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토대로, 모험을 통해서. KBS교향악단 신임 음악감독 피에타리 잉키넨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3월 21일 9:00 오전

PART 1 INTERVIEW

젊은 기운을 담아 새 출발

지난 1월 열린 잉키넨의 취임연주회는 악단과 관객 사이 가벼운 긴장감이 흘렀다.

흡사 4대 음악감독 오트마르 마가(1929~2020)를 들일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열성 애호가를 빼면 아직 국내 음악 시장에서 잉키넨의 이름은 낯설기 때문이다.

 

 

경험을 토대로, 모험을 통해서.

KBS교향악단 신임 음악감독 피에타리 잉키넨

잉키넨 선임 이후, 국내 언론은 같은 핀란드  출신인 서울시향의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1953~)를 거론하며 “핀란드 바람이 분다”고 했고, 두 사람의 스승인 시벨리우스 음악원 교수 요르마 파눌라(1930~)가 바늘에 실 가듯 소환됐다.

하지만 잉키넨을 에사 페카 살로넨, 유카 페카 사라스테, 사카리 오라모 삼총사를 위시해, 산투 마티아스 로발리, 클라우스 메켈라, 타르모 펠토코스키로 이어지는 ‘파눌라 스쿨’의 허리 세대로 좁혀 볼 건 없다.

여느 파눌라 제자들이 각지에서 그랬듯 악단 음악감독 수해정도론 핀란드식 저변을 한국에 이식하기 어렵다. 핀란드식 정통 시벨리우스 관현악의 전파가 실현 가능한 기대치다. 벤스케는 서울시향에서 시벨리우스 교향곡에 공을 들이고 잉키넨은 취임 연주회부터 시벨리우스를 넣었다.  잉키넨은 여타  ‘파눌라 키드’와 달리 핀란드 현지 악단을 감독하지 않아 고국에서 인지도는 동문에 비해 낮다. 다만 핀란드 지휘자 최초로 2021년 바이로이트 축제에 데뷔하면서 극적으로 국제적 인지도를 높였다.

 

바이올린과 지휘 Ι바그너Ι

시벨리우스 콩쿠르

잉키넨은 핀란드 남동부에 위치한 인구 9만의 코우볼라에서 태어났다. 4세 때 북퀴미(Pohjois Kymen) 음악학교에서 수업을 시작했고 본인은 피아노에 끌려했지만 교사는 그가 아직 유아기임에도 뛰어난 청음능력에 주목해 바이올린을 권유했다.

어린 시절의 잉키넨©잉키넨 제공

10세에 바이올린 전공을 결정하고 시벨리우스 음악원에 입학했다. 학교에선 1996년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자 페카 쿠시스토(1976~)를 길러낸 투오마스 하파넨(1927~)에게 사사했다.

14세에 파눌라 문하에서 지휘 공부를 시작했고 레이프 세게르스탐(1944~)에게도 악단조련의 비법을 배웠다. 어려서 사볼린나 페스티벌에서 본 세게르스탐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이끌려 바그너 지휘자를 꿈꾸게 됐다. 시벨리우스 음악원 지휘 과정은 현악 출신에게도 관악기 연주법을 가르치기에 잉키넨은 호른을 배웠고,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익혔다.중부 유럽이나 영국, 프랑스 음대에서  흔히 지휘자 수련에 쓰는 ‘레피티터식(연습코치)’ 수련과는 전혀 다른 육성 체계다.

1990년대 후반 잉키넨은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1971~)의 조언에 따라 파리에서 열린 자카르 브론(1947~)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했고, 브론에겐 “희망을 찾아왔다”고 했다. 1998년 쾰른으로 건너가 브론 문하에서 3년을 수련하고 2000년 시벨리우스 콩쿠르에 출전해 4위를 거뒀다. 동 대회 우승은 세르게이 하차투리얀(1985~)이 거뒀다. 훗날 잉키넨은 하차투리얀을 도이치 방송교향악단의 협연자로 선정하며 과거의 인연을 악단의 자산으로 연결했다.

잉키넨은 시벨리우스 음악원에서 2003년 바이올린 전공 과정을, 2005년 지휘 과정을 졸업했다. 마음은 지휘로 기울었지만 솔리스트의 끈을 놓지 못하던 시기다. 헬싱키에서 록밴드 공연을 했지만 잠깐의 일탈이었고 ‘잉키넨 피아노 트리오’ 활동도 꾸준히 했다.

 

호주로의 여정 Ι바젤의 스키와 산악자전거Ι

런던과 뉴질랜드 심포니

그는 시벨리우스 음악원 지휘 과정을 마친 2004·2005년부터 전업 지휘자로 본격 입문했다. 코펜하겐 필, 스웨덴 방송교향악단, 네덜란드 방송교향악단, 오슬로 필, 노르쾨핑 심포니, 헬싱키 필처럼 스칸디나비아 악단의 작은 이벤트부터 견습 지휘자로 경험을 쌓았다. 유럽에서 호주 퀸즐랜드, 타스마니아 심포니로 머나먼 연주 여행을 다니며 남반구 주요 오케스트라 행정감독에 눈도장을 찍었다. 멜버른 심포니, 서호주 심포니 등 호주 주요 악단이 잉키넨을 주목했고, 2007년 뉴질랜드 심포니는 남섬과 북섬을 아우르는 투어를 맡기며 음악감독의 자질을 최종 점검했다.

지금은 바젤에 살지만 뉴질랜드 심포니 음악 감독 재직 시절엔 런던이 그의 거처였다. 비행 이동시간만 26시간이 걸리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시차 스트레스를 잘 극복했고, 첫 리허설부터 상쾌한 컨디션을 유지해 현지에선 음악적 해석 이전에 그의 태도부터 호평했다. 바젤로 돌아가면 스키와 산악자전거로 심신을 단련했다. 음악과 행정에서 정직하고 직설적이며 명확하게 요구를 표하는 습성은 핀란드인 미덕 그대로다.

2008년 1월, 제임스 저드 후임으로 뉴질랜드 심포니 음악감독에 부임하며 본격적인 ‘지휘자 잉키넨 시대’의 막이 열렸다. 잉키넨은 뉴질랜드 심포니와 함께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Naxos)을 리코딩했고, 바그너 음악을 스튜디오 리코딩(EMI)했다.

매 시즌 10-12주를 뉴질랜드에 머물며 여덟 시즌을 보내는 동안, 잉키넨은 시벨리우스 뿐만 아니라, 소프라노 크리스티네 괴르크, 테너 사이먼 오닐의 조력으로 바그너를 메인으로 한 연주회와 투어, 리코딩을 통해 실력을 검증받으며 중견으로 성장했다. 2012년 뉴질랜드 심포니와 바그너의 ‘발퀴레’를 연주하며 이듬해 멜버른 링 오케스트라 ‘반지’ 4부작으로 바이로이트 축제에 오르는 주춧돌을 쌓았다. 2010년대 초반, 잉키넨/뉴질랜드 심포니는 얍 판 츠베덴/홍콩 필과 함께 변방에서 달성한 수준급 바그너로 호응을 얻었다.

 

재팬 필의 급부상 Ι정돈된 리허설Ι

도쿄의 바그너


“시벨리우스는 여러 해에 걸쳐

음악을 서서히 변화시켰고

여러 정황이 영향을 미쳤다.

자연 경관을 바라보는 시점이나

국가 정체성에 대한 당시의

관점은 오늘날과 꽤 달랐다.”


2016년과 이듬해 시작된 재팬 필과 도이치 방송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 임기가 잉키넨의 2기다. 팬데믹 이후 복수의 대륙에서 여러 곳을 감독하는 사례가 줄었지만 잉키넨은 독일(도이치 방송교향악단)과 동북아(KBS교향악단, 재팬 필)에서 세 곳을 관장한다.

일본 악단은 감독 선임을 앞두고 투어를 통해 음악 역량 외에 소통과 사회성을 평가한 후에야 음악감독직을 정하곤 했다. NHK 교향악단의 전임 음악감독 파보 예르비(1962~)도 일본 지방 투어를 함께한 이력을 기초로 음악감독에 선임됐었다. 잉키넨은 2009년 재팬 필의 수석객원지휘자를 맡은 다음, 2016년 9월 수석지휘자로 취임하기 전까지 도쿄 산토리홀 공연 외에 부도심에 위치한 스기나미 공회당 공연을 묶어 진행하며 단원, 행정 스태프들과 스킨십을 쌓았다. “투어 사이에 단원들과 식사를 하며 상대를 경청하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고 재팬 필 이사장 히라이 도시쿠니가 밝혔다.

리허설에선 권위를 앞세우기보다 본인의 관점을 따르도록 인도하는 방식이 유명 목회자의 설교처럼 매끈하고 설득력 있다. 알렉산더 라자레프(1945~)를 재팬 필 감독으로 추천한 일본 오케스트라연맹 고문 나오모토 오카야마는 구성원을 대하는 잉키넨의 몸가짐과 정돈된 리허설 리딩을 들어 2010년대 초반부터 라자레프 후계자로 잉키넨을 점찍었다. 2010년대 이후 대부분의 도쿄 악단이 ‘소통형’ 젊은 지휘자와 지속 성장하는 관계를 지향한다. 단원들이 젊어지면서 영어 소통이 쉬어진 배경에 힘입어 잉키넨과 앨런 길버트(현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 음악감독)는 도쿄의 리허설 풍경을 바꾼 주역으로 꼽힌다.

잉키넨은 재팬 필에서 시벨리우스와 바그너로 도쿄 관객과 소통했고 도이치 방송교향악단에서는 드보르자크, 프로코피예프, 바그너를 주로 다뤘다. 잉키넨은 재팬 필과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을 연주했고 실황 라이브 리코딩을 제작했다. 잉키네는 시벨리우스를 연주하면서 단원들에게 ‘강한 의지’를 뜻하는 핀란드어 ‘시스(sisu)’를 강조했다. 재팬 필 단원들은 라자레프식의 강한 러시아 억양 대신, 큰 스케일로 오케스트라 전체로 음악을 울리는 잉키넨 특유의 방식에 적극 호응했다. 오페라에 쉽게 손대지 못하던 악단이 잉키넨과 함께 하면서 오페라를 다뤘고, 세부 뉘앙스를 살리는 한편, 지휘자를 매개로 곡 전체를 부감하는 그림을 그리게 됐다.

잉키넨은 2013년, 수석지휘자 부임 전부터 ‘발퀴레’를 함께하자고 재팬 필 단원을 고무했다. 2016년,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중 발췌한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을 자신의 재팬 필 취임 연주회 프로그램으로 삼은 건 그동안 자신의 뜻을 존중한 단원들에 대한 답례였다. 2019년 ‘라인의 황금’ 전곡을 콘서트 버전으로 연주하면서 재팬 필은 현재 일본 최고의 바그너 악단으로 올라섰다. 잉키넨이 콘체르탄테 규격으로 투영하려는 바그너관은 “지휘자가 가수만 쫓아가선 안된다”이다. 제대로 된 무대 장치가 없기 때문에 관객이 장면을 상상해 들을 수 있도록 잉키넨은 박력을 강조했고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마음을 빼앗지 못한 바그너 연주는 실패”라는 점을 단원과 공유한다.

바이올리니스트 출신답게 현악군의 균형과 블렌딩에 명석하고 마치 조너선 노트와 도쿄 심포니의 ‘크리미’한 현악기군을 보듯, 부드럽고 풍부한 음색이 재팬 필에 유입됐다. 음악 감독의 관점에 맞춰 단원들이 작품을 ‘응시’ 하게 된 점이 잉키넨 부임 이후 최대 변화다. 2019년 악단의 유럽투어를 주도했고, 핀란드·독일·오스트리아·영국에 재팬 필이 등장했다. 특히 핀란트 투어에선 그의 고향 코우볼라를 방문해 그 역시 값진 추억을 담았다.

 

프라하에서의 이별 Ι도이치 방송교향악단

잉키넨의 프라하 심포니 재직 기간은 5년이었지만, 코로나로 계약 후반 대부분의 공연이 취소됐다. 잉키넨은 고전주의 작품에서 역사주의 요소는 받아들이지 않으나, 베토벤 초기 교향곡에선 소편성에 바로크 팀파니를 쓴다. 베토벤 중기 교향곡부터 낭만주의 성향을 기도하고, 되도록 대형 편성으로 오케스트라가 연출 가능한 풍부한 사운드를 추구한다. 베토벤 후기 교향곡과 드보르자크 관현악에선 잉키넨이 구상하는 소리와 프라하 심포니의 전통 사이에 시각적인 차이가 있었다. ‘현은 충분히 울리지만 깊이가 있는가?’ ‘민첩한 움직임으로 예민한 사운드를 만드는가?’ ‘프라하 심포니식인가?’ 하는 평가는 프라하 심포니의 일본 투어 중 현지 평단에서 지적됐다. 이후 그는 깨달음을 얻은 뒤, 도이치 방송교향악단에서는 자신만의 드보르자크 세계를 펼친다.

자르브뤼켄과 카이저스라우테른 방송교향악단의 합병체인 도이치 방송교향악단은 크리스토프 포펜, 카렐 마크 시숑을 거치며 혼란기를 보냈고, 잉키넨과 함께 한 후 독일 방송교향악단 네트워크에서 강자로 부상했다. 2018년 도이치 방송교향악단의 내한 투어도 이러한 야심의 연장에 있다. 잉키넨은 독일의 방송교향악단이 의무적으로 수행하는 현대 음악 연주에 역량을 키우는 동시에, 독일 핵심 레퍼토리를 독일 악단으로 지휘하는 기쁨을 만끽한다. 악단도 소속 감독이 바이로이트 축제에 진출하면서 기존의 탄광 도시 악단을 탈피해 이미지가 한층 밝아졌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전집 완성 이후 버르토크, 브루크너로 본인의 관심을 확장했고, 핀란드에서도 자주 연주되지 않는 시벨리우스 희귀 관현악을 들이며 악단의 레퍼토리를 풍성하게 하는 수완을 보인다.

 

오페라 Ι바이로이트 데뷔 Ι 바그너

잉키네는 지휘 초기 경력부터 오페라에서 일을 벌였다. 핀란드 국립 오페라를 지휘했고 베를린 슈타츠오퍼,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드레스덴 젬퍼 오퍼를 섭렵했고 드레스덴에선 ‘예프게니 오네긴’의 신연출을 성공적으로 지휘해 독일 현지 반응이 좋았다. 바그너 연작은 유럽의 시선을 잠시 피해 호주, 뉴질랜드, 일본에서 연마했다. 카타리나 바그너(1978~)의 간택으로 2020년 ‘니벨룽의 반지’를 지휘했고, 독일권 음악계 반응은 충격이었다. 바그너의 증손녀인 카타리나는 디지털 설비 도입, 여성 지휘자 등용과 동일선에서 잉키넨의 기용을 설명했고, 그의 장점으로 KBS교향악단과 마찬가지로 ‘젊음’을 들었다.

잉키넨은 2019년 바이로이트를 찾아 틸레만, 게르기예프와 함께 오케스트라 피트와 홀을 둘러봤다. 피트가 숨어 이는 공연장의 특별한 음향 조건에 대해 경험이 쌓인 선배들의 조언을 들었다.

그는 “바이로이트는 전체 구성원이 열정으로 가득했다. 참가자들이 자신들이 여름마다 특별한 장소에서 위대한 음악과 드라마의 일부가 된다는 점을 인지한다. ‘니벨룽의 반지’는 바그너가 역경을 이겨내고 26년간 써내려간 역작이다. 살아있다면 지금도 저작에 몰두했을 것이다. 시간을 초월한 주제를 작사하고, 16시간 동안의 비범한 음악으로 작곡하며 특별한 극장 디자인으로 제작하는 이 모든 걸 누가 대신 할 수 있겠나. 진정한 천재이자 대단한 의지의 소유자다”라며 바그너 연주를 위해 지식 뿐 아니라 열정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코로나 영향으로 2020년 잉키넨의 공연은 연기됐고 지난해 ‘발퀴레’ 콘서트 버전으로 드디어 바이로이트에 올랐다. 관객 반응은 여느 데뷔 지휘자들이 그랬드 야유가 심했다. 하지만 이를 발판삼아 뒤이어 선보인 무대에서는 긍정적인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잉키넨은 마라토너 모드로 정신려과 체력을 갖추며 올해 여름 ‘니벨룽의 반지’에 재도전한다. 성악진의 주요 캐스트가 한 명이라도 코로나 양성반응을 보이면 바로 예비 성악가를 기용하고, 리허설에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대책을 확인해야 한다.

축제를 전후해 바그너 오페라의 뿌리와 발전, 개념의 복잡성을 구두로 설명할 기회가 많아질 것이고 자신이 감독하는 악단에서 바그너 연주는 향후 바이로이트 재초청을 대비하는 모의고사 성격을 띨 것이다. KBS교향악단 취임 기자회견에서 바그너 연주 여부와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임기 내에 KBS교향악단에서 바그너를 연주한다면 연광철, 사무엘 윤 등 바이로이트에 오른 현역 성악가들과 축제에 오를 만한 한국 국적의 가수를 탐문하는 작업도 뉴질랜드와 일본에서처럼 뒤따를 것이다.

 

음반 Ι젊음 Ι케미스트리 Ι바이올린 협주곡

1월 2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 취임연주회©KBS교향악단

“KBS교향악단은

반응에 아주 민감하고 친밀하다.

케미스트리가 좋고

공연도좋았다.”

반면, 악단과 지휘자간의 호흡을 확인하기 위한 무대였던 2020년 객원지휘를 제외하면, 2006년과 2008년 각각 뉴질랜드와 호주로 연주를 가는 도중에 들러 KBS교향악단을 지휘한 것이 전부다. 국내 연주자와의 인연으로는 2005년 바이에른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1987~)의 협연으로 모차르트 협주곡 4번을 녹음해 발매(Oehms Classics) 했고, 2018년 도이치 방송교향악단의 음악감독으로 내한 투어를 이끌었다. 독일 현지에선 손열음(1986~)과 협연했다.

KBS교향악단은 핀란드 배경이나 친한(親韓)이력보다는 잉키넨의 ‘젊음’에 주목했고, 나이에 비해 원숙한 감독 경륜을 평가했다. 그는 악단 창립자인 임원식(1919~2002)을 제외하면 역대 KBS교향악단 음악감독 가운데 최연소 음악감독이다. 한때 “경쟁을 피하는 공기업 형태를 닮았다”고 비난받기도 한 KBS교향악단은 2025년 이후 KBS 지원의 추가 연장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 과도기를 ‘젊은 감독’과 헤쳐가기로 했다.

잉키넨은 단원과 사무국 사이에서 음악감독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다. 뉴질랜드 심포니(2008~2015)음악감독, 프라하 심포니(2015~2020) 수석지휘자를 거쳤고 슈투트가르트 근교에서 열리는 루트비히스부르크 축제(2015~2019)의 수석지휘자를 역임했다.

그는 12년만에 KBS교향악단을 지휘하게 된 것에 대해 “악단은 반응에 아주 민감하고 친밀하다. 케미스트리가 좋고 공연도 좋았다. 공백 사이에 물론 새로운 단원들이 왔지만 2006년에 처음 만났을 때 본 단원들이 여전히 많아서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그는 임기 내 목표 중 하나로 유럽과 미국 투어를 꼽았다. 그는 “유럽과 미국 투어는 매우 희망적이다. 2024년 유럽 투어만큼은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 미국은 기회가 된다면 2026년을 기대한다. 2019년 재팬 필과 고향인 코우블라로 떠난 투어는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고 KBS교향악단과도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KBS교향악단 계약기간 동안, 재팬 필(2016~2023), 도이치 방송교향악단(2017~2025)에서도 수석지휘자직을 맡는다(괄호는 임기 기간). 그는 지난 1월 취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그가 맡고 있는 다른 악단과의 협업을 이야기했다. 그는 이에 대해 “여러 선택지가 있다. 뉴질랜드 심포니에선 유럽 여러 악단과 단원들의 일자리를 서로 바꾸기도 했다. 같은 포지션의 연주자가 딱 한 시즌 서로 악단을 달리해보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연주자에게 또 다른 음악적 환경을 제공하면서 새로운 관점을 인식하고 본거지로 돌아오는 이점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올해 재팬 필과는 베토벤 교향곡 연작을 재개하지만 재팬 필 레퍼토리는 KBS교향악단 지휘 곡목과 겹치지 않는다. 같은 곡으로 두 곳을 지휘하던 객원 시절과는 자세 자체가 다르다.

2022년 말까지 공개된 잉키넨의 KBS교향악단 관현악곡은 시벨리우스·말러·쇼스타코비치·베토벤을 아우르고 각종 바이올린 협주곡이 집중 배치됐다.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이나 모차르트 비올라·바이올린 콘체르탄테 같이 지휘와 협주를 겸하는 볼거리도 여타 악단의 경우처럼 기대할 만하다. 결국 KBS교향악단과는 시벨리우스에서 젊은 지휘자로 어떤 성과를 보일 것인가, 바그너는 가능할 것인가의 여부가 재연장을 기약하는 음악적 준거가 될 것이다.

글 한정호 (음악 칼럼니스트·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사진 박진호(studio BoB)

 

PART 2 DISCOGRAPHY

시벨리우스를 통한 청사진

잉키넨이 KBS교향악단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연주를 접할 기회가 많아지겠지만,

그가 남긴 음반들과 영상물을 살펴보면서

어떤 장점이 있는 지휘자인지 알아보자

①Naxos 8572305

②Naxos 8572704

③Naxos 857205

④Naxos 8572227

 

 

 

 

 

 

⑤Naxos Japan NYCC27286

 

 

⑥Naxos 8570068

잉키넨은 KBS교향악단의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에 고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시벨리우스(1865~1957)의 작품을 포함했다. 시벨리우스는 핀란드 출신 지휘자들의 가장 중요한 레퍼토리일 수밖에 없다. 시벨리우스가 남긴 관현악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잉키넨의 음반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시벨리우스의 관현악 작품이 차지하고 있다.

 

충실히 담아 낸 시벨리우스 전곡

시벨루우스의 교향곡 전곡(7곡) 음반은 두 종류가 출시되어 있다. 낙소스 레이블에서 발매된 뉴질랜드 심포니와 녹음한 교향곡 전집은 잉키넨이 음악감독(2008~2016)으로 재직할 당시 변방의 오케스트라를 세계 음악계에 소개한 기념비적인 성과물이었다. 2008년과 2009년에 걸쳐 비교적 짧은 시간에 완성된 이 전집은 평론가들의 격찬을 받았고 가성비에 관한 한 경쟁자가 없는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이었다.

이 전집(Naxos)❶~❹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시벨리우스 해석은 중용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데, 과격한 템포 변화를 배격하고 시종일관 자연스러운 음악적 흐름을 강조한다. 편차가 있는 평론가들의 다양한 리뷰에서도 공통으로 “건실한 연주”라는 표현은 빠짐없이 등장할 정도이다.

두 번째 전집은 2013년 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재팬 필)와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사이클 실황을 수록한 것으로 2015년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발매된 특별판 형태의 음반이다(Naxos Japan).❺일본 현지에서만 발매되어 실물을 접해볼 기회는 없으나, 다행히 스트리밍 서비스로 만나볼 수 있어 감상에는 무리가 없다. 음반 발매를 목표로 녹음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음질은 매우 우수하며 연주 역시 탁월하다. 재팬 필은 다른 일류 일본 오케스트라들과 비교해 연주력 편차가 다소 있지만, 일본 악단들의 공통된 특징이 연주자들의 고른 실력은 국내 애호가들의 입장에서는 부러운 부분이다. 그의 해석은 뉴질랜드 심포니 음반과 차이가 거의 없으며 실황이라고 해서 정서적 측면이 부각되거나 하는 법 없이 중도적인 연주 스타일을 전곡에 걸쳐 지켜나간다.

축제적 성격인 교향곡 5번의 금관 음색이 아주 잘 살아있어서 5번의 연주는 재팬 필과의 녹음이 더 좋게 들리지만, 다른 곡들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해서 어느 쪽을 골라 들어도 좋을 것이다.

교향곡 이외에 시벨리우스의 관현악 작품 녹음으로는 뉴질랜드 심포니와의 교향곡 전집 이전에 녹음하여 단독으로 발매한 ‘역사적 장면’ 모음곡 1·2번과 ‘크리스티안 2세’ 모음곡 Op.27이 있다(Naxos).❻ 이 음반에 수록된 작품들은 시벨리우스의 작품 중에서도 인지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편이기때문에 파보 베르글룬드(1929~2012/WarnerClassics), 유카 페카 사라스테(1956~/RCA)등 동향 선배 지휘자들의 음반이 남아있는 정도이다. 잉키넨의 음반은 이 연주의 훌륭한 대체재로 악단의 연주력과 음질 등 거의 모든면에서 최상급의 연주를 들려준다.

 

프로코피예프부터 바그너까지

잉키넨은 2017년부터 도이치 방송교향악단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0년대 정명훈(1953~)이 수석지휘자를 맡기도 했던 자르뤼켄 방송교향악단의 후신인 도이치 방송교향악단은 바이에른 방송교향아단,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등 독일의 다른 방송교향악단에 비해 음반녹음 분야에서는 지금껏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으나, 잉키넨 취임 이후 4장의 인상적인 음반들을 발매했다.

이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음반은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3·6번(SWR Music)❼이다. 1·5번에 비해 다소 덜 주목받는 숨은 걸작들인 이 작품들은 잉키넨은 완벽하게 통제된 템포 감각으로 이끌어 가면서,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그 밑에 숨은 아름다운 선율들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두 작품 모두 수준급의 연주이며 개인적으로 교향곡 6번은 6번은 프레빈(Philips)의 해석과 함께 최고의 명연주로 추천하고 싶은 필청반이다.

또한 잉키넨과 도이치 방송교향악단은 드보르자크 교향곡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는데, 현재까지 교향곡 2·6번(SWR Music)❽❾이 발매되어 있다. 후기 3대 교향곡(7·8·9번)을 제외하면 존재 자체를 무시당하는 드보르자크의 비인기 교향곡들을 매우 진지하게 다루는 잉키넨의 도전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중용적인 접근은 다소 지루하게 들리기 때문에 이 교향곡들의 경우 아쉬움이 남는다.

잉키넨은 최근 여러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최근 바그너의 오페라에 빠져 있다고 밝힌 바 있다. 2020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니벨룽의 반지’ 지휘자로 낙점되어 바이로이트 데뷔를 앞두고 있었으나 팬데믹 때문에 2021년에서야 그 꿈을 이룰 수 있었고,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중 ‘발퀴레’만 지휘한 바 있다. 다행히 올해 바이로이트에서는 전곡을 지휘할 예정이다. 이 때문에 그의 바그너 연주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전곡 음반이나 영상물은 취입하지 않았으나 다행히 ‘지크프리트’ 중 3막을 축약한 연주가 음반(SWR Music)❿으로 발매되어 있다. 이 음반은 2018년 자르브뤼켄 콘서트할레에서 녹음된 것으로 바그너에 대한 그의 견해를 확인하기에는 시간상 다소 부족한 연주이다. 그런데도 그의 ‘니벨룽의 반지’를 듣기에 앞서 예습 차원에서 한 번쯤 들어봐도 좋을 것이다.

송준규(음악 칼럼니스트)

 

영상으로 만나는 연주

잉키넨의 면모를 확인하는 데 유튜브에 업로드되어 있는 공연 실황들도 큰 도움이 된다. 이 중에서 도이치 방송교향악단의 2018년 내한 실황은 그의 KBS교향악단 입성에 영향을 주었음이 틀림없다. 바딤 레핀 협연의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2번과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이 주요 프로그램이었다. 예술의 전당 녹음의 특징인 펑퍼짐한 팀파니 사운드가 아쉽긴 하지만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잉키넨의 지적인 면모가 아주 잘 드러나는 연주였다. 앙코르곡으로 연주한 그리운 금강산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앞서 소개한 도이치 방송교향악단의 드보르자크 시리즈의 최신 공연도 만날 수 있다. 이 영상은 지난해 12월 공연으로 드보자크의 교향곡 ‘한낮의 미녀’와 바이올린 협주곡, 슬라브 춤곡 등이 담겨졌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이 중간에 연주되었기 때문에 드보르자크의 작품으로만 구성된 공연은 아니지만 앞으로 음반으로 출시될 시리즈에 포함되는 연주회 실황이 하나 더 있다.

 

이 연주회에서는 드보르자크의 교향시 ‘산비둘기’와 교향곡 7번이 프로그램이었는데, 그중 교향곡 7번은 유려한 흐름이 인상적인 연주로서 때때로 과감한 악상을 선보여 이례적인 연주로 평가받는다. 연주만 놓고 보면 음반으로 출시된 교향곡 2·6번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끝으로 잉키넨과 도이치 방송교향악단의 존 윌리엄스 콘서트도 놓칠 수 없는 연주회이다. 2019년 슈트란트바트 로스하임 호수에서의 야외 콘서트 실황인 이 연주회는 올해 90세를 맞는 영화음악가인 존 윌리엄스의 작품들을 개괄하는 자리였다. ‘LA 올림픽 팡파르’를 시작으로 영화 ‘ET’ ‘슈퍼맨’ 등의 유명 영화음악을 다루는 잉키넨의 지휘는 시원시원하며 작품소개를 맡은 카운터테너 롤란트 쿤츠의 등장도 즐거움을 더한다. 앙코르로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천둥과 번개 폴카’를 서보이는 것도 이색적이다.

 

 

 

 

 

PART 3 COLUMN

지휘계의 겨울왕국

핀란드 지휘계의 역사는 헬싱키 필하모닉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뿌리는 세계 곳곳으로 흘러가

100여 년 전의 역사를 잇고 있다.

헬싱키 필하모닉의 뿌리를 따라 핀란드 출신 지휘자들을 살펴본다.

 

로베르트 카야누스(1856~1933)는 882년 헬싱키 필하모닉의 전신인 헬싱키 오케스트라 소사이어티를 설립했다. 1888년 베토벤 교향곡 9번을 핀란드에서 초연 지휘했고, 1930년에 시벨리우스 교향곡 1·2·3·5번과 교향시 ‘타피올라’의 첫 음반을 런던 심포니와 녹음했다. 카야누스 재임 기간이었던 1914년, 헬싱
키 오케스트라 소사이어티는 라이벌이었던헬싱키 심포니와 합병하여 오늘날의 이름인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됐다. 1962년까지 헬싱키 필하모닉은 핀란드 국립오페라의 전속 악단으로도 활약했다. 카야누스는 무려 50년 동안 헬싱키 필모닉을 이끌었다. 1942년~1943년 헬싱키 필을 이끌었단 아르마스 에르네펠트(1869~1958)는 시벨리우스의 아내 아이노 예르네펠트의 오빠였다. 헬싱키에서 페루초 부소니(1866~1924)에게 배우고 파리에서 쥘 마스네(1842~1912)를  사사한 그는 핀란드 최초로 바그너 오페라를 지휘한 주인공이었다. 이후 스웨덴 국적을 취득한 그는 스톡홀름에서 생을 마감했다.

시벨리우스의 황금시대
파보 베르글룬트(1929~2012)는 1975~1979년 헬싱키 필하모닉을 지휘했다. 에스토니아 지휘자 네메 예르비는 파보 베르글룬트를 본받으라고 아들의 이름을 ‘파보’라 지었다.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의 제1바이올린 단원이었던 베르글룬트는 푸르트뱅글러, 크나퍼츠부쉬가 지휘한 빈 필의 연주를 직접 듣고 감명을 받았다. 핀란드 방송교향악단, 영국 본머스 심포니 등의 음악감독을 맡았고, 1975년부터 네 시즌 동안 헬싱키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이 됐다. 시벨리우스 해석의 권위자로 인정받은 베르글룬트의 리허설은 인정사정 없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완벽주의를 지향하고 파트마다 악보에 세세한 표시를 하도록 했다. 그랬던 베르글룬트가 한 인터뷰에서 “시벨리우스를 해석할 때 너무 세부를 완고할 정도 로 정확히 표현하려 하면 작품을 망치게 된다”고 언급한 것은 모순으로 느껴진다. 레이프 세게르스탐(1944~)은 핀란드 서부 보트니아만 연안에 있는 항구 도시 바사에서 태어났다. 지휘자,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비올리스트, 피아니스트인 그는 335곡의 교향곡을 비롯한 여러 작품을 남긴 작곡가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시벨리우스 음악원

시벨리우스 음악원에서 바이올린, 피아노와 지휘를 공부했고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장 모렐에게 지휘를 배웠다.
1995~2007년 헬싱키 필하모닉의 수석지휘자로 재임했고 빈 방송교향악단·핀란드 방송교향악단·덴마크 국립교향악단 등의 수석 지휘자를 역임했다. 파눌라와 마찬가지로 시벨리우스 음악원 교수로 수자나 말키 등의 제자를 배출했다. 유카 페카 사라스테(1956~)는 여러 가지 시대적 특성을 동시에 소화해내는 폭넓은 스펙트럼의 지휘자로 평가받는다. 시벨리우스 해석에 일가를 보였고, 모차르트 연주에도 능하다. 사라스테는 스코티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를 지냈고, 토론토 심포니와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로 재임하면서 음반사 RCA에서 악단 최초로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을 녹음했다. 말러·스트라빈스키·구바이둘리나·드뷔시·엘가·닐센·이베르 등 다양한 작곡가들의 작품 연주와 녹음에도 힘써 악단 레퍼토리의 폭을 넓혔다. 오슬로 필하모닉(2006~2013)  음악감독을 거쳐 2019년까지 쾰른 서독일 방송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로 재임했다. 핀란드 지휘자 가운데 최초의 국제적 명성과 대중적 인기를 불러온 인물은 에사 페카 살로넨(1958~)일 것이다. 헬싱키에서 태어나 시벨리우스 음악원에서 공부했고 1979년 핀란드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하면서 데뷔했다. 1992년 35세의 나이로 LA 필 사령탑을 맡은 이후 2009년 두다멜에게 지휘봉을 넘길 때까지 진보적인 레퍼토리로 시즌을 이끌었다. 영국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로 활약하던 그는 2020년 산투 마티아스 루발리에게 지휘봉을 넘기고, 마이클 틸슨 토머스의 뒤를 이어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음악감독에 부임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은 그에 대해 “늘 완벽한 무대를 선보이는 지휘자. 언제라도 리허설 없이 무대에 내보내도 어떤 곡이라도 함께할 수 있는 지휘자”라고 말했다.

파눌라에게서 뻗어 나온 가지
1965~1972년 헬싱키 필하모닉을 지휘한 요르마 파눌라(1930~)는 핀란드 지휘계의 대스승이다. 성시연을 비롯하여 오스모 벤스케, 사카리 오라모, 유카 페카 사라스테, 에사페카 살로넨 등을 길러냈다. 현재 헬싱키 필하모닉의 수석지휘자는 2016년 부임한 수자나 말키(1969~)이다. 처음엔 첼로를 배웠던 그는 이후에 파눌라와 세게르스탐에게 지휘를 배웠다. 예테보리 심포니의 수석 첼리스트였던 그는 2002년부터 스타방게르 심포니의 음악감독이 되어 2005년까지 지휘했다. 그 전인 2004년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을 처음 지휘했고 2006년부터 이 악단의 수석지휘자가 되어 2013년 후임자인 마티아스 핀처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2013년 굴벤키안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 됐고, 2017년부터 헬싱키 필하모닉 사상 최초의 여성 수석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말키를 가르친 파눌라는 훌륭한 스승이었지만, 2014년 핀란드 방송과 가진 어느 인터뷰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여성 지휘자는 충분히 여성적인 음악을 지휘해야 맞다”는 내용이었다. 제자인 살로넨 같은 지휘자들은 즉각 이에 대해 반박하기도 했다. 미코 프랑크(1979~)는 5세 때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7세 무렵 다른 책보다도 오케스트라 총보를 손에 들고 읽는 것에 흥미를 보인 천재였다. 1992년 헬싱키 시벨리우스 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던 그가 지휘 수업 중 하이든 교향곡을 지휘하는 모습이 파눌라의 눈에 띄었고, 이후 파눌라에게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1996년 핀란드 국립오페라에서 모차르트 ‘마술피리’로 데뷔했다.  이후 23세가 되기도 전에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런던 심포니·뮌헨 필·베를린 국립 오페라·이스라엘 필 등 북유럽의 주요 오케스트라에서 지휘 데뷔를 했다. 2002~2007년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였고, 2004년 핀란드 국립오페라 극장의 음악 총감독으로 재임한 바 있다. 2012년 12월, 프랑크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측으로부터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콘서트 버전을 지휘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시 음악감독 정명훈의 대타였다. 공연 몇 개월 뒤인 2013년 4월, 그가 2015년 9월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음악감독으로 정명훈의 뒤를 잇는다는 뉴스가 전해졌고, 현재까지 순항하고 있다.  클라우스 메켈레(1996~)는 현재 전 세계 20대 지휘자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로 손꼽힌다. 바이올리니스트인 할아버지, 첼리스트인 아버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여동생은 핀란드 국립발레단의 무용수다. 시벨리우스 음악원에서 첼로를 배우며 파눌라에게 지휘를 배웠다. 핀란드 국립오페라 합창단에서 노래하던 12세 때 지휘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2017년 스웨덴 방송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했고 2018년에는 최연소 수석객원지휘자가 되었다. 같은 해 투르쿠 음악제의 예술감독직을 수행했고 2020년부터 오슬로 필하모닉의 수석지휘자로 임명됐다. 2021년부터 파리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지휘하고 있다. 소년 같은 얼굴을 한 약관의 핀란드 지휘자가 세계 오케스트라를 호령하고 있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

 

PART 4 REVIEW

잉키넨 취임연주회 돌아보기

1월 28일 예술의전당 · 29일 롯데콘서트홀

 

지난 1월, 이틀에 걸쳐 취임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피에타리 잉키넨은 본격적으로 KBS교향악단의 키를 잡았다. 그는 음악적 뿌리인 핀란드 레퍼토리를 1부와 2부에 배치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과감히 소개했다. 시벨리우스의 ‘카렐리아’ 서곡과 2부의 ‘레민카이넨’ 모음곡까지 핀란드 민족의 역사와 서사가 담긴 작품을 포함해 2010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 아브제예바의 협연으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선보였다. 객석의 반응은 뜨거웠고, 언론도 그의 연주를 주목 했다. 음악 칼럼니스트 류태형은 “명확한 지시로 나무보다 숲을 그리는 지휘자”라며 그의 지휘는 독일 출신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을 생각나게 한다고 전했다. 그 현장을 본지의 허서현(이하 허), 임원빈(이하 임) 기자가 생생히 전한다.

 

(허) 먼저 전면에 내세운 시벨리우스의 작품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핀란드의 서사가 담긴 작품들이었던 만큼, 관객이 자신만의 영화 한 장면을 그려보기 좋은 연주였다.

(임) 서사적 음악이 갖는 장점이다. 영웅의 모티브와 음악 속 다양한 장면들을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곳곳에서 핀란드의 풍광도 그려지더라. 오로라 빛깔. 상투적이긴 해도 이만한 표현이 있을까 싶다. 그런데도 핀란드의 전설과 신화는 여전히 낯설다. 두 작품의 영감이 된 핀란드 서사시 ‘칼레발라’에 익숙하지 않다.

(허) 바로 그 지점이 흥미로운 것이다. 핀란드의 전설을 음악으로 읽어주는 것 아닌가!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지휘자의 모습이 무대에서 그려졌다.

(임) 그렇게 머릿속에 음악을 그릴 수 있는 것도 음악을 부드럽게 전개하는 지휘자의 노련함 덕분인 것 같다.  악단을 꼼꼼히 다듬은 흔적이 역력하다.

(허) 전반적으로 현악 파트에 공을 들인 느낌이다. 미세한 화성의 색채가 두드러지더라. 얇게 만져진 현악기의 층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시벨리우스 특유의 미묘한 화성은 신비로운 무언가를 상상하게 했다.

(임) 현악 파트가 더욱 두드러질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통제에 놓인 목관과 금관 때문인 것 같다. 그중에서도 금관이 적재적소에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 인상 깊었다. 금관의 안정적인 균형이 음악의 감초 역할로 이어진 것이다. ‘감추어서 드러내는’ 지휘자의 철학이 돋보였다.

(허) 공감한다. 2부의 ‘레민카이넨’ 모음곡에서 중요한 역할은 목관이 맡았다. 1악장(레민 카이넨과 소녀들)의 주제를 제시하는 것도 목관이었고, 2악장(투오넬라의 백조)의 독백도 잉글리시호른이 연주했다.

(임) 투티(총주)에서는 마치 하나의 악기로 느껴졌다. 그 음색은 백파이프를 연상하게 했는데, 작품의 이국적인 정취와 잘 어울렸다.

(허) 앙코르로 선보인 ‘핀란디아’도 재치 있었다. 잉키넨이 포디움에서 ‘핀란디아!’라고 곡목을 외친 순간 객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시벨리우스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기에 반응이 뜨거웠겠지만, 그 익숙함에 퍼텐셜이 터진 것은 KBS교향악단이었다.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안정감을 찾아가던 연주는 앙코르에서 무대와 객석 모두에게 만족감을 선사했다.

(임) 그 관객 중 한 명이 나였을 것이다. 반가움에 비명을 질렀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이번 공연에서 낯섦과 익숙함의 경계를 허문 1등 공신은 단연 율리아나 아브제예바의 협연으로 만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일 것이다. 1부 서곡과 2부 모음곡 사이에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허) 가까운 좌석 덕에 손 모양을 자세히 관찰 할 수 있었는데, 손목을 높이 들어 손가락을 모두 핀 채로 연주하는 모습이 언뜻 아르헤리치의 묵직하면서도 날렵한 터치를 생각나게 했다. 일반적으로 거대한 덩치를 연상하게하는 차이콥스키 협주곡에서 소프트 페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미세한 음색의 차이를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몇 번의 미스 터치를 고려하더라도 힘과 해석이 균형을 이룬 연주였다.

(임) 비슷한 연주 스타일의 두 피아니스트는 쇼팽 콩쿠르 출신이다. 아르헤리치 이후 등장한 첫 여성 피아니스트 우승자라는 점도 재미있다. 저현을 울리는 타건이 인상적이었다. 자칫 산만할 수 있는 대목에서도 음향은 그대로 가져가되 정갈한 음색을 들려주었다.

(허) KBS교향악단은 지난 2년 동안 수많은 객원 지휘자와 함께하며 새로운 옷을 입을 준비를 했던 것 같다. 기자 간담회에서 잉키넨이 “단원들은 언제든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난다.

(임) 그런데도 여전히 플루트와 클라리넷 등 수석 자리에는 객원 연주자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성공적인 연주를 KBS교향악단 모두의 공으로 돌리기에 애매한 부분이다. 수년째 공석인 악장 자리를 비롯하여 여러 수석 자리를 채우는 것이 잉키넨이 임기 동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겨졌다.

(허) ‘레민카이넨’ 모음곡을 필두로 시벨리우스의 작품에 대한 관심도가 올랐으니, 핀란드 출신임을 내세우며 ‘아이덴티티’로 명명한 취임 연주회에서 잉키넨 소기의 목적은 달성되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임) 10월에 만나볼 교향시 ‘전설’과 합창 교향곡 ‘쿨레르보’도 기대된다.

허서현·임원빈 기자 사진 KBS교향악단

 

                      

 

 

PART 5 PREVIEW

KBS교향악단 2022 정기연주회 톺아보기

KBS교향악단은 피에타리 잉키넨과 함께 상임지휘자 공석으로 2년 동안 묶여있던 닻을 올리고 힘찬 출항을 알렸다. 올해 예정된 잉키넨의 무대는 1월과 2월을 포함해 총 6번. 그는 이번 해에 말러와 쇼스타코비치 등 20세기 작곡가의 작품을 포함해 숨겨진 시벨리우스의 작품들을 선보이며 오로라 빛 낭만을 그린다. 먼저 그의 진면모는 시벨리우스 작품에서 드러난다. 그는 올 한해 잘 연주되지 않는 작품에 집중하며 ‘칼레발라’ 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안배했다. 핀란드의 전설, 민요, 신화 등 구비 문예를 집대성한 ‘칼레발라’는 그가 취임연주회(1.29·30)에서 지휘한 ‘카렐리아’ 서곡 과 ‘레민카이넨’ 모음곡에도 영향을 끼쳤다.
지난 2월 장중한 기도문과 같은 ‘안단테 페스티보’ 를 선보인데 이어 오는 10월에는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전설’ 과 합창 교향곡 ‘쿨레르보’ 를 끝으로 시벨리우스 여정의 정점을 찍을 예정이다(10.28). 그 중 ‘쿨레르보’ 는 독창· 합창·오케스트라 편성으로 시벨리우스가 남긴 작품 중 가장 큰 편성을 자랑하며, ‘칼레발라’ 에 등장하는 쿨레르보의 비극적 서사를 그린다. 소프라노 요한나 루사넨 카르타노와 바리톤 톰미 하칼라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시벨리우스 작품이 잉키넨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통로였다면, 말러 교향곡 7번은 악단의 기량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잉키넨은 말러 교향곡 7번을 선보이며 한 층 성장한 악단의 실력을 뽐낼 예정이다(3.24). 게르기예프가 이 작품을 두고 “고심하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복잡한 구성과 서사로 악명 높다. 손유리 공연기획팀장은 “KBS교향악 단 정기프로그램에 이 작품이 오른 건 손에 꼽는다”며 “이번 연주가 악단의 실력을 끌어 올릴 것으로 기대한 다”고 밝혔다. 협주곡은 지휘자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편성이다. 협연자와 악단의 호흡을 동시에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과 2월, 피아니스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와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이 협연한데 이어 벤저민 슈미트는 코른골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며 3월 무대를 연다(3.24). 슈미트는 핀란드 지휘자 하누 린투, 리카르도 샤이 등과 함께 꾸준히 무대에서며 동시대 작곡가 하르트만, 굴다 등의 작품을 연주해왔다. 클라라 주미 강은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선보인(9.28). 잉키넨은 2018년 도이치 방송교향악단 내한 당시 바딤 레핀의 협연으로 연주한 바 있다. 러시아 혁명으로 조국을 떠나있던 프로코피예프가 3년의 세월을 보낸 뒤 다시 러시아로 돌아와 남긴 작품으로 서정성 짙은 애수가 돋보인다. 이 외에도 꾸준히 관객의 사랑을 받아온 작품들도 눈에 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9.28)을 비롯해 연말 공연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도 만나볼수 있다(12.24).

글 임원빈 기자 사진 KBS교향악단

 

PERFORMANCE INFORMATION

피에타리 잉키넨/KBS교향악단
3월 2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코른골트 바이올린 협주곡(협연 벤저민 슈미트),
말러 교향곡 7번
9월 28일 롯데콘서트홀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2번
(협연 클라라 주미 강),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10월 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시벨리우스 교향시 ‘전설’, 시벨리우스 합창 교향곡
‘쿨레르보’(협연 요한나 루사넨 카르타노·톰미 하칼라)
12월 24일 장소 추후 공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피터 운지안(지휘)/김수연(바이올린)·김범준(첼로)
4월 27일 예술의전당

코넬리우스 마이스터(지휘)/
자비네 마이어·라이너 벨레(클라리넷)
5월 26일 예술의전당
요엘 레비(지휘)/장 에프랑 바부제(피아노)
6월 30일 예술의전당
앨런 길버트(지휘)/키안 솔타니(첼로)
7월 29일 장소 추후 공개
정명훈(지휘)/벤저민 그로브너(피아노)
9월 1일 예술의전당
드미트리 키타옌코(지휘)/릴리아 질버스타인(피아노)
11월 24일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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