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김주원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11월 9일 9:00 오전

FOCUS

발레리나 김주원

인연은 귀하고 소중하여

 

국립발레단 퇴단 후에 만난 예술가들과의 인연

2012년, 발레리나 김주원은 15년간 춤을 췄던 국립발레단을 떠났다. 백조가 백조의 성을 떠났을 때 다들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날았던 그는 가장 낮은 곳을 택했다. 밑에서부터 하나씩 새로운 커리어를 쌓기로 결심한 것.

성을 떠나 날개를 펼친 그는 더 자유로워 보인다. 김주원이 뮤지컬에 섰을 때도, 연기에 도전했을 때도, 작품을 제작했을 때도, 사람들은 더 훨훨 날라고 박수를 보냈다. 그렇게 8년이 흘렀다. 김주원은 부단히 날갯짓했다. 어느덧 대중의 기억 속에는 발레리나 김주원이 아닌, 아티스트 김주원이 서있다. 김주원이 뭐를 해도, 이제는 김주원이니까 할 수 있다는 공식이 뇌리에 새겨진다.

김주원이 나는 법을 새로이 배울 수 있던 건, 온전히 귀한 인연들 덕이다. 어느 순간 옆을 봤을 때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억겁의 스침이 있어야 만들어진다는 인연. 그 속에서 다음 인연에 대한 소망의 날갯짓이 피어났다. 올가을, 김주원은 정동극장 개관 25주년 기념 공연으로 ‘인연’을 소재로 한 작품을 올린다. 정동극장 연습실에서 그와 만나 차분히 대화를 나눴다.

 

‘객석’과는 오랜만에 인터뷰다. 국립발레단 퇴단 후 진행된 2012년 인터뷰가 마지막이더라. 벌써 8년 전인데.

당시 인터뷰에서 “10년 뒤에는 ‘멋진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밝혔던 것 같다.(웃음) 사실 멋진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욕심보다는, 멈춰있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어느덧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수식어를 뗀 지도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간의 시간 동안 ‘멋진 아티스트’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는지?

전혀. ‘힘든 아티스트’라는 표현이 딱 맞다. 한순간도 멋지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몸은 점점 나이가 드니 더 노력해야 했고 큰 부상도 있었다. 그저 열심히 살기 위해 힘썼다. 그래도 ‘좋은 아티스트’가 뭔지는 알게 된 것 같다.

‘좋은 아티스트’는 무엇일까?

‘좋은 사람’일 것이다. 예술에는 내가 현실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이 녹아든다. 평상시에도 진심이 담긴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15년간 국립발레단 주역 무용수로 활동했을 땐 발레단 스태프들이 만들어주는 울타리 안에서만 춤을 췄다.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상황이었는지 이제는 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가시적으로 크게 달라진 점은 ‘춤추던 무용수’에서 ‘춤추는 환경을 조성하는 제작자’가 됐다는 건데.

예술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모든 순간이 힘들더라. 국립발레단을 나온 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벽에 부딪힌다.

뮤지컬 ‘팬텀’이나 연극 ‘라빠르트망’에 도전하기도 했고, 총체극이라 불린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도 참여했고…. 이제 김주원을 단순히 무용수라고 부르기에는 좀 민망하다.

나에게 가장 편한 건 춤추는 것이다. 연극은 표현의 수단이 춤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다른 장르에 도전할 때, 춤출 때 작품에 다가가는 감정으로 임하려고 했다. 연극은 계속 도전해보고 싶다. 대사를 하다 보면 춤에 공부가 될 만한 좋은 감정들을 많이 느낀다. 이외에도 김주원으로 인해 시너지 효과가 난다면 어떤 형태의 프로젝트라도 열린 마음으로 함께하고자 한다.

국립발레단 퇴단할 때만 해도 ‘발레 대중화’에 힘쓰고 싶다는 열망을 내비쳤다. 지금도 그런가?

내가 활동할 당시 국립발레단이 지향하는 슬로건은 ‘발레 대중화’였다. 그 중심에서 춤을 췄던 사람이라 관객과의 교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발레를 알리기 위한 고민은 언제나 지속되고 있다.

이번 작품 ‘김주원의 사군자_생의 계절’에서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로 참여하게 됐다. 작품에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나?

정동극장 개관 25주년 기념 공연으로 올라가는 작품이지만, 사실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구상해온 작업이다. 처음 지이선 작가와 함께 콘셉트를 상의하고 창작진을 구성했다. 한국적이지만 세련된 감각을 살리고 싶어서 정구호 예술감독과 정재일 음악감독을 섭외했고, 춤과 대사가 함께 있는 공연이기에 박소영 연출가, 박해수·윤나무 배우와 함께하게 됐다. 극장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세종문화회관에서 탱고 공연을 올릴 때 좋은 호흡을 나눴던 김희철 본부장이 정동극장 대표이사로 부임하여 이 작품을 제안했다. 정동극장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잘 맞을 것 같다.

직접 출연하기도 했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이지나 연출이 ‘총체극’이란 표현을 썼다. 이번 작품도 그렇고 동시대는 장르 경계가 혼합된 예술 작품이 쏟아지고 있다.

이미 해외 무용단에선 30년 전부터 이런 작업을 해왔다. 유럽 단체들을 보면 무용수가 40%, 배우가 40%, 가수가 20%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연극을 공부한 마츠 에크(1945~)가 쿨베리 발레를 세계적인 무용단으로 성장시킨 것만 봐도 그러하다. 국립발레단은 창단 역사가 고작 58년이다. 클래식 발레를 알리는 데만 50년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앞으로는 다양한 형태의 공연이 더욱 늘어나리라 예상한다.

‘사군자_생의 계절’은 ‘창작발레’로 분류해도 괜찮을까?

작품의 장르를 아직 정하지 못했다. 춤과 대사, 음악, 무대미술 모두 중요하기에 어떤 한 장르라고 표현하기가 어렵다. 정동극장에서도 장르 규정 없이 작품 자체만으로 평가되길 바라는 듯하다.

정동극장에선 ‘아티스트 김주원의 한국적 색채가 담긴 창작활동의 출발점’이라고 홍보하던데, ‘한국적’이라는 표현에 대한 부담은 없는지?

서양 예술인 발레를 해왔지만 난 한국 사람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뿌리에 대한 생각이 늘 있었다. 어릴 때 러시아 발레학교로 유학을 갔는데 러시아에서는 발레를 포함해 러시아 민속춤을 가르쳤다. 그러면서 나의 근원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특히 한국무용수들의 움직임과 호흡, 그 감정의 깊이를 닮고 싶다는 열망도 생겼다. ‘백조의 호수’를 추더라도 내가 가진 정서로 표현하고 싶었고, 그 정서가 한국적 색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이전 작품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김주원의 탱고발레’ 시리즈를 올렸다. 탱고에 이어 한국춤이라니…. 민속적인 춤에 관심이 깊다고 느껴지는데.

단지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걸 하는 것이라 생각해 주면 좋겠다. 탱고는 러시아 유학 시절부터 좋아했고, 피아졸라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탱고에는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한의 정서’ 같은 우여곡절이 담겨 있다. 이민자의 설움 같이 한국인의 감정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어서 어릴 때부터 감명 깊었다. 이제는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졌으니 예전부터 관심 있던 것들을 작품으로 차근차근 만들고 싶다.

이번 공연은 김주원의 귀한 ‘인연’이 이어져 탄생한 작품인 듯하다. 작품의 주된 소재도 ‘인연’인데.

순간순간 만나는 모든 인연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좋은 인연으로 발전하지 못하더라도 모든 순간은 특별하다.

작품 속 ‘인연’도 김주원이 인연을 대하는 자세를 말하는 걸까?

그런 것 같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 종종 사는 게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한테 받는 상처는 당최 적응할 수가 없고, 이별은 여전히 아프다. 행복했던 상황이 사라지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살아야 되더라. 또 그 시기를 넘기면 살아지더라. 그런 생각을 해봤다. 내가 한 번 더 삶을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열심히 살 것 같다는…. 그러다 보니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다. 이 얘기를 작품에서 하고 싶다.

끝으로, 성신여대에서 가르치는 제자들의 성향은 어떠한가? 미래 세대 예술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텐데, 본인의 학창 시절과 비교했을 때 다른 특징들이 있는지.

지금 가르치는 성신여대 학생들은 참 성숙하다. 각자의 철학이 있고 어른스럽다. 오히려 내가 철이 안 든 건가 느껴질 때도 있다. 20대에는 현명한 친구들이 많아서 앞으로의 미래가 밝다고 본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정동극장

 

‘김주원의 사군자_생의 계절’

10월 22일~11월 8일 정동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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