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현장 취재

다채로운 빛깔, 흑백 건반을 물들이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7월 1일 12:00 오전

뜨거움으로 가득했던 3일간의 결선 현장 스케치 및 결선에 진출한 한국인 3인, 그리고 심사위원 김대진과의 인터뷰

벨기에의 문화적 긍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가 5월 2~28일 브뤼셀에서 열렸다.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 폴란드 쇼팽 콩쿠르와 함께 클래식 음악계의 3대 콩쿠르로 불리는 이 경연은 바이올린·피아노·성악 부문으로 나뉘어 매년 번갈아 개최된다. 올해의 경쟁 부문은 피아노. 5월 23~25일 열리는 결선 취재차 브뤼셀로 향했다.


▲ 4위를 수상한 한지호. 마린 앨솝/벨기에 내셔널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협연을 끝낸 직후의 모습

올해는 한국인 심사위원이 두 명(김대진·백건우)이나 위촉된 점이 이채로웠다. 23개국에서 참여한 76명의 후보 중 한국인은 21명으로 최다 후보 배출국인 반면, 6위 안에 든 연주자는 한지호(4위)뿐이다. 5월 28일 발표된 팔마레(수상자 명단)를 보면 1위는 많은 이의 예상처럼 루카스 본드라체크, 2위는 미국의 헨리 크레이머, 3위 알렉산더 베이어, 4위 한지호, 5위 알리오샤 유리니크, 6위는 알베르토 페로에게 돌아갔다. 반대 여부가 없는 팔마레였으나, 루카스 본드라체크와 함께 우승 후보로 지목된 드미트리 시시킨이 6위 안에 들지 못한 점을 들어 ‘예측 못한 팔마레’였다는 반응도 있었다.

올해도 마린 앨솝/벨기에 내셔널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았다. 현대음악 지정곡은 클로드 르두의 ‘나비의 꿈’이었다. 클로드 르두는 세계 각국의 음악적·문화적 다양성을 포착해 독특한 감성을 표현하는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나비의 꿈’은 장자의 호접지몽 사상을 바탕으로 동양적 이미지와 드뷔시를 연상케 하는 인상주의적 감성이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1위를 수상한 루카스 본드라체크의 연주는 창의적이고 누구나 반할 만큼 재능과 독보적인 해석, 그리고 쇼맨십으로 가득했다. 나지막하게 피아노 의자에 앉아 곰처럼 몸을 웅크린 채 입을 벌리거나 혀를 내밀며 얼굴을 건반 가까이 놓고 연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올해 29세인 그는 이미 화려한 국제적 커리어를 누리는 중이다. 그의 ‘나비의 꿈’은 강하게 제시된 사운드와 함께 악보에 충실하면서도 창의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자유곡인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에서는 1악장에서 온몸으로 연주한 표현력, 재즈적이었던 인터메조 패시지 그리고 각양각색으로 표출한 음색의 유희와 파격적인 힘의 매력으로 기립 박수를 자아냈다.

5위에 오른 알리오샤 유리니크는 정직하고 객관적이며 타건이 강조된 음향으로 ‘나비의 꿈’을 연주했다. 쇼팽 협주곡 1번의 경우 진주가 구르듯 영롱한 프레이징과 장식음 그리고 감칠맛 나는 루바토 처리 등으로 일반적인 쇼팽 해석에 비해 무척 가볍고도 세련된 연주였다. 6위를 한 알베르토 페로는 올해 20세로 이번 콩쿠르의 최연소 연주자였다. 그는 ‘나비의 꿈’을 악보 없이 연주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입상하지 못한 연주자 중 기대를 모았던 드미트리 시시킨은 명석하면서도 수수께끼에 찬 개성의 소유자로 묘한 카리스마를 연출했으나, 순위에 들지 못해 아연함을 자아냈다. 그는 차이콥스키 협주곡 1번을 그다지 빠르지 않은 박자로 차근차근 연주해나갔고, “넘치는 열정이나 낭만적인 감성이 지나친 컨트롤 아래 증발하다시피 했다”는 평을 받았다. 올해 25세인 일본 연주자 오카다 카나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에 도전했다. 프랑크 브레일리의 제자로 파리에서 수학한 그녀는 이미 3년 전에도 이 콩쿠르에 출전한 바 있고, 이번 결선 후에도 대단히 만족스러워했다. ‘라 리브르’지는 ‘표정적’ ‘해방된’이란 두 수식어로 그녀의 퍼포먼스를 표현했다.


▲ 1위 수상자 루카스 본드라체크의 ‘나비의 꿈’ 연주 장면

김윤지, 테크닉과 자신감의 결합

5월 23일, 결선 첫날의 첫 연주자는 김윤지였다. 올해 27세의 그녀는 붉은 드레스와 바짝 묶은 헤어스타일로 등장했다. 지정곡인 ‘나비의 꿈’은 찰랑거리는 나비의 날갯짓을 연상케 하는 고운 음색과 핑거링이 인상적이었다. 균일한 아르페지오, 오케스트라와의 호흡도 일품이었다. 예선부터 어떤 레퍼토리도 뛰어난 테크닉과 자신감으로 완주한 그녀는, 이 작품에서도 사색적이고 시적인 이미지를 연출했다. ‘라 리브르’지는 그녀의 연주에 대해 “김윤지, 나비의 꿈을 창조하다”라며 호평했다.

자유곡으로 선택한 작품은 리스트 협주곡 1번. 그녀는 1악장에서부터 탄력 넘치는 유연한 손목을 통해 무시무시한 옥타브를 한 번에 공략했고, 다소 실수가 보인 패시지에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흐름을 이어갔다. 2악장은 명료한 음색과 풍부한 정서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나무 조각 같은 건조함이 아쉬웠다. 3악장은 환상적인 트릴과 힘차게 몰아치는 하강 옥타브로 마감했다. 그날 연주를 지켜본 피아니스트 김다솔은 “듣는 이 또한 숨 막히는 순간이었다”며 그녀의 압도적인 연주를 표현했다.

다음 날 만난 그녀는 일단 결선 무대가 끝났다는 점과 큰 무대에서 많은 관객 앞에서 연주 했다는 것에 매우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첫 후보로서 어려움은 첫 번째로 연주한 점이 아니라, 샤펠에서 다른 후보들이 도착하기 전에 혼자 ‘나비의 꿈’ 악보를 익혀야 했던 점이었어요. 곡의 주제는 좋았지만 악보가 너무 복잡해 일주일 안에 곡을 만들어내야 했던 점이 힘들었죠. 작곡가가 작품에 관해 직접 설명하고자 샤펠에 왔는데, 피아니스틱한 차원에서 도움을 준 것은 아니어서 결국 스스로 고민하고 헤쳐나가야 했죠.”

결선에서 그녀는 리스트 협주곡 1번을 선택했다. 리스트의 작품을 콩쿠르에서 연주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 곡은 그간 몇 차례 연주 경험이 있어서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는 곡이었습니다. 지정곡에 시간을 더 할애하기 위해 선택했죠. 어쩌면 테크닉을 자랑하고자 연주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치면 칠수록 신이 나고 다양한 표정을 지닌 이 곡을 제가 정말로 좋아한다는 점이 선택의 가장 큰 이유였어요.”

공연 후 무대 뒤로 그녀를 만나기 위해 김다솔이 찾아왔다. 그들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힘차게 껴안았다.

“정말 친한 친구예요. 하노버 유학 시절 옆집에 살아서 매일 보는 사이였죠. 여기까지 다솔이가 응원하러 올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들의 웃는 모습을 보며 사랑보다 더 뜨거운 것은 영원한 우정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형민, 고통을 딛고 일어선 감동

5월 24일에는 서형민의 연주가 있었다. ‘나비의 꿈’은 오케스트라와의 뛰어난 호흡으로 리듬의 디테일에 충실한 이국적인 음색이 돋보였다. 자유곡은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2번이었다. ‘라 리브르’지는 그가 “엄청난 잠재력으로 이 무시무시한 협주곡의 풍부한 음향과 살아 숨 쉬는 멜로디 라인을 그려냈다”고 평했다. 이날 콩쿠르를 경쟁의 현장이 아닌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명상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서형민과의 인터뷰에서 그만의 세계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지난 한 달이 유독 길게 느껴졌습니다. 연습도 하루 7~8시간씩 해야 했고, 특히 지난주 샤펠에 체류할 때는 휴대폰 사용도 금지돼 답답했죠.”

서형민은 지난해 병을 앓아 손가락에 염증이 생기고 손톱이 빠져 6개월 동안 피아노를 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올 2월이 돼서야 콩쿠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선까지 온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동안 연주를 못했기 때문에 이번 무대는 콩쿠르, 즉 ‘경쟁’이라는 생각보다는 무대에서 연주를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그래서 평소 협연해보고 싶었던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2번을 연주한 것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이 곡을 선택한 이유는 프로코피예프가 그의 친구인 막시밀리안 슈미토프의 자살에 큰 충격을 받고 그에게 헌정한 작품이기 때문이에요. 지원서 제출 후 몸이 안 좋아 6개월 동안 연주뿐 아니라 거의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였는데, 그때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이 작품에 마음이 끌렸죠.” ‘

나비의 꿈’에 대해 그는 “12명 모두에게 스트레스를 준 작품”이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곡을 연주하기 시작하자마자 느낀 건, 마치 나비의 날개가 윙윙거리는 것 같지만 첫 카덴차로 향하면서 매우 서정적으로 변한다는 점이었어요. 작곡가가 악보에 쓴 것은 장자의 나비의 꿈 이야기죠. 동양인으로서 현실과 꿈을 오가는 이 이야기에 이미 익숙했던 점이 연주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다니엘 바렌보임, 그리고리 소콜로프를 좋아한다는 서형민은, 앞으로 음악을 연주할 수만 있다면 솔리스트로든 교편을 잡든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하고 싶다고 겸손하게 밝혔다.


▲ 마틸다 여왕과 12명의 결선 진출자들. 왼쪽에서부터 두 번째 김윤지와 다섯 번째 한지호,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서형민

한지호, 거대한 감성의 소유자

5월 25일은 한지호의 연주였다. 전날 알렉산더 베이어에 이어 두 번째로 기립 박수를 받은 그의 퍼포먼스에 ‘라 리브르’지는 “거대한 감성”, ‘르 스와르’지는 “스스로 일어선 건장한 후보”라고 평했다. 또한 “지정곡을 가장 잘 연주한 후보”라는 평을 받게 한 그의 ‘나비의 꿈’은 특히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이 돋보였다. 한지호는 꿈과 현실 간의 모호함을 몽상적이고 뜨거운 비르투오시티를 통해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자유곡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은 거대한 그의 손처럼 큰 시각에서 청중의 숨을 조이는 압도감이 일품이었다. 한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잘 훈련된 테크닉과 표정이 풍부한 음악적 내용 간의 밸런스가 잘 어울려 한마디로 눈부셨다는 평을 받았다.


▲ 수상자 발표 후 진행된 시상식에서의 한지호

연주 직후 그를 만났다.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나비의 꿈’을 짧은 시간 안에 익혀야 했기에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끝나고 나니 속히 후련하네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샤펠에 거주하던 일주일 동안 참 잘 웃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원래 성격이 스트레스를 받아도 잘 웃는 편이죠. ‘나비의 꿈’은 생각보다 피아노 파트의 음이 너무 많았어요. 보통 협주곡이면 오케스트라가 반은 연주하고 피아노가 좀 쉬는데, 이 작품에는 몇 마디 빼고는 숨을 돌릴 시간이 없어서 조금 부담을 느꼈죠. 특히 이 작품에는 일종의 패턴 같은 눈에 띄는 구조가 없고 특별한 분위기만 있어서 오케스트라는 물론이고 협연자도 연주하기가 모호한 것 같아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같은 경우에는 작곡가 자신이 피아니스트여서 그런지 음이 많아도 한번 배우면 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편인데, 이 작품은 손이 잘 익숙해지지 않았죠. 아마도 작곡가가 피아니스트는 아닌 것 같아요.(웃음) 샤펠 식당에서 후보들이 모이면 ‘이 작품은 어떻게 이렇게 불편하게 작곡했나!’라고들 투덜거리곤 했죠.”

각각의 악장이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 연결된 것 같은 한지호의 라흐마니노프는 매우 대륙적이었다. 왠지 백건우의 연주를 떠올리게 된다고 하자 그는 매우 큰 칭찬이라며 기뻐했다.

“사실 이 곡을 처음 접한 건 백건우 선생님의 음반을 통해서였습니다. 부모님이 그분의 라흐마니노프 음반을 소장하고 있었어요.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어요. 라흐마니노프는 동시대 작곡가들에 비해 낭만적 색채가 강한 편입니다. 일종의 노스탤지어 같은 정서가 곡을 이루고 있죠. 앞으로 진전하기보다 아름다웠던 과거를 회상하며 계속 그 순간에 머물고 싶어 하는 고뇌 같은 것이 느껴져요. 연주할 때마다 감동적인 울림이 있어서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수상 소감에 대해서는, 일단 편안한 마음이고 한국에서 온 그의 어머니가 좀 아쉬워하기도 했지만 매우 기뻐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도 자신이 좋아하는 다니엘 바렌보임처럼 단 한 번의 연주에도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그런 연주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사진 Bruno Vessiez


▲ 김대진(왼쪽 세번째)과 백건우(오른쪽 다섯 번째)가 참여한 결선 심사 현장

2016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심사위원 김대진 인터뷰

이번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피아니스트 김대진을 만났다. 그는 콩쿠르를 심사할 때마다 젊은 연주자들의 음악을 들음으로써 스스로 더욱 얻는 것이 많으며, 음악에 몰입해 연주하는 젊은이들이 아름답고 자랑스럽게 느껴진다는 소감을 전했다.

“비교할 수 없는 예술을 비교하기에 심사위원에 따라 의견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 콩쿠르의 아쉬운 부분이지만, 이번에 우승을 차지한 루카스 본드라체크의 경우는 어떤 심사위원이 들어도 1위에 반대하지 않으리라 생각할 만큼 훌륭한 연주였습니다. 한국 연주자들도 매우 수준 높은 연주를 보여주었는데요. 특히 한지호의 경우 이전에도 콩쿠르 심사를 통해 여러 번 그의 연주를 들어보았는데, ‘심금을 울렸다’라고 표현할 만큼 호소력 강한 연주는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음악적으로 많이 성숙하여 이토록 깊이 있는 연주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매우 기쁩니다. 매번 들을 때마다 발전하는 것 같아 대견하네요.”

그는 이번 콩쿠르에서 2명의 한국인 심사위원이 위촉된 것은 개인의 성과가 아닌, 한국의 음악성이 이미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뜻한다고 전했다.

“이미 3년 전에도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 심사인데, 올해는 백건우 선생님께서 결선 심사에 참여하셔서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인 심사위원이 2명이나 위촉된 점에서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느낍니다.”

김대진은 3년 전부터 본 콩쿠르의 1위를 수상한 연주자와 그가 지휘하는 수원시향이 협연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에게 심사위원으로서 만난 1위 수상자와 지휘자로서 다시 만났을 때는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3년 전 우승한 보리스 길트부르크와 한국에서 협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심사위원으로서는 일반적인 심사에만 그치지만, 연주자와 함께 작업을 하면서 가까워지죠. 이를 통해 그들의 연주 세계를 이해하고 더욱 그들의 진가를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심사위원으로 제가 선택한 연주자와 협연할 수 있다는 건 아주 특별한 경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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