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에 담긴 음악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9월 1일 12:00 오전

예나 지금이나 한 잔의 커피가 선사하는 향과 맛은 예술가들의 정력적인 활동을 이끄는 연료이자, 영감이 원천이다. 아프리카 북부에서 열매를 맺은 이후 대륙에서 대륙으로 전해지면서 커피는 각기 다른 모양새로 존재했지만, 누구보다도 음악가들에게 필요충분조건일 뿐 아니라 유용한 도구가 되어왔다. 오늘날 봉지만 찢어 뜨거운 물만 부으면 어디서든 손쉽게 마실 수 있는 믹스커피든, 커피전문점의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아메리카노든 그 안에 담긴 카페인이 일깨우는 것은 비단 예술뿐만 아니다. 일상 속에서 한 잔의 커피 그리고 음악을 곁들인다면 각자의 잠든 이성과 지루한 일상도 조금은 윤택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역사 속에서 각기 다른 풍경을 그려낸 커피와 음악. 가을의 문턱 앞에 서서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잠시 들여다보자

17세기-전쟁이 남긴 커피와 터키풍 음악

커피콩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북부 에티오피아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커피는 아라비아반도 예멘 지역의 아랍인들이 처음 마신 것으로 추정된다. 아라비아에 커피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고고학 발굴에 따라 12세기로 보고 있다. 당시 예멘에서는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처음으로 생겨났고, 이후 종교적인 목적으로만 제한되기도, 의사들에겐 질병의 치료제로 사용되기도 하면서 커피는 급속도로 확산됐다. 15세기 말 경에는 커피가 신성한 도시인 메카에 도달하고, 이후 무슬림들을 통해 이슬람 전역으로 재빨리 퍼져나갔다.

한편 16세기 중반 터키인들이 세운 오스만제국이 아랍권을 통치하면서 ‘검은 음료’의 마력에 급속도로 빠져드는 인구는 늘어난다. 이곳에서 커피는 모든 활동에 앞서 치러지는 의식과도 같았다. 오스만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오늘날의 이스탄불)에는 커피하우스가 늘어갔고, 집집마다 커피를 끓이는 다른 방법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자신의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 반드시 커피를 제공했는데, 손님이 커피를 거절하는 것을 큰 결레로 여길 정도였다.

15~17세기 신성로마 제국 시기의 유럽대륙은 동서남북으로 세력을 키워가던 오스만제국의 위협과 지배에 시달렸다. 1683년 합스부르크(오늘날의 오스트리아)는 오스만제국의 정복 전쟁에 휘말리나 가까스로 승리한다. ‘비엔나 전투’로 불리는 이 전쟁은 당대에 다양한 문화와 유행을 남겼는데 커피와 터키풍의 음악도 그 중 하나다.

커피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오스만제국 사람들은 전쟁터에도 커피콩을 잔뜩 들고 왔는데, 전투에 심각하게 패하면서 오스트리아에 모든 것을 두고 서둘러 퇴각한다. 당시 버려진 가축이며 먹을거리 사이에 남겨진 어마어마한 양의 커피콩으로 인해 오스트리아에도 커피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전쟁 중 울려퍼진 오스만제국의 군대 음악은 오스트리아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두달 간의 전쟁에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악사들이 큰북이나 심벌즈 같은 악기로 연주하던 오스만제국의 군대음악을 들었던 음악가 출신의 오스트리아 군인들은 그들의 음악을 재현하려는 시도를 거듭한다. 한 기록에 따르면 당시 오스트리아의 승전을 기리기 위해 작곡된 곡에 터키풍의 멜로디가 사용되면서 서서히 터키풍으로 작곡하는 유행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17~18세기에 걸쳐 ‘터키풍’은 거대한 유행이 됐다(여기서 ‘터키’는 오스만제국 전반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됐다).

특히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18세기 빈에서는 터키풍의 의상 가구, 음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3악장에 ‘터키 풍으로’라는 의미의 알라 투르카(alla turca)라는 지시어와 함께 우리에게 ‘터키 행진곡’ 잘 알려진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1번 A장조, 비슷한 시기에 작곡된 오페라 ‘후궁 탈출’이나 이후에 나온 ‘코지 판 투테’ 속 터키풍 음악, 바이올린 협주곡 5번 A장조 K219에 터키풍 선율을 발견할 수 있다. 모차르트 외에도 당대의 많은 음악가들이 ‘터키풍’을 작품에 사용하는 것이 번져나갔고, 이것은 다음 세기의 음악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베토벤의 극음악 ‘아테네의 폐허’에 등장하는 ‘터키 행진곡’이 바로 그 예가 될 것이다.

참고로 오스트리아 빈에 ‘비엔나 커피’가 없다는 이야기는 철 지난 농담처럼 느껴질 정도로 잘 알려진 이야기다. 에스프레소 위에 크림이 듬뿍 얻어져, 흔히 우리들이 ‘비엔나 커피’로 부르는 커피의 실제 이름은 아인슈패너. 카페로 들어오기 힘든 마부들이 한 손에 말고삐를 잡고, 다른 손으로 크림과 설탕을 넣은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만들기 시작한 것이 유래가 됐다고 전해진다.

빈의 커피하우스는 초창기 상류층 남성에게만 허락된 공간이었다가 1856년 이후 계층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출입이 가능해지면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과거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그 명맥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빈의 커피하우스 문화는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18세기-천 번의 키스보다 황홀한 그 맛

함부르크를 시작으로 1670년대 무렵 독일에 커피가 전해지면서 도시마다 커피하우스가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바흐가 활동하던 18세기에 이르자 라이프치히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유행으로 떠올랐다. 예나 지금이나 커피하우스는 다양한 이들이 모이는 사교의 장이 되었고, 결코 값비싼 가격이 아님에도 자신만의 풍미를 즐기는 사람들은 집안에 도구를 갖춰 커피를 즐기는 경우가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늘어갔다.

비슷한 시기 파리에서는 커피하우스 홍보를 목적으로 피아노 반주에 시를 붙인 샹송이 불리기도 했다. 커피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좋은 커피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노래는 종지부에서 커피하우스 이름을 홍보하는데, 마치 오늘날 TV 광고 CF송을 연상케 한다. 게다가 21세기엔 믿거나 말거나한 정보들임에도, 심정적으로는 100% 공감할 수밖에 없는 가사임에 틀림없다.

“커피는 질병을 막아준다네. 커피의 효능을 온몸으로 느껴보게. 두통이든 감기든 상관없네. 나른함과 무기력도 떨쳐버리게”

‘커피와 음악’을 논할 때,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빼놓을 수 없는 예술가다. 그의 이름에서 우리는 수많은 종교음악을 먼저 떠올리지만 ‘커피 칸타타’로 알려진 바흐의 칸타타 BWV211은 교회 칸타타가 아닌, 세속 칸타타로 불리는 실내 칸타타다. 1732년 완성된 작품으로, 라이프치히 치머만 커피하우스에서의 공연을 위해 ‘마태수난곡’ 가사를 쓴 헨리키가 피칸터라는 필명으로 작사를 했고, 바흐가 이끄는 콜레기움 무지쿰이 연주를 맡았다.

당시 독일에서는 커피가 불임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여성에게 커피를 금지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전해진다. 이를 풍자하듯 딸에게 커피를 끊으라고 강요하는 아버지와 이를 거부하는 딸의 실랑이가 주된 내용인 ‘커피 칸타타’는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로 구성된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내레이터를 맡은 테너와 두 명의 주인공(소프라노·베이스)이 등장해 마치 소규모 희극 오페라 같은 형식으로 진행된다. 18세기 라이프치히 커피하우스는 여성 출입금지 구역이라 ‘커피 칸타타’ 공연 당시 소프라노 아리아를 남성 가수가 가성으로 불렀고, 익살스러운 분위기가 한껏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가사를 조금만 살펴보면, 오늘날의 관객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공감대와 웃음이 가득하다.

“아! 맛있는 커피. 천 번의 키스보다 황홀하고, 모스카토 와인보다 부드러워.”

“내가 원할 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자유를 약속하고, 결혼 생활에서 그것을 보장하지 않는 한 어느 청혼자도 내 집에 올 필요가 없어요.”

아버지는 딸의 고집을 꺾기 위해 약혼자와 결혼시키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딸은 무릎을 꿇는다. 하지만 아버지의 결혼 승낙 이후, 딸은 혼인계약서에 커피를 자유롭게 마실 수 있게 허락한다는 조항을 넣고 결혼과 커피를 얻는 데 성공하고, ‘딸을 누가 나무라겠어!’라는 삼중창과 마무리된다. 이 작품은 1925년 영국 리즈에서 단막극 형식의 오페라로 각색되어 ‘커피와 큐피드’라는 제목으로 공연되기도 했다.

커피 마니아로 통하는 3B 작곡가들

예나 지금이나 작곡가에게 커피는 영감을 더하는 원료였다. 클래식 음악계 3B로 불리는 바흐·베토벤·브람스 모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커피 마니아였다. 특히 브람스와 베토벤은 커피에 대한 취향이 특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브람스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악보 종이, 담배, 그리고 커피 추출기를 먼저 찾았다. 특히 자신의 커피는 언제나 손수 직접 끓였는데, 누구도 자신만큼 향기가 짙은 커피를 끓이지 못한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베토벤은 좀 더 디테일하다. 한결같이 집에서 만든 커피를 유일한 아침식사로 마셨는데,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원두는 나에게 60가지 영감을 준다”고 말하며 늘 원두 60알을 세어서 한 잔의 커피를 만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집 안이 악보와 더러운 옷으로 어질러져 있으나 테이블엔 악보 용지와 끓인 커피가 있었다”는 후배 작곡가 베버의 목격담을 보면서 가난한 생활비에서 매번 커피 값을 챙겼을 베토벤의 어깨가 왠지 무겁게 느껴진다. 이런 그가 커피와 관련된 작품을 단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 아쉬운 일이다.

19세기-러시안 눈에 비친 커피의 요정

잠시 다른 음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17~18세기 커피로 인해 유럽 대륙이 들썩거릴 때, 유럽과 아시아 사이, 러시아는 철의 장막 속에서 자신들의 음료 문화를 고수하고 있었다. 지금도 러시아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전통적인 음료는 3백여 년 전 중국에서 들여온 ‘차’였다. 표트르 대제 시기,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조약이 체결되면서 양국 간 상품교역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차 문화는 1720년대 들어 산업 규모로 확정되기 시작한다.

영국이 인도로부터 무역선을 바다로 차를 들여왔다면, 중국발 러시아행 차는 시베리아와 우랄산맥을 거쳐 육로를 러시아에 운송됐다. 이때 걸린 기간은 평균 반년 정도. 이때 러시아에 전해진 차는 우리가 아는 녹차보다는 홍차에 가까웠다. 러시아에선 사모바르라 불리는 차 주전자를 이용해 진하게 끓인 차를 취향에 따라 희석시켜 과일 잼이나 각설탕을 곁들여 마신다. 또 러시아에서 차는 여유 있는 대화를 나누는 수단으로 파이, 초콜릿 등 단 음식을 반드시 같이 내놓는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다도를 목적으로 차 마시는 자리에 차 말고는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다. 영국에서는 크림을 곁들여 내는 편이다.

어쨌든 19세기 무렵에 이르러서야 러시아에 아라비아 커피가 수입되기 시작했는데, 차이콥스키의 커피 취향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대의 분위기의 영향인지 1892년 작곡된 차이콥스키의 발레 음악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에도 ‘커피-아라비아의 춤’이 등장한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1892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마리우스 프티파와 레프 이바노프 안무로 초연된 2막 발레다. 생쥐 왕으로부터 호두까기를 구해준 클라라는 왕자로 변신한 호두까기를 따라 과자의 나라로 초대받는다. 아이들이 왕자를 따라 과자의 나라에 가면 사탕과 과자의 요정들이 각종 신기한 춤을 선보이며 먹을거리를 준다는 설정으로 여기에 초콜릿-스페인 춤, 커피-아라비아 춤, 차-중국 춤이 등장한다. 발레의 줄거리와는 별개로 유희를 위한 소품들을 모은 디베르티스망의 캐릭터 춤에서 두 번째로 등장하는 것이 ‘커피’라 명기되어 있는 아라비아의 춤이다. 기본적으로 커피의 요정이 아라비아 복장으로 아라비아풍 춤을 추는데, 발레단마다 조금씩 다른 설정으로 등장한다. 조금 빠른 빠르기의 ‘커피’가 추는 아라비아의 춤곡은 그루지야 지방의 자장가 선율을 사용한 것으로, 은은하고도 매혹적인 동시에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약음기를 단 비올라와 첼로가 북소리 같은 리듬을 내면 잉글리시 호른과 클라리넷의 선율이 아련하게 흐른다. 이윽고 바이올린이 멜로디를 연주하며 희미하게 끊어질 듯 곡이 마무리된다.

2막 3장 25곡의 발레를 완성하기 한 달 전 다른 음악회에 급히 내놓을 작품을 만들어야 했던 차이콥스키는 ‘호두까기 인형’ 발레음악에서 1막의 서곡과 행진곡, 2막의 춤곡 6곡을 발췌해 총 8곡으로 모음곡을 만들어 발레 초연보다 먼저 발표해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에 오른 발레 초연은 준비 부족으로 혹평을 받았다.

과테말라 지폐에 그려진 ‘커피 꽃’ 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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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꼽히는 커피 생산국인 과테말라의 지폐 중 200케찰 뒷면을 보면 ‘커피 꽃(La Flor del Café)’의 악보가 눈에 들어온다. 이 곡은 과테말라 출신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게르만 알칸타라가 작곡한 왈츠로, 그의 얼굴은 지폐의 앞면에 새겨 있다. 지폐에는 작곡가 마리아노 발베르테가 작곡한 ‘유적과 달’을 형상화한 모습과, 세바스티안 우르타도가 만든 반음계 마림바도 함께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20세기-뉴욕, 커피 한잔 더 어때요?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뉴요커의 양손에는 항상 무엇인가 들려 있다. 왼손에 든 것이 무엇이든, 변하지 않는 오른손의 그것은 바로 커피! 떼려야 뗄 수 없는 뉴욕과 커피의 첫 만남은 17세기로, 탐험가 존 스미스가 커피에 관한 정보를 북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전했다는 게 통설이다.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커피하우스’라는 명칭은 18세기 무렵에야 통용됐지만, 그전에도 여관과 선술집에선 이미 커피를 판매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다른 대륙과 마찬가지로 북미에서도 커피가 있는 곳에선 사교나 정치 활동이 이뤄지곤 했다.

뉴욕과 커피, 그리고 음악의 인연은 20세기 초반, 미국 팝 음악계의 중심지 틴 팬 앨리(tin pan alley)로 거슬러 올라간다. 맨해튼 5번과 6번 애비뉴 사이 28번가 틴 팬 앨리에 커피가 상륙했을 때, 커피가 얻은 인기는 조지프 마이어의 노래 ‘A Cup of Coffee, a Sandwich and You’가 증명한다. 1926년 앙드레 샤를로트 쇼에서 공연 후 여러 편의 코미디 뮤지컬에 이 노래가 삽입됐다고 하니, 오늘날 뉴욕이 이토록 커피를 사랑하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닌 듯싶다. 마치 믹스커피처럼 ‘커피 한 잔’이 섞인 음악이 한 시대를 풍미하는 유행가로 자리 잡았으니 말이다.

‘You′re The Cream in My Coffee’는 뮤지컬 ‘홀드 에브리싱(Hold Everything)’ 주제곡으로 쓰였는데, 커피를 소재로 한 뮤지컬이 아님에도 연인을 ‘커피’ 속 크림이라고 표현하면서 커피에 대한 애정을 이성을 향한 사랑의 농도와 감미로움에 비견했다.

1932년에 등장한 커피와 관련된 음악은 뉴욕뿐 아니라 미국 전역을 휩쓴다. 바로 어빙 베를린의 ‘Let′s Have Another Cup of Coffee’. 뮤지컬 코미디에서 공개된 이 노래 역시 ‘커피 한 잔’에 미국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으며 뉴욕과 커피의 ‘핫’한 만남을 성사시켰다. ‘Let′s Have Another Cup of Coffee’는 커피를 미국의 국민 음료 반열에 올려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모퉁이를 돌면, 하늘에 무지개가 떠 있어요. 그럼 커피 한잔 더 어때요?”

지금도 뉴욕 어느 카페에선 어빙 베를린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지 않을까. 당신 옆에 그 어느 커피라도 좋다. 무료한 오후, 커피 한잔과 함께 음악의 볼륨을 높여보자.

21세기-‘고급’ 커피를 만드는 클래식 음악


▲ 화백 유사랑의 커피 그림

 

한 통계에 따르면 2012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연간 커피 소비량은 매년 증가해 성인 1인당 484잔으로, 전 세계 커피 소비량의 2.1%에 달하는 수준이라 한다. 영국의 한 조사를 살펴보면 2013년 아시아의 1인당 커피 소비량에서 한국은 2위(1년 평균 2.42kg)를 차지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TV 광고 중에서도 고급 자동차나 백화점, 신사복 광고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접할 수 있었는데, 여기에 커피 광고도 예외는 아니었다. 18세기에 커피하우스를 홍보하기 위한 곡들이 만들어졌듯, 21세기엔 ‘세련된’ ‘귀족적인’ 이미지를 목적으로 커피 광고에 클래식 음악이 활용됐고, 이러한 방법론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잠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커피 CF를 상기시켜보자. 이국적인 배경, 세련된 음악, 최고의 배우(명사)의 삼박자를 가장 탁월하게 갖춘 광고는 타 브랜드보다 단연 ‘맥심’에서 두드러진다. 일찍이 맥심은 1980년대에 명사 시리즈에 성악가 윤치호를 직접 노래 부르게 하면서 ‘해외 기술력’과 ‘고급스러움’을 강조했고, 저변 확대를 위해 당시 30대였던 배우 안성기를 기용해 30년 가까이 맥심을 대표하는 모델로 내세웠다.

이외에 한석규·장동건·심은하·이미연·김정은·고현정·수애·이나영 등 당대 톱스타들이 TV 속에서 커피를 마셨고, 이들 곁으로 팝송이며 다양한 클래식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이 쓰인 맥심 리치아로마를 비롯해 대표 격인 몇 가지 광고를 상기해보자. 장동건과 수애가 눈빛을 교환할 때면, 나나 무스쿠리가 부른 슈베르트의 ‘보리수’가 흘러나왔다.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은 ‘인간극장’으로 스타덤에 오른 후, 안성기와 함께 맥심 아라비카 100 광고에 나와 “눈 뜨면 아라비카를 찾죠”라 말하며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중 ‘바람개비’를 연주했다. 이후 고현정이 나선 CF엔 파가니니 카프리치오 24번이 삽입되어, 완벽함을 추구하는 이미지에 힘을 실어주었다.

자동차에 소나타가 있다면, 커피에는 칸타타가 있다. 2005년 전후에 일어난 원두커피 붐과 함께 등장한 원두커피 브랜드 칸타타는 왠지 바흐의 ‘커피 칸타타’에서 이름을 따왔을 것만 같다. 하지만 소지섭이 춤을 추던 칸타타 TV CF엔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흘렀다.

텔레비전 밖, 이색적인 커피와 음악의 만남도 있다. 홍대앞에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바이올린 공방뿐 아니라 클래식 기타와 베이스, 드럼, 젬베 등의 악기를 체험해보고 음료도 즐길 수 있는 곳도 있다. 그뿐 아니라 성악가 출신 바리스타, 클래식 음악으로 원두를 숙성시키고, 커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까지… 커피와 함께 음악을 접목하는 다양한 방법이 이어지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시선을 끈 이는 커피로 음악가를 그린 유사랑 씨였다. 현재 인천일보 화백이자 CCA 커피비평가협회 문화예술담당 이사직을 맡고 있는 그에게 ‘커피 그림’과의 인연을 잠시 들어보았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냅킨 위에 커피를 휘저은 스틱으로 무엇인가 끄적거렸어요. 순간 이것으로 그림을 그려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후에 커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커피는 다른 천연 안료와 함께 대안 물감으로 쓰인 역사가 있죠.”

만화가인 그는 커피 사랑만큼 음악 사랑도 대단하다. 음악과 미술은 일란성 쌍둥이, 음악과 커피는 샴쌍둥이라고 표현한다. 이명동체(異名同體), 이름만 다를 뿐 하나라는 것. 그는 평소 데이브 브루벡의 ‘Take Five’를 들으며 아메리카노와 함께 커피에 대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곤 한다.

“많은 예술가가 커피로부터 창작의 영감을 받았어요. 그래서인지 예술가와 커피에 관해 전해오는 이야기가 많죠. 이제는 예술가뿐 아니라 모두와 커피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군중 속 고독을 느끼는 현대인에게 커피는 하나의 위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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