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EKSUK’S EYE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미국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1월 4일 9:00 오전

GAEKSUK’S EYE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미국

GAEKSUK EYE from AUSTRIA

 

발레 ‘말러, 라이브’ ©Ashley Taylor

비대면 신년맞이

빈 슈타츠오퍼가 내놓는 무료 공연

세계 정상의 빈 슈타츠오퍼가 비대면 오페라로 신축년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오페라단은 제1차 코로나 록다운으로 극장 문을 닫은 가운데 지난 7월 신임 총감독 보그단 로슈치치(1964~)와 발레단 단장 마르틴 슐레퍼(1959~)를 맞았다. 두 사람은 내년 봄 시즌까지 임기가 남은 지휘자 필리프 조르당(1974~)과 함께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으로 화려한 취임 공연(2020.9.7)을 가졌다. 세 사람은 팬데믹 속에서도 10개의 ‘방역 공연’을 힘겹게 밀고 나갔다.

그러나 11월 3일 제2차 록다운이 시작되자 재빨리 비대면 공연 체제로 들어갔다. 오스트리아 국영방송 문화예술국장(ORF III) 출신인 보그단 로슈치치 총감독과 국영방송 알렉산더 브라베츠 총국장은 11월 26일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청중과의 지속적 소통을 위해 12월 4일부터 2021년 1월 3일까지 5개 작품을 방영한다”고 밝혔다. 해당 공연은 2021년 4월까지 유튜브를 통해 시청할 수 있다.

첫선 보인 슐레퍼 단장

12월 4일, 오스트리아 공영방송(OFR)와 프랑스·독일이 함께 출자한 아르테(Arte)로 ‘말러, 라이브(Mahler, Live)’가 방영되었다. 스위스 농가 출신으로 독일 뒤셀도르프의 암 라인 테아터 발레단장을 지낸 마르틴 슐레퍼의 취임 첫 안무작이다. 발레 ‘말러, 라이브’ 중 ‘말러’는 말러가 19세기에 편찬된 게르만 민요집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Des Knaben Wunderhorn)’의 악상에 기초해 작곡했다는 교향곡 4번에 안무한 것이다. 음악처럼 슐레퍼의 안무도 소년 시절의 마술과 마법의 세계를 오늘날 현실로 표상한 것처럼 느껴진다. 흑색 무용수들의 어지럽고 난폭한 마법에 백색 무용수들의 선함과 빛의 의지가 맞붙어 혼돈의 마법세계를 초극하려는 춤사위를 펼쳤다. 발레 마지막 부분에 사용한 민요 ‘천상의 삶(Das himmlische Leben)’은 소년을 대신한 소프라노 슬라브카 자메치니코바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부른다. 팬데믹을 물리치는 환희의 춤이요, 노래 같았다. 두 주연 무용수 레베카 호너와 카토 유코를 비롯해 100여 명의 발레 단원이 전원 출연한다. 악셀 코버(1970~)가 이끄는 빈 필하모닉이 협연했다.

‘말러, 라이브’ 중 ‘라이브’는 현대발레의 역사로 불리는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NDT)의 공동창립자이자 88세 최고령 안무가 한스 반 마넨(1932~)의 1979년 안무작이다. 이 작품은 리스트의 ‘탄식’ 등 낭만적인 5개 피아노 소품으로 구성된다.

이번 빈 초연에선 장면을 약간 변경했다. 네덜란드에서 온 발레리나가 빈 슈타츠오퍼에서 고독하게 춤을 춘다. 한 카메라맨이 밀착 촬영을 한다. 현대발레 역사상 처음 시도한다는 무용수의 후면(後面)이 무대 화면에 흑백 영상으로 동시에 상영된다. 상대역의 남자 무용수가 나타나 함께 연습하는 중 엉뚱한 짓을 하려다 뺨을 맞는다. 여자 무용수는 코트를 껴입고는 극장을 떠난다. 일상의 사건으로 발레를 만드는 마넨의 특징을 볼 수 있다. 무용수 올가 에시나·마르코스 멘하, 피아니스트 시노 다키자와가 출연했다.

 

푸치니 ‘토스카’

온라인으로 만나는 초연작

12월 13일 ORF에서 방영된 푸치니의 ‘토스카’는 초호화 캐스팅으로 가득했다. 빈 슈타츠오퍼가 자랑하는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토스카)와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카바라도시), 베이스바리톤 볼프강 코흐(스카르피아), 지휘에 전 오스트리아 국립방송교향악단 상임지휘자 베르트랑 드 빌리(1965~)가 오른다.

14·15일에 ORF와 빈 슈타츠오퍼 홈페이지를 통해 초연된 헨체의 오페라 ‘배반의 바다(Das Verratene Meer)’는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1925~1970)의 소설 ‘오후의 예항’(1963)을 원작으로 한다. 한스 울리히 트라이헬(1952~) 대본에 한스 베르너 헨체(1926~2012)가 작곡했다. 전후의 천재 작가였으나, 천황주의자로 할복해 자결한 미시마의 소설을 옮긴 이 오페라는 남편과 사별한 과부 후사코, 13세 아들 노보루, 선원 류지 사이의 갈등을 그린다. 후사코와 류지의 사랑을 반대한 노보루는 이들이 결혼하자 복수를 계획한다. 결국 갱단 두목에게 도움을 청해 류지를 독약으로 살해하고 만다. 독일에서 활약 중인 카운터테너 김강민(Justin Kim)이 갱단 소속의 암호명 ‘넘버 투’로 출연하고 시몬 영(1961~)이 빈 필을 지휘한다.

ORF에서 12월 27일 방영되었던 R. 슈트라우스 ‘장미의 기사’에 소프라노 카밀라 닐룬드(마샬린), 메조소프라노 소피 코크(옥타비안), 베이스바리톤 볼프강 방클(옥스 남작), 소프라노 첸 레이스(소피) 등이 출연해 열연했다. 연출 오토 쉥크(1930~), 빈 필 협연, 지휘는 알랭 알티놀뤼(1975~)가 맡았다. 비대면으로 맞이하는 새해 2021년 1월 3일 ORF에서 방영되며 신년 첫 작품이 될 마스네 ‘베르테르’에는 빈에 처음 소개되는 얼굴이 많다. 테너 표트르 베찰라는 처음으로 주인공 베르테르 역을 맡았다. 여주인공 샤를로테 역의 메조소프라노 가엘르 아르퀘즈는 빈 데뷔 무대다. 이외에 베이스바리톤 마르쿠스 펠츠(르 바일리), 바리톤 클레멘스 운터라이너(알베르트), 소프라노 다니엘라 팔리(소피) 등이 출연한다. 오페라의 특색은 베르테르보다도 그를 향한 사랑으로 고민하는 샤를로테에 중점을 둔 것이다. 안드레이 세르반(1943~)이 연출하고, 베르트랑 드 빌리(1965~)이 지휘한다. 신년 행사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1월 1일 오전 11시 빈 무지크페라인에서 열리는 신년음악회이다. 이번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는 리카르도 무티의 지휘로 열린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곡 등으로 진행되는 신년음악회는 무관중으로 전 세계 90개국에 중계될 예정이다. 글 김운하 (‘새로운 한국’ 발행인·‘재오한인’ 편집고문)

from GERMANY

극장의 새 단장

현재 프랑크푸르트 극장의 모습 ©Wolfgang Runkel

보수공사의 빛과 그림자

지난 12월 8일 프랑크푸르트 건축박물관에서 소동이 있었다. 이날의 행사는 새로운 오페라극장과 연극극장을 주제로 한 ‘시민의 대화’였고, 시 문화담당 책임자이자 새로운 오페라극장 건설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이나 헤르트비히의 참석 하에 진행될 예정이었다. 문제는 사운드 엔지니어라 속이고 행사에 진입하려 한 한 남자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실랑이 끝에 문제의 남자는 박물관 직원의 손을 물고, 급기야 그를 내쫓으려는 페터 카숄라 슈말 건축박물관 관장의 마스크를 벗기고 그의 얼굴을 가격했다.

 

 

 

금융가에 새롭게 건설될 프랑크푸르트 극장의 모습 ©gmp Architekten von Gerkan_ Marg und Partner

프랑크푸르트의 소동

폭행 피해자인 직원과 관장은 가해자를 무단 침입 및 폭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슈말 관장은 가해자가 일행과 카메라맨을 동행했기 때문에 이는 “계산된 행동”으로 의심된다고 언론에 밝혔다. 자신도 폭행당했다 주장하는 가해자는 새로운 극장 건설을 반대하고 기존의 극장 보존을 요구하는 단체 ‘프로 리컨스트럭션’의 대변인 마티아스 뮌체였다. 그는 국제 건축 관련 저널리스트로 그간 자신들이 던져온 ‘중요한’ 질문이 검열되는 것을 발견했다며, 영화 제작자와 함께 이 행사를 촬영하고 관련자들을 인터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단체를 비롯한 문화재 보호주의자들은 프랑크푸르트 극장의 새로운 건축을 반대하고 있다. 반대의 가장 큰 이유는 막대한 건축비용 때문이다. 그들은 기존 건물을 더 보강하고 특히 ‘백스테이지’를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20년 1월 프랑크푸르트 시의회는 극장을 개보수하는 비용보다 새로운 극장을 짓는 것이 더 저렴하기 때문에 현 극장을 철거하고 새로운 극장을 짓기로 했다. 현 극장은 1963년에 완공되어 대화재를 겪은 후 1991년에 보수공사를 했다. 그러나 당시 에어컨, 환기 및 난방 부분은 보수되지 않았기 때문에 근 30여 년이 지난 지금, 완전히 구식이 되어버렸다.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고 인정받은 120미터의 유리로 된 로비에도 큰 결함이 있다고 보고됐다.

새로운 극장을 짓는 것에는 정치권이 합의했지만, 헤르트비히가 속한 사회민주당(SPD)은 유럽 금융의 중심지 프랑크푸르트의 은행들이 몰려있는 구역에 새로운 오페라하우스를 건설하고자 한다. 기존 극장 자리는 연극극장과 도시적인 녹지로 구상 중이다. 계획대로라면 월스트리트 같은 금융가에 현대미술관, 세계문화박물관, 그리고 콘서트홀(알테 오퍼)과 오페라하우스가 녹지와 함께 자리 잡게 된다. 반면 기독민주당(CDU) 측은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 홀처럼 마인 강가에 있는 극장을 주장한다. 그래서 유럽중앙은행 근처 오스트하펜(동쪽 항구)의 거대한 건축자재창고를 눈여겨보고 있다. 과연 헤르트비히의 야심만만한 큰 꿈이 실현될 것인지 추이가 주목된다.

만하임 극장 ©Christian Kleiner

뜨거운 논쟁 속 만하임

한편 만하임 극장은 빠르면 2022년에 보수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1839년부터 시의 재정으로 운영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립극장인 만하임 극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받았고, 1957년 현재의 건물로 다시 태어났다. 1990년에 마지막 보수공사를 했지만, 긴급한 안전 결함을 제거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30년이 지난 현재, 이곳은 건물과 무대 기술 시스템의 현대화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화재 예방 및 안전 시스템의 결함으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2018년 의회는 보수비용으로 2억 유로의 예산을 결정하고 연방정부로부터 1억 2천만 유로의 자금지원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2020년 7월, 시의회는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4,700만 유로를 더 투입하기로 승인했다. 건설비용의 인상과 오케스트라 리허설 룸의 설계 조정 등이 이유였다. 만하임 극장은 홈페이지에 보수공사에 대한 Q&A를 상세하게 올려놓았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공사이니만큼 시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고 있다.

 

보수공사가 진행 중인 아우크스부르크 극장 ©Karl-Josef Hildenbranddpa

진통 중인 아우크스부르크

현재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인 아우크스부르크 극장은 그야말로 진통을 겪고 있다. 1950년대에 지어진 이후 제대로 보수공사를 한 적이 없는 이곳은 거의 10년에 달하는 계획 끝에 2015년에 보수공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2014년에 추정한 금액은 2억 3,500만 유로였지만 이듬해 비용 절감을 결정하며 1억 8,900만 유로로 예산을 확정했다. 이때 시 당국은 건설금액 인상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2020년 6월, 당초 계획했던 건설비용보다 많이 인상된 3억 2,100만 유로가 필요하다고 했다. 가장 큰 인상요인은 건축비용의 상승이지만, 코로나 시대에 과연 이런 막대한 지출이 필요한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건축가와 집행부는 지하 4층을 백지화하는 등 지난 1년간 비용 절감에 노력했다. 전문가들은 기술 부분의 비용 절감은 향후 극장의 미래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에바 베버 시장은 “극장은 도시의 문화와 경제 측면에서 높은 부가가치를 가지고 있다”며 그 필요성을 피력했다. 하지만 일부 시민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극장 개보수에 반대하는 ‘아우크스부르크 시민연대’는 건설 중단을 위한 시민 투표를 요구하고 있고 캠페인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내부 보수 공사 중인 쾰른 오페라극장

보수공사를 마친 쾰른 오페라극장 외부 전경

갈 길이 먼 쾰른

2012년에 공사를 시작해 본래 2015년에 완공되어야 했지만, 쾰른 오페라극장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헤리에테 레커 시장은 이를 ‘재해’라고 표현했고, 언론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비꼬고 있다. 초안은 기존의 오페라 극장은 리모델링하고 연극 극장을 새로 짓는 것이었다. 초기 예상 비용은 2억 8천만 유로.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문화를 위한 용기’라는 단체가 짧은 시간 안에 대중을 설득하고 일부 정치인을 동원하는 등 여론몰이를 했다. 2010년 시의회는 기존 결정을 뒤집고 극장을 보존하고 개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역사적인 구조물을 보존하고 현재의 안전 규정 및 기술적인 사항에 맞게 건물을 개보수하는 과정은 새로운 건물을 짓는 과정보다 훨씬 복잡했다. 현재 진행형인 이 혼돈 상태는 2023년을 기약하고 있으며, 현재까지의 공사비용은 약 8억 4,100만 유로에 달한다. 쾰른의 납세자협회는 이제까지 쾰른의 그 어떤 프로젝트도 이 극장 보수공사만큼 많은 세금을 낭비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이에 대한 부담은 시민들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베를린 슈타츠오퍼의 해피엔딩

베를린 슈타츠오퍼 ©Gordon Welters

베를린 슈타츠오퍼 내부 ©dpa

2017년에 마친 베를린 슈타츠오퍼의 보수공사를 두고 독일의 유력지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아마도 돈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1.1’과 ‘1.6’ 그리고 ‘4억 유로’는 슈타츠오퍼 개보수 과정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더 나은 음향을 위해 대극장의 천장을 5미터 올리는 등 개보수 결과 잔향은 1.1초에서 1.6초로 늘어났고 연주자들과 관객들의 만족도는 컸다. 재개관 후 슈타츠오퍼는 관객을 무섭게 빨아들였다. 2014년 난방·환기 등을 담당한 회사가 파산하는 바람에 공사 기간이 길어지고 막판에는 재개관 일정에 맞추느라 비용이 당초 계획됐던 것보다 2배가 상승했다. 건설 작업 중 17세기 목재가 구덩이에서 발견되는 바람에 전문가를 통해 확인해야 하는 등 예정보다 4년이 더 걸렸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과연 다른 도시들도 이처럼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까? 글 오주영(성악가·독일 통신원)

from France

©Collection Jacqueline Picasso_ADAGP, Paris, 2020

©Collection Jacqueline Picasso_ADAGP, Paris, 2020

©Collection Jacqueline Picasso_ADAGP, Paris, 2020

피카소의 음악

음악 싫어한 남자의 음악가 되기

파리 필하모니는 전시회 ‘피카소의 음악들’(2020.9.22~2021.1.3)을 개최 중이다. 주제는 ‘화가의 눈에 비친 음악’으로, 피카소(1881~1973)의 작품에 남겨진 음악적 아이디어를 다뤘다.

전시에서는 피카소가 소장했던 기타·만돌린·바이올린·발라폰·밴조·플루트·클라리넷·테노라 등 다양한 악기를 볼 수 있다. 화가의 상상력을 통해 시각적으로 형상화된 음악도 만난다. 더불어 피카소가 그린 음악가들의 초상도 전시됐다. 여러 작품을 통해 음악 예술이 어떻게 시각적 차원으로 포착될 수 있을지 사색해 본다. 20년 전부터 파리 필하모니의 음악 박물관은 음악과 시각 예술의 만남에 부쳐 여러 전시를 진행해왔다. ‘열정의 형상’(2001), ‘감정의 창안’(2002), ‘제3제국(나치)과 음악’(2004), ‘바그너, 예술적 비전’(2007), 파울 클레에 헌정된 ‘폴리포니’(2011) 그리고 마르크 샤갈에 부친 ‘음악의 승리’(2015) 등이 그 예이다.

피카소는 살아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피력한 적이 없었고 심지어는 “음악을 싫어한다”고까지 말한 적 있다. 그런 그도 아방가르드 음악가였던 에릭 사티, 스트라빈스키, 마누엘 데 파야, 다리우스 미요 등과 긴밀히 작업했다. 사실 대중음악은 더 좋아했다. 음악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서커스나 팡파르, 투우도 즐겼다. 그의 작품에는 여기서 온 영감들이 산재한다.

음악과 그림의 접목을 시도한 브라크, 샤갈, 칸딘스키, 클레, 마티스와 달리, 피카소는 어떻게 음악을 자신의 작품 속에 그려냈을까? 즐겨 그린 악기에 대한 그의 애착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투우장 음악이나 팡파르와 같은 스페인 대중음악에 대한 애착은 또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과 함께 전시는 섹션 0에서 9까지 이어진다.

그 시공간에 대한 향수

섹션 0의 주제는 ‘지구의 노래’다. 동명의 조각 작품(1954~1956)이 여기에 전시됐다. 3명의 음악가가 플루트와 디올(쌍관피리)을 불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모습이다. 고대로부터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은 한때 바다가 보이는 피카소의 집을 장식했다. 섹션 1에서는 스페인 문화와 음악 전통에 대한 피카소의 애착이 느껴진다. 탬버린 가죽에는 안달루시아에서 온 부부를 그렸다. 둘은 전통의상을 입고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 저절로 춤을 추고 싶은 충동을 준다. 바르셀로나의 한 카페에서 음악이 펼쳐지는 모습을 묘사한 ‘파라델로 카페 콘서트’(1900~1901)는 넘치는 흥을 전달한다.

피카소는 1900년 세계 박람회를 통해 파리를 발견했다. 이후 몽마르트르와 클리쉬 주변 유명한 카페 콘서트를 드나들며 시 낭송이나, 기타와 아코디언 반주에 맞추어 노래되던 대중음악을 즐겼다. 그러면서 당대 유명 예술가인 막스 자코브와 기욤 아폴리네르 등을 만난다. 이 시기에 그린 작품을 섹션 2에서 만난다. 서커스에서 기타를 치는 아를르깡(광대를 뜻하는 프랑스어/1918)이나 물랑 루즈를 드나 들던 화가 툴루즈 로트렉, 유명 가수 이베트 길베르의 초상을 볼 수 있다. 섹션 3은 ‘악기’다.

큐비즘 시기(1909~1915)의 주된 소재다. 만돌린, 기타, 바이올린의 상징적인 이미지는 제거된 채, 하나의 오브제로 변모했다. 1915년 작업에서는 바이올린 고유의 형태를 지녔으나 색종이를 잘라 겹쳐가며 완성해 연극 장치적인 비전을 제시한다. 악보와 바이올린을 한데 담은 ‘대중가요’(1912)나 카탈루냐 악기와 피아노를 소재로 한 ‘피아노 정물’(1912)은 그가 음악 속에 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삶을 향한 애착으로

섹션 5는 ‘전쟁터’로 제1차 세계대전 중 창작된 작품들을 전시했다. 그는 디아길레프가 에릭 사티의 음악을 활용해 창작한 발레 뤼스 ‘퍼레이드’의 무대 커튼을 그렸다. 또 다른 사티의 음악에 붙인 발레 ‘머큐리’의 무대 커튼 장치에서는 기타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두 연주자를 볼 수 있다. 1920년에는 스트라빈스키 ‘래그 타임’ 스코어의 커버를 디자인했는데, 구불거리는 선으로 밴조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두 음악가를 그렸다. 피카소는 여러 발레 뤼스 작업에 참여하면서 총체 예술의 개념을 체험했다.

섹션 6의 주제는 ‘오바드’(아침에 누군가의 창문 아래서 부르는 노래)로, 1930년대부터 다루기 시작한 소재다. 마네의 그림과 흡사한 ‘플루트 주자와 누운 나체’(1932)는 아름다운 전원을 배경으로 하는데 아주 관능적이다. 이 주제는 음악에서의 주제와 변주처럼 피카소 작품에 디테일을 바꾸며 자주 등장한다. ‘목신’을 주제로 하는 섹션 8에서는 뿔 달린 목신이 피리를 부는 그림 ‘디올 주자’와 피카소의 명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목신의 플루트’(1923)를 볼 수 있다. 이런 신고전주의 작품들에서는 디오니소스적인 취기와 삶의 환희를 느낄 수 있다.

마지막 섹션 9는 ‘화가-음악가’다. 1965년에서 1972년까지 무장(Mougins·남프랑스의 피카소 빌라가 있는 마을)에서 그린 그림들을 주목해 본다. 후기 그림들에는 피카소 자신이 음악가로 묘사돼있다. 1965년 작 ‘오바드’에서는 나체로 어느 여인 앞에서 플루트를 불고 있다. 다른 그림들에서는 기타를 친다. 또 어떤 그림에서는 어린아이, 난쟁이, 광대, 아를르깡, 투우사 같은 형태로도 등장한다.

자신을 음악가로 분신시킨 이유는 여성 편력으로 알려진 그의 성격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음악가들은 무대 위에서 연주하며 여성과 청중을 매혹한다는 점에서다. 죽음을 앞두고 삶에 대한 깊은 애착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글 배윤미(통신원) 사진 파리 필하모니

from AMERICA

야니크 네제 세갱/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Jeff Fusco

작아진 말러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디지털 공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공격적인 온라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디지털 스테이지’로 불리는 콘서트 시리즈는 유튜브의 대중성 대신 자체 플랫폼을 선택했다. 티켓을 구매한 청중에 한해 일정 기간만 접속할 수 있다. 이 시리즈를 통해 2020년 12월 3일부터 6일까지 음악감독 야니크 네제 세갱(1975~)이 말러 4번을 실내악 편곡 버전으로 선보였다. 12월 3일 오후 8시에는 협연자인 소프라노 자나이 브루거의 공연 후기가 실시간 중계로 송출됐다.

지난 9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온라인 시리즈를 2021년 6월까지 연장한다는 소식과 함께, 고음악 분야에서 콘트랄로로 활동 중인 나탈리 스투츠만(1965~)을 3년 임기의 수석객원지휘자로 임명한다는 뉴스를 전했다. 스투츠만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첫 인연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투츠만은 당시 사이먼 래틀(1955~)이 이끌던 말러 교향곡 2번에 성악가로 참여했다. 19년이 흐른 2016년에는 헨델의 ‘메시아’로 지휘자 데뷔를 했고, 2019년 봄과 가을에 두 차례 재초청을 받았다.

친밀한 말러 교향곡?

말러의 교향곡 10곡은 삶과 죽음, 부활과 천국, 자연과 우주, 음악과 침묵과 같은 거대 담론을 다룬다. 영국의 지휘자 앤드루 데이비스(1944~)는 교향곡 4번을 가리켜 말러의 교향곡 중에 가장 순수하고 친밀한 작품이라고 칭했다. 이 작품은 순수한 어린아이의 눈으로 천상을 노래한다. 친밀은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친밀함을 위해 오히려 한걸음 물러나듯, 말러는 편성의 규모와 길이를 덜어냈다. 그의 나이 40에 접어들던 1899년 이 곡을 완성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10여 년이 지난 후, 빈에서는 ‘개인연주자협회(Society for Private Musical Performance)’라는 혁신적인 콘서트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말러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제2빈 악파의 3인방, 쇤베르크, 베르크, 그리고 베베른이 주도해 음악적 동료와 제자를 모아 1919년 창립했다. 협회는 가입 회원에게만 음악회 참가 자격을 주었고, 비평가 그룹은 철저하게 배제했다. 말러나 R. 슈트라우스 같은 당대의 현대음악으로만 무대를 마련했는데, 연주 전후로 박수나 함성을 금지한 것을 고려하면, 연주 자체보다는 연구적 성격이 강했다. 이때는 쇤베르크(1874~1951)와 베베른(1883~1945)이 음렬주의에 발을 들여놓았던 시기이다.

원곡을 투과시킨 실내악 편곡 버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말러 교향곡 4번의 실내악 버전은 쇤베르크의 제자인 에르빈 슈타인(1885~1958)이 편곡하여 1921년 1월에 협회의 콘서트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연주되었다. 실내악 버전의 편성은 플루트(피콜로)·오보에(잉글리시 호른)·클라리넷(베이스 클라리넷)·타악기·피아노(2인)·하모니움·현악기·소프라노 독창이지만, 이번 연주에서는 하모니움 대신 파이프 오르간을 사용했고, 두 명의 피아노 연주자 대신 피아니스트 교코 다케우치와 오르가니스트 폴 제이컵스가 협연했다. 저명한 음악학자이자, 빈 음악과 말러 전문가인 크리스토퍼 깁스는 이 편곡본을 가리켜 “오리지널 교향곡의 엑스레이를 보는 듯하다”며 원곡의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전용홀인 킴멜 센터의 무대를 관객 방향으로 약 70% 정도 확장하고, 단원들 사이에는 투명 가림막을 설치했다. 특히 관악기와 타악기는 꽤 멀리 배치해 충분한 거리를 뒀다. 마지막 악장에 등장하는 독창자 자나이 브루거(1983~)는 지휘자 옆이 아닌, 무대 왼쪽 1층 관객석 발코니에 자리를 잡았다. 모니터 화면의 질감이나 카메라 앵글과 음향은 기대 이상이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연주자 인터뷰, 리허설 영상과 같은 음악회 자료를 따로 모아 디지털 로비를 꾸며 청중의 참여를 유도했다.

글 김동민(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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