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EKSUK’S EYE 미국 일본 이탈리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4월 29일 2:16 오후

gaeksuk eye 
from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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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카이 오페라단 ‘투란도트’ 2.23~26 
최첨단 디지털 아트와 오페라의 만남

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 내에 위치한 문화회관에서 다니엘 크레이머(1977~)가 연출한 도쿄 니키카이(二期會) 오페라단의 무대로 ‘투란도트’가 공연됐다. 니키카이 오페라단과 제네바 그랑 테아트르의 공동 협력으로 성사된 이 프로덕션은 다학제 아트 컬렉티브 팀인 일본 팀랩(teamLab)과 협업으로 2022년 6월 스위스 제네바 그랑 테아트르에서 처음 선보여 화제가 됐었다. 초연 당시, 오페라에 새로운 시각적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팀랩의 시각적 장치로 인해 오페라의 상상력이 한층 확장됐고, 영상예술은 재현의 공간을 3차원으로 확대했다.
시작 전, 공연장 안은 안개가 자욱했다. 디지털 아트를 부각해 시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다. 막이 오르고 기하학적 조형미가 돋보이는 두 회전무대가 양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디지털 아트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무대세트가 복잡하기보다 단순한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 낫기 때문이라고 생각됐다. 
‘투란도트’의 도입부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여러 갈래로 얽힌 이야기가 자세한 설명 없이 전개되기 때문에 상당히 복잡하다. 여기에 디지털 아트라는 시각적 장치까지 더해져 초반에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산만한 느낌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과 배경영상, 레이저 등 빛의 향연이 쉬지 않고 펼쳐지는 오페라 무대가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크레이머는 ‘투란도트’가 가진 강한 가부장적 구조를 해체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양면으로 회전되는 무대 중 한쪽은 현실을 상징하며 현란한 빛을 뿜었다. 반면 다른 한쪽은 인물의 내면을 반영하여 칼라프와 투란도트의 내적 갈등, 트라우마 등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인물의 심리가 영상으로 세밀히 표현되면서, 감정과 음성의 변화를 따라 영상이 함께 요동치는 모습이 나타나는 등 그 상호작용성이 나타났다. 팀랩은 크레이머의 해석에 생명을 불어넣는 동시에, 팀랩 고유의 미학을 선보였다. 
2막의 무대는 더욱 화려해졌다. 그러나 디지털 아트가 아닌 인물의 형광 의상과 무대 천정에서 내려오는 황금색 원형 리프트 등 고전적인 실제 무대장치를 활용했다. 2막 끝에 왕자가 결국 수수께끼를 풀자 확장되는 레이저에 미디어 아트, 공중에서 흩날리는 꽃가루까지 우리 시대의 모든 무대효과가 총동원된 인상을 받았다. 
이처럼 시각적 장치의 향연이 계속되는 가운데 작품의 중심을 잡아준 것은 음악이었다. 일본인 성악가만으로 꾸민 무대는 특히 투란도트(스치야 유코 분)와 류(타니하라 에구미 분) 역을 노래한 성악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디에고 마테우스/뉴 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유려한 선율을 들려주면서 능숙한 강약조절로 현란한 시각적 장치에 밀리지 않고 균형 잡힌 오페라를 완성했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과 믈라덴 돌라르는 저서 ‘오페라의 두 번째 죽음’에서 오페라를 ‘박제가 되어버린 예술’이라고 언급했다. 공연을 앞두고 진행한 인터뷰에서 연출가 크레이머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공연이 박물관 속의 유물이 되어가는 ‘투란도트’를 구할 수 있을지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최첨단 기술과 팀랩의 비전으로 만든 기호와 상징이 관객들에게 자기 성적 역할, 트라우마, 학대적인 가부장적 구조, 건전한 애정 관계에 대해 매우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지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이러한 질문은 결코 박제된 것이 아닙니다. 현대 인류가 스마트폰과 고립된 가상현실에 점점 더 매몰되면서, 우리가 정면으로 직면해야 하는, 살아 숨 쉬며 몸부림치는 문제입니다.”
글 손수연(오페라 평론가) 
사진 니키카이 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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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카이 오페라단
‘투란도트’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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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AMERICA

소프라노 박혜상 카네기홀 데뷔 3.3 
오늘의 목소리로 
‘여성’을 노래하다 

직접 무대를 찾아 현장에서 연주를 감상하는 것만큼 음악가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경험이 있을까. 음악을 듣기 위해 현장을 찾는 것은 수고롭다. 하지만, 음반이나 영상보다 연주자가 베푼 향연을 더욱 주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음악을 통해 한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공감각적 역동성은 본인만의 감상 노하우를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몬트리올 콩쿠르를 통해 국제무대에 등장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소프라노 박혜상(1988~)은 오늘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나 베를린 슈타츠오퍼와 같은 대형 극장과, 도이치 그라모폰(DG)을 통해 출시된 음반으로 만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성악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의 카네기홀 데뷔무대이기도 한 이번 리사이틀은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을 앞두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뉴욕한국문화원과 한국음악재단의 주최로 젠켈홀에서 열렸다. ‘그녀의 노래들’이라는 제목으로 여성 작곡가의 작품들로 프로그램이 구성되었다. 
최근 크게 부각되는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작곡가 에이미 비치(1867~1944)의 세 곡으로 시작해, 엄마의 흥얼거림을 음악으로 표현한 브라질 작곡가 바호주(1903~1964)의 ‘자장가(Para Ninar)’ 등 여성의 ‘삶과 사랑’을 그리는 곡들이 연주되었다. 이번 리사이틀처럼 특정 주제가 공연을 관통하는 경우는 타깃 청중의 기대치와 실제 공연의 간극이 좁아 공연의 집중도를 높이는 데 유리하게 작용한다. 한편, 이러한 장점은 프로그램 구성의 한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리함이 되기도 한다. 이번 공연은 돌출된 주제 때문에 오히려 솔리스트가 가려졌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어진 캐나다 출신 작곡가, 세 명의 여성 예술가의 삶과 예술을 노래로 그린 서실리아 리빙스턴(1984~)의 ‘홀로 숨쉬기(Breath Alone)’는 깊은 서사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짧지 않은 길이로 연출된 이 생소한 드라마의 무게가 지나자, 또 다른 초연 작품을 만났다. 공연을 위해 뉴욕을 찾은 작곡가 우효원(1974~)은 자신의 대표적 합창곡 ‘가시리’와 ‘아리 아리랑’을 이번 무대를 위해 편곡했다. ‘가시리’의 원곡은 각 성부가 소리의 층을 교차로 쌓아 올리며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데, 이 작품을 아는 이에게는 단선율로만 채워진 공간감이 어색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히려 한 사람의 목소리가 그려내는 처연한 외로움이 이렇게만 표현된다면, 독창곡으로써의 ‘가시리’도 고유한 예술적 가치를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됐다.
이번 리사이틀은 박혜상의 예술적인 고집이 고스란히 보이는 공연이었다. 옳다고 판단한 작품들로 꽤 도전적인 패키지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른바 ‘디바’의 전형적인 리사이틀을 기대하고 온 청중에게는 아쉬움이 남을만한 공연일 수 있었다. 자랑하듯 고음을 발산하고, 청중을 쥐락펴락하며 자기 연기력을 가미한 연주와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앙코르로 연주된 대중적인 곡들은 청중의 마음을 충분히 얻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감동적인 카네기홀 데뷔를 말했던 박혜상에게 오랜 기억으로 중요하게 남을 공연이라 믿는다.
글 김동민(뉴욕 통신원·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사진 황태현(뉴욕한국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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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ITALY

볼로냐 시립극장의 대안처 & 
피렌체 오페라 ‘벙커 키이우’ 3.6~5.15
예술이 담긴, 남다른 공간

새로 단장할 옛 극장을 기다리며 
볼로냐 누보 시립극장은 도시 재개발의 일환으로서, 베르디 광장에 위치한 볼로냐 시립극장을 보수하는 동안에 오페라와 교향악 공연 전용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태어났다. 극장은 3,500㎡의 파빌리온 안에 지어졌고 최대 1,008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객석은 상징적인 피스타치오 초록색의 안락의자와 검은색 카펫이 깔린 넓은 공간으로 구성됐다. 게다가 시야 제한석이 없어 모든 좌석에서 동일하게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음향 연구를 통해 이탈리아·유럽의 주요 오페라 하우스와 일치하는 음향을 갖췄으며, 관객이 친숙한 음향 환경을 이어갈 수 있도록 ‘반향’과 ‘소리의 선명도’라는 두 가지 기본 지표를 원래 극장과 거의 똑같이 재현한 것이 특징이다.
극장은 말발굽 형태와 높은 천장이라는 전통적인 이탈리아 극장과 다르다. 너비가 30m이고 유용한 높이가 6m 정도 되는 현대적인 장소에서 첫 시작으로 올려진 푸치니 ‘나비부인’ 이후, 공간에 대한 호불호가 있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는 보수적인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상황을 맞았을 때, 필요에 따라 다른 공간에서 작품을 올려 발전과 성장을 도모하는 예가 되기도 했다. 또한 동시에 오페라가 태어난 고향의 전통적인 극장을 지키는 것 역시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기억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새로운 극장도 계속해서 예술적 생산·장인 정신·미학 등 지금까지 지켜온 가치들을 담아낼 것이며, 현대 시대를 만나 생성된 새로운 가치들 또한 보여줄 것이다. 2023년을 시작으로 2026년 상반기까지 볼로냐 누보 시립극장에서의 시작과 그 여정을 기대해 본다.

피렌체의 벙커 속 우크라이나 전쟁
2022년 2월 24일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 극본가이자 연출가인 스테파노 마시니(1975~)는 오늘날 키이우의 폭탄 아래에서 살아남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작품 ‘벙커 키이우’를 통해 경험하게 한다. 토니상 수상자 중 유일하게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인 그는 강력한 정치적 행동을 그 무엇보다 작품을 통해 취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이 공연을 기획했다.
이 공연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첫 번째 주요 전투에서 폭탄 테러로 무너진 키이우와 마리우폴의 어린이 병원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 프로젝트로, 현재 유럽의 심장부에서 끔찍한 경험 속에 있는 이들이 신문·비디오·SNS를 통해 밝힌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작품을 벨벳 의자와 카펫이 깔린 극장에서 올리는 것에 괴리감을 느낀 극본가 마시니는 피렌체 페르골라 극장 지하에 위치한 방공호로 관객을 초대한다.
페르골라 방공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피렌체가 나치에 의해 점령된 후, 피렌체 주민들이 연합군의 공습을 피하고자 실제 대피한 장소이다. 매회 입장객을 30명으로 제한하는 집중력 있는 극으로, 키이우에 있는 4,984개의 벙커와 비슷한 울림을 위해 안드레아 바지오가 음향을 연구했고, 폭탄과 드론의 생생한 소리와 함께 좁고 어두운 실제 벙커를 재현했다.
전쟁 속 지하실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이 불길하고 폭력적인 폭격 소리를 듣지 못하게 큰 목소리로 노래하듯, 관중은 극 안에 초대되어 그들처럼 노래하게 된다. 불이 꺼지며 폭발음이 이는 방공호를 체험하며, 관객들은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느끼게 된다. 이렇게 방공호에서 올려진 ‘벙커 키이우’는 용기와 두려움, 고통과 희망을 피부로 인식시키는 작품이며, 역사의 증거를 만들어 전쟁의 피해에 대해 의식하고 깨닫게 하는 경종이 된다.
글 이실비아(이탈리아 통신원)
사진 볼로냐 누보 시립극장·페르골라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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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 키이우
스테파노 마시니 
페르골라 극장의 벙커
볼로냐 누보 시립극장 ©Giorgio Bian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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