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독일한국문화원, 한국독일을 잇는 문화 교각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3월 16일 9:00 오전

ART PLACE

주독일한국문화원

한국·독일을 잇는 문화 교각

여행객과 베를린 시민들로 언제나 분주한 포츠다머 플라츠. 10여 년 전만 해도 이 주변은 허허벌판이었는데 최근 들어 전면적인 개발이 진행됐다. 덕분에 육각형의 광장은 현대식 건물들로 둘러싸여 그 모양새가 잘 빠졌다.
그런 신식 광장에서도 오랜 과거의 흔적이 하나 덩그러니 서 있다. 도시 곳곳을 여행하다 보면 흔히 마주치곤 하는 베를린 장벽의 일부다. 들여다보면 장벽의 양옆으로 의문의 돌길이 길게 뻗어 있다. 1961년부터 1989년까지 베를린을 나눈 콘크리트 장벽이 세워져 있던 길이다. 포츠다머 플라츠를 가로지르는 그 흔적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그 한쪽 끝에 주독일한국문화원(이하 문화원)이 있다.


의미심장한 위치에 자리를 튼 문화원은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외국인과 재외국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이다. 전시공간인 갤러리담담, 공연장, 도서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 공연과 미술 전시회, 한국문학의 밤 등의 문화행사를 개최한다. 1층에 작게 마련된 노래방과 비디오방도 꾸준히 방문객을 불러들인다. 2층 도서관에는 다양한 문학 서적과 인문 교양서적, 전공 서적은 물론 어린이를 위한 책들까지 비치돼 있다.
최근에는 내부 공간을 더욱 다채롭게 활용하기 위해 몇 가지 시설이 추가됐다. 1층 리셉션 양쪽으로 대형 스크린을 설치했다. 한국문화원에서 진행된 문화행사의 영상물이나 한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사진 및 영상이 끊임없이 스크린에 흘러간다. 2층 도서관에는 한옥의 문을 모티브로 한 가벽과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바가 추가로 설치됐다. 필요시에 가벽을 설치해 공간을 나누고 손쉽게 정리해 원래의 공간감을 되찾을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다. 가벽이 설치되는 날은 이곳에서 ‘한식 체험의 날’이 개최될 때다.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각종 상업시설이 입주해있는 포츠다머 플라츠의 직장인들을 초청해 잡채 등의 한식 조리를 시연하고 만든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행사다.
문화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한글을 공부하는 세종학당이다. 오프라인으로만 수강 신청을 받아 신청이 시작되는 날에는 문화원 앞으로 지원자들의 대기행렬이 길게 이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필자가 한국문화원을 방문했던 날, 리셉션에는 독일의 젊은 여성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의 굉장히 유창하고도 자연스러운 한국어에 놀랐더랬다. 들어보니 세종학당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해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실력이라고.
문화원의 주 행사들이 열리는 공간은 전시 공간 갤러리담담과 공연장 스페이스 고도다. 지난 1월과 2월에는 ‘현재의 가장자리’전이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번 전시로 갤러리담담은 더욱 특별한 한 해를 시작했는데, 베를린의 대표적인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인 ‘트랜스미디알레 2020’에 처음 참가한 역사를 썼기 때문이다. 100여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인 스페이스 고도에서는 ‘한국 문학의 밤’이나 문화원 기획 공연, 연말이면 재즈 페스티벌 등이 개최된다.
독일의 많은 건물이 그러하듯, 한국문화원 건물에도 중정이 마련돼 있다. 바닥에 깔린 기와를 지르밟고 중정에 들어서면 베를린의 상징 동물인 곰과 한국의 기상을 표현할 때 자주 등장하는 호랑이가 나란히 서 있는 벽화를 만나게 된다. 이 벽에는 포츠다머 플라츠 위에 남아 있던 장벽의 흔적이 그림으로 이어져 있다. 장벽을 비집고 들어오는 손의 움직임은 이토록 역동적으로 다가온다.

 주독일한국문화원 원장 이봉기
과거 베를린을 나누던 분단선 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문화원은 언제 이곳에 설립되었나.
독일에 처음 한국문화원이 들어선 것은 1994년이었다. 통일 이전 서독의 수도였던 본(Bonn)에 둥지를 틀었다. 통일이 이뤄진 지도 꽤 시간이 흘렀는데, 한동안 본에서 한국과 독일 사이 문화교류 업무를 계속했다. 베를린으로 이전한 건 2002년, 이곳 포츠다머 플라츠에 자리를 잡은 건 2009년 일이다. 당시 이전을 결정하기 위해 여러 장소가 선택지에 올라 있었는데, 아무래도 상징적 의미가 있는 이곳으로 오게 됐다.
문화원에서 젊은 예술가를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무엇인가?
미술과 음악에 걸쳐 젊은 한국의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젊은 한국 예술가’라는 타이틀로 마련돼 있다. 매년 7~8월에는 전시 공모를 진행한다. 작년의 경우 4~6명(팀)의 작가가 참여하는 단체전을 기획했는데 무려 240팀이 지원했다. 연말에 개최되는 재즈코리아 페스티벌은 매년 4월에 공모가 시작된다. 작년에는 다른 국가 문화원과 연계해 이 축제에 참여한 세 개 팀의 유럽 투어도 이끌어냈다. 문화원 공간을 활용해 자신을 알린 후 독일의 음반사나 공연장과 인연을 맺으며 의미 있는 결실을 만들어내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현지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예술가들과 로컬 기관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016년부터 개최되어 오고 있는 국제박영희 작곡상도 그런 역할을 수행하나.
박영희 작곡상은 동서양의 악기들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음향을 활용해 창작활동을 이어나가는 젊은 작곡가들을 지원한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국제적 음악 교류에 앞장서 온 재독 작곡가 박영희(1945~) 교수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역시 공모를 받고, 독일과 한국의 교수진들, 그리고 박영희 작곡가에 이르는 심사 과정을 거친다. 작년엔 시상과 갈라 콘서트를 베를린 필하모니 캄머홀에서 진행했다. 이를 눈여겨본 에센 지역의 나우 페스티벌(Das NOW-Festival in Essen)에서 입상팀 전체를 올해 10월에 열리는 축제로 초청했다. 이를 계기 삼아, 축제에서 박영희, 윤이상 작곡가의 작품과 두 명의 한국 작곡가에 작품을 의뢰해 공연할 계획을 꾸리고 있다.
박영희 작곡가가 2019년 베를린 예술 대상을 수상하고,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오스카 4관왕을 거두는 등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예술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문화원을 향한 관심으로 이어지던가.
각종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가시적인 변화는 못 느끼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독일인들은 급히 뜨거워진다기보다 오래 지켜보는 성향을 갖고 있다. 차분하게 효과가 드러날 것이라고 본다. 다만 시기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아, 진행 예정이었던 영화 관련 행사들은 조금 앞당길 계획이다.
문화원 공간에서 가장 사랑받는 곳은 어디인가.
주로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 문화원을 찾는 사람이 많다. 한국에 관한 자료를 간편하게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나도 도서관을 지날 때 편안함을 느낀다. 한국어로 된 서적들이 줄지어 늘어져 있는 풍경과 목조로 이루어진 공간이 그런 감상을 주는 것 같다. 그런데 도자기와 전통 악기를 전시해 놓은 좁은 복도에서 우리의 정취를 강하게 느끼곤 한다.
글 박찬미 사진 주독일한국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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