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의 친필 악보를 따라라! 프랑스의 ‘유럽 음악 시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2월 7일 9:00 오전

GAEKSUK’S EYE

from France

 

프랑스의 신년음악회

빈이 아닌, 프랑스식 새해 첫 성찬

‘신년음악회’하면 대부분 빈 필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생화가 장식된 황금홀(무지크페어아인)에서 듣는 슈트라우스 가의 왈츠, 힘찬 박수와 함께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마무리하는 이 음악회는 무려 80년이 넘도록 전 세계로 송출되며 새해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다면 프랑스의 신년음악회는 어떤 모습일까?

 

정형화되지 않은 프랑스

프랑스 오케스트라들도 매년 신년음악회를 열지만, 빈의 것만큼 레퍼토리나 방식이 정형화되어 있지는 않다. 사실 새해 첫날 전후로 콘서트를 여는 것 자체가 근 10년 정도 사이에 생긴 유행이다. 2018년 1월 1일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송이 공개적으로 남긴 트윗 “파리에서는 큰 신년 음악회를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연주홀과 훌륭한 음악가들이 있습니다. 멋진 이벤트를 위해 우리의 의지와 야심이 필요한 때입니다”만 보아도 빈에 필적할 신년음악회를 원하는 이곳 분위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신년음악회 역사가 길지 않은 이유로는 먼저 가톨릭 전통인 ‘레베이용(Reveillon)’의 영향을 들 수 있다. 레베이용은 성탄절과 신년 자정 무렵 긴 시간 이어지는 세 차례의 미사를 뜻한다. 미사 전에는 가족들과 함께 성대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 풍습이었다. 그동안 저녁 식사와 자정 미사 사이에 악단 신년음악회가 끼어들 틈이 없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근대 프랑스에 중앙집권 권력이 부재했던 상황을 들 수 있다. 빈의 신년음악회가 시작된 해는 1939년이다. 빈 출신 연주가들이 빈의 작품들을 연주하는 일종의 ‘애국심 고취’ 목적으로 기획된 이 연주회는 빈 필을 지원한 나치라는 거대한 군부 조직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 공화정과 군주정, 혁명 세력이 번갈아 집권하다 세계대전까지 맞았고, 따라서 꾸준히 음악계를 지원할 세력도 부재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궁정 발레가 대중의 춤곡으로 확산되며 지역 축제의 기반이 되는 등 빈의 왈츠에 대항해 프랑스 춤곡의 장을 열 여지도 많았지만, 이 흐름을 묶어 하나의 완성된 행사로 기획할 주체(혹은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년음악회를 게르만 전통이라며 연주를 꺼린 탓도 있다. 오랜 역사적 앙금과 전후 영향이 크다. 물론 시간이 흐른 지금에는 신년음악회가 악단들의 정기 행사로 자리 잡았다. 클래식 음악이 고급문화라는 콧대를 조금 낮추고, 신년음악회를 대중과 오케스트라, 시민과 음악가 사이의 연결을 강화하는 기회로 본 것이다.

 

프랑스의 신년음악회

프랑스식 신년음악회의 선봉은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Orchestre national de France)다. 특히 에마뉘엘 크리빈 시절(2017~2020 재임) ‘클래식의 대중화’라는 목적에 충실했던 신년음악회들은 다음 지휘자 크리스티안 마셀라루(2020 취임)가 잇고 있다. 올해 음악회는 ‘오펜바흐와 친구들’이라는 주제로 조성진과 함께 파리와 엑상프로방스 등지를 투어 했다. 오펜바흐 작품을 비롯해 샤브리에의 ‘부레’, 생상스의 ‘하바네라’, 라벨의 ‘볼레로’ 등 춤곡을 위주로 꾸렸다.

라디오 프랑스 필은 지휘자 미코 프랑크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신년음악회 고정 레퍼토리로 삼겠다고 선언(2016)한 이래 꾸준히 이어오는 중이다. 파리 오케스트라는 신년음악회를 좀체 열지 않는다. 파리 필하모니의 올해 신년 연주는 프랑수아 자비에 로트/레 시에클이 꿰찼다. 생상스·구노·비제부터 뒤부아·마스네의 춤곡 등 프랑스 춤곡의 황금기였던 제2제정기(1852~ 1870)부터 20세기 초까지 작품을 다뤘다.

프랑스 신년음악회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작곡가는 오펜바흐(1819~1880)다. 독일 태생이지만 파리에 정착하며 프랑스 국민 작곡가가 되었고, 오페레타 확립에 큰 역할을 했다. 19세기 말 브로드웨이에 보드빌이, 웨스트엔드에 코믹 오페라가 태동했듯 파리에는 오펜바흐의 오페레타가 대중에게 다가갔다. 신년음악회에는 흥을 돋우기 제격인 그의 춤곡이나 오페레타 서곡이 주로 올라온다. 프렌치 캉캉의 멜로디가 있는 ‘천국과 지옥’ 서곡(1858)이 대표적이다. 샹젤리제 극장에서는 신년을 맞아 그의 오페레타 ‘파리지엔느의 삶’이 상연되고 있다.

두 번째로는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이다. 신년에는 왈츠풍의 2악장 ‘무도회’를 떼어 연주한다. 표제 교향곡의 효시이자 고정악상의 도입, 자유로운 악기 편성 등 프랑스 근대 관현악법의 역사를 쓴 작품으로, 당시 독일식 교향악에 대항할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작품은 프랑스 악단에 부임한 지휘자들이 거치는 관문으로도 유명하다. 전설적인 샤를 뭉크 지휘의 파리 오케스트라 창단 연주에도, 지난해 파리 오페라 오케스트라에 부임한 두다멜도 이 곡으로 신고식을 치렀다.

그 외 라벨의 ‘볼레로’ ‘라 발스’, 구노의 ‘파우스트 왈츠’, 생상스나 폴 뒤카의 춤곡 등이 연주된다. 특히 ‘라 발스’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로 대변되는 19세기 빈의 호화로운 왈츠를 해체해 거친 세계로 끌어온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신년의 ‘새로운 왈츠’로서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글 전윤혜(프랑스 통신원)

 


BnF 프랑수아 미테랑 도서관 ©David Paul Carr

 

BnF 리슐리외 도서관 오벌 룸 ©Emilie Groleau

 

 

 

 

 

 

 

 

 

 

유럽 음악 시즌

친필 악보의 명령을 따르다

새해 첫날 파리의 밤이 파랗게 물들었다. 에펠탑·루브르 박물관·파리 오페라 등의 역사적 건물에 파란 바탕의 유럽 연합기를 입힌 조명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프랑스가 올 상반기 유럽연합(EU) 이사회의 의장국이 된 것을 축하하는 의미다. EU는 유럽 27개 회원국을 하나의 통합된 국가로 간주하여 국가 간 출입국 심사와 비자, 관세 등을 철폐하고 화폐를 함께 쓰는 초국가적 정치·경제 공동체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약 6% (약 4억 5천만 명), GDP는 세계 경제의 약 17% (약 15조 달러)를 차지한다. 최근 브렉시트와 이민자 유입, 국가주의 여파로 다소 위상이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EU는 여전히 세계적으로 미국과 중국을 견제할 유일한 세력이며, 그만큼 EU의 미래 정책 역시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

유럽연합 이사회는 EU의 정책을 결정하는 입법 기관이자 상원이다. 이사회 의장국은 EU 정책을 이끌고 회의를 주재하는 국가로 각 회원국이 6개월씩 돌아가며 맡는다. 프랑스가 의장국이 된 것은 2008년 이후 13년 만의 일이다.

프랑스의 의장국 임기를 축하하며 프랑스 국립 도서관(BnF)과 프랑스 뮈지크(France Musique, 라디오 프랑스 음악국)가 문화부 후원 아래 ‘유럽 음악 시즌(Saison Musicale Européenne)’을 시작했다. BnF가 소장한 17~20세기 악보 가운데 유럽 국가 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들을 뽑아 6개월 동안 선보이는 약 20회의 연주 대장정이다.

BnF의 음악 부서장 마티아스 오클레어가 말한다. “문화부가 저희에게 의장국을 기념하는 문화 시즌을 요청했을 때, 우리는 프랑스가 가진 보편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음악 컬렉션’을 이용하기로 했어요. BnF가 보존·연구 중인 수많은 음악 자료 컬렉션이죠.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자료, 즉 작곡가의 친필 악보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BnF가 공개한 친필 악보들 쇼팽 발라드 2번 op.38 ©BnF, département Musique

모차르트 서명이 남아 있는 오보에 4중주 친필 악보

 

 

 

 

 

 

 

 

 

 

도서관, 콘서트홀, 수도원 곳곳에서

이번 시즌을 위해 BnF가 공개할 악보들은 몬테베르디(이탈리아)부터 베토벤(독일), 모차르트(오스트리아), 프랑크(벨기에), 쇼팽(폴란드)을 비롯해 핀란드의 린드베리(1958~), 루마니아의 에네스쿠(1881~1955), 프랑스의 미셸 레베르디(1943~)에 이르는 다양한 유럽 작곡가들의 원본이다.

1월에는 두 연주회가 열렸다. 1일에는 새해를 기념하며 유럽이 연합하는 의미로 미코 프랑크/라디오 프랑스 필이 베토벤 9번 ‘합창’을, 7일에는 당대악기 오케스트라인 르 콩세르 드 라 로쥬(지휘 쥘리앵 쇼뱅)가 미테랑 도서관에서 본격적으로 시즌을 오픈했다. 고전시대 파리에서 특히 인기를 끌었던 하이든, 모차르트와 다보(1742~1822) 작품들을 엮었다. 이날 연주를 맡은 르 콩세르 드 라 로쥬는 당시 하이든에게 6개 교향곡을 위촉·초연한 르 콩세르 드 라 로쥬 올랑피크의 후신이어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2월에는 프랑스의 전설적 플루티스트 장 피에르 랑팔(1922~2000)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 4월에는 체코 작곡가 안톤 라이하(1770~1836)를 오마주 한다. 5월에는 미코 프랑크/라디오 프랑스 필(협연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이 독일의 브람스와 슈만 작품을, 6월의 생 리키에 수도원에서는 영국·프랑스·이탈리아의 바로크 음악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 유럽 음악 시즌은 BnF 산하 도서관과 메종 드 라 라디오, 샹젤리제 극장 등지에서 열린다. 그 가운데 과거 왕립 도서관이자 박물관, 예술연구소가 모인 리슐리외 도서관은 10년간 약 2억 5천만 유로(약 3천 4백억 원)를 들인 복원 사업을 지난해 끝냈다. 천장 높이만 18m에 이르는 거대한 열람실 오벌 룸을 비롯해 유리 돔으로 덮인 19세기 초의 아르누보 회랑이자 연주회가 열릴 갤러리 콜베르 등 꼭 한 번 들를 가치가 있는 곳이다.

 

글 전윤혜(프랑스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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