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부다페스트 워멕스(WOMEX)

사람 사이로 흐르는, 음악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2월 1일 12:00 오전

유럽 최대 규모 음악 박람회이자, 유네스코가 선정한 ‘꼭 봐야 할 음악 행사’인 워멕스에서 마주친 다양한 풍경


▲ 공식 쇼케이스 무대에 오른 바라지 ©Jacob Crawfurd

유럽 최대 규모 음악 박람회이자, 유네스코가 선정한 ‘꼭 봐야 할 음악 행사’인 워멕스에서 마주친 다양한 풍경

지난 10월 21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도나우 강과 공기는 5년 전 이곳에서 열린 유럽의 5대 메이저 페스티벌인 시게트 페스티벌(Sziget Festival) 때와는 무척 다른 느낌이었다. 계절의 다름을 차치하고라도 다시 찾는 국가나 도시의 감흥은 언제나 다르게 마련인데, 10월의 싸한 공기로 인해 도시의 분위기는 차분히 내려앉아 있었다.

올해로 워멕스(WOMEX, World Music Expo)에 참가한 지 9년이 되었다. 2007년 스페인 세비야 이후 매년 개근한 셈인데, 매년 워멕스 트레이드 페어(trade fair)의 문이 열리는 시간이면 언제나 기분 좋은 설렘과 흥분이 찾아온다.

올해 21회째 맞이한 워멕스는 음악이 소개되고 거래되고 정보를 소통하는 곳이다. 하지만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모든 결정의 최종 심급이기에 다들 시간과 돈을 투자해 매년 이곳에 모여든다. 다른 종류의 트레이드 페어나 엑스포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온라인·디지털 시대에 살면서 굳이 직접 만나 침을 튀겨가면서 이야기를 하고 악수와 포옹을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이메일로 자료를 보내고 스카이프로 통화를 하고 계약을 하면 그만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서로가 직접 만나고 난 후의 과정으로 더 적절하다. 필자의 경험상 확실히 더욱 그렇다. 워멕스 홈페이지를 통해 누가, 어떤 기관과 회사가 참가하는지 어느 팀이 쇼케이스 공연을 하는지 정보들을 모두 알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서로 연락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그저 연락이지, 소통이 아니다.

결국 소통이 워멕스의 존재 이유다. 쇼케이스를 같이 보면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평가하며 정보를 교환하면서 서로의 친구들을 소개해주고, 새로운 이들과 자연스레 친구가 되는 과정은 2,800명이 모이는 워멕스가 가장 광범위하게 이뤄진다.

최근 수년간 한국을 비롯해 스페인·프랑스·호주·인도·중국·모로코·스코틀랜드·브라질·콜롬비아·체코·말레이시아·뉴질랜드 등 많은 나라에서 지역 음악 마켓 또는 박람회가 생겨났다. 필자는 이 모든 지역 마켓들에 참가하면서 많은 컨퍼런스와 스피드 미팅 등을 통해 사람들을 만났고 개최지를 포함해 해당 권역을 대표하는 다양한 쇼케이스를 목격했다. 이것은 워멕스와는 또 다른 만남과 소통의 기회를 주는데, 소규모 행사가 가진 장점인 상호 간 친밀감과 소통의 깊이감에서 비롯된다. 더불어 그 나라와 권역의 문화와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전체에 대한 통찰과 함께 다양성에 대한 이해라는 관점에서, 세계 음악 산업의 바다에 뛰어들기 원하는 뮤지션, 기획자, 공공기관과 단체들은 워멕스 같은 잘 알려진 국제 행사뿐 아니라 위에서 나열한 타 지역 음악 마켓들도 반드시 참가해보길 바란다. 더불어 미뎀(MIDEM) 같은 모든 장르의 음악을 다루는 종합선물 세트 같은 행사도 좋지만, 워멕스나 재즈 어헤드(Jazz Ahead), 클래시컬 넥스트(Classical:NEXT) 같은 장르 집중적인 박람회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덧붙여본다.


▲ 헝가리 집시 음악과 민속 음악으로 꾸며진 오프닝 무대

월드뮤직과 전통음악에 담긴 가치를 위하여

올해 워멕스는 1994년 워멕스 본사가 위치한 베를린 행사 이후 처음으로 동유럽 지역인 부다페스트에서 열린지라 그 어느 때보다 동유럽 국가들의 참여가 눈에 띄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예술경영지원센터 같은 자국 음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국가관 부스가 활동 영역이나 숫자 면에서 매우 활발한 것이 최근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음악을 팔고자 하는 에이전시나 음반사, 쇼케이스에 오른 팀들의 홍보 부스가 꽤 많은 수를 차지했지만 갈수록 국가관이 늘어나는 중이고, 이들의 규모나 쓰임새도 자국의 음악과 문화를 알리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변화의 양상은 월드뮤직과 전통음악이 상징하고 반영하는 문화적 가치와 함의가 더 커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2007년 이후 매년 워멕스에 부스를 내놓아 우리나라 전통 음악을 해외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는 동시에 한국 음악가들의 가장 든든한 지원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동안 워멕스 공식 쇼케이스에 선정된 들소리·거문고 팩토리·잠비나이·숨·노름마치·바라지의 공연을 지원하고, 코펜하겐 워멕스에서 한국 특집으로 진행한 오프닝 콘서트까지 헤아려보면 어느 국가 기관보다 정성을 다했고 큰 성과를 보여주었다.

필자는 그간 월드뮤직 페스티벌과 뮤직 마켓을 만들고 운영하면서 섭외와 초청을 위해 수십 개국의 문화부 및 기관의 지원 체계와 그들이 일처리 방식을 직접 경험했다. 우리나라 문화부의 정책과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 방식 및 태도는 여러 해외 인사들과 뮤지션들까지 모두 엄지를 들만큼 참으로 모범적이다.

덧붙여 현재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한국 음악 해외 연계 진출 지원 프로그램인 센터 스테이지 코리아의 지원 대상 국가 및 권역을 확대하는 동시에, 종합 공연예술마켓인 서울아트마켓(PAMS)의 음악 쇼케이스 프로그램인 저니 투 코리안 뮤직(Journey to Korean Music)을 선택해 집중한다면 한국 음악의 해외 진출과 상호 교류의 선순환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해외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장르가 음악이라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워멕스 공식 쇼케이스에는 바라지가 선정되었다. 1,500명을 수용하는 메인 공연장에서 열린 바라지의 공연은 많은 이들의 기대만큼 흠 잡을 것 없이 충분히 좋았다. 다만 한국 음악을 잘 아는 몇몇 해외 인사들은 “바라지의 음악이 한국 전통음악의 다양한 양상을 들려주고 보여준, 웰메이드 음악이지만 대단히 지적이고 치밀하게 계산된 구성과 편성에서 오는 완벽함이 오히려 음악이 주는 원초적 감흥을 방해한 것은 아닌가”라는 말을 건넸다. 그들의 이야기는 필자의 머릿속을 내내 맴돌았다. 이는 비단 바라지만의 ‘함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악 명문가 출신이거나 명인을 사사하거나 엘리트 코스를 통과한 많은 국악인이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해외 시장을 겨냥한 무대 구성과 곡 편성 면에서, 해외 관객과 프로그래머가 우리 음악을 어떻게 듣고 볼 것인지 생각하는 자기검열에서 부자연스러움이 발생한다면, 이는 과감히 버려야 할 부분일 것이다. 음악가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악과 무대를 펼치면 된다. 무대에 몰입하며 자신들의 연주를 즐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로소 관객들의 감흥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최근 워멕스의 오프닝은 거의 개최국의 대표적 뮤지션들이 세 파트로 나누어 무대를 구성하는데, 올해는 역시 헝가리답게 ‘Gypsy Heartbeat’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워 헝가리 민속음악과 집시 음악 무대를 꾸몄다. 오프닝 공연 전, 너무나 당연한 듯 헝가리 민속음악의 전설로 불리는 그룹 무지카시의 축하 무대가 펼쳐졌는데, 필자가 감독을 맡았던 페스티벌에도 초청한 바 있는 세 명의 거장을 이곳에서 다시 만나는 감회가 남달랐다. 이날 세 파트로 구성된 밴드는 헝가리 집시 음악이 가진 특유의 서정과 비트를 더할 나위 없이 잘 전달해주었다.

끝으로 워멕스의 꽃인 공식 쇼케이스에서 필자의 눈에 들어 온 팀들은 다음과 같다. 펠라 쿠티를 잇는, 새로운 세대의 아프로 비트를 선보인 패트 토마스&콰시부 아레아 밴드(가나), 아랍과 지중해권 고음악과 전통음악의 진수를 들려준 타레크 압달라&아델 샴스 엘딘(이집트·프랑스), 프랑스 코르시카와 이탈리아 사르데냐의 폴리포니와는 또 다른 남성미 가득한 무반주 중창을 들려준 유럽의 변방 조지아에서 온 이베리 초이르, 재난을 딛고 일어선 아이티인들의 힘과 카리브 해의 경쾌함을 담은 추크 브와 리베테, 그리고 다수의 평가대로 베스트 5에 포함할 수 있는 한국의 바라지가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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