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솔리스텐서울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12월 29일 9:00 오전

공연수첩

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목소리로 전한 거룩함

바흐솔리스텐서울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2021년 12월 11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통영에서 성탄의 메시지를 담은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가 울려 퍼졌다. 시대악기로 당대연주를 꾸준히 선보여온 박승희/바흐솔리스텐서울이 연주한 이번 공연에는 송승연(소프라노)·박진아(메조소프라노)·조성환(테너)·박승혁(바리톤)이 함께해 300여 년 전 바로크 음악이 전하는 성탄의 기쁨을 나눴다.

바흐가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작곡했을 당시 그는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지휘자)를 맡으며 수많은 칸타타와 오라토리오를 작곡했다. 작품은 성탄 시기의 여섯 축일을 위해 작곡되어, 총 6부의 칸타타로 나누어 신약 성서의 성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성경의 예언에 따라 베들레헴으로 간 요셉과 마리아의 이야기, 메시아의 탄생을 두려워한 헤롯과 동방박사들의 경배 이야기까지 복음서의 기록을 충실히 따른다. 작품은 예수가 앞으로 받게 될 그의 고난을 암시하며 끝이 난다.

무대장치가 없는 오라토리오 특성 때문인지 은은한 조명만이 높은 무대와 가파른 합창석을 비추었다. 화려함이 절제된 무대였지만, 인류 구원을 위해 미천한 마구간에서 태어난 메시아 예수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이 주는 거룩한 기운과 함께 무르 익어갔다.

이날 공연에는 시대악기가 쓰였다. 하프시코드와 이동식 오르간인 포지티브 오르간이 무대에 자리했고, 첼로는 엔드핀을 사용하지 않고 무릎 사이에 고정해 연주했다. 밸브가 없는 트럼펫은 길게 뻗는 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작품의 성격을 좌우하는 팀파니 또한 리듬의 명료성과 탄력을 위해 페달식이 아닌 밸브식을 사용했다. 오라토리오가 주는 인상은 경건과 거룩함이지만,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는 “환호하고 기뻐하라, 이날을 찬양하라!”로 시작하는 합창의 가사처럼,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를 맞는 ‘기쁨’으로 충만하다. 그리고 그 기쁨은 독일어로 된 가사 특유의 박절과 힘껏 뻗는 합창의 움집에서 발현된다. 그러한 면에서 이번 공연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다소 부족해 보였다. 그럼에도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각 악기군의 운용이 돋보인 것은 오랫동안 당대 연주를 이어온 단체의 노련함 때문이겠다.

작품의 서사를 전개하는 조성환의 친절한 음성과 송승연·박승혁과 목관이 주고받는 대목도 인상 깊었다. 바흐는 비슷한 시기에 작곡된 ‘마태 수난곡’ BWV244의 합창 중 같은 선율을 공유하는 1부 ‘나를 지키소서, 나의 수호자이시여’ ‘저는 당신 곁에 있나이다’ 등의 선율을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에 차용하기도 했다. 예수의 수난을 기록한 수난곡의 합창이, 탄생을 축하하는 작품 끝의 선율로 차용됨으로써 예수의 ‘탄생’은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가 감당할 수난으로 이어진다.

글 임원빈 기자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의심, 짙어지는 명암

극단 배다 ‘붉은 낙엽’

2021년 12월 8~27일 백성희장민호극장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불안하다. 코로나 백신 3차에 관한 강제 접종 논란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거기에 ‘부스터샷을 맞고도 감염된 사례’와 ‘돌파감염 자체가 부스터샷 역할을 한다’는 기사까지 뜨니 아찔하다. 이제는 모르겠다. 그저 믿고 싶은 대로 믿어야 한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사람의 마음을 혼란시키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그들의 판단’이라고 했다. 2020년, ‘붉은 낙엽’은 우란문화재단의 공연예술개발 프로그램으로 개발됐다. 미국의 소설가 토머스 쿡(1947~)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추리극과 심리극이 절묘하게 공존하고 있다. 원작의 특징을 잘 담아내기 위하여 소설의 희곡화, 희곡의 대본화로 이어지는 단계별 텍스트를 개발했다. 지난해 제42회 서울연극제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고, 관객과 평단의 지지를 받으며 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12월, 국립극단은 극단 배다의 ‘붉은 낙엽’을 초청해 선보였다.

‘붉은 낙엽’은 정직한 연극이다. 그동안 역사 속 소외된 개인을 중심으로 한 창작극을 주로 선보여 온 극작가 김도영과 연출가 이준우의 첫 각색 작품이어서 기대가 컸다. 소설의 매력을 잘 보여주기 위해 상당 부분이 내레이션으로 처리됐다. 무대 비주얼도 소설 속 배경이 그대로 생동하듯 정갈했다. 최근 들어 작품을 해체하여 재구성하는 연극들이 많았기에, 탄탄한 서사를 바탕으로 한 모범적인 연출은 연극의 정수를 보는 듯했다. 반듯한 것들이 주는 몰입감은 실로 대단하다.

‘붉은 낙엽’은 단란했던 가정이 작은 의심으로 붕괴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아들 지미(장석환)가 아동 실종사건의 용의자로 거론되면서 균열이 생긴다. 지미의 아버지인 에릭(박완규)의 흔들리는 마음은, 꺼내보기 싫어 덮어 두었던 결혼 전의 가정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믿음과 의심의 줄다리기 속, 붉은 낙엽의 흉흉한 적조는 에릭의 집안을 침범한다. 어느덧 사건의 진실은 밝혀지지만, 의심으로 물들었던 침묵의 시간만이 남았다. 많은 것을 숨길 수 있는, 21세기를 관통하는 우리에게 근거 없는 소문은 사실 익숙하다. 불안에서 시작된 의심이 무엇을 잡아먹고 있을까. 낙엽에 미세하게 박힌 반점이,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커지듯 말이다. 근거 없는 소문 속에 내가 지켜야 할 것이 무언지를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서울연극협회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반향: Voice’ 2021년

12월 3·5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년 전쯤, 경기도문화의전당(현 경기아트센터) 기자간담회에서 원일을 만났다. 그가 2019년 11월 경기도립국악단(현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예술감독으로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1996년에 창단된 악단의 명칭을 바꾸는 것이었다. 원일은 “이름을 바꾸는 것은 명칭을 넘어서는 문제이다. 그 이름에는 철학과 가치와 새로운 패러다임이 담겨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니까 원일이 만들어가고 싶었던 연주단의 정체성은 ‘경기도에서 세운 국악단’, 다른 말로 하면, 안정적이고 정형화된 국악단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라는 이름에서 주목할 단어는 ‘시나위’다. 한국 무속음악에 뿌리를 둔 즉흥 기악합주곡 양식의 음악을 일컫는 ‘시나위’에 대해 원일은 자신만의 해석과 비전을 내놓았다. “나에게 시나위는 ‘시나위 정신’과 ‘시나위 원리’를 의미한다. 전통음악에는 개인이 주인이 되고, 개인의 역량에 기초해서 수평적으로 연합하는 앙상블 원리가 존재해왔다. 개개인이 음악적 주인이 되는 수평적 연대로서의 음악,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음악이자 생명력 있는 음악이다.” (‘객석’ 2020년 5월호)

백문이 불여일견. 솔직히 말하자면, 기자간담회에서 그가 ‘시나위’ ‘음향 다양체’ ‘무정형’ 등의 추상적인 이야기를 꺼낼 때 기자석에 있던 기자의 정신은 아득해졌다. 그런데 2년간 합을 맞춰온 예술감독 원일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공연을 관객석에서 관람하니, 단박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원일은 이런 걸 하고 싶었던 거구나.’

범종의 명상적인 울림으로 시작한 이날 공연에서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총 7곡의 음악에 따라 모습을 자유롭게 변모했다. 30여 명의 합창단에 일렉 기타와 베이스가 더해진 국악관현악 편성부터 5중주(일렉 기타·리코더·비브라폰·대아쟁·가야금)까지 정해진 형식도, 악기에 제한도 없었다. 단원들이 등·퇴장할 때에도 북, 생황, 편경 등 독주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을 연출하여 소리가 비는 법이 없었는데, 그렇기에 마치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음향체라는 것이 공연 내내 그 덩치를 키웠다가 줄어들었다가 하며 꿈틀꿈틀 살아서 움직이는 듯했다.

수평적인 앙상블 원리로서의 시나위를 시각적으로 보여준 장면은 ‘되야 오소’의 무대 배치였다. 판소리 창작자이자 소리꾼 한승석이 작사·작곡한 곡으로 초연이었는데, 협연자로 오른 한승석과 그룹 ‘우리소리 바라지’가 지휘자(장태평)와 등을 지고, 지휘자보다 무대 앞에 자리했다. 지휘자가 모든 악기를 관장하는 서양의 오케스트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습. 당일 공연에서 가장 길고, 스펙터클이 큰 작품이었음에도 독창자와 합창단원, 연주자들이 제 역할을 다하여 합이 잘 맞아들었다. 원일이 상상했던 ‘시나위’는 이렇게 구현되고 있었고, 그의 실험에 기꺼이 함께한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앞으로 한국음악계에서 어떤 역할을 해나갈지 기대하게 된다.

글 박서정 기자 사진 경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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