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기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2월 1일 12:00 오전

오케스트라 본연의 목소리

바딤 레핀 협연, 데이비드 로버트슨/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10월 3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이번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은 세간에 화제를 뿌렸다. 2011년 아시케나지 지휘로 키신과 미샤 마이스키와 협연한 이후 두 번째 내한이다. 아시케나지에 이어 2014년 새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데이비드 로버트슨의 지휘로 브람스 교향곡 2번과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을 양일에 나눠 연주했다. 무엇보다 윤디와 바딤 레핀을 내세운 화려한 라인업이었다. 때마침 쇼팽 콩쿠르에서 조성진이 1위를 하며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 ‘조성진 열풍’이 불었고, 18세 나이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비상한 윤디의 공연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공연 당일 윤디는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던 중 실수로 잠시 연주를 중단했고, 이 공연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다음 날 바딤 레핀이 협연한 공연은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첫 곡으로 태즈메이니아 태생의 호주 작곡가 피터 스컬소프의 ‘태양의 노래’ 2번을 연주했다. 발리에서 원을 그리며 추는 케착의 리듬을 유럽 정서에 투과한 작품이다. 한 인터뷰에서 로버트슨은 ‘시드니 심포니 악단은 재치 있고 빠르다’고 말했다. 그 면모가 이 곡에서 여실히 느껴졌는데, 단원들은 지휘자 비팅에 맞춰 민첩하게 소리를 뽑아냈다. 무엇보다 타악기 테크니션을 중심으로 현악기와 관악기의 밀집이 탁월했다. 각 파트간의 소리를 중재하며 로버트슨은 위트 있는 감각을 과시했다.

바딤 레핀의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 이어졌다. 도입부부터 바이올린의 솔로가 청아하게 울렸다. 앞으로 디디는 레핀의 발자국 하나하나가 찬연했지만, 느린 부분에서는 속도가 처져 종종 뒤로 빠지는 느낌이었다. 3악장까지 레핀의 음색은 곱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치고 나오는 ‘한 방’이 부족했고, 빠른 부분의 민첩성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시드니 심포니는 레핀의 연주를 단단하게 뒷받침했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시드니 심포니는 스컬소프 ‘태양의 노래’ 2번을 연주할 때부터 단원간의 신뢰가 두터워 보였다. 각 악기군마다 음량 조절이 노련했는데, 빈틈없는 사운드는 시벨리우스에서 고조됐다. 1악장부터 치밀한 현악군, 또렷한 목관군, 장엄한 금관군이 응축돼 안정적으로 흘러갔다. 4악장에선 북구의 대자연이 느껴질 정도로 시벨리우스와 맞닿아 있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 시드니 심포니는 ‘악단’만의 강렬한 사운드를 청중에게 전달했다. 다음 내한부터는 협연자가 아니라, 시드니 심포니의 소리를 부각시켜도 좋을 듯하다. 장혜선

단골손님의 바람

‘아르스 노바’ 시리즈 4
11월 5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아르스 노바’ 공연을 보러 가는 발걸음이 가볍고 즐거운 건 지난 9년여 간 쌓인 기획에 대한 신뢰 때문일 테다. 새로운 소리, 새로운 조합, 새로운 음향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재미나 감동 등 ‘감흥’을 느낄 수 있도록 서울시향은 ‘아르스 노바’ 시리즈를 준비해왔다.

5일 연주된 프로그램 중 아시아 초연작인 유카 티엔수 ‘누스’, 마이클 도허티 ‘시나트라 섀그’, 박정규 ‘생황과 앙상블을 위한 Into…’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핀란드 작곡가 티엔수의 ‘누스’는 클라리넷과 바이올린·비올라·첼로, 피아노 편성이었는데 마치 뛰어난 기량의 현대무용가들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한 무대에서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섯 악기는 서로 다른 리듬으로 불협화음을 빠르게 반복하며 연주하다 어느 지점에서는 하나의 리듬, 또는 하나의 음으로 모여들어 한꺼번에 움직였다. 각 연주자가 한 명씩 일어나 사람의 음성을 더해 각자의 선율을 연주하는 부분은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개별적 움직임과 공동적 움직임이 번갈아 이루어지며 흥미로운 요소를 만들었다. 곡이 연주되는 내내 무대에는 역동성과 생동감이 맴돌았다.

‘시나트라 섀그’는 미국 작곡가 마이클 도허티가 1996년에 작곡한 작품으로 5분 길이의 짧은 곡이다. 제목은 1960년대 미국의 대중문화를 이끌던 배우이자 가수 프랭크·낸시 시나트라 부녀의 이름에서 따왔다. 플루트와 베이스클라리넷, 바이올린과 첼로 그리고 퍼커션이 연주하는 미국의 밴드 사운드는 세종문화회관의 객석을 잠시 동안 라스베이거스의 샌즈 호텔로 옮겨다놓았다. 화려하게 치장된 날카로운 소리, 입체적인 사운드를 즐기기에 연주가 능숙하진 않았지만, 곡에 담긴 직접적 표현 방식 자체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작곡가 박정규의 ‘생황과 앙상블을 위한 Into…’는 제목처럼 생황에 숨을 불어넣는 것을 시작으로, 그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묘사한다. 생황의 몸속으로 들어간 숨은 관악기들의 바람 소리와 현악기들의 트레몰로를 만나 흥미로운 형체로 무대를 둥둥 떠다녔다. 날카롭게 할퀴듯 움직이는 악기들이 급정지할 때마다 잔향들이 모습을 바꾸며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생황 카덴차는 악기의 신비한 음색 외에 생황만이 지니는 고유성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아르스 노바’ 10년. 여전히 구경하는 느낌이 드는 건 ‘아르스 노바’의 여운이 다른 동시대 음악 기획 공연으로 이어지지 않아서일까. 김호경

기타로 떠난 세계 여행

기타리스트 양쉐페이 리사이틀
11월 5일 금호아트홀

어릴 적, 만화 ‘아기공룡둘리’에서 가장 좋아한 캐릭터는 도우너였다. 도우너는 ‘타임코스모스’라는 바이올린 모양의 타임머신으로 친구들에게 시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선사하는 멋쟁이다.

11월 5일 금호아트홀에서 기타리스트 양쉐페이의 리사이틀이 있었다. 중국 베이징 출신으로 베이징중앙음악원과 런던왕립음악원을 거쳐 세계 각국에서 활발하게 연주 활동을 이어가는 그녀의 이번 무대를 보며, 문득 도우너를 떠올렸다. 그녀가 연주하는 기타는 마치 도우너의 타임코스모스처럼 관객을 세계 곳곳으로 안내했다.

첫 출발지는 유럽이었다. 알베니스(스페인)의 ‘붉은 탑’으로 시작해 슈베르트(독일)의 세 가곡과 파가니니(이탈리아) 카프리치오 24번을 연주하며 화려한 테크닉과 충만한 서정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 넘치는 연주로 여행의 시작을 알렸다. 특히 바이올린 못지않게 기타로도 상당한 난곡인 파가니니의 작품에서 양쉐페이는 흔들림 없는 트레몰로와 깔끔한 하모닉스 연주로 비르투오소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1부의 유럽 투어를 마치고, 2부에서 양쉐페이가 청중을 데려간 곳은 그녀의 고국인 중국이었다. 연주한 작품은 중국 민요인 ‘어주창만(漁舟唱晩)’. 본래 13개의 현을 지닌 중국의 악기 고쟁을 위한 곡을 양쉐페이가 기타 버전으로 직접 편곡한 작품이다. 얼마 전 데카 레이블을 통해 발매한 그녀의 신보에도 수록된 곡인데, 음반에서도 독특한 음색과 선율이 인상적이었지만 무대에서 듣는 실연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5음 음계로 이뤄진 첫 프레이즈를 연주하자, 기타는 순식간에 고쟁으로 변모했다. 단순히 고쟁의 음색과 선율의 묘사를 넘어, 기타만이 표현할 수 있는 음색과 트레몰로 등의 적절한 효과를 가미한 놀라운 편곡과 연주였다.

여행의 종착지는 남미. 양쉐페이의 기타는 다시 한 번 음색을 바꿔 뜨거운 정열과 충만한 감성으로 피아졸라와 레오 브로워르 등의 작품을 연주했고, 마지막 곡이 끝나자 청중은 뜨거운 박수로 환호했다. ‘유럽-아시아-남미’로 이어진 이번 연주 여행에서 양쉐페이는 매 곡이 끝날 때마다 다음에 연주할 곡에 대한 소개를 덧붙였다. 기타를 들고 관객과 함께 여행하는 친절한 안내자 같은 모습이 이날의 공연을 한층 가슴에 새기게 했다. 임형준

다채로운 음악 선물

박종훈·이혜정 협연, 서진/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의전당 11시콘서트’
11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예술의전당 11시콘서트. 2004년 9월부터 시작되어 저녁 시간대 활용이 어려운 중년 여성들과 오전 시간이 자유로운 관객에게 예술을 통해 여유 있는 목요일 오전을 선물해온 이 콘서트는 2015년 시즌 11을 맞아 피아니스트 박종훈의 해설로 새로운 매력을 더하고 있다.

겨울 초입에 만난 11월 12일 목요일 11시콘서트는 포레의 따뜻한 감성과 시벨리우스 특유의 북구의 감성이 공존한 무대였다. 특별히 해설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박종훈이 자신이 직접 작곡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1번을 연주해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실 기자에게 오전 11시 공연을 즐긴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취재차 나온 예술의전당의 늦가을은 이날 선곡한 포레와 시벨리우스, 슈베르트의 음악과 무척 잘 어울렸다. 첫 곡인 포레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모음곡’ 중 프렐류드는 현악의 서정적인 테마가 다시 첼로, 바순, 플루트와 만나며 깊은 감정의 폭을 이끌어낸 연주였다.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로 유머를 곁들인 친근한 해설 또한 전체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주었다.

이어진 피아니스트 박종훈의 무대는 명곡을 중심으로 연주되곤 하는 마티네 무대의 성격을 비추어볼 때 큰 모험이었다. 잘 알려진 곡이 아닌 창작곡이 처음 연주된다는 것이 청중에게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지도 내심 궁금했다.

박종훈이 연주한 작품의 부제는 ‘엘리제를 위하여’였다. 부제를 보면 마치 베토벤의 작품을 편곡한 피아노 협주곡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화려하고 드라마틱하며 서정적인 협주곡의 다양한 요소를 두루 갖춘 작품이었다. 그가 연주 전 해설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작품은 멋진 1악장, 아름다운 2악장, 재미있는 3악장의 일반적인 협주곡 공식에 잘 맞게 쓰였다. 피아니스트답게 극적인 피아니즘도 돋보였다.

청중의 반응도 좋았다. 연주자가 직접 작곡한 작품을 실연으로 처음 듣고 있다는 호기심이 그들을 더 집중하게 하는 듯했다. 작품에 대한 냉정한 평가 역시 앞으로도 다양한 무대를 통해 이루어져야겠지만, 자신의 창작품을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음악가로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전반부에 이어 후반부는 북구의 차가운 감성과 슈베르트의 교향곡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1악장의 연주는 역동적인 카덴차의 선율이 인상적인 이혜정의 연주로 들을 수 있었다. 슈베르트의 웅장한 음악성이 돋보인 교향곡 9번 ‘그레이트’의 감동 역시 오전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아름다운 음악 선물이었다. 국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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