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라예송, 시간의 축적 끝에는

음악과 춤의 찬연한 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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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0월 7일 9:00 오전

벌써 세 번째 작업이다. 작곡가 라예송과 안무가 안성수. 라예송은 2017년 ‘제전악-장미의 잔상’에서부터 안성수 안무가와 함께 작업해오고 있다. 이듬해에는 문화비축기지에 ‘순례: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함께 올렸고, 다시금 국립현대무용단 ‘검은 돌: 모래의 기억’으로 호흡을 맞춘다.

‘검은 돌: 모래의 기억’은 안성수 특유의 탐미주의가 발현되는 작품이다. 안성수는 무용수 본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해, 몸의 언어와 음악 사이의 합일점을 찾아간다. 작품 속 모래는 결국 사람을 뜻한다. 단단한 돌이 한줌 모래로 흩어지기까지, 숱한 우연이 그 시간을 채우는 것처럼, 우연은 우리의 시간 위에 흔적을 남긴다. 마침내 우리는 각자 존재의 고유함을 갖게 된다. 국립현대무용단 안성수 예술감독은 음표들을 춤으로 만드는 탁월한 감각이 있다. 음악과 친하기로 정평이 난 안성수가 벌써 세 번째 호흡을 맞추는 작곡가라니. 라예송은 대체 누구이길래.

안성수 안무가와의 첫 만남, 어땠나.  현재 국립현대무용단에서 활동 중인 무용수 김현의 작업에 작곡가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날 안성수 안무가가 객석에서 공연을 봤다고 한다. 몇 달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안녕하세요. 작곡가님. 안성수라고 합니다.”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원래 안성수 안무가의 팬이었다고.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무용에 관심이 많다. 특히 안성수 안무가의 작품은 음악이 보이는 무용 작품이어서 나에게는 매우 인상적이다. 음악의 힘에 끌려가지 않고 담담하게 음악을 그려내는 작품이라 반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국립현대무용단 신작 ‘검은 돌: 모래의 기억’에 작곡 및 음악감독으로 참여한다. 국립현대무용단과는 ‘제전악-장미의 잔상’에 이어 두 번째로 함께하게 됐다. 안성수 안무가의 말로는 문화비축기지에서 함께 작업한 ‘순례: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의 잔상이 깊어서 다시 함께한다고 들었는데, 세 작업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궁금하다.

음악적 공통점은 모두 전통음악에 사용되는 악기만을 사용해 음악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요즘 창작 국악은 개량된 악기들을 주로 사용하지만, 나는 오히려 더 전통적인 악기를 사용하고 있다. 가야금도 산조가야금을 사용하고 대금도 산조대금을 사용해 음악을 만들었다. 세 개의 작품 모두 다섯 명의 연주자가 연주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세 번의 작업에서 음악의 주제가 각각 달랐기 때문에 다른 심상으로 곡을 만들었다는 점은 차이점이다.

안성수 안무가와는 초기 작업 구상부터 무대에 올리기까지 어떤 식으로 작품을 발전시키나.  다른 작업에 비해 많은 의견이 오가지 않는 편이다. 여태껏 내가 했던 모든 작업 중 가장 말이 없는 작업이다. 아마 안성수 안무가와 서로의 작업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전악-장미의 잔상’ 때는 안성수 안무가의 ‘장미’라는 움직임이 모티브가 돼서 하나의 음악을 만들었다. 그 음악에 안무를 더해서 나에게 주면 다시금 그 안무에 힘을 받아 새로운 음악을 만들었다. 이런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이번 신작도 비슷하다. 다만 이번에는 안성수 안무가가 내 음악에 먼저 안무를 만들어줬고, 그 이후 서로의 음악과 움직임이 동력이 되어 나머지 전체 구성을 완성했다.

‘제전악-장미의 잔상’이란 제목은 라예송 작곡가의 아이디어가 적극 반영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신작에서는 어떤 아이디어가 녹아들었을까.   2017년 ‘제전악-장미의 잔상’ 때 안성수 안무가는 나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줬다. ‘제전악’은 안무가가, ‘장미의 잔상’은 내가 지은 제목이다. ‘검은 돌: 모래의 기억’은 이번 작품을 생각하면서 잠든 어느 날, 새벽에 꿈을 꾸다가 영감을 얻어 ‘모래의 기억’이라는 제목을 제안했다. 안성수 안무가가 생각하고 있던 ‘검은 돌’이란 제목과 잘 어울리더라. 이번 작품에서 나타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아주 적확하게 들어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적확했다는 건가. 제목에는 작은 모래, 수많은 모래에 남아있는 가늠하기 힘든 긴 시간의 축적을 담았다. 커다란 무엇이 쪼개지고 그것이 점점 부서져 모래가 되는 시간과 과정, 결국 그것이 더 작아져 눈으로 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 모래가 처음에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면서 제목을 어떻게 완성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안성수 안무가가 처음 생각했던 제목이 ‘검은 돌’이었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이번 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특정 악기, 혹은 작품의 전체적인 모티브가 된 소재가 있는가.   전체 모티브가 된 소재는 이번 작품에 나오는 한 음악이다. 그 음악의 중심에는 피리 선율이 있다. 안성수 안무가가 그 음악을 좋아해 이번 작품이 발전된 것이어서, 중요한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새로이 도전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계속 무용음악을 재밌게 하고 싶다. 또 개인적으로는 2018년 작곡 발표회를 극의 형식으로 연출했는데, 그쪽을 계속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이다. 작은 음악극을 기획 중에 있다.

이번 작품을 통해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점은. 그동안의 작업이 그래왔듯, 이번 ‘검은 돌: 모래의 기억’에서의 동력으로 안성수 안무가와 또다시 새로운 작품을 하게 됐으면 한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 ‘검은 돌: 모래의 기억’

11월 1~3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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