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조피 무터
코로나 확진, 그 이후 완치까지
세상에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웃음도 울음도 마스크에 갇혔다. 안네 조피 무터의 얼굴도 마스크에 가려졌다. 지난 4월,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 중인 그와 전화로 만났다. 그는 말한다. 지금이야말로 내가 음악가가 된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겠냐고
처음이다. 겨울은 이미 다 지나갔는데, 마음이 이처럼 추웠던 적은. 벚꽃은 이미 피고 지고, 따뜻한 날씨에 옷은 점점 가벼워지는데, 마스크의 무게는 여전히 무겁다. 세상에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웃음도 울음도 마스크 뒤로 갇혀버렸다.
3월 23일, 플라시도 도밍고(1941~)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감염 사실을 알리며 “자신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의 지침과 규정에 따르십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그로부터 3일 후인 26일, 이번엔 안네 조피 무터(1963~)였다. 무터는 뮌헨 자택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통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전했다. 집에서 자가격리 중이라 밝힌 그는 “곧 다시 무대에 서 여러분을 위해 연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모든 예술가에게 굉장히 힘든 시기이지만, 더 나은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라는 말을 더했다.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묻어나왔지만, 목소리는 의연했고, 나보다 타인을 향한 걱정어린 시선에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소식을 듣고 걱정이 앞섰다. 완치자만큼 사망자 수도 계속 늘어나고 있었으니까. 그다음으로는 ‘왜?’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공인으로서, 특히 타인과 접촉이 많은 연주자로서 굳이 이 사실을 알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더구나 그는 코로나19가 급격히 퍼지기 시작했던 2월, 여전히 일본과 독일, 영국 연주를 이어갔던 터라 따가운 눈초리를 받을 수도 있었다.
영상으로 소식을 전한지 일주일이 조금 지난 4월 6일, 안네 조피 무터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한국 시각으로 오후 5시, 독일시각으로는 오전 10시. 전화 너머로 밝고 경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Hi, Ms. Lee!” 그렇게 한 시간가량의 전화 통화가 시작됐다.
무대가 아닌, 동영상 속의 무터
동영상을 통해 보여준 의연한 태도에 많은 팬들이 안심했고, 응원을 보냈다. 그러나 한편으로 굳이 직접 영상으로 감염 사실을 알렸는지 궁금하다. 어떠한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난 사실 다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우리 사회를 잠식한 이 상황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내가 영상을 올린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나처럼 증상 없이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고, 두 번째로는 이것이 세상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코로나19 확진자 중 80퍼센트 이상이 나처럼 가벼운 증상을 앓고 있고, 건강상 큰 문제가 없었다면, 꽤 쉽게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3월 초까지 일본과 독일, 영국에서 연주하지 않았나.
일본에 갔던 것은 한 달 전이었고(2.20~24/도쿄·나고야), 뮌헨에 돌아왔을 때(3.5·6/가스타익)도 아주 건강한 상태였다. 증상이 없었는데도 검사를 받은 이유는 무엇이었나. 어느 날 밤에 몸이 살짝 따뜻하다 할 정도로 체온이 올랐다. 다음 날 다시 정상 체온으로 돌아왔고, 이 외에 별다른 증상은 없었지만,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의사를 찾아갔다. 혹시 내가 바이러스를 옮기고 다닐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의사는 기침·재채기·근육통·두통 등에 대해 질문했다. 그중 아무것도 해당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양성 반응이 나왔다. 그리고 이미 주변의 두 사람을 감염시켰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행인 부분은, 이미 주변과 거리를 두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영상을 통해 코로나19에 감염된 사실을 알린 것이 3월 26일이었다. 처음 양성 판정을 받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곧 죄책감이 따랐다. 내가 누군가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패닉 상태에 빠졌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바이러스가 내 ‘몸’이 아닌 ‘정신’을 감염시킨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많이 당황했던 것 같다.
안정을 찾곤 결단을 내렸다.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고, 잘 이겨내겠다고 다짐했다. 건강을 위해 더 많이 노력했는데, 동료인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에게 받은 한국 홍삼액이 큰 도움이 됐다. 요즘엔 평소보다 두 배로 먹고 있다. 내 생명의 은인이자 내가 추천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이다.(웃음)
현재 몸 상태는 어떤가? 아주 좋다. 집에서 혼자 격리되어 지낸 시간 동안에도 가능한 한 많이 움직이려 했다. 물론 처음 며칠 동안은 매우 피곤했지만, 약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요 몇 주간 날씨가 굉장히 좋아 창문도 열고, 집 안의 작은 정원에서 몇 발자국 걷기도 했다. 격리 중 느낀 소소한 행복이었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을 텐데,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다.
그동안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지금 ‘잠시 멈춤’이 된 상황이다. 내 삶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기회였다. 내가 찾은 것들은 ‘가족’과 ‘사람’ ‘함께 보내는 시간’, 그리고 ‘서로를 향한 공감’이다. 내 안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가족을 돌아보며, 소중한 사람들과 서로 더 돈독한 관계를 맺는 것.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이다.
독일 현지 분위기는 어떤지도 궁금하다.
지난 며칠간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두 시간마다 뉴스를 확인하고 있는데,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 있자면 아주 우울하고 무력해진다. 그러나 사실을 직면하고, 그 이유와 대처방안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현재 독일의 확진자 수는 10만 명이 넘었고, 사망자도 늘었다. 증가율은 점점 낮아지는 듯하지만, 끝은 아니라고 본다. 시작이 아닌 중간 지점에 있는 것이기를 바랄 뿐이다.
코로나19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국경을 넘나들며 매일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예술가에게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건강하게 먹고, 많이 움직인다. 걷는 것을 좋아한다. 반려견 두 마리와(슬프게도 한 마리는 작년 11월에 떠나보냈다) 함께 산책하며 신선한 공기를 마신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고, 불필요한 약도 먹지 않는다. 홍삼과 비타민 정도. 본래 감기에 걸려도 잘 이겨낼 정도로 건강한 체질이다.
연주자로서 피할 수 없는 긴장감 또한 스트레스의 원인 아닌가.
그래서 외적 활동만큼 긍정적인 마음이 중요하다. 몸과 정신은 하나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은 반대로도 적용된다. 문학과 미술, 음악의 필요성을 여기서도 찾을 수 있다. 모두 영혼의 양식이지 않나.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는 것도 좋지만, 공원에서 나무를 키우는 것이 어쩌면 우리 영혼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지금, 음악이 줄 수 있는 것
무터는 올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며 베토벤의 다양한 레퍼토리로 미국과 유럽, 아시아 투어를 진행 중이었다. 오랜 음악적 파트너인 피아니스트 램버트 오키스를 비롯해 최예은·블라디미르 바베슈코·다니엘 뮐러 쇼트·예핌 브론프만·막시밀리안 호르눙·카티아나 부니아티쉬빌리·파블로 페란데스 등과 유럽, 미국, 아시아에서 소나타·실내악·협주곡을 선보였다. 이는 올 하반기까지 계속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3월 13일 이후의 공연들이 취소됐다. 무터는 대신 자택에서 촬영한 연주 영상을 SNS와 유튜브를 통해 공유했다. 현의 여제는 편안한 차림이었고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아들과 함께 연주한 바흐-구노의 ‘아베 마리아’는 마음의 치유를, 런던 필 단원과 함께 한 베토벤 현악 4중주 10번은 긍정의 힘을 불러일으켰다.
첫 번째 영상 속 연주가 바흐-구노 ‘아베 마리아’였다.
이탈리아의 수많은 의료진이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이 음악을 나누고 싶었다. 이 곡은 내 ‘음악적 기도’다. 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기도이자 우리가 잃은 사람들을 위한 기도. 내게 의미가 있는 곡이라 더욱 세상과 나누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몇 달 전에도 아들과 함께 오스트리아의 한 교회에서 이 곡을 연주했는데, 아이의 아빠였던 데트레프 분더리히의 25주기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내게 이 작품은 이중적 의미가 있다. 그의 죽음과 아이들의 삶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생의 그 무엇도 아주 끝나버리는 것은 없다. 단지 변화할 뿐.
런던 필 유튜브 채널을 통해 선보인 베토벤 현악 4중주 10번도 인상적이었다. 4개로 분할된 화면에 당신과 런던 필 단원 피터 쇠만(바이올린), 리처드 워터스(비올라), 크리스티나 블라우만(첼로)이 등장하는데.
각자의 집에서 녹음했다. 먼저 내 부분을 녹음하고, 이를 바탕으로 피터, 리처드, 크리스티나가 연주를 더해갔다. 첫 경험이었는데, 지금 같은 시기에 음악을 공유하는 꽤 괜찮은 방법 같다. 아주 이상적이진 않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이런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게 아주 기쁘다. 미국에 있는 동료들과도 시도해볼 계획이다.
바이러스 확산으로 영상 등의 새로운 대안 콘텐츠가 활발해지고 있다. 일부는 ‘무관중 공연’을 시도하고 있고. 이런 시도가 향후 클래식 음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하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 스트리밍은 아주 괜찮은 대안이지만, 아직 ‘산업’의 규모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결코 라이브 연주를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위기가 지난 후 무대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이전보다 더 폭발적일 것이라 믿는다. 그 시간이 너무나 기다려진다. 어둠에서 빛으로,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이다.
지금 같은 시기에 사람들은 힘을 얻을 수 있는 음악을 더 원할 것이다.
바흐와 베토벤의 작품을 들어보길 추천한다. 당신이 필요한 무언가를 건네는 순간이 있을 거다. 베토벤 ‘장엄 미사’와 피아노 협주곡 5번의 느린 악장, 삼중 협주곡은 물론이고, 바흐의 칸타타를 통해 정화됨을 느낄 수 있다. 바흐의 코랄은 마음을 풍성하게 채우고 싶을 때마다 듣고 있다. 바흐, 베토벤, 혹은 그 어떤 음악도 좋다. 그 순간 당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있다면 말이다.
아픔의 시대.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음악이 있는 곳이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특히 자유를 특권으로 삼았지만, 소속 없이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연주자들에게는 더더욱 힘든 시간일 것이다. 예술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오케스트라 단원처럼 일정한 수입이 없는 프리랜서거나 사회보장제도 아래 보호받지 못하는 음악가들에게는 특히 더 큰 문제다. 많은 나라가 이들을 위한 대책을 찾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에 허덕이는 내 젊은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이 부분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안네 조피 무터 재단(www.anne-sophie-mutter.de)에서도 이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 하지만, 이건 음악가들만 겪는 고통이 아니다. 많은 중소기업과 작가, 화가, 갤러리에도 닥친 문제다. 대형 미술관이 폐관했고, 오케스트라도 큰 손실을 겪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번 위기는 완전히 재앙이 될 것이다.
젊은 음악가들에게는 더욱더 힘든 해가 될 것이다. 무대의 발판이 되는 콩쿠르가 대부분 연기되었고, 공연장도 문을 닫았으니. 좋은 멘토가 필요한 때다.
콩쿠르가 연기된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운동선수들에게 올림픽이 연기된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삶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고, 다음에 또다시 닥칠지도 모를 전염병에 잘 대비하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봐라. 수많은 사람이 직업을 잃고 있다. 지금은 생존에 관한 문제가 더 크다. 의학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살아남기. 지금은 서로 돕고, 공감하고, 안아줄 때다.
육체적 질병이 정신적 질병과 사회적 아픔으로 이어지는 시간이다. 이때야말로 예술의 역할이 있을 것 같은데.
음악은 아주 멋진 전 세계 공용어다. 모든 드라마와 감정을 담은 음악은 우리를 연결하고, 소통할 수 있게 한다. 베토벤을 생각해 봐라. 그의 ‘환희의 송가’는 모든 삶에는 어두운 순간과 투쟁이 존재하지만, 반드시 승리한다고 이야기한다. 작곡가 존 윌리엄스(1932~)는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Forward and upward it must go)”고 말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음악이 있는 곳일 테다. 사회에는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 살아가는 방법이 만든 수많은 벽이 존재한다. 다양성이 존재하는 것은 멋지고 감사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서로를 갈라놓거나 다투게 만든다. 반면 음악은 우리가 동등하게, 함께 즐길 수 있는 유일한 플랫폼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예술가와 그 역할은 무엇인가.
자유로운 움직임이 불가능한 지금도 음악가들은 여전히 바쁘게 지낼 수 있다. 새로운 작품을 찾아 공부하고 연습하고, 연주하면서. 그러나 우리가 음악가가 된 이유는 음악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다. 얼마 전 뉴욕 필 단원들이 유튜브에서 라벨 ‘볼레로’ 연주를 선보였다. 코로나19 최전선에 있는 의료진을 향한 감사의 메시지였다. 사회에서 음악과 음악가가 가지는 의미와 위치를 바로 여기서 알 수 있지 않을까. 음악은 자신의 명예나 인기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음악은 공감이고, 사랑이며, 함께 나누는 기쁨이다.
글 이미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