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음반으로 돌아보는 한해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12월 13일 9:00 오전

RECORD COLUMN

음반에 담긴 이야기

2021
음반으로 돌아보는 한해

송년과 신년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법

빈 신년 음악회 ©Dieter Nagl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다가오는 연말 시즌에는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에 대한 부푼 기대를 담은 콘서트들이 줄을 잇게 된다. 최악의 시대로 기억될 2020년의 암울했던 분위기를 지나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접어든 올 연말에는 연주자와 관객이 직접 연주회장에서 마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으니 다행이라 할 것이다. 올 연말 연주회를 찾기 전 예열을 위한 음반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송년을 빛내는 대표작들

연말을 기념하는 연주회를 개최하는 전통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구에서 크리스마스의 영향력은 매년 커졌고, 연말과 연초를 기념하는 연주회 역시 꾸준한 수요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행사 중에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연주회인 빈 신년 음악회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1838년 처음 빈에서 새해를 기념하는 콘서트가 개최되었을 정도이다. 빈 이외에도 여러 도시에서 송년·신년 음악회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면서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점차 축제 성격의 연말 연주회용 프로그램이 확립되었고, 20세기 들어와 현재의 형태들로 완전히 자리 잡게 된다.

송년과 신년 음악회에 주로 채택되는 레퍼토리들은 요한 슈트라우스 가문의 왈츠로 대표되는 춤곡들과 화려하고 쾌활한 짧은 서곡들이 주류이지만, 20세기 들어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채택하는 단체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연말에 베토벤 교향곡 9번이 연주되었는데, 이에 대한 그들의 열광은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에서도 송년 음악회 프로그램의 단골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이 되었다. 서구에서는 점차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이 송년 음악회에서 사라지는 추세이지만, 독일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이 교향곡을 연말 프로그램으로 매년 연주하고 있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과 더불어 연말 프로그램으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 있다. 이 작품은 주로 크리스마스 시즌, 발레단들의 단골 레퍼토리이다. 독일어권 오페라 극장에서는 연말에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의 오페레타 ‘박쥐’를 프로그램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빈 슈타츠오퍼는 이 전통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다. 이 밖에도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푸치니의 ‘라 보엠’ 등이 연말 오페라 극장들에 올려지는 대표작들이다.

❶Sony 19439840162

❷Sony 19439764562

❸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공식 유튜브 계정

❹Arthaus 108095

빈과 베네치아 시민의 신년 맞이

신년 음악회의 대표 격인 빈 필의 신년 음악회는 1928년부터 33년까지 요한 슈트라우스 3세(1866~1939)가 무지크페어아인에서 개최한 신년 음악회가 출발점이지만, 1939년 빈의 나치 총독, 발두르 폰 쉬라흐의 후원으로 현재의 형태로 정리되었고, 연주회의 목적 또한 전쟁 선전용이었기에 이 유서 깊은 연주회의 흑역사로 남아있다.

2021년 올해의 빈 신년 음악회 지휘는 리카르도 무티(1941~)가 맡았는데 역사상 처음으로 무관중으로 개최되었다. 이는 팬데믹으로 인한 방역 지침에 따른 것으로, 텅 빈 객석을 뒤로 한 채 신나는 왈츠들을 연주하는 빈 필의 모습이 매우 이채롭다. 무티는 앙코르에 들어가기에 앞서 각국의 정부들에게 “신체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건강도 살펴야만 한다”라고 하며 문화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 달라는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연주회 후반부에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와 폴카들이 쏟아지는데 ‘봄의 소리’와 ‘황제’ 왈츠가 이 연주회의 백미이다. 아직 보지 못했거나 들어보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 2022년 다니엘 바렌보임/빈 필의 신년 음악회가 열리기 전 플레이리스트에 포함하길 바란다.(Sony)❶

오랜 빈 신년 음악회의 역사를 개괄하고 싶다면 Sony에서 발매된 신년음악회 전집(Sony)❷이 최고의 선택이다. 지금까지 신년 음악회에서 연주되었던 모든 곡이 중복을 제외하고 전부 수록되어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 가문의 왈츠와 폴카 작품들이 이렇게나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파란만장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은 1996년 화재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당하였지만, 이후 대대적인 복원 사업을 통해 2003년 말 재개장했으며 2004년 1월 1일부터 극장 재건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신년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탈리아 극장답게 유명 오페라 아리아와 합창곡들이 프로그램으로 채택되며 마지막 앙코르는 언제나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의 ‘축배의 노래’가 차지한다. 신년 음악회의 역사는 짧지만 매년 유명 지휘자들과 성악가들을 초대하여 빠르게 유명세를 얻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팬데믹 직전, 지휘를 맡은 정명훈의 콘서트는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았는데, 일부 클립들은 극장 공식 유튜브❸를 통해 시청할 수 있다.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과 그 뒤를 잇는 베르디의 아리아와 합창곡들이 인상적인 연주회지만 온전한 시청이 어려우므로 비교적 구매와 시청이 용이한 2013년 가디너 지휘의 신년 음악회(Arthaus)❹를 추천한다. 시원시원한 카메라워크와 가디너의 명쾌한 지휘가 신명 나는 연주회이다. 이런 신년 연주회 프로그램으로는 정말로 의외인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2번으로 문을 열고 후반부에는 베르디의 아리아들과 서곡들이 연주되었다.

 

지난해의 아픔이여, 아듀!

❺ 2020년 베를린 필 제야 음악회

❻ DG 4779540

❼ 2013년 드레스덴 대림절 콘서트

 

 

 

 

 

 

 

 

 

 

 

베를린 필의 제야 음악회는 원래 빈 신년 음악회와 마찬가지로 신년 음악회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나 빈 신년 음악회와 차별점을 가지기 위해 1월 1일 콘서트를 폐지하고 생중계를 시작하면서 현재의 제야 음악회가 되었다.

연말 3회의 콘서트 중 12월 31일 공연은 위성 송출되며, 음반보다는 주로 영상물 형태로 출시된다. 객원 지휘자가 무대에 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음악감독들이 지휘하며 연주되는 프로그램들은 카라얀 시대부터 아주 다양했으며 크로스오버 작품들이 연주되기도 하는 등 격식을 벗어 던진 어느 정도 자유로운 분위기가 특징이다.

2020년 제야 음악회 역시 무관중으로 진행되었는데, 기타리스트 파블로 사인스 비예가스(1977~)가 초청되어 로드리고(1901~1999)의 ‘아랑후에즈 협주곡’과 클래식 기타를 잡아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연주해보게 되는 ‘로망스’를 연주했다. 이 작품들 이외에 이날 연주회를 빛나게 만든 곡은 빌라로부스(1887~1959)의 브라질풍의 바흐 4번이었다. 청중들이 없는 대신, 흠 하나 찾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하게 연주한 베를린 필의 명연주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연주였다. 아직 영상물로 발매되지는 않았지만, 베를린 필의 디지털 콘서트홀에서 감상할 수 있다.❺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새로운 수석 지휘자로 취임한 크리스티안 틸레만(1959~)이 취임 전 야심차게 출범시켰던 드레스덴 제야 음악회는 영상제작사와 방송국, 음반사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고 화려하게 출발했으나 해가 갈수록 인기가 떨어져 현재는 그 위상이 많이 내려간 상태이다. 이 배경에는 틸레만이 선택한 프로그램들이 지나칠 정도로 독일어권 청중들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었다. 레하르(1870~1948)를 비롯한 독일어 오페레타들은 너무 마이너한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화려한 출발을 알렸던 2010년 연주회는 지금 들어봐도 생기가 넘친다.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1959~)과 바리톤 크리스토퍼 말트만(1970~) 등의 명가수가 부른 ‘메리 위도우’의 하이라이트는 아주 매력적이며 음반보다는 영상물이 좀 더 음질이 좋게 느껴진다.❻(DG)

드레스덴에는 제야 음악회 이외에도 유서 깊은 성모교회에서 개최되는 대림절 콘서트가 유명하다. 2차 세계대전 중 대공습으로 파괴된 성모교회가 오랜 재건 사업 끝에 2004년 다시 문을 열게 되자 이를 기념해 매년 대림절 기간에 이곳에서 연주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이는 영상으로 방송되고 음반으로도 간간이 출시된다. 연주회 프로그램은 크리스마스에 관련된 성악곡이나 바로크 합창곡 등이며 매우 따뜻한 분위기의 연말 콘서트로서 나름의 인기를 얻고 있다. 해당 연주회들의 영상물들이 유튜브에 여럿 올라와 있으며 그중 하나만 주소를 소개한다.❼

 

칸타타와 오라토리오가 빚는 성탄의 기쁨

❽ Alia Vox AVSA9940

❾ Pentatone PTC5186853

바흐의 4대 합창곡 중 ‘마태 수난곡’ BWV244와 ‘요한 수난곡’ BWV245는 주로 부활절 시즌에 연주되고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BWV248은 제목대로 독일어권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자주 연주된다.

그런데 여기서 소개할 음반은 조르디 사발(1941~)이 지휘를 맡은 신보❽(Alia Vox)이다. 팬데믹이 닥치기 전인 2019년 12월, 바르셀로나에서 녹음된 이 음반은 조르디 사발의 생애 첫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녹음이다. 사발과 르 콩세르 드 나시옹의 바흐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데, 좋아하는 사람들은 통통 튀는 리듬감과 막힘이 없는 자연스러움을 매력적으로 느끼고, 싫어하는 이들은 라틴 색채가 강하여 엄숙함이 결여되었음을 단점으로 지적하곤 한다.

하지만, 세속 칸타타 모음집이라 할 수 있는 사발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라면 이런 단점조차도 장점이 될 수 있다. 실황 녹음이지만 다채널로 담긴 녹음 상태가 아주 훌륭하며 가수들의 호연도 인상적이다. 특히 베이스 토마스 슈티멜(1985~)의 가창이 정말 일품이다.

헨델의 ‘메시아’는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와 함께 연말 분위기를 대표하는 합창 음악으로 바흐의 곡들과는 달리 영미권에서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을 가리지 않고 연주된다. 지금까지 시장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메시아 음반들과 유튜브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전곡 영상들을 뒤로 하고 팬데믹 기간에 발매된 저스틴 도일(1975~)이 지휘한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의 펜타톤 음반 ❾(Pentatone)을 소개할까 한다. 오페라적인 극적인 효과가 강조된 1754년 자선병원 판이 아닌 수수한 1742년 더블린 초연 판을 사용한 도일의 ‘메시아’는 더블린 판 중에선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 존 버트와 더니든 콘서트가 추구한 극도의 단순성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대신 낭만주의적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서정적인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데 판본의 경건 성을 살리는 지극히 중도적인 연주라 볼 수 있다. 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1943~)❿(Philips)나 폴 맥크리쉬(1960~)⓫(Archiv) 등의 위대한 선배들의 유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메시아’가 지닌 선율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음반이다.

❿ Philips 4342972

⓫ Archiv 4839952

 

 

 

 

 

 

 

 

 

 

카우프만의 캐럴과 함께

⓬ Decca E4756152

⓭ Sony 19439786762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유명 가수들의 크리스마스 앨범이 매년 선을 보이게 된다. 전설적인 소프라노 레온타인 프라이스(1927~)와 카라얀의 크리스마스 앨범⓬(Decca)을 필두로 수많은 성악가의 크리스마스 앨범이 출시되어 있는데, 올해는 독일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1969~)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⓭(Sony) 두 장의 CD에 49곡의 크리스마스 캐럴과 찬송가들로 가득 채웠는데 독일어와 영어 곡들이 주이다. 유명한 크리스마스 노래들은 다 들어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풍성한 구성을 자랑한다. 카우프만의 음색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청취 여부가 나뉘겠지만, 그가 부르는 힘찬 ‘아데스데 피델레스’와 정신이 아득해지는 ‘렛 잇 스노우’는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노래들이다. 경건함과 팝적인 요소가 다채롭게 녹아 있는 특별한 크리스마스 앨범으로 카우프만의 팬들이라면 무조건 필청. 글 송준규(음악 칼럼니스트)

 

바흐

헨델

요한슈트라우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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