간과 400여 개의 갤러리·스튜디오·출판사 등이 입주해 있다.

문래동, 여긴 꼭 가보자!

01 대안공간 정다방프로젝트

‘정다방’은 지난 30년 동안 인근 법원을 찾는 민원인의 광장이었다. 법원이 자리를 옮기면서 다방을 찾는 사람이 줄었고, 정다방은 끝내 문을 닫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들이 모여 시작된 정다방프로젝트는 버려진 찻집을 세련된 전시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정다방’이라고 쓰인 옛 간판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50m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 카페 정다방프로젝트는 지역 주민에게 또 다른 쉼터를 제공한다.

영등포구 문래동4가 7-1 지하 1층, 02-2633-4711

02 치포리

뚝딱거리는 철공소 사이에 자리 잡은 아늑한 카페.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연상시키는 차분한 인테리어에 큰 창으로 문래동 경치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민들이 기부한 문화 예술·인문 서적과 문래창작촌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두툼한 아카이브 자료가 가득하다. 갤러리와 옥상 텃밭은 전시와 세미나 스터디 공간으로 쓰인다. 카페 수익금은 문래동 컬처 매거진 ‘문래동네’를 발간하는 데 사용한다.

영등포구 문래동3가 58-84 2층, 02-2068-1667

03 대안공간 문

문래동 주민들과 예술가들이 십시일반으로 노력해 만든 라이브 공연장이다. 문화 예술 단체 ‘보노보C’가 운영한다. ‘음악과 예술’이라는 모티브로 모인 사람들이 문래동의 밤을 수놓는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 ‘문래아트미트사운드’라는 이름으로 문래동과 홍대의 인디밴드가 정기적으로 컬래버레이션 공연을 갖는다. 행위예술·재즈·국악·퓨전 음악 등 다채로운 공연 예술이 이뤄지며, 그 외에는 누구나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열려 있다. 영등포구 문래동3가 54-41 지하 1층, 010-9926-3565

04 몸꼴

몸꼴은 몸을 화두로 잊혀져간 역사와 삶의 기억을 무대로 재현하는 데 주목하면서 소외된 예술을 다시 불러오는 작업을 한다. 몸꼴에서 소개하는 예술은 실험적인 성격의 것이 대부분이다. 공연 창작 집단 ‘극단 몸꼴’과 교육 프로그램 연구 및 체험 공연을 진행하는 ‘몸꼴 상상력 훈련소’, 문화 예술 기획과 축제를 운영하는 ‘문화이끔이 꼴’을 산하기관으로 두고 있다.

영등포구 문래동3가 54-46 3층 301호, 02-2636-4861

05 대안공간 이포

사진과 영상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 아티스트의 창작 공간 겸 전시 공간이자 문래동의 사랑방을 자처하는 곳. 지난해 12월 ‘당신의 삶을 증명하라’는 주제 아래 이곳에서 열린 ‘내용증명’전은 문래동 주민과 철공소 종사자, 작가와 동물이 중심이 되어 각자의 삶을 기록과 애장품으로 증명하는 자리였다. 예술과 삶의 소통을 실험하고 실천하는 대안예술 공간.

영등포구 문래동3가 58-77 붉은 벽돌집 1층, 010-5382-6921

사진 심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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