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객석’ 기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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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7월 31일 11:10 오후

예술이 사람과 만나는 순간

베를린 필하모닉 이건앙상블 초청연주회

7월 6일 | 아트센터 인천

1990년 인천의 한 공장에서 시작된 작은 음악회. 이 음악회가 어느덧 서른 해를 맞아 지난 7월 5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인천, 광주, 부산, 대구 5개 도시 지역의 공연장에서 특별한 음악회를 가졌다. 우리나라에서 이건음악회가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이건음악회의 박영주 회장은 30년 동안 조용한 열정을 갖고 무대 뒤에서 음악가들을 격려하면서 음악회를 쉼 없이 걸어왔다. 전쟁 통에 아름다운 연주를 듣고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크게 움직일 수 있는지 알게 된 그는 종합 건축자재 전문 기업을 이끌며 일선에서 음악회를 통해 사랑과 화합의 메시지를 전했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음악을 공부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마스터클래스를 운영해 왔다.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토록 열정을 갖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과 사람, 사회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음악회 30주년 음악회는 그 역사의 발자취 자체로 빛났다. 그리고 거기에 더 빛을 더했던 건 섬세하고 정교한 실내악 연주였다. 이건음악회 30주년을 빛내기 위해 내한한 특별한 단체 베를린 필하모닉 이건앙상블은 이건음악회가 그동안 쌓아온 음악의 역사를 드러내기에 충분한 무대를 선사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연주자중 한 명인 트럼펫 주가 안드레쇼흐와 베를린 필에서 제1바이올린 주자로 활약하고 있는 루이즈 필립 코엘료 등이 참여한 베를린 필하모닉 이건앙상블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현악 실내악단인 베를린 필하모닉 카메라타 단원들을 주축으로 이건음악회만을 위해 결성된 12인조 실내악 연주 그룹이다. 특별한 이번 공연을 위해 들려준 다양한 프로그램도 청중의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선율과 북유럽의 우수 어린 정서를 만끽할 수 있었던 그리그의 홀베르그 모음곡을 시작으로 오페라 아리아 느낌의 따뜻한 선율의 2악장이 빛났던 타르티니 트럼펫 협주곡, 서정적이고 고요한 선율의 바흐 ‘G선상의 아리아’, 다채로운 빛깔로 사계의 아름다움을 선사한 비발디 ‘사계’까지 한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세밀한 연주는 특별한 감동을 선사했다. 유머 깃든 해설로 자연스럽게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 홍승찬 교수의 해설과 마지막 무대에서 이건음악회 ‘아리랑 편곡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 연주는 정성껏 준비한 음악회의 피날레를 아름답게 장식했다. 특히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인천혜광학교 학생들과 함께 한 무대는 사람과 자연을 잇는 아름다운 기업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국지연

 

흩어지거나 머무를
예술에 대하여

음악극 ‘구텐 아벤트’

7월 4·5일 |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사회와 삶에서 예술의 의미를 묻는 ‘구텐 아벤트’는 음악가 게오르크 ‘호이테 아벤트: 롤라 블라우’(1971)에 다른 곡을 더한 음악극이다.

주인공 롤라 블라우는 성악가로서 오페라 무대에 서기만을 꿈꾸는 유대인 여성이다. 당장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 정치적인 문제 따위는 그녀의 관심 밖이다. 그러나 나치의 박해가 가시화되고 롤라는 그녀가 사랑하는 극장과 연인으로부터 버림받는다. 권력 순응적인 오페라극장 관계자들은 롤라에게 일방적으로 계약 파기를 통보한다. 작은 카바레 무대조차 허락되지 않는 상황. 그녀는 망명하듯 떠난 미국에서 세속적인 성공을 맛보기도 한다. 나치 패망 후 스타가 되어 돌아온 고향 빈에서 롤라는 오페라극장이 여전히 기회주의적이고 배타적임을 깨닫고, 주체적인 예술가가 되기 위해 극장 대신 자신만의 노래를 할 수 있는 카바레로 향한다.

롤라 블라우로 분해 열연을 펼친 메조소프라노 김선정은 작품에서 총 18곡을 독일어로 소화했다. 언어 유희적인 가사로 발음이 어려운 크라이슬러의 곡을 부르면서 관객들과 호흡하는 데도 소홀하지 않았다. 특히 관객들과의 교감이 신명 나게 이뤄졌던 순간은 김선정이 롤라 블라우와 슈미트 부인의 고집스러운 목소리를 번갈아 내며 ‘그 좋던 시절 다 어디 갔나’를 불렀을 때다. 모차르트의 소나타에 크라이슬러가 가사를 붙인 이 곡은 기득권들에 유리하고 배타적인 빈 사람들의 행태를 풍자하며, 그들이 고수하는 전통도 처음엔 진보의 결과물이었음을 꼬집는다. 그녀의 연기와 노래는 세파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인생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롤라 블라우에 공감하게 했다.

공연의 부제는 1인 음악극이지만, 두 출연자의 비중은 대등하게 느껴진다. 장면 전환과 롤라의 감정적 흐름을 이끈 것은 구자범이었다. 독일 하노버 오페라극장에서 지휘자로 활동했던 그가 작품의 구성과 편곡을 해 전달력을 높였다. 그는 분위기에 맞춰 능숙하게 연기(실제로 일인다역을 맡았지만)하며 극적인 부분에서는 김선정의 목소리와 함께 절정으로 치달았다. 마치 무성영화에 음악을 싣듯 극 중간중간 장면에 맞게 음향효과를 표현하기도했다. 능청스러운 전화벨 소리를 낼 때는 객석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롤라 블라우의 이야기는 예술이 삶과 사회와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사회와 괴리된 예술은 처음 롤라의 신세처럼 도태되거나 빈의 오페라극장처럼 과잉된 자의식에 빠지게 된다. 공연이 끝나고 세종문화회관을 나왔다. 늦은 저녁 계단 아래로 천막 당사 지지자들의 카메라 불빛이 보였다. 극장은 이 계단에서 내려올 수 있을까. 박서정

 

상흔의 증언

국립극단 ‘콘센트-동의’

6월 14일~7월 7일 | 명동예술극장

‘콘센트-동의’는 표면적으로는 동의를 다루지만, 실질적으로는 상처에 관한 이야기이다. 2017년 영국에서 선보인 니나 레인 작 ‘콘센트’가 국립극단에서 강량원 연출로 국내 초연했다. 콘센트(consent)의 사전적 정의는 ‘(특히 권위 있는 사람에 의한) 동의’란 뜻이다. 작품은 한 여피족 부부의 갈등을 중심으로 동의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우리 시대 사람들은 동의하지 못해, 공감하지 못해, 아니 공감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아서 서로에게 무던히 상처를 남기고 있다. 이번 무대는 지난해 강량원 연출과 함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 참여했던 무대미술가 임일진이 맡았다. 작년 화제작의 두 창작자가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기대를 모았다. 당시 임일진은 작품의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무대 연출로 호평받았다. 이번 무대는 온통 핫 핑크 컬러이고, 그리스 고대 극장을 연장시키는 설치물로 채워졌다.

네 명의 주인공은 차려입은 의상만으로도 중산층 부부임을 알 수 있다. 이제 막 아이를 출산한 키티와 에드워드 부부. 이들은 친구 부부인 레이첼과 제이크를 초대해 축하 파티를 연다. 대화에 녹아있는 적당한 유머는 여유로운 삶을 부각시킨다. 전직 편집자였던 키티를 제외하고는 모두 변호사이다. 그들은 맡은 사건의 범죄를 묘사할 때 범인을 자기화한다. 예컨대 에드워드가 “요즘 뭐 하냐?”라고 묻자, 제이크는 “나? 아, 강간하고 있지”라고 하고, 레이첼은 “나? 살인. 재미없어”라고 대답한다. 의뢰인의 행위를 깔보는 교만한 태도는 경악스럽다. 180분이라는 긴 공연 시간 동안 고고해 보이던 이들의 실체는 낱낱이 벗겨진다.

사실 레이첼과 제이크 부부는 최근 외도가 들통나면서 갈등을 겪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키티와 에드워드는 극명하게 의견이 갈린다. 그러면서 둘이 가졌던 문제도 점점 드러난다. 키티와 에드워드의 갈등을 따라가다 보면 문제는 에드워드의 일방적인 말하기 방식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을 깨닫는다. 일례로 에드워드가 완전히 말을 마칠 때까지 키티는 대화에 끼어들지 못한다. 에드워드는 오히려 당당하게 소리친다. “그거 알아? 내가 도저히 못 하겠는 게 공감이야!”

반면 에드워드의 친구인 팀과 키티의 관계는 조금 다르다. 두 사람은 소파를 옮길 때도 적당한 위치를 함께 찾으며 맞춘다. 키티와 에드워드는 소파를 어디에 둘지 의견을 일치하지 못해 몇 달째 방치하고 있는데 말이다. 팀과 키티의 불륜을 알게 된 에드워드는 그날 밤 키티를 강간한다. 마지막에서야 키티는 자신이 바람을 피운 진짜 이유를 고백한다. 키티는 이전에 바람피웠던 에드워드를 사실 용서하지 못했던 것. 자신도 바람피우지 않는 한 그 상처를 에드워드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벌을 주고 싶었다. 그러면 둘의 균형은 다시 공평할 수 있을 거라고. 마지막에서 에드워드는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다.

우리는 예상치 않은 순간 언제든 상처받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 마음이 긁혔을 때 억지로 상처를 덮으면 곪는다. 받은 상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아픈 마음을 애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가시지 않은 상흔은 다시금 누구에게 상처를 남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혹여나 타인에게 상처를 줬다면 기억하자. 사실 진심 어린 사과가 있으면 모든 게 괜찮아질지도 모른단걸. 장혜선

 

 

‘투란도트’

다양성이 품는 희망

제13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6월 21일~7월 8일 | 대구오페라하우스 외

수도권으로 쏠려 있는 문화 향유 기회를 지방으로 분산하려는 문화계의 노력은 지속돼 왔다. 그러나 노력이 무색할 만큼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가 어려웠다. 예외적으로 비약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곳이 대구광역시로, 대구오페라하우스·계명아트센터·수성아트피아 등 대규모 공연장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것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콘텐츠가 없다면 공연장의 존재는 무용지물이다. 양질의 콘텐츠와 이를 한데 묶는 기획력이 대구를 제2의 문화도시로 부상하게끔 했고, 여기에는 대구뮤지컬페스티벌(DIMF, 이하 딤프)의 역할이 컸다.

올해로 13회를 맞은 딤프에게 바라는 또 다른 역할은 한국 뮤지컬 시장의 다양화에 앞장서는 것이다. 일획적인 주제를 다루는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딤프가 선보여온 작품들은 톡톡한 아트마켓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공식초청작이자 에디트 피아프의 일대기를 그린 ‘아이 러브 피아프’는 조만간 국내 라이선스 공연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올해 역시 스페인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힙합 뮤지컬 ‘라 칼데로나’나 이브 몽땅의 일대기를 새롭게 풀어낸 프랑스 뮤지컬 ‘이브 몽땅’ 등을 선보이며 신선하다는 호평을 받았다. 폐막작으로는 애초에 ‘지붕 위의 바이올린’으로 소개됐지만, 저작권 문제로 일부 넘버와 제목이 바뀐 러시아 뮤지컬 ‘테비예와 딸들’을 선보였다. 다소 시대와 뒤떨어지는 가부장적인 메시지가 아쉽긴 했으나, 한국에서 유대인 민속 춤과 노래를 접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슬로바키아 노바스쩨나 극장에서 공연되며 동유럽 최초 라이선스 수출이라는 명성을 얻은 뮤지컬 ‘투란도트’는 화려한 무대 연출과 오페라 곡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의 기승전결을 갖춘 넘버로 명실상부함을 알렸다. 이외에도 딤프는 ‘대학생뮤지컬페스티벌’이나 ‘DIMF 뮤지컬스타’, ‘창작뮤지컬 지원사업’ 등 의미 있는 부대 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대학생뮤지컬페스티벌’은 ‘미스 사이공’ ‘렌트’ 등의 명작 뮤지컬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행사로, 전공생들에게 귀한 무대 경험을 제공할 뿐 아니라 많은 관객이 명작을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아쉬운 점은 공연 장소의 기획력이다. 각 공연장이 서로 꽤 먼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축제의 분위기를 한데 느낄 수 없었다. 도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시그니처 행사를 마련함으로써 지역민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권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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