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쿠르 1등하면 총 안 잡나요?

예술가들의 병역 특례 제도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8월 1일 12:00 오전

군 대체복무의 타당한 인정 범위는 어디일까. 갈등의 역사와 개정안을 위한 다양한 질문

지난해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1위를 수상하자 일본의 피아니스트 이즈미코 아오야기가 ‘조성진은 오로지 병역 면제를 위해 입상을 노렸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SNS에 올려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국내 누리꾼들은 조성진이 2008년 청소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해 군 대체복무 자격을 이미 얻었다고 주장했지만, 이 콩쿠르는 병역법에서 인정하는 경연대회가 아니어서 또다시 혼란이 일었다. 조성진은 2009년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우승해 군 대체복무 자격을 얻었고, 2013년부터 예술요원으로 복무 중이라는 것이 진실로 밝혀지며 해프닝은 막을 내렸다.

최근 한국의 많은 클래식 음악가가 국제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남성 연주자들의 병역 문제도 관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어떤 콩쿠르에서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두어야 군 대체복무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지금부터 음악가들의 병역 특례 역사를 하나씩 짚어본다.

현행 병역법상 클래식 음악가가 병역 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콩쿠르는 29개 대회 84개 부문이다. 국악·무용·연극·미술 분야 등 예술계를 통틀면 48개 대회 130개 부문이 인정된다. 상세한 수상인정 대회는 아래의 〈표〉와 같으며, 수상 인정 대회 중에서 국제 예술경연대회의 경우 2위 이상 입상자, 국내 예술경연대회의 경우 1위 입상자, 그리고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분야에서 5년 이상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육을 받은 자가 그 대상이 된다.

예술요원으로 분류된 자들은 일반 사병들과 마찬가지로 4주 간의 훈련소 생활을 거친다.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지휘·감독 하에 병무청장이 정한 해당 분야에서 34개월 동안 복무를 하게 된다. 특기를 활용하여 사회적 취약 계층,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봉사 활동을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하며, 만약 복무 중 봉사 활동을 마치지 못한 경우에는 마칠 때까지 복무가 연장된다.

예술요원, 역사의 변천 과정
예술가에게 병역 특례 혜택을 주기 시작한 건 1973년부터다. 당시 정부는 ‘병역의무의 특례규제에 관한 법률’(제2562호)을 제정해 각종 병역 특례 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때 ‘학술·예술 또는 체능의 특기를 가진 자 중 국가 이익을 위하여 그 특기를 계발 또는 발휘가 필요하다고 인정되어 특기자선발위원회가 선발한 자’가 보충역에 편입되도록 했다.

예술 분야에서는 국제 규모의 저명한 음악경연대회에서 2회 이상 우승 또는 준우승을 한 자, 그리고 국가 이익을 위해 그 특기의 계발 또는 발휘가 계속 필요하다고 관계 중앙행정기관장이 인정한 자가 대상이 되었다. 특례보충역으로 편입될 시 복무 기간은 5년. 본 법률은 1983년 12월 31일, 법률 제3696호로 병역법 위반 등의 범죄 처벌에 대한 특별조치법과 함께 병역법에 통합되어 폐기되었다.

1984년 9월, 제정 병역법이 시행되었다. 중앙행정기관장 인정 제도는 폐지되고, 특례 대상에 대해서는 이전보다 규정을 명확히 했다. 국제예술경연대회 2위 이상 입상자, 국내대회 1위 입상자, 중요무형문화재 전수자가 해당자에 포함되었다.

용어 사전
예술요원 예술 분야의 특기를 가진 사람으로서 문화 창달과 국위선양을 위한 예술 분야의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 ‘예술·체육 요원’은 2013년 12월 5일 이전까지 공익근무요원의 유형 중 하나로 ‘예술·체육 분야 공익근무요원’으로 분류되었으나 2013년 6월 4일 개정된 병역법에 따라 공익근무요원은 사회복무요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예술·체육 분야 공익근무요원은 별도의 보충역 편입 대상자인 예술·체육요원으로 분류되었다. 예술요원은 4주 간 훈련을 받고, 이후 34개월 동안 특기를 활용하여 봉사 활동을 한다.
보충역 징병검사를 통해 현역 복무를 할 수 있다고 판정된 사람 중 병력 수급 사정에 의해 현역병 입영 대상자로 결정되지 않은 사람

콩쿠르, 어디까지 인정될까
모든 콩쿠르를 예술요원의 편입 조건으로 인정하는 건 아니다. 해당 목록은 관련법 제정 이후 현재까지 점차 축소되어왔다. 2011년 1월 1일 이전까지 음악 분야는 유네스코 국제음악대회에 가입되어 있는 123개 대회, 무용 분야는 유네스코 국제무용대회에 가입되어 있는 11개 대회와 5회 이상 개최되거나 9개국 이상이 참가한 6개 대회가 인정되었다.

국내대회는 2008년 한 차례 개정이 있었는데, 전 부문의 대회를 인정하던 이전과 달리 국악·한국무용 등 국제대회가 없는 부문으로 한정해 음악·무용계의 반발을 샀다. 당시 한국음악협회와 한국무용협회는 “국제무대 진출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는 국내 콩쿠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발상은 문화적 사대주의”라며 시행령 원상 복구를 위한 저지 투쟁을 벌였으며, 강원대 무용학과 백영태 교수는 “만약 국민들이 원해서 예술 분야의 병역 특례를 없앨 수밖에 없다면 대안을 만들어달라. 음악계는 군악대라도 있는데 무용계는 탈출구가 전혀 없다”며 하소연하기도 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내 대회가 축소된 데 이어 2011년, 국제대회 중 음악 분야도 123개에서 30개로 대폭 축소되었다. 병역 특례 대상 콩쿠르를 4분의 1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병무청의 결정은 음악계의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병무청은 ‘2010년 8월을 기준으로 병역 특례를 받고 있는 예술인은 양악 15명, 무용 23명, 국악 18명으로 총 56명인데, 체육인은 38명에 머문다’는 수치를 앞세워 다른 분야와의 형평성을 위해서라고 시행령 개정의 변을 밝혔지만, 예술계는 ‘형평성’이라는 잣대에 비판을 제기했다.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김대진 교수는 “각각 전통과 특징이 다른 해외 콩쿠르를 등급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는 특정 콩쿠르에 집중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쳤으며, 피아니스트 강충모는 “국위선양을 목적으로 체육인과 예술인을 장려하고자 좋은 취지에서 설립된 병역법 조항이 체육인 병역 특례 대상자가 예술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유로 해당 콩쿠르 숫자를 줄인다는 것은 설립 취지와 거꾸로 가는 행동”이라며 시행령이 갖는 모순을 꼬집었다.

음악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병무청은 시행령을 강행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콩쿠르의 인지도·유명도·참여도를 중심으로 순위를 매겨 20개를 꼽아달라고 요구했고, 한국음악협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예술의전당 음악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대표로 참석한 4인이 선정 회의를 열어 콩쿠르 44개를 뽑았다. 병무청과 문화체육관광부는 여러 차례 조율 끝에 결국 30개를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이때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우승(2006)하여 대체복무 자격을 얻은 리즈 콩쿠르와 조성진이 우승(2009)하여 예술요원이 된 하마마쓰 콩쿠르 등 주요 콩쿠르의 일부가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30개의 음악 분야 인정 대회는 2012년 7월 다시 27개로 정비되었고, 2015년 1월 병무청이 예술계의 인정 대회를 52개 대회 139개 부문에서 48개 119개 부문으로 축소하며 음악 분야는 총 29개 대회로 조정되었다.

2014년, 병무청은 또 한 번 병역법을 개정했다. 인정 대회 범위는 유지하며, 예술요원의 특기 활용 봉사 활동 의무를 강화했다. 이전까지 예술요원은 사실상 군 면제와 다름없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동안 예술요원은 병무청이 지정한 복무 분야에 재직하고 있다는 증명서나 관련 분야의 경연대회에 입상 또는 참가했다는 사실 확인서, 혹은 개인 발표 등 관련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자료를 6개월마다 해당 분야 장관에게 제출하는 것으로 복무를 다해왔다. 일회적인 세계대회 수상만으로 개인적인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 2015년 7월 1일 편입자부터는 매월 2일(16시간 기준), 총 68일 544시간 동안 사회적 취약 계층,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공연, 강습(교육), 공익 캠페인 등 봉사 활동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예술가들의 군 대체복무 문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한국음악협회는 2008년부터 현재까지 인정 대회의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협회의 수석 부이사장 이철구는 “한국의 클래식 음악은 외국의 것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닌, 우리만의 것을 창출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그럼에도 국내 콩쿠르는 무조건 무시한 채, 외국의 것만을 추종하는 행태는 계속되고 있다. 음악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소비하며 소수의 해외 콩쿠르를 좇는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을 위해 국내 대회를 포함하여 인정 대회의 숫자와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병무청은, 한국장학재단이 내놓은 2015년도 예·체능계 국가우수장학금 업무처리 기준에 따른 실적 제도를 예술가들의 군 대체복무 제도에 적용할 것을 현재 검토 중이다. 콩쿠르의 개최 규모, 주기, 순위에 따라 부여 점수를 달리하는 점수제를 운영하겠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4년에 한 번 국제 규모로 열리는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상위 10% 안에 들면 20점, 매년 개최되는 중앙음악콩쿠르에서 상위 10% 안에 들면 6점 등으로 누진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음악협회의 주장을 일부 수렴하여 국내 대회를 인정하고, 국제 콩쿠르에서 2위 이하 입상자들의 성과도 일정 부분 인정하려는 의도다. 다만 반복적으로 콩쿠르에 도전하는 참가자들이 얻을 경제적 손실과 정신적 소모는 고려돼야 할 점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술가들의 군 대체복무 편입을 확대해야 할까, 축소해야 할까.

어쩌면 논쟁이 실질적인 요점에서 벗어나 있는지도 모른다. 취재 중 만난, 현재 예술요원으로 복무 중인 한 피아니스트는 “군 대체복무 인정 범위에 대한 논의를 지속함에 앞서 예술요원으로 편입되지 못한 예술가들이 군 내에서 조금씩이나마 연습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체복무 제도의 범위와 병영 문화 개선에 대한 세심한 검토는 병행돼야 한다. 젊은 예술가들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니만큼 공정하고 빈틈없는 제도가 확립돼야 할 것이다.

체육요원의 병역 특례 역사
체육 분야는 어떨까? 체육계 역시 예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1973년 운동선수들에게 특혜를 주기 시작했다. 올림픽(3위 이상), 세계선수권(3위 이상), 유니버시아드(3위 이상), 아시안게임(3위 이상), 아시아선수권(3위 이상)과 한국체육대학교 졸업 성적 상위 10% 이내에 해당하는 자와 특기자선발위원회가 인정하는 자에게 특혜를 준 것을 시작으로, 총 네 차례 개정을 거쳤다. 현재는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를 한 자만이 대체복무 자격을 얻는다. 단체 경기의 경우에는 실제 출전한 선수만 혜택을 준다.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축구 국가대표팀이 일본과의 3·4위 결정전에서 2대0으로 앞서던 후반 44분, 한 게임도 뛰지 못한 김기희 선수를 출전시켜 4분간 뛰게 해 혜택을 받게 한 일화는 유명하다. ‘1분 이병-2분 일병-3분 상병-4분 병장-경기종료 전역’이라는 농담이 나돌기도 했다.
예술·체육요원을 둘러싼 논의의 핵심은, 병역특례법이 규정한 국내외 대회의 성적 자체가 국위선양과 사회적 화합이라는 국가적인 성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 사회 전체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병역 제도상, 의무를 다하는 일반 국민과의 형평성이 어긋나지 않도록 꼼꼼히 따져 원칙을 마련하고 기준 준수에 대한 검열을 철저히 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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