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이디푸스’ ‘비클래스’를 거치며 배우의 길을 찾아가다
실질적인 시작점과 체감하는 시작점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정확한 일자를 시작점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겨를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시작을 미처 체감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후자의 경우, 실제 시작점에서 어느 정도 지나 좀 더 성장한 단계에서 비로소 시작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배우 박은석 역시 그러했다. 2010년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앙상블로 데뷔한 이후, ‘노트르담 드 파리’ ‘드라큘라’ ‘페스트’ ‘스모크’ ‘레드북’ 등 화제의 뮤지컬 무대에 섰을 뿐 아니라 ‘모범생들’ ‘프론티어 트릴로지’ 등 작품성이 깃든 연극 무대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해 온 그는, 2010년이 아니라 지금이 배우로서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새로운, 그리고 보다 성숙한 시작을 응원한다.
–최근 연극 ‘오이디푸스’의 지방공연까지 끝마쳤다.
지난해 12월부터 연습을 시작했으니 이 비극을 거의 4~5개월 붙들고 있었다. 특히 코러스장은 최근 맡았던 역할 중 가장 연기하기 어려웠다. 계속 무대 위에 있기는 하지만 유기적으로 기능이 바뀌는 역할로, 다른 배역들과는 메커니즘 자체가 달랐다. 오이디푸스의 감정을 돕는 부분에선 그의 감정을 함께 느끼다가, 관객처럼 극을 지켜보기도 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해설하기도 하며, 극 중 하나의 양식으로 존재하기도 하는 등 기능들이 많았다. 일반적인 배역은 한 인물의 삶을 지속적해서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그 역할로 깊숙이 들어가려는 습성이 있는데, 이를 배제하고 익숙지 않은 메커니즘을 익히는 것이 힘들었다.
-2011년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에서는 코러스로 출연한 바 있다. 같은 소재를 다루는 한 연출가의 작품에 좀 더 비중 있는 역할로 돌아왔는데.
2010년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앙상블로 데뷔했을 때, 주역들을 바라보며 배우로서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재형 연출가는 나의 열정과 열심들을 가장 잘 지켜봐 줬던 분이다. 2015년 ‘왕세자 실종사건’에서 첫 주역을 맡겨준 분이기도 하다. 7년 만에 오이디푸스를 다룬 또 다른 작품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래도 나 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해낼 때도 있고 힘이 빠질 때도 있는데, 후자의 경우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그 시점에 ‘오이디푸스’를 다시 만났고, 현재 공연 중인 연극 ‘비클래스’의 연출가 오인하를 만났다. 요즘 배우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정립하며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특히 대선배들과 함께 작업하다 보니 ‘나는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배우로서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구체적으로 설정한 방향이 있나?
영화배우 설경구의 인터뷰에서 ‘배우는 텍스트와 사랑에 빠져야 한다’는 문장을 읽었다. 갓 데뷔했을 때는 닥치는 대로 작품을 했다면, 요즘에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작품, 즐길 수 있는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선 더욱 단단해져야 하고, 나의 삶도 다시 돌아봐야 한다. 텍스트와 깊은 사랑에 빠져서 참여한 작품을 관객에게 전달했을 때, 그 에너지가 공유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끼고 싶다.
–공연 중인 연극 ‘비클래스’ 역시 그러한 작품 중 한 편인 것 같다. 지난해 공연에서는 김택상 역을 맡았고, 이번 공연에서는 이수현 역을 연기한다. 본인과 더욱 닮아있는 캐릭터는 어느 쪽인가?
수현의 경우, 그토록 어려운 일을 겪고서도 도망치지 않고 삶을 이어나간다는 점에서 나보다 훨씬 나은 아이다. 물론 시니컬하고 반항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그의 힘듦을 주변에서 알아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수현보다 가벼운 어려움을 만났을 때조차 오히려 택상처럼 비겁하게 도망쳤다. 극한의 두려움이나 걱정에 사로잡혔을 때 이를 회피했다는 점에서, 택상에게 더 공감된다.
–실제 삶에선 어떤 상황에서 도망쳤나?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검도선수로 활동하며 많은 메달과 트로피를 받았다. 그때만 해도 운동선수 생활을 하다 보면 맞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 없이 맞는 것이 싫었고, 많이 맞으면 맷집이 생긴다는데도 아팠다. 어린 나이에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도 힘들고 외로웠다. 그래서 한 번 어설프게 도망쳤다가 잡힌 이후로 확실한 작전을 세워서 가족이 있는 분당으로 올라왔다. 이후 검도를 그만두고 음악을 하게 됐다. 부모님의 고향인 남원에 갔다가 국악예술고등학교를 방문했는데, 우연히 듣게 된 향피리 소리에 매력을 느꼈다. 그때부터 2년간 향피리를 배운 후, 추계예술대학교에 진학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많은 방황을 했다. 그 나이대를 예민하게 지나간 것이다.
–국민대학교 연극영화과를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대한 후 또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군대에서 군악대에 있었는데, 노래에 큰 흥미를 느꼈고 잘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중학교 3학년 때 계원예고 연극영화과 시험을 봤던 적도 있더라. 어느 순간 배우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2008년 국민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다시 입학했다. 돌이켜보면 신의 계획이 있었던 것 같다. 검도도 8년, 향피리도 8년을 했는데, 몸의 움직임과 음악을 배웠다는 점에서 배우를 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 이후 2010년 데뷔하며 본격적인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주변에서 8년이 고비가 아니냐고 하던데, 다행히 배우를 한 지는 8년이 넘었다.(웃음) 지금 이 일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배우 그 자체로 행복한 사람
–소극장 뮤지컬·대극장 뮤지컬·연극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각기의 매력은 무엇인가?
뮤지컬은 음악이 주는 힘이 굉장히 강하다. 그 안에 드라마가 녹아있는 재밌는 장르다. 특히 대극장 뮤지컬의 경우 화려한 무대와 폭발적인 노래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것이 굉장한 매력이다. 소극장 뮤지컬은 화려함보다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하다. 연극을 할 때는 ‘섞어지는’ 것이 너무 좋다. 구성원들과 함께 무언가를 해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장르이다 보니 더욱 진한 동료애가 생긴다.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 뮤지컬 ‘레드북’이나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등 초연부터 참여한 작품들이 많은 이유와도 연결될 것 같은데.
초연 작품에 참여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초연 때는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고, 그것을 조율해가는 과정이 재밌다. 레퍼토리 공연에 참여하는 것은 그동안 사랑받았던 이유를 충족시켜야 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조금 부담이 될 것 같기도 하지만, 어떤 작품이든 참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배우로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언제였나?
매번 중요한 순간이다 보니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아무래도 2014년 뮤지컬 ‘드라큘라’의 첫 무대가 아니었을까. 당시 언더스터디(Understudy, 메인 배우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대신 투입되는 배우)였는데, 리허설을 충분히 하긴 했지만 무대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한 채로 공연해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정신없이 열심히 했던 기억밖에 없다. 주역으로 대극장 무대에 섰던 첫 경험이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재밌어서 한다. 팬들이 직접 써준 편지를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이들의 삶에 작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 내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다.
글 권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