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

라이브로 듣는 쇼팽 24개 연습곡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3월 1일 12:00 오전

유투브를 통해 끊임없이 대중과 호흡하고 대화하는 발렌티나 리시차. 그녀의 열정적 음악 세계를 만나다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1991년 피아니스트 알렉세이 쿠즈네초프와 호흡을 맞춰 머레이 드라노프 듀오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부터다. 이후 리시차는 알렉세이 쿠즈네초프와 미국의 주요 29개 주에서 듀오 콘서트를 열었다. 2006/2007 시즌에는 전미 순회 리사이틀을 진행했고, 2007/2008년에는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과 유럽·미국 투어 연주를 했다. 특히 리시차의 여덟 개 음반과 연주 영상이 담긴 세 개의 DVD 중 쇼팽 24개 연습곡은 아마존에서 클래식 분야 최다 수량 판매로 기록되면서 큰 이슈가 되었다. 또한 그녀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연주하며 협연자로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냈다.

현재 그녀는 데카 클래식에서 음반을 전속 발매하고 있으며, IMG Artist에 소속되어 있다. 특히 2013년 가을, 첫 내한 공연 때 3시간이 넘는 동안 폭발적 에너지와 열정을 보여준 그녀이기에 3월 18일과 20?21일의 연주회는 더욱 큰 기대를 갖게 한다.

“2년 전 한국에 왔을 때 클래식 음악에 대한 청중의 열정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후 유튜브를 통해 생긴 한국 팬도 많이 생겨서 한국에서의 연주를 기다렸는데, 그래서 이번 무대가 더욱 기대됩니다. 유튜브는 무대가 아닌 SNS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곳이죠. 유튜브의 청중은 전문적이면서도 현학적이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제 음악을 듣습니다. 제게는 더없이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오푸스 마스터스 시리즈의 일환으로 펼쳐지는 이번 리사이틀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리시차가 연주하는 방대한 레퍼토리다. ‘건반 위의 마녀’ ‘피아노 검투사’라는 별명처럼 그녀는 바흐-부소니 샤콘, 슈만 ‘교향적 연습곡’,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작품들처럼 다양한 피아노 레퍼토리를 한꺼번에 선보인다. 특히 이번 무대는 유튜브를 뜨겁게 달군 그녀의 쇼팽 24개 연습곡을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많은 사람들이 그 많은 레퍼토리를 어떻게 하루에, 한꺼번에 연주할 수 있느냐고 묻지만, 1920~1930년대 피아노 연주회가 많이 열리던 황금기에 연주된 리사이틀을 보면 오히려 지금 제가 하는 연주 레퍼토리는 평범한 수순이죠. 저는 피아니스트라면 많은 레퍼토리는 물론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 해석도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연주자의 노력이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특별히 대곡 연주하는 것을 즐기는 리시차는 이번 내한 공연에서도 지역마다 다른 레퍼토리로 청중을 찾는다. 사실 그녀가 연주하게 될 레퍼토리는 한 연주자의 일 년 시즌 레퍼토리와 맞먹을 정도로 방대하다.

“연주자가 레퍼토리를 늘려가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레퍼토리를 공부할 때 꼭 어떤 계획을 세워 그대로 따르는 편은 아니에요. 다만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레퍼토리를 공부하고 이해하고 알아가는 기쁨을 제 인생의 큰 행복으로 여기고 있어요. 저는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것은 물론 아무도 시도하지 않던 것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해요. 제 삶의 방식도 미리 예견하기보다는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요. 클래식의 매력 역시 누가, 언제,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연주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니까요.”

여는 연주자들처럼 자기 연주에 대한 청중의 반응에 민감한 그녀는 자신의 연주가 단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다고 말한다.

“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제겐 행복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음악을 전하는 소통 방법을 다양하게 시도하려고 해요. 음악은 각 시대마다 전하는 사람, 듣는 사람, 그리고 전해지는 통로가 달랐잖아요. 17세기에는 귀족들을 위해 살롱에서 음악회가 펼쳐졌다면, 지금은 청중이 들을 수 있는 어느 곳이나 무대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지금은 유튜브 같은 SNS도 클래식 음악을 효율적으로 전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최신의 소통 방법으로 오래된 클래식이 전해진다는 것은 굉장히 멋진 일 같아요.”

이토록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 많고, 열정적인 피아니스트임에도 리시차의 성격은 의외로 내성적이다. 사람들 앞에만 서면 한없이 떨리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니, 알 수 없는 것이 예술가인가 보다.

“제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사람들이 많이 놀라곤 해요. 수줍음도 잘 타고 상처도 많이 받는 성격이거든요. 이 세상에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해 주는 어떤 것들이 분명 존재하겠지만 저에게는 그 존재가 ‘음악’이에요. 음악으로 무언가를 표현할 때가 가장 편하고 자유롭거든요. 우스운 말 같지만, 그래서 저는 이 아름다운 음악으로 사람들을 많이 감염시키고 싶어요. 다른 세계, 다른 우주를 소개하고 싶어요.”

그렇게 음악이란 스며듦이 아니던가. 그녀가 우리에게 음악을 건넬 때, 그 안에 담긴 행복 바이러스도 봄 향기처럼 멀리 퍼지기를.

사진 OPUS

감상 어드바이스

발렌티나 리시차 작품, 어떻게 들을까?

바흐에서 필립 글래스까지, 그녀의 행보는 종횡무진 거침이 없다. 피아노 레퍼토리의 울창한 밀림 속을 왕성한 음악적 식욕으로 누비고 다니는 발렌티나 리시차. 그녀에게 ‘건반 위의 하이에나’라는 별명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연주곡목의 조합이 청중의 선호도를 감안한 맞춤형에 준할 수 있는 것도 그녀의 레퍼토리 창고에 비축된 풍부한 음악적 양식 덕분이다. 2013년 연주회와 동일하게 두 번의 인터미션이 포함된 서울 공연 프로그램은 그 압도적 풍성함이 즐겁지만 3시간 연주에도 지치지 않는 피아니스트와 함께 호흡하려면 청중 역시 비상한 지구력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최근 그녀의 콘서트 오프닝을 자주 장식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가 역시 서울 무대의 첫 곡이다. 베토벤의 소나타는 읽는 이에 따라 매우 달라지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템포 설정부터 연주자마다 미묘한 낙차를 보인다. 리시차의 베토벤은 결코 조급하지 않은 쪽이지만 곡이 진행되면서 듣는 이를 사정없이 고양시키는 이상한 마력이 있다. 그녀의 느린 악장은 또 어떤가. 쉼표의 표정을 비롯해 행간을 읽는 것이 관건인 2악장에서의 차진 어조를 기대해본다. 물 흐르듯 심상하지만 결코 범상하지 않을 3악장이 끝났을 때 이미 리시차의 강력한 피아니즘에 청중 모두 깊숙이 빠져 있을 것이다.

수많은 국내외 피아니스트가 라이브로 들려준 리스트 소나타 B단조의 리시차 버전은 과연 어떨까. 거대한 구조물을 연상시키는 이 대곡은 리시차의 실물대를 넘어서는 이미지와도 왠지 걸맞아 보인다. 리스트 작품에서 특별한 친화력을 뿜어내는 그녀가 구조의 뼈대 사이를 흐르는 철학적 사유와 변화무쌍한 감정선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주목할 일이다. 특히 중간의 푸가 부분과 그 이후의 국면을 어떻게 이끌어갈지가 또 다른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연주회의 중심에 브람스가 자리 잡고 있음은 흥미롭다. 질풍노도 속 홀연 등장하는 깊고 서늘한 내면 성찰의 시간이다. 브람스가 말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음악적 에센스를 모아 정갈하게 빚어낸 성격 소품의 향연이 강렬한 음악 맛에 살짝 지친 미각을 충분히 달래고 어루만져줄 것이다. 리시차의 초절정 테크닉에 가려져 있던 진솔한 음악적 해석력이 브람스의 소품을 통해 그 진가를 발휘하리라.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인을 열광시킨 문제적 작품 쇼팽 24개 연습곡을 생생한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단품으로는 자주 접했던 곡들을 연속적으로 한꺼번에 듣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전체 24곡의 완급과 올라섬과 내려섬, 에너지의 집중과 분출이 한눈에 잡히면서 쇼팽 연습곡들이 하나의 거대한 파도로 온몸과 마음에 밀려올 것이다. 기술적 장벽을 너무도 가뿐히 뛰어넘은 탓에 다소 차갑다는 평도 있는 연주 동영상과 달리 라이브 무대의 체감 온도는 과연 어떨지 궁금하다. 의외의 뜨거움에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닐지, 우려가 아닌 기대와 함께 말이다.

글 김순배(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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