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나눔의 가치를 실현한 4월 26일부터 5월 6일까지의 따뜻한 여정
눈을 살짝 떠보니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 그래도 이 정도면 너무 빠르지 않고 잠도 충분히 잤다. 여기가 어딘지 잠시 생각해보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오늘의 스케줄을 점검한다. 뷰티풀 마인드팀의 일원으로 연주를 다니다 보면, 무엇보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시차의 도움(?)으로 일찍 일과를 시작하는 큰 혜택을 받게 된다. 이번 여행은 중앙아메리카의 작은 나라들,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다. 뷰티풀 마인드로서도 처음 받은 앙코르 공연, 정확히 1년 전 공연을 치른 그곳에 초청 주최자인 한국 대사관을 포함해 많은 분과 반가운 재회 인사로 열흘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2006년 재외 한인을 중심으로 한국·미국·홍콩·싱가포르에 법인을 설립한 사단법인 뷰티풀 마인드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전 세계 소외된 이웃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문화 외교 자선단체다. 총괄이사로 일하는 이화여대 교수이자 첼리스트인 배일환을 중심으로 각계각층의 음악인이 활동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다양하게 세분화돼 있다. 국내외 무대에서 자선 음악회를 펼치는 뷰티풀 콘서트, 장애인과 소외계층 아동을 예술인으로 양성하기 위한 무료 음악 교육 뷰티풀 마인드 뮤직 아카데미, 매월 1회 회원과 후원자가 함께하는 봉사 프로그램 뷰티풀 액션 등이 있다. 햇수로 10년이 돼가는 뷰티풀 마인드가 다녀온 국가는 벌써 70개국을 헤아린다. 그간 뉴욕과 나이로비 UN본부에서의 공연, 레바논·요르단 동명부대 위문공연, 동티모르·스리랑카·인도 등 소외 지역에서의 공연과 아프리카 우간다·케냐·스와질란드·남아공, 중남미의 칠레·우루과이·아르헨티나·파나마·에콰도르,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에서 공연을 펼쳤고 중국 쓰촨, 일본 센다이, 필리핀 등 자연재해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에도 찾아가 연주를 들려주었다. 양악·국악 연주자로 꾸민 연주팀은 여러 일정 탓에 모든 연주에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시간을 쪼개 세계 어디든 음악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뿌듯함이 있다.
따뜻한 나라에서 만난 뜨거운 정감
첫날, 온두라스의 유서 깊은 마누엘 셀라야 국립극장을 1년 만에 다시 찾았다. 어수선하고 복잡했던 극장 앞 도로가 예전보다 깨끗이 정돈된 느낌이다. 오래된 극장 중 무대가 객석 쪽으로 다소 기울어진 극장이 있는데, 이곳이 그렇다. 다른 연주자에 비해 피아니스트가 다소 애먹는다는 불편함이 있을 뿐, 기타와 바이올린·첼로, 성악, 그리고 해금·대금·가야금 등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에 청중은 라틴민족 특유의 정열을 보여주었다. 우리도 그들의 마음에 감사히 화답했다. 특히 내가 팀원들을 위해 편곡한 온두라스 노래 ‘바나나 장수’에 대한 반응이 괜찮은 듯했다. 1년 전처럼, 우기가 막 시작된 온두라스에 시원한 비가 내렸다.
둘째 날, 오전에는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 인근에 자리한 고아원 시설을 찾았다.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은 더위에 지친 멤버들에게 언제나 청량제가 되어준다. 처음 보는 국악기와 연주자들의 한복 차림에 어른들과 아이들 사이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부모를 잃거나 버림받은 아이들이 가족처럼 구성원을 이루어 ‘엄마’(그들이 보육교사를 이렇게 부른다)와 함께 살고 있는 시설이다. 엄마들의 따뜻한 정이 있어 행복한 아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셋째 날, 엘살바도르로 건너온 후 저녁에 잡힌 갑작스러운 일정은 이틀 후 있을 산살바도르에서의 메인 공연을 홍보하기 위해 출연한 깜짝 게스트 연주였다. 본공연이 재즈 오케스트라인데, 음량도 훨씬 적은 우리 국악팀이 더 큰 박수를 받았다. 저녁에는 엘살바도르 한인회 초청으로 한국 식당에서 식사를 함께 했는데, 여기에서도 즉흥적인 약속이 이루어졌다. 바로 다음 날 아침에 열리는 한인 체육대회에서 우리의 성악가 두 사람이 애국가(4절까지!)를 부르게 된 것. 노래 부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의 가슴도 뜨거워졌다.
넷째 날, 작은 나라 엘살바도르의 한인회는 역시 작지만 거의 전원이 체육대회에 참가할 만큼 단단하고 화기애애한 팀워크를 자랑했다. 성악가 두 분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애국가를 부르는 그 시간, 다른 연주자들은 엘살바도르 TV 채널의 아침 생방송에 참여했다. 연주 프로그램의 소개와 함께 한국 이야기, 우리 팀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나누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흘렀다. 나름대로 중요한 아침 프로그램인데, 피아노가 준비돼 있지 않아 아쉬웠다. 모처럼 스태프가 되어 일을 돕기도 했다. 며칠 전 온두라스에서도 저녁 생방송에 출연했는데, 방송 직후부터 SNS에 이 나라 출신의 친구 신청이 느는 멤버들도 생겼고, 공항에서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신기하고 반가운 일이다. 오후에 찾은 장애인 복지기관의 연주에서도 음악과 사랑이 더 많이 필요한 이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며 만나게 되는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맑은 영혼과의 만남은 오히려 우리가 많은 위로를 받고 치유되는 느낌이다.
다섯째 날, 엘살바도르의 메인 공연인 산살바도르 페파데 극장에서 공연을 하는 날이다. 이 극장은 다른 곳에 비해 냉방이 지나치게 잘돼 추웠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1년 만에 돌아와도 그대로다. 게다가 리허설 중 극장 천장에 그대로 쏟아지는 듯 세찬 빗소리가 들려왔다. 크고 작은 난관을 뚫고 연주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은 역시 코리아의 먹거리! 교민들이 준비해온 김밥과 김치였다. 공연이 끝나고 초대해준 주 엘살바도르 대사님의 현지 소식을 들으며, 1년 만에 찾은 이곳이 우리에게 그다지 먼 곳이 아님을 새삼 실감했다.
마지막은 엘살바도르 제2의 도시 산타아나에서의 공연이었다. 고풍스러운 극장은 무척 아름다웠으나, 어제와 반대로 냉방 시설 없는 더위가 우리를 맞이했다. 방금 조율을 마친 피아노 현이 내려갈 정도니, 현악기 주자들의 어려움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마지막 남은 힘까지 쥐어짜 연주를 마친 뒤에는 또 다른 순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산타아나 시의 인구 절반이 극장을 찾은 듯, 엄청난 인파에 휩싸여 얼굴 근육이 마비될 정도로 사진을 찍은 것. 한류 스타와 한국 드라마 등을 통해 한국 인사말을 건네는 젊은 학생들 앞에서 우리도 연예인인 듯 으쓱해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이번 공연 일정도 모두 건강하고 무탈하게 마무리했다. 이번 여행의 추억은 어떤 것으로 남게 될까. 구수하면서도 깊은 맛의 온두라스 커피 향일까, 아니면 찌는 듯한 태양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산타아나 뒷골목의 알록달록한 집과 담벼락일까. 무엇보다 우리가 만난 모든 이의 마음이 그리울 듯하다. 언제나 그랬듯, 그들은 우리의 이름 ‘뷰티풀 마인드’를 무색하게 할 만큼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녔기 때문이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고마워요, 뷰티풀 마인드!
사진 뷰티풀 마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