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기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7월 1일 12:00 오전

우아한 첼로

박고운 첼로 독주회
6월 8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초여름밤 첼로의 우아한 선율에 빠질 수 있던 무대, 박고운 첼로 독주회는 베토벤으로 시작했다. 주로 피아노 작품을 많이 작곡했던 베토벤이 첼로라는 악기를 향한 애정을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의 작품인 베토벤 첼로 소나타 2번은 여느 작품과는 다르게 1악장이 아다지오로 잔잔히 흐른다. 소스테누토와 칸타빌레의 풍부한 선율이 우아한 첼로 음색으로 표현되며 박고운은 베토벤의 서정을 그려갔다. 완벽한 구조로 작품을 작곡한 베토벤 첼로 소나타를 박고운은 깊이 있는 해석으로 자신만의 섬세한 음악성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냈고 베토벤 특유의 완벽한 구조의 아름다움이 빛난 연주였다.

이어진 파야의 ‘스페인 민요 모음곡’은 다섯 곡으로 이루어졌는데, 원곡이 성악곡인 만큼 신비로우면서도 민속적 색채가 두드러진 작품이다. 각 곡마다의 스토리를 박고운만의 해석과 연주로 하나의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어릴 적 어머니가 불러주던 자장가, 헤어진 연인에 대한 사랑의 아픔을 담은 로망스, 사랑과 이별, 환희와 비통함이 어우러진 이 곡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음악으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마지막 곡인 브람스 첼로 소나타 2번 역시 첼로 작품이자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곡이다. 박고운은 고전적인 형식 위에 낭만적 요소를 자연스럽게 융합해 브람스 음악의 깊이를 담아냈다. 특히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과 곡 전반에 흐르는 강하고 파워 넘치는 그녀의 음악성은 앞으로 전개될 박고운의 음악 세계를 기대하게 했다. 이날 함께 무대에서 호흡을 맞춘 피아니스트 박진우는 올림푸스앙상블 아티스트로 박고운과 자연스러운 앙상블 조화를 이뤄냈다. 특히 베토벤 첼로 소나타에서 들려준 피아노와 첼로의 긴밀한 호흡은 적절한 긴장과 이완을 주고 받으며 이날 무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날 무대는 실내악 주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박고운이 솔리스트로서도 자신의 정체성과 음악세계를 분명히 드러낸 시간이었다. 연주가 끝난 공연장 밖은 한낮의 열기가 누그러지고 시원한 초여름 바람이 불었다. 달콤하고 아름다운, 때로는 상실감이 묻어났던 그녀의 슬픈 첼로 선율이 마음을 스치고 사라져 갔다. 어느새 새로운 계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국지연

달콤하게, 그리고 고독하게

‘더욱 달콤하게, 춤을’
5월 20~29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극장1

살며시 열린 문틈 사이로 흥겨운 리듬의 토속적 선율이 흘러나온다. 마치 거대한 암실처럼 빛 하나 샐 틈이 없는 대극장 안에는 8개의 스크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마치 죽음의 골짜기인 양 굽이굽이 연결된 스크린 위로 거친 흑백 행렬이 이어진다.

‘더욱 달콤하게, 춤을(More Sweetly Play The Dance)’은 현재 남아공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그림, 영화, 연극, 오페라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이름을 알려온 윌리엄 켄트리지의 최신 영상 전시작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2015/2016 시즌 ‘아워 마스터’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으로 켄트리지의 첫 오페라 연출작 ‘율리시즈의 귀환’(1998)과 함께 선보였다. 목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2015년 암스테르담에서 처음 선보인 ‘더욱 달콤하게, 춤을’에는 1990년대 초 남아공 흑인 차별 정책과 폭력을 소재로 한 드로잉 애니메이션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켄트리지의 작품은 아프리카 임마누엘 어셈블리 브라스 밴드의 연주를 배경음악으로, 스크린 속 행렬에도 브라스 밴드가 선두에 섰다. 이후 휘청대는 걸음으로 걸어가는 사제의 무리, 링거에 의지해 걸어가는 환자들, 일장 연설을 내뿜는 선동가들, 흥겹게 춤추는 해골들, 고대 석상과 광부의 두상을 흔들며 춤과 노래를 피워 올리는 행렬은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춤’인 동시에 ‘죽음으로 향하는 카니발’이다. 내가 무리를 지켜보는 것인지, 혹 저들이 나를 구경하는 것은 아닌지 싶은 생각이 들 무렵, 길고 긴 행렬은 토슈즈에 기관총을 든 무용수의 춤과 함께 고독한 선율 속에 끝이 난다.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 동시에 죽음과 맞닿은 삶. 달콤하게, 하지만 고독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역설. 삶과 죽음을 동시에 껴안은 거장의 시선은 예술적인 동시에 저항적이었다. 김선영

진정한 감동은

가무극 ‘국경의 남쪽’
5월 31일~6월 12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요즘 뮤지컬은 감성이 없다. 참 꼰대 같은 말이지만, 정말 그렇다. 가창력을 과시하는 부담스러운 넘버들, 현실성 떨어지는 등장인물 간의 극적 대립 스토리로 자극을 주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기획사들은 유명 연예인 캐스팅, 전략적 홍보로 관객을 유혹한다. 공연을 보고 나면 할 말은 참 많은데, 마음에 남는 건 별로 없다.

서울예술단의 ‘국경의 남쪽’은 이와 반대인 작품이다. 자극적인 요소는 없어도, 긴 여운을 주었다.

스토리는 안판석 감독, 차승원 주연의 동명 영화(2006)와 크게 다르지 않다. 평양 만수단예술단의 호른주자인 선호는 갑작스레 탈북을 하게 되고, 결혼을 약속한 연화를 두고 온 현실에 괴로워한다. 상실감에 젖은 선호는 자신을 위로해주는 경주에게 마음을 의지하며 연화를 잊고 살아가지만, 오직 선호를 만나기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찾아온 연화와 마주한다.

무엇보다 음악이 훌륭했다. 작곡가 이나오는 뮤지컬 ‘콩칠팔새삼륙’에서 보여주었던 클래식하면서도 톡톡 튀는, 개성 있는 음악을 들려줬다.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은 극의 감성을 안정적으로 끌어올렸고, 뻔하지 않은 전개로 흥미를 더했다.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와 흐름을 같이한 점이 좋았다. 어색한 팝 스타일이나 급작스러운 애드리브를 넣는 대신 ‘나는 여기, 너는 거기’ 등의 따뜻한 멜로디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무대미술 중에는 분수를 활용한 것이 눈에 띄었다. 위로 솟구치는 분수는 선호와 연희의 로맨스를 부각했고, 때때로 메마른 눈물을 상징하거나 건조한 서울의 풍경을 그려내기도 했다.

다소 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선호가 중개인에게 사기를 당하는 장면과 선호·경주 가족이 모란봉식당 개업식에서 ‘반갑습니다’를 부르는 장면이다. 두 장면 모두 지나치게 길고 어수선했다. 재공연에서는 압축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등장인물 가운데 악인은 없었다. 모두가 아팠고, 모두가 웃었다. ‘호른 혼자서는 연주할 수 없디요. 아름다운 음악이 될라믄 우린 꼭 함께 있어야만 합니다’라는 선호의 대사가 잔잔한 감동을 전했다.

이런 뮤지컬이 많아지면 좋겠다. 가슴에 추억처럼 물드는 작품 말이다. 김호경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