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오페라 ‘마리아 칼라스의 7개의 죽음’ & 소프라노 박혜상
from FRANCE
파리 오페라 & 박혜상 ‘마리아 칼라스의 7개의 죽음’ 9.1~4
‘문제작’으로 태어나 ‘화제작’으로 등극
파리 오페라는 이번 시즌 개막작으로 ‘마리아 칼라스의 7개의 죽음’을 프랑스 초연했다. 2020년 이 작품을 세계 초연한 독일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와의 공동 협력으로 공연이 올랐다. 세르비아 출신의 퍼포먼스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1946~)의 창작 작품으로, 그녀는 이번 프로덕션에서 연출과 무대 장치, 연기까지 맡아 화제를 모았다.
이 작품은 마리아 칼라스(1923~1977)와 연관된 7개의 오페라 중 여주인공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들을 발췌해 구성했다. 첫 죽음은 결핵으로 죽어가는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의 초상이다. 두 번째는 허공으로 몸을 던지는 ‘토스카’의 토스카, 세 번째는 ‘오텔로’에서 목을 졸라 죽음을 맞은 데스데모나, 네 번째는 ‘나비부인’에서 자살하는 초초상, 다섯 번째는 ‘카르멘’의 여주인공인 카르멘, 여섯 번째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서 광란 끝에 죽는 루치아, 일곱 번째 ‘노르마’에서 화염으로 들어가는 노르마이다. 제목과는 달리 연출은 8번째 죽음을 삽입했는데, 마리아 칼라스의 죽음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각 캐릭터마다 소프라노가 바뀌는데, 비올레타 역에는 한국인 소프라노 박혜상(1988~)이 올라 큰 박수를 받았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마리아 칼라스를 알게 된 것은 열네 살, 할머니 집에서 들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다. 당시 그녀는 “누가 노래를 부르는지 몰랐지만, 아주 강한 감동에 휩싸여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죽음’이란 키워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9년, 퐁피두 센터에서 의뢰한 한 전시를 통해서다. 그녀는 전시를 위해 방문한 브라질 아마존에서 광산이 무너지는 사고로 죽음을 목전에 둔 광부들을 만났다. 이후 그녀는 죽음을 접목한 무대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아방가르드 영상에 담긴 아름다운 죽음
필자는 9월 4일, 마지막 공연을 관람했다. 프랑스 유수 언론들이 비평을 포기한 이 작품은 ‘오페라’이기보다 ‘전위적인 퍼포먼스’에 가깝다. 고로 음악은 퍼포먼스를 위한 것이지 기존 오페라에서처럼 1차적인 요소는 아니다. 물론 이 작품을 통해 모두 파리 오페라 데뷔를 치른 일곱 명의 소프라노들의 기량은 놀라웠다. 출연한 소프라노는 모두 하인 복장으로 참여하고, 하이라이트 장면은 마리아 칼라스 역을 맡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에게만 주어진다. 칼라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1시간 30분 동안 무대 위 침대에만 누워있는다.
요엘 감주(1987~)가 지휘하는 파리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영상이 동시에 흘러나온다. 첫 장면은 하늘에 구름이 피어오르는 가운데 ‘나는 바람과 비, 사랑과 증오, 병과 건강 사이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촛불의 화염이다’라는 아브라모비치의 내레이션이 들린다. 관객석에서 보면 오른쪽 침대에는 아브라모비치가 누워 있다. 처음에 등장하는 소프라노는 비올레타의 ‘지난날이여 안녕’(‘라 트라비아타’)을 부르며 등장하는 박혜상이다. 박혜상은 완벽한 이탈리아 딕션과 다양한 톤 컬러로 비올레타의 비극을 아름다운 죽음으로 승화시켜 호평을 받았다. 이어진 토스카의 죽음(‘토스카’)에서는 하얀 파티복 차림의 아브라모비치가 뉴욕 빌딩에서 허공으로 몸을 던지는 영상으로 시작된다. 자동차 위로 떨어진 그녀는 박살 난 유리 가운데 피를 흘리고 죽는다. 육중한 체구가 떨어질 때 슬로우 모션으로 표정이 잡혀서 인상 깊었다. 데스데모나의 죽음(‘오텔로’)은 하얀 결혼드레스를 입은 그녀 곁으로 반짝이는 검정 피티복을 입은 오텔로가 거대한 하얀색 뱀과 갈색 뱀을 몸에 감고 등장한다. 목을 조르는 장면은 아브라모비치의 목에 뱀을 감는 것으로 처리된다. 뱀이 목을 조르자 붉은 립스틱이 피처럼 이리저리 번진다. 미국 소프라노 레아 호킨스가 체념 섞인 표정으로 부르는 ‘아베 마리아’가 인상적이었다.
초초상의 자살(‘나비부인’)은 나비가 날개를 흔들면 지구 멀리까지도 영향을 준다는 ‘나비효과’를 소재로 썼다. 영상에는 먼지로 덮인 폐허에서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이 나온다. 그곳은 원자폭탄이 투하된 나가사키를 떠오르게 했다. 카르멘의 경우는 비제의 ‘하바네라’(‘카르멘’)가 연주되는 가운데 붉은 투사 의상을 입은 아브라모비치가 나온다. 그녀를 밧줄로 묶어 당기지만 아브라모비치, 즉 카르멘의 저항으로 오히려 밧줄이 그녀 쪽으로 당겨진다. 당황한 돈 호세는 그녀를 칼로 찌른다.
루치아의 광란은 흑백영상으로 이야기된다. 하얀색 드레스 차림으로 방의 거울들을 다 깨트린다. 그중 인상적인 건 크리스털 꽃병을 자신의 가슴으로 깨는 장면이다. 루마니아 소프라노 아델라 자하리아(1987~)는 아리아 ‘달콤한 소리’(‘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서 세심한 고음 퍼포먼스를 선사해 이목을 끌었다. 이후 노르마가 불길로 다가가는 장면이 보인다. 남성배우 윌렘 대포가 금색 드레스를 입고 노르마로 분한다. 반대로 아브라모비치는 남장을 했다(‘노르마’). 이 둘은 손을 꼭 잡으며 불속으로 들어간다. 이어서 무대가 완전히 바뀌며 마리아 칼라스의 침실로 장면이 전환된다. 7명의 소프라노들이 하인 분장을 하고 청소를 한다. 마리아 칼라스 죽음에 대한 은유이다. 다음은 호연으로 주목을 끈 박혜상과의 일문일답.
공연을 무사히 끝낸 소감은.
기쁘다. 코로나 이후 첫 무대였다. 극장을 꽉 채운 청중과 함께하는 공연은 2년 만이어서 설렛다.
뮌헨(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초연 때도 비올레타 역으로 출연했는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 중 이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담당자를 만났다. 초연 무대 경험이 있어서 익숙한 작품이지만, 사실 부담이 더 컸다. 명성 높은 파리 오페라에 데뷔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그동안 다양한 오페라 경험이 있지만, 이번 작품만큼 전위적인 오페라는 처음일 텐데.
전통 오페라는 아니어도 음악적·예술적 가치가 있다면 언제나 무대 욕심이 난다. 이번 작품은 드라마보다는 연출에 많은 것을 기댔다. 즉 스토리텔링보다는 아이디어를 통해 관객과 교감하기 때문에 신선한 작업이었다.
마리아 칼라스를 좋아하는가.
너무너무 좋아한다. 칼라스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오르면 모든 것을 다 쏟아낸다. 존경스럽다. 성악가는 목소리라는 악기로 청중 앞에 서야 하기에 용기가 필요하다. 목소리 운용상 약간의 차이만 발생하더라도 색깔이 변한다. 칼라스가 느끼던 부담은 아마 나보다 더했을 테다.
이번 무대에선 ‘마리아 칼라스’라고 생각하며 올랐나? ‘비올레타’라고 생각하며 올랐나?
마리아 칼라스가 분한 비올레타라고 생각하며 올랐다. 조명이 나를 비추자 순간적으로 어떤 신비한 체험을 한 느낌이 들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에너지로 휩싸였는데, 마치 내가 아닌 것 같아 약간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공연 자체는 만족스럽다.
이번 공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마지막 장면에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마리아 칼라스를 너무도 닮아서 소름 끼쳤다.
이 작품 중 다른 배역을 제의받는다면 무슨 역이 탐나나.
노르마 역을 해보고 싶다. 또한 마리아 칼라스를 맡으면 내가 어느 정도로 일치할 수 있을까 호기심이 든다.
글 배윤미(프랑스통신원) 사진 파리 오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