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인도양 뮤직 마켓을 가다

물빛을 닮은 음악, 말로야를 따라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7월 1일 12:00 오전

리드미컬하면서 한없이 서정적인 음악을 품은 레위니옹에서 마주한 순간들

아프리카 대륙의 남동쪽 인도양 마다가스카르 섬 옆에 위치한 레위니옹 섬. 이곳은 프랑스령이 아닌 진짜 프랑스 땅이다. 당연히 유로를 사용하고 프랑스의 지방 정부 중 하나로 관리를 파견하며, 모든 것이 프랑스와 같은 체제로 움직인다.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아주 작은 섬으로 찍혀 있는 레위니옹 섬은 의외로 크다. 제주도 면적의 약 1.8배로 손상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 유럽인의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지역 고유의 음악인 모르나(morna)·콜라데라(coladera)와 맨발의 디바 세자리아 에보라(Cesaria Evora)로 널리 알려진, 아프리카 서부 해안에서 600km 떨어진 섬 카보베르데와 마찬가지로 레위니옹에도 처음엔 사람이 살지 않았다. 대항해 시대 이후 프랑스인과 유럽인이 정착하고 사탕수수 농장에 많은 노동자가 필요해지면서 동남부 아프리카를 비롯해 인도·중국 등지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지금까지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자연스레 크레올이라 불리는 혼혈 인종과 문화가 생겨났고, 음악 역시 말로야(maloya)라 불리는 레위니옹만의 고유한 장르가 발생했다. 아프리카 동남부의 원초적이고 다이내믹한 리듬의 변형된 형태의 말로야는 기본적으로 매우 격렬하고 리드미컬한 소리와 몸짓을 가지고 있지만, 소위 발라드라 불릴 수 있는 곡들은 한없이 서정적이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현재 말로야를 대표하며 해외 페스티벌에 활발하게 초청되고 있는 음악가는 2014년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에 참가한 마야 카마티(Maya Kamaty)와 크리스틴 살렘(Christine Salem)이다. 이들은 모두 씨앗이 들어간 사탕수수 여러 대를 연이어 평평한 빨래판처럼 만든 악기 카얌브를 흔들며 말로야의 리듬을 맞추고 노래하며 춤춘다.

필자는 올해 1월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쇼케이스 스코틀랜드부터 2월 브라질 헤시피의 포르투 무지칼(Porto Musical), 4월 중국 북경의 사운드 오브 시티(SOTX), 5월 스페인 빌바오의 EXIB에 이어 지난 6월 1일부터 4일까지 열린 인도양 뮤직 마켓이 개최되는 레위니옹 섬에 초청을 받아 다녀왔다.

올해 열린 인도양 뮤직 마켓(Indian Ocean Music Market, 이하 IOMMA)은 재정 문제로 준비 기간이 매우 짧았지만, 총감독인 제롬 갈라버트(Jérôme Galabert)와 스태프들의 노련함으로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제롬과 이 스태프들은 IOMMA와 함께 매년 5만 명의 관객이 찾는 레위니옹 섬의 최대 축제인 사키포 뮤직 페스티벌(Sakifo Musik Festival)과 레코드 레이블을 운영하는데, 말로야를 중심으로 레위니옹과 인근 모리셔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지의 음악가들을 해외에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모든 일은 결국 사람이 하고 그에 귀결되기에 이들의 프로페셔널한 운영은 흠잡을 데 없었다. 덕분에 4일간의 IOMMA 쇼케이스와 컨퍼런스, 일대일 미팅을 마치고 사키포 페스티벌까지 관람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지구상 음악 속에서 변별력을 갖기까지

IOMMA 쇼케이스는 총 20개 정도 열렸다. 레위니옹 밴드 다섯 팀, 프랑스 본토와 모리셔스, 마다가스카르 등 인근 지역과 더불어 세 팀의 인도 특집 쇼케이스를 진행했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온 록 사운드에 기반한 아프리칸 블루스와 네오 솔을 연주하는 실로(Silo)는 실로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중년 아저씨 같은 이 밴드의 리더는 호텔과 쇼케이스장을 오가는 셔틀버스와 다른 쇼케이스 공연장에서도 계속 만나게 되었고, 수년 전 필자가 초청한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걸출한 아프리칸 블루스 뮤지션 빅터 데메(Victor Deme)처럼 언제가 한국 관객에게 소개해야겠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인도 특집 쇼케이스는 이번 IOMMA에 대거 참여한 인도 초청자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렸다. 말로야가 아닌 레위니옹 뮤지션들은 필자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다소 평범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지구상 어디에나 그저 그런 록 음악은 늘 존재하고, 일렉트로닉과 디제잉이 대세이나 이젠 너무나 식상한 접근법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자신의 혹은 자신만의 음악적 정체성을 찾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차고 넘치는 지구상 음악 속에서 변별되고 주목받는 일 역시 그리 간단치 않다.

개인적으로는 뮤직 마켓의 쇼케이스 공연이나 페스티벌 무대에 선 뮤지션의 연주를 처음 대할 때, 취향과 호불호에 앞서 이들의 음악적 정체성과 앙상블, 개인의 연주력에 먼저 주목하려고 노력한다. 이들의 음악을 처음 대하는 불특정 다수의 해외 관객, 특히 한국에서 이들의 공연이 열렸을 때 우리 관객이 보여줄 반응을 예측하고 가늠해야 하기 때문이다.

IOMMA에 이어 6월 5~7일에 열린 사키포 뮤직 페스티벌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페스티벌이 이뤄진 공간이 기억에 남는다. 해변을 따라 설치한 다섯 개의 무대는 친자연적이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페스티벌에 참가한 뮤지션과 공식 초청자를 위한 식당과 백스테이지 바를 겸한 VIP 존은 메인 무대와 바로 연결되는 동선을 확보해 휴식과 식사 공간 이상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페스티벌 공간 구성에서 대개 공연 무대와 워크숍 공간 배치를 먼저 하고 출입구와 식음료 부스, 화장실을 다음 순서로 배치한다. 우리나라 음악 페스티벌은 공연 전후 뮤지션의 휴식과 식사 공간인 백스테이지와 함께 VIP 존의 배치와 운영이 상대적으로 미흡한 편이다. 물론 페스티벌을 찾은 관객의 편의가 우선일 테지만, 관객의 즐거움을 책임질 아티스트가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게 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페스티벌 소식을 전하고 이를 재생산할 초청자와 미디어에 대한 배려의 중요성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7월 체코 오스트라바에서 열리는 크로스로드 페스티벌(Crossroads Festival)과 10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워멕스(WOMEX, The World Music Expo), 11월 모로코 라바트의 비자 포 뮤직(Visa for Music), 12월 브라질 벨루오리존치의 MMM(Festival Minas M?sica Mundo)과 인도 콜카타의 이멕스(IMEX, International Machine Tools Expo)까지, 전 세계 각 지역에서 열리는 뮤직 마켓을 순례할 예정이다. 늘 그렇듯, 각 대륙과 지역을 대표하는 뮤직 마켓에 참가하면서 세상의 다양하고 독특한 문화와 음악에 매번 경이로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이 경이로움의 근거에는 전통의 자산을 자랑스럽게 보존하는 이들의 고집과 자부심도 있지만, 계승에 그치지 않고 일렉트로닉·록·힙합 같은 동시대의 트렌드와 대중성을 공유한다는 데 있다. 물론 트렌드의 무분별한 인용이나 융합은 지양해야 할 것이고, 전통의 핵심 요소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거나, 앙상블이 충실하지 못한 음악은 그저 소리에 그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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