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과 팝 음악, 영화음악이 그려내는 신비로운 우주의 모습
지난 9월, 화성에서 물이 발견되어 많은 이의 관심을 모았다. 할리우드 영화 ‘마션’의 국내 개봉이 이어지며 우주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음악가들에게도 우주는 관심의 대상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음악이라는 그릇에 광활한 우주를 담아낸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행성들의 노래
밤하늘의 별을 보며 음악을 떠올린 사람들이 있다. 피타고라스와 그의 추종자들이다. ‘수(數)가 만물의 근원이다’라는 주장 아래 모든 것을 수로 설명하고자 했던 피타고라스는 음악을 지배하는 것 역시 ‘수의 조화’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협화음, 즉 어울리는 두 음의 음정이 정수비에 기초한다는 것을 발견한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그의 이름이 서양음악사의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것은 결코 의외의 일이 아니다.
음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소리 속에서 ‘수’의 비밀을 찾아낸 피타고라스는, 우주의 질서 역시 수의 비율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천구(天球)의 음악’ 이론이다. 우주의 행성과 별들 사이의 거리에도 일정한 비율이 있어서 이들이 움직이면 아름다운 음악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음악은 들리지 않는다. 피타고라스에게는 음악이 들렸던 것일까? 그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에게는 아주 잘 들리는 천구의 음악이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그 소리를 계속 듣고 자랐기 때문이란다. 정말 피타고라스가 천구의 음악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는 그만이 알 수 있겠지만, 우주와 음악에 대한 그의 흥미로운 견해는 중세를 거쳐 바로크 시대까지 오랜 시간 동안 영향을 미쳤다.
중세 초기 철학자 보에티우스는 중세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 널리 사용된 음악 이론서인 ‘음악의 원리’에서 음악을 ‘우주의 음악’ ‘인간의 음악’ ‘악기의 음악’ 등 세 가지로 분류했다. 이 중 우주와 자연의 질서 등에서 발견되는 조화를 말하는 ‘우주의 음악’에서 피타고라스의 ‘천구의 음악’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17세기 초,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1619년 그의 저서 ‘우주의 조화’에서 피타고라스의 ‘천구의 음악’ 개념을 바탕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룬 우주의 모델을 제시했다.
고대 피타고라스로부터 시작된 ‘천구의 음악’에 대한 생각은 현대 작곡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덴마크 작곡가 루에드 랑고르(1893~1952)는 소프라노와 합창, 오케스트라를 위한 ‘천구의 음악’을 작곡했고, 요하나 바이어(1888~1944)와 영국 작곡가 필립 스파크(1951~) 역시 같은 제목의 음악을 작곡했다.
이어지는 장에서 우주를 소재로 한 흥미로운 음악들을 소개한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누가 알겠나, 피타고라스가 들었던 ‘천공의 음악’이 어느 순간 당신의 귀에도 들릴지 모를 일이다.
우주를 품은 클래식 음악
구스타브 홀스트 ‘행성’
우주와 관련된 클래식 음악으로 많은 이가 구스타브 홀스트의 ‘행성’을 떠올릴 것이다. 쇤베르크·스트라빈스키·림스키 코르사코프 등이 유럽에서 선보이던 새로운 작곡 기법을 홀스트는 ‘행성’을 통해 영국에 소개했다. 1918년 런던에서 열린 초연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실험적 기법들을 자신만의 음악 색채와 영국 민요풍의 아름다운 선율로 녹여낸 홀스트의 뛰어난 음악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행성’은 태양계 행성의 이름을 딴 총 7개의 곡으로 구성된다. 현악기의 콜레뇨(활대로 현을 치는 주법)의 도입부가 인상적인 1곡 ‘화성’부터 한때 국내 뉴스의 시그널 음악으로도 사용되어 많은 이에게 친숙한 4곡 ‘목성’,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마지막 곡 ‘해왕성’까지. 뛰어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각 행성의 개성을 묘사한 그의 작품은 우주여행을 하고 있는 듯 신비로운 감각에 빠져들게 한다.
조지 크럼 ‘마크로코스모스’ 중 ‘나선 은하’
‘대우주’라는 뜻의 ‘마크로코스모스’는 미국의 작곡가 조지 크럼(1929~)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피아노 작품이다.
총 네 권으로 구성된 ‘마크로코스모스’에는 30여곡의 소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 1권의 마지막 곡은 ‘나선 은하’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악보 역시 나선 모양인데, 바깥쪽에서 시작하여 점차 안으로 따라 들어간다. 곡의 도입부에서 연주자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건반을 누른 상태에서 피아노 내부의 현을 긁어 연주하는데, 적막 속에서 신비롭게 울리는 독특한 음향이 우주의 고요함을 연상시킨다. 곡의 첫머리에 적어 놓은 ‘광활한, 고독한, 영원한’이라는 지시어에서도 조지 크럼이 표현하고자 한 우주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칼 블롬달 오페라 ‘아니아라’
핵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지구를 떠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화성으로 향한 난민들. 하지만 우주선은 궤도를 이탈하게 되고, 그 안에 갇힌 승객들은 결국 남은 삶을 우주 속에서 보낼 수밖에 없게 된다.
스웨덴 작곡가 칼 블롬달의 오페라 ‘아니아라’의 줄거리는 마치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의 내용 같다. 2막으로 구성된 ‘아니아라’는 1959년 5월 31일 스톡홀름에서 초연되었으며, 대본은 해리 마틴슨의 동명 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음렬 음악을 기초로, 재즈와 전자음악 등 광범위한 음악적 실험으로 광활한 우주의 신비로움과 그 속에 갇힌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데이비드 보위 ‘Space Oddity’(1969)
지난 2013년, 한 편의 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국제우주정거장의 선장 크리스 해드필드가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찍은 뮤직비디오다. 우주에서 촬영한 최초의 뮤직비디오에서 크리스 해드필드가 부른 노래가 바로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다.
1969년 발표된 이 곡은 데이비드 보위가 스탠리 큐브릭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노래다. 가사는 톰이라는 가상의 우주비행사가 관제탑과 교신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우주 속에서 저 멀리 빛나는 지구를 바라보며 ‘지구는 푸르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군요’라고 읊조리던 톰은 관제탑과의 교신을 끊고 우주의 미아가 된다. 광활한 우주와 우주비행사의 고독을 아름다운 멜로디로 풀어낸 노래로, 지금까지도 많은 이에게 사랑받고 있다.
엘튼 존 ‘Rocket Man’(1972)
‘Space Oddity’가 발표된 지 3년 후, ‘우주비행사’라는 동일한 소재로 또 하나 노래가 탄생한다. ‘팝의 전설’이라 불리는 엘튼 존의 ‘Rocket Man’이다.
‘Space Oddity’와 마찬가지로 이 곡 역시 우주비행사가 주인공이다. ‘Rocket Man’의 주인공에게 우주여행은 과학의 진보가 이뤄낸 위대한 업적이나 모두가 부러워하는 영웅적인 행위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일상’에 가깝다.
‘아내는 어젯밤 내 짐을 꾸렸지. 내일 아침 아홉 시가 되면 나는 하늘을 나는 연처럼 높이 날아가 있을 거야.’
피아노를 주축으로 어쿠스틱 기타와 베이스 기타, 드럼이 이끌어가는 지극히 ‘지구적인’ 음악에 신시사이저가 잠깐씩 등장했다 사라지며 감칠맛 나는 ‘우주적인’ 음향을 만들어낸다. 어쩔 수 없이 가족을 떠나 우주로 향했지만 여전히 그리움은 지구를 향해 있는 우주비행사의 마음을 표현한 듯하다.
유럽 ‘The Final Countdown’ (1986)
‘The Final Countdown’은 스웨덴의 헤비메탈 밴드 유럽의 대표적인 히트곡으로, 1986년 발표 후 전 세계 25개국에서 차트 1위에 오르며 폭발적 인기를 누린 작품이다. 곡이 발표되기 얼마 전인 1986년 1월에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폭발 사고가 있었기에 챌린저호에 대한 추모곡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이는 잘못된 사실이다. 도입부의 신시사이저 리프를 비롯한 핵심적인 멜로디가 1981~82년경에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이 곡 역시 우주로 떠나는 우주비행사를 소재로 하여 ‘Space Oddity’와 ‘Rocket Man’의 계보를 잇는다. 데이비드 보위가 우주비행사의 고독을, 엘튼 존이 지구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그렸다면 유럽은 우주로 떠나는 긴장과 두려움을 묘사한다.
‘우리들이 지구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그 누가 말할 수 있을까? … 이제 마지막 카운트다운이야’
우주를 소재로 한 영화 OST
1902년, 최초의 우주 영화 ‘달세계 여행’이 개봉됐다. 이 영화는 당시 머릿속으로만 존재하던 우주의 모습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무성영화였고, 고정된 세트를 사용했기에 우주의 신비함을 과장된 몸동작과 표정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영화는 관객이 마치 우주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정교하게 진화했다. 이에 실감을 더하는 것이 바로 영화음악이다. 2000년 이후 개봉한 우주 영화 중 OST의 개성이 잘 드러난 영화 다섯 편을 선정하여 소개한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2005)
어느 날 지구가 사라진다면? 주인공 아서는 지구가 폭발하기 직전 친구 포드에 의해 구출되는데, 알고 보니 그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집필하던 우주인이었다. 지구가 사라지자 갈 곳이 없어진 둘은 우주를 떠도는 히치하이커가 된다.
OST는 이들이 우주를 떠돌며 마주친 황당한 사건과 기상천외한 캐릭터들을 통통 튀는 음악으로 표현한다. 가벼운 분위기와 맑은 음색을 지닌 유쾌한 리듬의 곡이 주를 이룬다. 메인 테마인 ‘Journey of the Sorcerer’는 지구가 폭발한 후의 텅 빈 우주를 채우는 음악이다. 1978년 원작이 BBC 라디오 드라마로 방송될 당시, 작곡가 더글라스 애덤스는 독특한 공상과학적 음향을 위해 기타와 유사한 미국 민속악기 벤조를 사용했다. 원곡은 미국의 록 그룹 이글스가 연주했으며, 영화에서는 1분 20초로 짧게 변환한 버전이 삽입됐다. 기타보다 상대적으로 공명이 적은 벤조의 음색이 방랑자의 분위기를 더한다. 아서가 행성을 만드는 공장에 방문했을 때 등장하는 ‘Planet Factory Floor’는 피콜로·하프·글로켄슈필·차임벨 등을 조합해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월-E’(2008)
디즈니·픽사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월-E’는 영상은 물론 음악도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연출했다. 월-E가 우주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장면에서 ‘The Axiom’이 흐르는데, 플루트 솔로에 이은 현악기의 선율과 첼레스타의 음향은 주인공의 순수함을 돋보이게 한다. ‘Foreign Container’는 획일화된 인간과 기계 문명을 반복되는 전자음향으로 표현한다. 바쁘게 움직이는 음은 긴박감을 주며, 동시에 여러 전자 음향을 섞어 상상 속 인공별을 묘사한다.
‘그래비티’(2013)
‘그래비티’ OST에서는 ‘소음’과 ‘정적’의 대비가 두드러진다. 이는 특히 영화 도입에 등장하는 ‘Above Earth’에서 잘 드러나는데, 정돈되지 않은 기계음이 소음으로 느껴질 만큼 커지다 일시에 조용해진다. 정적 후 화면을 가득 채우는 커다랗고 푸른 지구는, 우주에 비해 인간이 얼마나 작고 나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한다. 음악감독 스티븐 프라이스는 영화 전반에 여러 가지 전자 음향을 겹쳐 사용했다. 인공위성의 파편으로 위급한 상황이 전개될 때 등장하는 ‘Debris’와 ‘The Void’는 급박한 다이내믹의 변화로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두 곡 모두 크레셴도가 이어지다 갑작스럽게 마무리되는데, 이는 정적을 더욱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인터스텔라’(2014)
오르간의 중후한 저음을 바탕으로 반복되는 선율이 몽환적이면서도 압도적인 우주를 그려낸다. ‘Stay’는 영화에서 우주의 배경이 처음으로 펼쳐질 때 삽입된 곡으로, 우주선에서 넋을 잃고 지구를 바라보는 등장인물들의 감동을 묘사한다. 오르간의 저음부에서 장조와 단조를 오가며 반복되는 음형이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은 한스 짐머의 음악 세계를 보여준다. ‘Stay’의 주제 선율은 또다른 삽입곡 ‘Message from Home’에서 피아노 선율로 변주된다. 우주선이 선명하고 거대한 토성 앞을 한낱 ‘점’처럼 지날 때, 조용한 가운데 피아노가 ‘점’을 찍듯 주제 선율을 연주한다.
‘마션’(2015)
‘마션’의 음악은 황량하고 드넓은 화성의 모습을 담는다. 주제곡 ‘Mars’에서는 오케스트라 반주 위에 공간감 가득한 전자기타의 선율이 한 음씩 느리게 연주된다. 화성의 정경을 묘사한 트랙에는 모두 이 테마가 쓰인다. ‘Crossing Mars’에서는 도입부에서 전자 기타로 연주하던 테마를 호른과 오케스트라가 이어 받으며, ‘Leaving Mars’에서 이 테마는 피아노와 신시사이저를 비롯한 건반악기로 변주된다. 세 곡에서 반복되는 테마는 끊임없이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화성과 그 가운데 홀로 앉은 주인공의 쓸쓸함을 묘사한다.
글 임형준 기자(byejun@gaeksuk.com), 전윤혜 인턴 기자(editor2@gaeks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