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신익과 심포니 송의 ‘더 윙-날개’ 동행 취재

음악을 싣고 달려라, 어디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0월 1일 12:00 오전

트럭이라는 이동수단 그 자체로 예술이 된 프로젝트 현장을 들여다보다

예술이 ‘움직이고’ 있다. 추상적인 흐름이 아니라, 진짜 ‘탈것’에 올라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동수단을 가리지도 않는다. 한 은행광고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지하철을 타고 달리기도 하고, 피아니스트 박종화의 스타인웨이는 트레일러를 타고 전국을 누빈다. 최근엔 농촌으로 찾아가는 ‘랩 교실’ 버스까지 등장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문화 소외 지역으로 향하는 만큼 가는 길이 고되고 멀며, 제약도 많다. 그러나 그 바퀴는 찾아가는 예술가들의 ‘열정’으로 오늘도 굴러간다. 그중 ‘트럭 위의 연주’라는 획기적인 발상으로, 찾아가는 클래식 음악회에 한 획을 그은 함신익과 심포니 송의 ‘더 윙-날개’ 연주 현장에 동행했다.

함신익과 심포니 송의 ‘더 윙-날개’

오케스트라를 트럭에 ‘싣고’ 다니는 심포니 송의 ‘더 윙-날개’ 프로젝트. 무대가 없는 곳에서도 언제든지 공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트럭의 양 옆면을 위쪽으로 열어 무대 공간을 마련한 모습이 꼭 날개를 펼친 것 같다. 2015년 3월 미양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첫 테이프를 끊은 이 프로젝트는 학교·군부대·교도소 등 음악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클래식 음악 전도사’다.

심포니 송 홈페이지에서 순회 일정을 보며 머릿속에 물음표를 그렸다. 그들은 정기연주회를 비롯한 공연과 함께 한 달에 2회 이상 ‘더 윙-날개’를 연다. 광주·울산·남해·제주 등 먼 곳만 골라서 가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거리’ 여행이다. 어떻게 매달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을까? 트럭을 타고 다닐까? 가는 길엔 무엇을 할까? 호기심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경험해보는 것. 기자는 결심했다. 무엇을? 동행 취재를!

심포니 송의 9월 행선지는 대구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의 학생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선사하러 가는 길. 9월 5일, 출발 장소인 예술의전당 앞으로 향했다.

가득이요! 열정 넣고 대구로 출발

12:00 예술의전당 앞 청바지와 흰 셔츠 차림에 악기를 멘 단원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트럭은 어디 있나요?” 물어보니 세팅 시간 때문에 3시간 정도 미리 출발한단다. 38명의 단원은 두 대의 관광버스로 이동한다. 팀파니스트 황인수가 큰 소리로 출석을 부른 후 출발! 짝지어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처럼 설레어 보였다.

13:20 천안 휴게소 점심을 먹지 못한 단원들이 휴게소 음식을 고르느라 분주하다. 30분 휴식 후 출발한 버스에서 배를 든든히 채운 단원들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 “파트 구성은…” “편곡을…” 이럴 수가, 대부분 음악 이야기! 버스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가득했다. 김천에 다다를 무렵,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16:00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도착 비슬산에 폭 둘러싸인 캠퍼스는 한 폭의 전원 풍경 같았지만, 단원들은 비가 내려 걱정이었다. “우리 오늘 연주할 수 있는 거야?” 웅성대던 단원들은 곧 대기실에서 개인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건물에 플루트 선율이 가득 울려 퍼졌다.

16:20 대기실 리허설을 기다리며 단원들에게 궁금한 점들을 물어봤다. “매달 방방곡곡을 방문하는 일정이 힘들진 않나요?” 단원들은 “‘더 윙-날개’는 관객과 가장 가까이에서 교감할 수 있는 연주”라며 “대부분 클래식 음악을 많이 접하지 못한 분들인데, 그들이 감동하는 모습을 보면 다시 연주하고 싶은 힘이 생긴다”고 입을 모았다. “어떤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물음에 비올리스트 장윤정은 “지난 6월, 4박 5일 동안 제주도 곳곳에서 가진 공연이 기억에 남는다. 더운 날씨 속에서도 야외에서 끝까지 호응해주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바람에 악보가 날리는 와중에도 최선을 다해 연주로 화답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안선미는 지난해 10월 천안 교도소에서의 연주를 꼽으며 “수감자들이 손을 꼭 잡고 ‘잘 들었다’고 건넨 한마디를 잊을 수 없다”고 전했다.

16:40 트럭 앞 지휘자 함신익이 합류했다. 그 역시 하얀 셔츠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비가 곧 그칠 것 같다”며, 트럭의 위치와 음향을 체크하느라 동분서주. 단원들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함신익의 모습에선 경직된 마에스트로의 근엄함보다 소탈함이 느껴졌다. 그에게 ‘더 윙-날개’를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다.

“‘힐링’이에요. 자연 속에서 한 번, 음악을 처음 듣고 느끼는 청중의 솔직한 반응에 또 한 번 힐링하죠. 그래서 악기 이동이나 연주에 제약이 많은데도 ‘치유받는다’는 느낌이 강해요. 그리고 관객들과 음악으로 이 힐링을 나눕니다. 매번 보던 도시의 풍경과 다르다 보니 단원들도 연주 후에 떠나길 싫어할 정도예요.”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연주자와 청중

17:00 리허설 거짓말같이 구름이 걷히고, 말간 해가 고개를 내밀었다. 트럭 안에서 단원들이 풍선을 부느라 여념이 없다. 알고 보니 차이콥스키 ‘1812 서곡’에서 큰북이 연주하는 대포 소리를 대신하기 위해 특별히 아이디어를 낸 것! 덩치 큰 악기를 싣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한 지혜다. 함신익은 마이크를 들고 리허설을 시작했다. 누구보다 꼼꼼하게, 스피커마다 돌아다니며 음향 체크에 상당히 심혈을 기울였다.

18:00 식사 및 휴식 메뉴는 갈비탕. 옆자리에 앉은 외국인 단원들도 든든히 배를 채웠다. 식당 옆 카페에서 오늘의 협연자인 바리톤 김동섭과 마주쳤다. 그는 트럭 콘서트는 처음이라 기대가 된다며 “공연 시작 전이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안 되겠죠?”라는 심오한(?) 질문을 던졌다. 연주자들을 마주칠 일이 없는 공연장과 달리, 단원과 협연자 그리고 청중이 허물없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야외 공연만의 매력 아닐까.

19:00 ‘더 윙-날개’ 콘서트 초승달 아래, 풀벌레 소리가 가득한 야외무대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의 총장을 비롯한 교직원 가족과 학생들로 가득 찼다. “아름다운 밤입니다.” 유쾌한 멘트와 함께 트럭에 오른 함신익은 오케스트라 악기를 하나씩 소개하며 음색을 들려주는 것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로시니 ‘윌리엄 텔 서곡’, 모차르트 플루트 협주곡 1번(협연 김수연), 번스타인의 ‘심포닉 댄스’, 차이콥스키 ‘1812 서곡’ 등이 연주되었고, 연주가 진행되는 가운데 안무나 소품을 활용하거나 퀴즈를 진행해 재미를 더했다. 바리톤 김동섭의 등장으로 무대는 한껏 달아올랐다. 관객과 함께 부른 ‘세비야의 이발사’ 중 ‘나는야 이 거리의 만물박사’와, 곳곳에 추임새를 유도한 ‘카르멘’ 중 ‘투우사의 합창’은 관객 참여로 완성한 능동형 무대였다. 엘가 ‘위풍당당 행진곡’과 오펜바흐 ‘천국과 지옥’ 중 ‘캉캉’은 함신익의 멘트에 따라 모두가 기립해 리듬을 타며 흥겹게 감상했다. 교직원과 학생들, 총장과 지역주민이 함께 어깨동무하며 화합의 장을 이루었다. 두 곡의 앙코르 후 아쉬워하는 관객을 뒤로하고, 함신익과 심포니 송은 트럭에서 내려왔다.

20:30 서울로 출발! 이날 저녁, 습도계는 91%를 가리키고 있었다. 바람 한 줄기 통하지 않는 트럭 위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단원들에게서 일종의 사명감이 느껴졌다. 잠시 숨을 돌린 그들은 다시 고속버스에 올라탔다. 올라오는 길의 분위기는 훨씬 활기찼다. 큰 규모가 아닌 데다 장거리 연주가 잦아서일까? 그들은 마치 가족 같았다.

00:15 예술의전당 앞 꼭 12시간 만이다. 하루 만에 고속버스를 8시간이나 타다니! 뻣뻣한 다리를 부여잡고 차에서 내렸다. 세상에, 다음 날엔 오케스트라 연습이 있단다. 단원들은 익숙하다는 듯 지하철이 끊길세라 뛰어가고, 택시를 기다리며 “내일, 아니 오늘 보자”며 손을 흔들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강행군이었다. 그로부터 5일 뒤 이들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정기연주회를, 함신익은 2주 뒤 상하이 현대음악제 개막 지휘를 했다. 매일 연습하는 가운데서도 청중의 미소와 말 한마디에 행복을 느끼며 더욱 열심히 전국을 달리는 심포니 송. 트럭의 진짜 엔진은 ‘관객’이었다.

그 외의 ‘움직이는 예술’ 들여다보기

초창기 이동극장부터 오늘날 최신 장비를 장착한 트레일러까지, 다양한 이동 예술 프로젝트를 살펴본다

관객을 찾아 두메산골까지, 이해랑이동극장

예술이 관객을 찾아가는 것은 비단 최근 일만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변변한 공연장은 물론 자동차조차 귀하던 시절. 서울에 집중된 연극을 지방에도 전파하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던 버스가 있었다. 가설무대와 침대, 취사장까지 갖춘 대형 버스에 25명의 단원이 탑승한 ‘이해랑이동극장’이다. 1966년 연극인 이해랑이 시작한 이동극장은 첫 순회에서 이진섭의 ‘오해마세요’를 22일간 하루 두 차례씩, 경기·강원 일대 44개 마을을 돌며 공연했다. 이후 충청도와 전라도를 돌며 4개월 동안 동원한 관객은 약 120만 명. 지금으로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수치다. 당시 삼십 리 밖에서 한 마을 전체가 연극을 보러 오기도 하고, 길이 막혀 늦는 극단을 운동장에서 5시간씩 기다리는 등 호응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 후 5년을 순회한 ‘이해랑이동극장’의 정신은 훗날 이해랑이 동아일보(1987년 3월 7일)에 기고한 글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관객을 모아놓고 배우가 연기를 하는 곳이면 그곳이 학교마당이건 시장 복판이건 혹은 천변이건 어디고 곧 극장이 되는 것입니다. 극장이란 건물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연극을 창조하는 여러분과 그것을 구경하는 관객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트레일러는 피아노를 싣고, 피아니스트 박종화의 ‘뮤직 인 모션’

그동안 공공장소 연주 프로젝트 ‘바흐 인 더 서브웨이’, 학교로 찾아가는 ‘동요 콘서트’ 등을 통해 다양한 장소에서 청중을 만나온 피아니스트 박종화. “피아니스트로 삶의 목적을 두기보다는 문화와 문화를 잇는 중재자로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과 소통하는 데 사명감을 갖고 있다”는 그가 지난 8월 새로운 프로젝트 ‘뮤직 인 모션’을 시작했다.
‘뮤직 인 모션’은 섬마을이나 공장 등 피아노가 한 번도 설치되지 않은 곳에 피아노와 ‘함께’ 찾아가 연주하는 프로젝트다. 피아노는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한 악기다. 이를 어떻게 옮길까? 비밀은 500kg에 달하는 그랜드피아노를 손수 싣고 내릴 수 있도록 특수 설계한 트레일러에 있다. 박종화는 직접 트레일러를 몰고 SNS로 신청받은 장소로 찾아간다. 첫 번째 ‘뮤직 인 모션’은 지난 8월 충북 진천의 한 중장비 기계 생산 공장에서 열렸으며, 프로젝트의 모든 과정은 다큐멘터리로 제작될 예정이다.

아이도 어르신도, 버스 안에서 들썩들썩, 움직이는 예술정거장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2013부터 운영해온 ‘움직이는 예술정거장’은 문화 소외 지역에 예술가들이 직접 방문해 주민들에게 연극, 설치미술, 무용 등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버스에 직접 올라 참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올해는 아동과 노인 대상으로 진행한다.
아동 대상의 ‘고래버스’는 고래 배 속을 형상화한 내부로 상상력을 자극한다. 공연 감상 후 아트북 제작하기, 형광 안료로 해저 생물 만들기 등 아이 눈높이에 맞춘 미술 프로그램 위주다.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우주선 버스’는 여행 콘셉트 아래 추억으로 떠나는 리마인드 웨딩과 미래로 떠나는 랩 배우기 체험으로 진행한다. 특히 랩 배우기는 어르신에게 낯선 힙합을 국악과 접목해 흥을 더한다. 버스가 갈 수 없는 전라남도 섬 지역에는 도에서 운영하는 병원선과 연계해 의료 서비스와 무용·미술 프로그램을 접목한 ‘예술선’을 운영한다.

사진 심규태(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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