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통영국제음악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4월 29일 2:02 오후

COVER STORY

남쪽의 순풍을 일으키는 사람들
통영국제음악제 21주년 &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20주년

재단 설립 구성원부터 실무진과 예술감독, 
그리고 콩쿠르로 빛난 연주자들까지
매년 바다의 내음을 품고 돌아오는 통영의 음악은 ‘얼마나 새로울까’하는 기대로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올 4월은 이 자랑스러운 음악제가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시간을 들춰보고자 한다. 끝내 통영 땅을 밟지 못한 작곡가의 정치적 부대낌과 음악제를 감당하기 녹록치 않았던 지역 소도시의 환경. 그 악조건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 이들의 기록과 증언을 모았다. 
총괄 허서현 기자 사진 황필주·통영국제음악재단·객석 DB

PART1 HISTORY & DIALOGUE
통영국제음악제의 역사에 부쳐

이용민(재단 대표)·이홍구(전 재단 이사장)·
김승근(초대 사무국장)·김소현(재단 본부장) & 
진은숙(예술감독)


PART2 COMPETITION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20주년
콩쿠르 수상자들의 활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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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윤이상 작곡가

C-30

故 박성용 금호아시아나 그룹 명예회장

©황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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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HISTORY & DIALOGUE

윤이상이 그리워한 고향이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에 이르기까지
통영국제음악제의 역사에 부쳐

대담 참석자(사진 왼쪽부터)
초대 사무국장
김승근
독일에서 윤이상에게 작곡을 배웠다. 국제윤이상협회 사무국장을 맡는 등 윤이상 기념 사업에 참여했으며, 재단의 초대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 국악과 작곡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이용민 대표 
통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통영중·고등학교 음악 교사로 일했다. 논문 ‘윤이상의 초기가곡 분석 연구’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2002년부터 통영국제음악제 운영위원으로 일했다.  사무국장(2004~2013)· 예술기획본부장(2014~2020)으로 일했고, 2021년부터 재단 대표로 
재직 중이다.

전 국무총리 
이홍구
초대 재단 이사장인 박성용(1932~2005)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의 간곡한 부탁으로 이사장을 이어받아 2005년부터 10년간 재단을 이끌었다. 재단의 기틀을 다졌고, 자치단체장의 정치색에서 독립적인 활동을 가능케 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김소현 본부장
2006년부터 재단에 함께 했다. 이용민 대표가 신임 사무국장으로 취임할 당시 신예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참여해 세대교체의 흐름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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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작곡가의 고향에서 시작된 태동

윤이상의 음악과 시대상
윤이상 선생의 독일 작업실에는 옛 통영항의 사진이 크게 걸려있었다. 1990년대의 통영을 선생님께 보여드렸을 때 조금은 낯선 문화의 현장이 고향에 대한 향수와 경이로움을 더해드린 듯했다.
1993년 최초의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공개적으로 출판과 공연이 금지되었던 예술가들에 대한 해금 조치가 더욱 현실화되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예음문화재단과 월간 ‘객석’의 주최로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세계를 조명해보는 대규모 행사가 기획되었다. 1994년 가을 개최로 계획된 ‘윤이상 음악축제’는 윤이상의 참여가 거의 확실시되던 대규모 음악제였다. 앞서 1982년에도 ‘대한민국음악제’에서 ‘윤이상 음악의 밤’이 열린 바 있었지만, 일회성에 가까운 행사였다. 여러 부대행사가 서울에서의 시작 이후, 광주와 부산까지 연계토록 한 대규모 페스티벌 ‘윤이상 음악축제’는 예정대로 개최되었지만, 여러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 윤이상은 정치적인 이유로 참여하지 못했다. 윤이상의 고향 방문이 끝끝내 성사되지 못하여 아쉬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1996년 독일에서 사단법인 국제윤이상협회가 설립되었고,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오페라 ‘심청’①을 아시아 최초로 무대에 올렸다. 주한독일문화원과 국제윤이상협회가 이에 참여했으며, 이후 한국에서 개인적 연구나 단발적 연주 차원에서 머물던 작곡가 윤이상의 작품세계가 서서히 조명되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크나큰 업적을 남긴 작곡가의 경우, 그의 고향 혹은 주로 활동했던 무대 장소 등 관련된 곳곳에서 기념행사들이 열리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뿐 아니라 라이프치히(바흐), 페사로(로시니), 상트페테르부르크(쇼스타코비치) 그리고 바이로이트(바그너)에 이르기까지 많은 도시가 다양한 방식으로 작곡가를 기념하는 행사와 기관들을 설립하고 이를 후대로 이어가면서 음악과 예술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직 무르익지 않은 인상적이고 부러운 문화였다.

윤이상 선생이 연루된 동백림사건②은 1967년이었습니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께서는 정치학자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미국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는데, 당시 윤이상 선생의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이홍구 미국에는 한국의 동백림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알려지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1969년 귀국 후에야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고, 동백림 사건의 후유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유럽 유학생들의 사정에 대해 알 수 있었지요.

1994년 ‘윤이상 음악축제’ 당시 정치적인 이유로 윤이상 선생은 통영 땅을 밟지 못했지요. 방문 계획이 무산되었을 때 상황이 어땠나요.
김승근 방문이 무산된 후로 오랫동안 열망했던 귀국이 성사되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이 있었습니다. 이후 건강도 급속도로 안 좋아지셔서 주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나요. 
통영국제음악제 역사의 시작은 이렇듯 윤이상의 삶, 음악과 밀접히 연관됩니다. 

윤이상의 음악에 대해 각자가 느끼고 있는 의미도 다르실 것 같습니다.

이용민 제가 처음 윤이상 선생님의 이름을 들은 것은 1993년쯤으로 기억합니다. 대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였는데, 지도 교수님이 일본 잡지에 실린 ‘윤이상 특집 기사’를 보여주시며, “자네 고향 분인데, 아나?”라고 물으시더군요. 그때부터 대단한 분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윤이상의 초기 가곡으로 논문을 썼고, 그 인연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이홍구 개인적인 인연이라면, 돌아가시기 전에 귀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정부와의 타결 방법에 대해 당시 통일원을 책임지고 있던 내게 의사 타진의 서신을 보내셨던 것이죠.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였지만, 북한과의 관계가 걸림돌이 되어 정부와 쌍방 간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귀국은 결렬되고, 결국 타국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셨습니다. 이후 통영국제음악제를 통해 윤이상의 음악을 접하며, 고국을 그리며 쌓인 마음속의 한을 작품에 접목한 것을 듣게 되었고, 큰 감동을 하였습니다.

김승근 작품에서 한국적인 요소를 많이 사용했던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은 제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나 한국음악을 전공했기에, 음악가로서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되셨죠.

김소현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은 들을수록 “거장의 음악은 다르구나”하는 생각이 확고해지는 것 같아요. 때로는 관념적이고, 때로는 아주 현실적인 두 측면을 모두 다 가진 음악입니다. 가장 최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연주된 윤이상의 곡은 ‘광주여 영원히!’였는데요, 당시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협연을 들으러 왔던 관객들이 2부의 ‘광주여 영원히!’를 듣고 보내준 열렬한 환호가 아직도 생생하네요. 

통영시의 변화와 첫 출발
1998년, 초기 가곡을 중심으로 한 ‘윤이상 가곡의 밤’이 기획됐다. 한일어업협정 이후 달라진 통영의 어업 환경에서 도시산업의 한 축을 ‘관광’으로 설정하고, 시 차원에서 21세기 관광진흥 계획에 관한 연구 용역을 한국관광연구원에 위탁했다. 초창기 음악제 관계자들이 이 연구에 참여하며, 문화 산업적인 측면의 장기적 비전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음악제가 태동하려는 당시 통영시의 환경은 변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시의 환경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을 텐데요, 시의 사회경제적 변화가 음악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이용민 반대로 통영국제음악제의 태동과 성장이 통영 지역의 사회 경제 변화에 미친 영향도 크지 않나 생각해요. 2000년대 초까지 통영은 단지 문화적·역사적 잠재력을 가진 작은 어업 도시로, 1차 산업 기반의 도시였습니다. 음악제로 인해 문화서비스, 국제교류를 중심으로 한 고차 산업 도시로 옮겨갔으며, 2015년 국내 최초의 유네스코음악창의도시로 지정받아 도시의 대표 브랜드가 음악이 되었죠. 
김소현 시의 토대는 여전히 수산업이긴 합니다만, 음악제의 태동과 함께 정책의 방향을 문화와 관광으로 확대하였죠. 이제 통영은 국내 대표 여행지로 자리매김하여, 관광객 대상의 자영업자 비율 또한 많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시민들 사이엔 외지 관객으로 넘쳐나는 음악제를 1년 내내 하면 좋겠다는 우스갯소리도 있고요. 음악제 관객들이 공연 외 시간에도 즐길 거리③가 생기면서, 낮에는 섬 투어 등의 관광을, 밤에는 공연을 관람하며 장기간 체류하는 관객이 늘어가고 있는 것도 특징입니다. 곧 착공하는 남부내륙철도로 인하여 고속철도가 통영에 들어오게 되면, 물리적 거리감이 줄어 관객들이 통영과 저희 음악제, 그리고 음악당의 매력에 더 빠지게 되실 거라 확신합니다.
2000~2002
‘통영현대음악제’와 
국제음악제로의 전환

국제 행사로서의 노하우를 쌓다
여러 자문과 스터디를 통해서 독일의 작은 도시에서 해마다 열리는 유서 깊은 현대음악축제인 도나우에싱엔 음악제④를 그중 가장 적합한 모델로 삼았다. 이를 기본으로 하여 2000년과 2001년 두 번의 통영현대음악제를 개최했으며, 그것이 현재 통영국제음악제의 모태가 되었다. 그때까지 지역에서 큰 행사를 치러본 경험이 부족했지만 도나우에싱엔의 성공 사례를 한국 실정에 맞게 윤이상의 고향에 대입해보는 과정에서 얻게 될 노하우들을 꾸준히 축적해나간다면 통영에서의 현대음악제가 한국을 넘어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음악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2000년 2월 18일, 3일에 걸쳐 ‘통영현대음악제2000_윤이상을 추모하며’라는 이름으로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음악축제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밀레니엄 시대의 첫 문화 행사가 지방 소도시에서 열린다는 점과 그동안 실체를 접하기 어려웠던 윤이상의 음악을 오롯이 예술적으로, 그의 고향에서 축제 형식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당시 지역 사회와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2001년은 전년도의 노하우를 활용해 프로그램의 다각화를 시도했다. 당시 창립 20주년을 맞은 한국여성작곡가회를 음악제 공동주최 기관으로 참여시켰고, ‘음악과 여성’이라는 주제를 선정했다.

현 음악제의 모태인 ‘통영현대음악제’가 2000년대 초반에 열렸습니다. 오랜 시간 애써온 열매가 맺어지는 감격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김승근 2000년 여름, 유럽의 유수 음악제들을 시찰해볼 기회가 생겼는데 당시 통영현대음악제가 수준급의 축제로 크게 손색이 없다고 느꼈고, 국제음악제로의 승격에도 큰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됐습니다. 초기 통영문화재단과 천명주 이사장님, 김상렬 상임이사님을 비롯한 여러 실무진의 의지가 현재 통영국제음악제의 큰 밑거름이었습니다. 
이용민 당시 저는 음악 교사이자 관객으로 음악제에 참여했죠. 제대로 된 공연을 통영에서 볼 수 없던 때라 음악제를 통해 보이는 시도가 신선함을 넘어서 파격적이었습니다. 통영은 그 시작부터 성공의 냄새가 났던 것 같아요.

드디어, 2002 통영국제음악제의 탄생
2001년 11월, 예년의 현대음악제에 비해 규모가 커진 10일간의 국제음악제를 홍보하기 위해 D-100 연주회를 열었고, 통영국제음악제 홍보대사 역할을 할 TIMF앙상블이 이날 첫선을 보였다. 통영시와 월간 ‘객석’이 중심이 되어 마산MBC와 공동으로 행사를 주최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금호그룹의 문화재단이 음악제 협력 기관으로 참여한 것도 중요한 변화였다. 
금호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은 컨소시엄 형태의 재단법인 통영국제음악제 이사장으로서, 첫 번째 통영국제음악제를 이끌었다. 성공적인 시작과 더불어 박 이사장은 세계적 수준의 음악당 건립, 프로그램을 책임질 수준 높은 예술감독 영입, 후원회 창립 등의 장기 비전을 제시하였고 2005년 타계하기 전까지 빈 필하모닉 초청, 국제음악콩쿠르 창설, 음악당 후보지 선정 등 음악제의 비약적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후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 수준의 행사로서의 국제음악제를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려놓았다. 

박성용 명예회장은 지금의 통영국제음악제 모습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함께 음악제를 만들어오며 가장 기억에 남는 그분의 모습이 있다면요.
이용민 2004년 음악제를 앞두고, 사무국장 내정자로 회장님을 뵈었는데 어느 날은 회의 중에 그분의 말씀을 잘 이해 못하겠는 거예요. 회장님이 말씀도 빠르시고, 전라도 사투리를 쓰시니… 용기를 내어 두어 차례 다시 말씀해달라고 했더니 껄껄 웃으시면서 오늘 저녁에 같이 식사하자고 하셨습니다. 난생처음 양고기 스테이크와 와인을 먹었는데, 제가 워낙 잘 먹으니 본인 걸 잘라주시기도 하셨죠. 헤어질 때 제게 ‘솔직한 게 참 마음에 들었다!’라며 앞으로도 요령 피우지 말고 진솔한 자세로 일해 달라고 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김승근 세상을 앞서나가셨던 것 같아요. 문화를 이렇게까지 진정성 있게 후원한 분이 계셨기에 그 기틀이 만들어졌다고 확신합니다. 통영국제음악당은 박성용 회장님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홍구 제가 박 회장과 인연을 맺은 건 사실 음악제 한참 전이죠. 젊은 시절, 예일 대학에서 그는 경제학, 나는 정치학을 수학하며 클래식 음악에 대한 공통 관심으로 매우 가깝게 지냈습니다. 이후 그는 한국에서 그룹을 이끌면서도 젊은 음악도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죠. 특히 윤이상 선생의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기에,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는 윤 선생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고 그 마음이 통영국제음악제에까지 닿았을 것이라 짐작하게 됩니다. 음악제에 대한 그의 확고한 자세와 지도력은 20년 역사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2023
20년의 역사 앞에서,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며

남쪽 지방에서 꽃이 피기 시작하는 3월 말 대략 2주 이내로 진행하는 봄철 음악제와 함께 통영국제음악제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들이 있다. TIMF앙상블과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가 바로 그것이다. 음악도시 통영의 높은 브랜드 가치는 이들의 명성과 함께 높아졌다. 또한 루체른 음악제로부터 벤치마킹한 교육프로그램,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등이 새로 지어진 음악당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국제음악제라는 더 큰 브랜드를 만들어내었다. 2011년 초대 예술감독으로 독일 출신의 젊은 지휘자 알렉산더 리브라이히를 취임 2년 전인 2009년에 선임 발표하고 감독 중심으로 재편하는 진취적인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음악당이 완공된 2014년⑤ 시즌부터 음악제와 음악당을 통합 운영하는 조직 개편과 함께 운영책임자로 해외에서 경험이 있는 전문가를 사장으로 초빙(초대사장 플로리안 리임)했다. 더불어 재단 산하의 자문기관으로 국제위원회를 두어 세계적인 수준의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전력을 다하였다.

현재 통영국제음악제는 통영국제음악재단이 주관하며, 재단이 통영국제음악당의 운영까지 맡고 있습니다. 매해 시 예산의 변동에 영향을 받을 텐데요, 현재 음악제 운영에서 국가 보조 예산 비율은 어느 정도이며, 통영국제음악제가 앞으로도 그 명성을 잘 이어 나가기 위해 재단에 필요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용민 매해 변동이 있긴 합니다만, 65% 이상이 통영시 예산을 사용합니다.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시 입장에서는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죠. 그동안 시 정보와 의회의 지원이 있었기에 재단의 사업도 일취월장했습니다. 다만, 단순히 많은 예산이 큰 성공과 직결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예산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초심을 잃지 않고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자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홍구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임이 틀림없습니다. 원래 사립재단으로 시작된 통영국제음악제였으며, 여러 해 동안 저도 재단 이사장으로 이끌어왔으나 음악당이 정부 지원에 의해 지어지며 주체가 나뉘다 보니 음악제(사단법인)와 음악당(정부 운영)이라는 이분화된 구조적 문제를 안게 되었죠. 음악제의 기반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해 통합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에 통영시 안에 통영국제음악재단을 부속시키며 자동으로 통영시장이 현재 재단 이사장을 맡도록 하고 저는 퇴임했었습니다.
김소현 현재 자체 운용할 수 있는 수익은 티켓, 대관 수입이고 이 중 일부가 음악제의 재단 자부담분으로 투입되고 있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모사업인 ‘대한민국공연예술제’ 장르 대표 공연예술제로 선정되어 예산의 25% 정도는 국비 지원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음악제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예산 확보, 선제적 프로그램을 위한 행정 시스템의 협조, 그리고 해외와의 협업 확대 등이 필요합니다. 특히 예술감독 선임 시기를 임기 2년 전으로 당기는 사안에 합의해주신 통영시의 결정은 아주 선진적인 것이라 평가받고 있고, 저희가 일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국제 행사’로서의 음악제 운영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20년의 역사를 돌아보며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면요.
김소현 첫 예술감독인 알렉산더 리브라이히⑥와의 계약 체결 순간이 기억납니다. 당시 이홍구 이사장님께서 계약서에 사인을 하시는 순간, 제가 다른 일정으로 현장에 없었는데 김승근 교수님이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제게 보내주셨어요. 사진을 받은 후 달리던 차를 멈춰 한참 여러 생각에 잠겼던 기억이 납니다. 첫 예술감독 계약, 협상 과정에서의 일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오래 공들였던 진은숙 현 예술감독님께서 보내주신 수락의 답변 메일을 봤을 때도 울컥했죠. 
이용민 초창기엔 예산, 인력 모두 절대 빈곤 시기여서 에피소드가 참 많죠. 한 번은 여름에 콩쿠르 예비 심사를 하는데 장소가 없어 서울 사무국의 윗층을 임시로 쓰게 됐었죠. 그런데 에어컨이 없더라고요. 궁여지책으로 사무실 에어컨에 비닐을 씌워 3층으로 연결하고…. 다음날 이를 본 심사위원들의 표정은 상상에 맡겨드릴게요.(웃음) 처음부터 지금까지 통영 음악협회와 황금파도⑦, 여성합창단이 음악제의 동지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아무 기반이 없을 때도 축제의 한 축을 맡아주셨고,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계십니다. 
김승근 통영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기 위한 프로덕션 작품들이 기억납니다. 익투스의 ‘바일과 웨이츠’, 탄둔의 ‘워터 패션’, 최우정의 음악극 ‘로즈’, 그리고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패션이 결합됐던 헨델의 ‘세멜레 워크’ 등이죠.
지역을 기반으로 한 통영국제음악제가 앞으로 어떤 축제로서 발전해나가길 바라시나요.
이용민 그동안 전 세계 많은 음악인이 통영과 음악당을 경험했기 때문에, 음악제 콘텐츠에 대해 상당한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음악적 수준을 국제적 눈높이에 맞추는데 역량을 쏟았다면, 앞으로는 통영시민과 국내 애호가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장을 열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홍구 지난 20년 동안, 통영국제음악제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서 확실한 위치를 갖게 되어 여간 흐뭇하지 않습니다. 특히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입상자들의 면모만 보아도, 높아진 통영의 위상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통영은 위치적으로도 아름다운 한려수도를 품고 있어, 누구나 한 번쯤 다녀가고 싶은 고장입니다. 지역사회와 힘을 합해 음악에 대한 보다 적극적 관심으로 음악제를 지속적으로 키워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김승근 아시아 지역에서 ‘미래의 윤이상’들이 이 도시에 모여 21세기의 예술을 만들어가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길 기대합니다. 지역과 함께 도시 중요 브랜드가 될 것이라 믿고 있어요. 
김소현 저는 통영국제음악제의 가장 큰 차별성이 독점권(exclusivity)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영에 가면 새로운 것을 볼 것이라는 기대감이죠. 항상 새롭고 최신의 유행 공연을 선사하는, 지역 시민 모두에게 자랑스러운 곳이 되길 바랍니다. 제가 처음 통영에 왔을 때, 택시 기사님들이 축제에 대해 말해주시던 그 자부심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 시민들도 축제의 일부가 되게 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고향을 사랑했던 한 음악가를 추모하겠다는 작고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됐던 일이 많은 사람의 정성과 노력의 과정을 통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아름다운 음악제로 성장하였다.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웠던 미션들에 도전하고 그것을 헤치며 지나온 20년의 세월이었다. 위대한 음악가의 예술과 삶을 추모하는 통영 시민들의 마음과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관객들이 함께 존재하는 곳. 이곳 통영이 참으로 아름다운 음악 도시로, 전 세계인들이 찾아와 깊은 감동을 나누는 축제의 고향으로 영원히 기억되길 바란다.(※ 기사 속 본문은 통영국제음악제 20주년 기념 책자 중 김승근이 집필한 부분을 인용. 좌담은 현장 취재로 진행했다)  
정리·인터뷰 허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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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오페라 ‘심청’
우리나라의 ‘심청 설화’를 배경으로, 1972년 뮌헨 올림픽 문화제 개막작으로 초연됐다. 당시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감독 귄터 레너르트가 윤이상에게 위촉한 작품이다. 대본은 독일의 극작가 하랄드 쿤츠가 판소리 ‘심청가’에서 영감을 받아 독일어로 작성했다. 설화는 ‘심청’의 효심을 중심으로 한다면, 오페라 ‘심청’에서는 심 봉사가 무지한 세상으로 상징되어 빛이 도래했을 때 눈을 뜨게 만드는 깨달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 초연 당시, 극의 규모나 합창 등이 축소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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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윤이상 음악축제’
통영국제음악당 내의 윤이상 추모지 ©Sihoo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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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동백림사건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반정부 간첩단 사건이다. 윤이상을 비롯해 이응로 화백 등 다수의 예술인과 대학교수 등이 동독의 베를린(이른바 동백림)을 거점으로 대남 적화 공작을 벌였다며 처벌당했다. 이 사건으로 윤이상은 끔찍한 구타와 물고문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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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과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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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디피랑
통영에는 바다의 풍경을 한눈에 보는 케이블카가 있다. 카트를 타고 즐기는 액티비티로 ‘루지’도 인기다. 최근에는 남망산조각공원의 밤에 찾아오는 디피랑(디지털테마파크)을 구경하러 나서기도 좋다.

2003년 ‘통영국제음악제-오페라의 꿈(류퉁의 꿈& 나비의 미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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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의 삶과 음악
1917년 통영에서 태어난 윤이상은 한국에서 일제의 식민 지배와 한국 전쟁의 역사를 거쳤다. 1956년 파리 고등 음악원에 입학했고, 이듬해 베를린 음대에서 수학하며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에서 큰 영향을 받는다. 1959년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에서 그의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이 초연됐고, 관현악곡 ‘바라’와 실내악곡 ‘낙양’이 연이어 성공을 거뒀다. 윤이상은 서양 음악의 기법을 수용한 뒤, 동양적 개념을 결합해 새로운 기법을 창안했다.
1963년 북한 방문이 빌미가 되어 1967년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휘말려 수감된다. 감옥에서 그는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을 완성했고, 해외에서는 그의 석방을 촉구하며 카라얀, 슈톡하우젠, 리게티 등의 음악가 181명이 서명한다.
1969년 대통령 특사로 석방된 후, 그는 1972년 뮌헨 올림픽 개막작으로 오페라 ‘심청’을 선보인다. 1976년에 남긴 첼로 협주곡, 1978년 초연된 관현악곡 ‘무악’, 1981년 초연된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가 국제 무대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으나, 남한에서는 환영받지 못했다. 1988년 ‘민족합동음악축전’을 휴전선상에서 개최할 것을 제의하는 등 남북한의 통일과 평화를 위해 힘썼다. 그는 평생 통영 땅을 밟고 싶었지만, 그 뜻을 이루진 못했다. 1995년 베를린, 향년 78세로 윤이상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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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도나우에싱엔 음악제
도나우에싱엔은 독일 남서부에 자리 잡고 있다. 축제가 열리는 10월이 되면 독일의 어느 도시에서든 작곡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이곳으로 몰려든다. 1921년 시작되어 그 역사가 오래 되었으며, 쇤베르크와 베르크, 베베른 등이 자기 작품을 이곳에서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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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국제음악제 창립자들
(왼쪽부터) 윤건호, 박성용, 김승근, 김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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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국제음악제와 ‘객석’의 역사
통영국제음악제 주최 측은 초대 이사장으로 금호아시아나 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이 적임자인 것으로 뜻을 모았으나, 연고가 전혀 없는 통영의 재단 초대 이사장직의 승낙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때 윤건호 마산MBC 사장과 월간 ‘객석’ 발행인이자 연극인인 윤석화 대표가 역할을 했다. 두 사람의 진정성 있는 설득과 사무국의 노력으로 불가능할 것 같았던 승낙을 얻어냈다. 
재단 설립자로 고동주 통영시장, 박성용 이사장, 정동배 통영시 의회의장, 윤건호 마산MBC 사장, 윤석화 월간 ‘객석’ 대표, 박태주 총무국장, 정혜자 금호문화재단 상무, 김일태 마산MBC PD, 김승근 윤이상협회 한국사무국장이 선임되었다. 
통영국제음악제가 출범하고 급속도로 성장하던 초기 2~3년간 윤석화 ‘객석’ 대표의 기록되지 않은 노력도 흥행에 큰 몫을 했다. 월간 ‘객석’을 통해 통영국제음악제의 사전 홍보와 사후 평가는 물론 중요 기념 자료집 발간 등 기존 마산 MBC와 재단 사무국이 부족한 전문인력을 대신해 인쇄 홍보 영역의 한 축을 맡아 수행했다. 그런가 하면 배우 이영애, 연극인 박정자, 탤런트 강부자 등 인기 대중 예술인들을 통영으로 대거 초청하여 일반인들의 관심과 흥행을 부추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통영국제음악제 20주년 기념 책자’ 발췌)
글 김일태(현 통영국제음악재단 이사, 재단창립 이사, 발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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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통영국제음악당
영남권 최초의 클래식 전용 공연장으로 2014년 개관했다. 국내 최고의 자연음향으로 평가받으며 백건우, 손열음, 다니엘 호프 등 다수의 음악가가 음반을 작업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천혜의 자연경관인 바다를 앞두고 있어 독일 언론인 엘레노어 뷔닝은 “세계에서 아름다운 공연장 중 하나”라고 표현했다.

2017년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 100인의 시민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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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알렉산더 리브라이히
독일인 지휘자. 2006년부터 
뮌헨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이들과 하이든·윤이상의 음악을 한데 묶은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남한은 물론, 2000년대 초반 북한에도 4년간 체류하며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강의하기도 했다. 2011년 통영국제음악제의 예술감독으로 선임돼 활동한 바 있다. 

⑦ 황금파도
통영국제음악제 초기에 뜻있는 시민들과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조직된 서포터즈다. 시민들의 호응과 참여를 독려했고, ‘윤이상 귀환 퍼포먼스’ ‘국제음악제 표 사주기 운동’ 등 자발적인 시민 참여 운동을 주도했다. 대중성이 취약한 현대음악 공연의 전면적 유료화가 초기에 정착하는 데에 일조했다. 

2006년 통영국제음악제 개막공연(최우정의 음악극 ‘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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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Unsuk Chin, Berlin, den 12.05.2014

아시아를 대표하는 페스티벌로 키운다
통영국제음악제 
진은숙 예술감독

2023~
통영국제음악제 ‘경계를 넘어’

지난해부터 예술감독으로 함께 하게 됐다. 12년간 상임작곡가로 몸담았던 서울시향 시절 이후 몇 년 만에 다시 국내에서 감독직을 맡게 된 것인데.
2018년 서울시향을 떠났고, 2019년부터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예술감독을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에는 한국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 여러 아이디어도 내고 사람을 추천하며 도왔다. 시간이 조금 흐르니 국내에서 폭넓은 프로그램을 선보일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음악제 사무국 팀원들이 일을 효율적으로 잘한다. 프로그램 구성에만 신경 쓸 수 있는 환경이다. 
올해 음악제 주제가 ‘경계를 넘어’이다. 이번에 음악제가 넘고자 하는 ‘경계’란 무엇인가. 
‘다양성의 비전’이라는 지난해 주제와도 일맥상통한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을 페스티벌의 이상적 가치라고 정했달까. 다양성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경계를 초월해야 추구될 수 있다. 장르 간의 경계를 넘기도 하고, 작품 시기나 형식도 경계 없이 모두 선보인다는 의미다. 
죄르지 리게티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도 여러 곡 연주된다. 함부르크에서 그를 직접 사사한 바 있는데, 리게티는 어떤 사람인가. 
기념해가 아니더라도, 리게티의 음악은 그 역사상 확고한 위치에 있기에 자주 연주되곤 한다. 그는 모든 일에 비판적이면서도 예리했다. 음악에 대해 논할 때면 가차 없었다. 타협하지 않는 성격의 사람이었다. 
상주 음악가로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선정됐다. 
카바코스는 역사상 중요한 바이올리니스트 중 하나고, 김선욱은 일찍이 젊은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가질 만큼 성숙한 인물이다. 두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것을 보는 게 제 꿈이기도 했다. 
지난해 파치 앙상블의 첫 내한에 많은 공을 들였는데 코로나로 그 내한이 올해 성사된다.
직접 제작한 악기로 곡을 연주하는 창의적인 악단이다. 이러한 앙상블을 한국에 소개하는 것이 한국 음악계에 ‘자신만의 것을 하라’는 좋은 메시지가 되지 않을까. 예술감독을 맡고 나서 가장 처음 파치 앙상블의 내한을 추진했다. 무척 기대 중이다. 
그 외에 또 기대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작년처럼 올해도, 직접 구성한 이 통영국제음악제 프로그램이 내 작품보다, 나 자신보다 더 자랑스러울 정도다. 모든 프로그램이 정말 좋다. 카바코스와 양인모(바이올린), 김선욱(피아노), 박하양(비올라), 한재민(첼로)의 실내악 조합도 정말 공을 많이 들였다.
통영국제음악제는 윤이상의 음악을 기틀로,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쌓여 이어져 왔다. 이 긴 20년의 역사에서 지금 예술감독으로서 해내야 할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통영국제음악제는 세계 무대에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중요한 콘텐츠이자, 아시아를 대변할 수 있는 축제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실이다. 프로그램의 음악적 수준과 연주의 질이 잘 다져져서 앞으로 계속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이 축제는 윤이상 선생님의 얼이 담겨있다. 정치 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 음악제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글 허서현 기자


 
2023 통영국제음악제 일정표
날짜	공연장	공연명 | 프로그램
3.31	블랙박스	파치 앙상블 리사이틀Ⅰ
해리 파치 ‘모래 언덕의 다프네’(한국 초연) 외
	콘서트홀	데이비드 로버트슨/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협연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노이에 보칼솔리스텐 슈투트가르트)
라벨 ‘권두곡’(불레즈 편곡), 베리오 ‘신포니아’, 아이브스 ‘대답없는 질문’ 외
4.1	콘서트홀	한재민 첼로 독주회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리게티 첼로 독주를 위한 소나타, 
윤이상 첼로 독주를 위한 ‘활주’ 외
	콘서트홀	홍석원/국립심포니(협연 마티아스 괴르네)
말러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중 6곡 외
	블랙박스	파치 앙상블 리사이틀Ⅱ
해리 파치 ‘모래 언덕의 다프네’(한국 초연) 외
	콘서트홀	데이비드 로버트슨/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협연 김선욱)
윤이상 ‘교향악적 정경’(아시아 초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외
4.2	블랙박스	파치 앙상블 리사이틀Ⅲ
해리 파치 ‘모래 언덕의 다프네’(한국 초연) 외
	콘서트홀	에스메 콰르텟 리사이틀
리게티 현악 4중주 1번, 차이콥스키 현악 4중주 1번 외
	콘서트홀	세르게이 바바얀 피아노 독주회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샤콘’(부소니 편곡), 
슈만 ‘크라이슬레리아나’ 외
	블랙박스	‘이희문 프로젝트 날[陧]’
‘적벽가&경기놀량’ ‘창부타령’ 외
4.3	콘서트홀	티토 체케리니/앙상블 모데른(협연 우웨이 외)
온드레이 아다멕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세계 초연) 외
	콘서트홀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양인모·박하양·한재민·김선욱 리사이틀
브람스 피아노 3중주 2번, 슈만 피아노 5중주
4.4	콘서트홀	디니스 소자/로열 노던 신포니아(협연 세르게이 말로프)
토마스 아데스 ‘쿠프랭에 의한 세 개의 습작’(한국 초연) 외
	블랙박스	음악극 ‘북 오브 워터’Ⅰ
미셸 판 데르 아 ‘북 오브 워터’(한국 초연)
4.5	콘서트홀	최수열/부산시립교향악단(협연 우웨이·파스칼 콩테)
신동훈 ‘생황, 아코디언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2인극’(아시아 초연) 외
	블랙박스	음악극 ‘북 오브 워터’Ⅱ
미셸 판 데르 아 ‘북 오브 워터’(한국 초연)
4.6	콘서트홀	티토 체케리니/앙상블 모데른(협연 김선욱)
리게티 6개의 피아노 에튀드, 피아노 협주곡 외
	콘서트홀	세르게이 말로프 독주회
바흐 첼로 모음곡 6번
4.7	콘서트홀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김선욱 듀오 리사이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 야나체크 바이올린 소나타 외
	콘서트홀	조반니 안토니니/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협연 조반니 안토니니)
조반니 안토니니 리코더 협주곡 외
4.8	콘서트홀	조반니 안토니니/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협연 김강민)
비발디 ‘센 강의 축제’ 중 신포니아, 헨델 ‘세르세’ 중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외
	블랙박스	온드레이 아다멕 리사이틀Ⅰ
온드레이 아다멕 ‘디너’(아시아 초연) 외
	콘서트홀	마티아스 괴르네·세르게이 바바얀 듀오 리사이틀
슈베르트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4.9	블랙박스	온드레이 아다멕 리사이틀Ⅱ
온드레이 아다멕 ‘디너’(아시아 초연) 외
	콘서트홀	데이비드 로버트슨/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협연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진은숙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정적(靜寂)의 파편’(아시아 초연), 말러 교향곡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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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COMPETITION

콩쿠르 수상자들의 활약상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20주년

통영국제음악제와 함께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도 통영의 명물이다. 한국의 콩쿠르 중에는 최초로 2006년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에 가입했고, 윤이상을 기리며, 재능 있는 음악인을 발굴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경남국제음악콩쿠르’로 진행되던 장은 2009년에 윤이상의 이름이 들어간 콩쿠르로 개칭되었다. 윤이상의 타계일 11월 3일을 기점으로, 매년 첼로·피아노·바이올린 부문이 번갈아 가며 개최된다. 우승자 외에도 가장 유망한 한국인 연주자에게 시상하는 ‘박성용 영재특별상’, 윤이상의 작품을 가장 탁월하게 해석한 참가자에게 주는 ‘윤이상 특별상’ 등이 있으며, 관객의 투표를 통해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특별상’도 수여된다. 
2003년에 시작해 올해까지 다수의 젊은 음악가들이 이곳을 거쳤고, 그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콩쿠르의 가치도 올라가고 있다. 한국인 수상자를 중심으로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를 거쳐 이들이 뻗어 나가고 있는 활약상을 가늠해본다. 그들의 추억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객석’ 기사를 들춰보았다.  정리·글 허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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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줄리 알버스(2003, 첼로)  ❷ 이보경(2004, 바이올린)
❸ 빅토리아 코르친스카(2005, 피아노)
❹ 하이크 카자지안(2007, 바이올린)
❺ 소피아 굴야크(2008, 피아노)  ❻ 크리스티네 나우(2009, 첼로)
❼ 윤지에 첸(2010, 피아노)  ❽ 유치엔 쳉(2011, 바이올린)
❾ 울라드지미르 신케비치(2012, 첼로)
❿ 김홍기(2013, 피아노)  ⓫ 루크 쉬(2014, 바이올린)
⓬ 엘라 판 파우커(2015, 첼로)  ⓭ 서형민(2016, 피아노)
⓮ 송지원(2017, 바이올린)  ⓯ 이상은(2018, 첼로)
⓰ 이정현(2018, 첼로)  ⓱ 카리사 추(2021, 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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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이정란 (2006년 1위)
이정란은 자신의 첫 솔로 음반 ‘랑데부 인 파리’ 녹음을 위해 통영을 다시 찾았다.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당시 경남국제음악콩쿠르)의 우승자로 내 이름이 불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뒤로 연주 여행을 올 때마다 이 도시는 내게 포근하고 좋은 기억만 가득한 엄마 품 같은 곳이 되어주었다. 지난가을, 바로 그곳에서 첫 솔로 음반 녹음 작업을 했다. 사방이 따뜻한 나무로 감싸인 통영국제음악당 홀에 들어섰다. 객석은 텅 비었지만, 온도는 차갑지 않았다. 드뷔시의 ‘달빛’을 연주하는 동안 통영에는 비가 내렸다. 한껏 차분하고 정결해진 마음으로 연주에 임했다.”(‘객석’ 2020년 3월 호)
피아니스트 임윤찬 (2019년 1위)
“만 15세의 어린 피아니스트가 전한 소식이 통영을 넘어 국내 클래식 음악계를 들썩이게 했다. 피아노 부문으로 개최된 2019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최연소 참가자였던 임윤찬이 국내외 쟁쟁한 참가자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관객들의 마음마저 사로잡은 그는 관객이 뽑은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특별상과 박성용 영재특별상까지 무려 3관왕을 차지했다. 11월 2일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파이널 무대 당일, 콩쿠르에서 제공한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을 켰다. 앞선 본선 1·2차 무대에서부터 폭넓은 레퍼토리와 각각의 음악을 해석하고 소화해 내는 뛰어난 음악성, 그리고 집중력 있는 무대 매너를 보여주었던 임윤찬의 마지막 연주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가 선택한 곡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오케스라의 도입부에 이어 피아노의 시작을 알리는 c단조 스케일이 힘차게 울려 퍼졌다. 30여 분의 시간 동안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확신으로 가득했던 임윤찬의 단단한 음악은 클래식 음악계의 새로운 스타 탄생을 기대하게 했다.”(‘객석’ 2020년 2월 호)
첼리스트 한재민 (2022년 1위)
제네바 콩쿠르 3위, 에네스쿠 콩쿠르 1위를 차지했던 그는 2022년 통영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윤이상 첼로 협주곡 연주자가 수상한 것은 첫 콩쿠르인 2003년 2위 수상자였던 고봉인 이후 두 번째다. 한재민은 “윤이상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이렇게 좋은 작품을 통영에서 연주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는 오는 5월에 룩셈부르크 필하모닉 내한 공연에서의 협연을, 8월에 금호아트홀에서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박성용영재특별상 수상자 음악회로 독주회를 앞두고 있다.(‘객석’ 2022년 12월 호)


바이올리니스트·에스메 콰르텟 멤버 배원희(2014년 3위)
통영은 제게 정서적으로 참 친숙한 곳이에요. 아버지의 고향이 통영이고, 외가는 부산이거든요. 그래서 이번 콩쿠르에서 두 가족 모두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제 연주를 보여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었습니다. 한 달 전 참가한 루마니아 에네스쿠 콩쿠르에서 1위를 루마니아 출신 연주자가 받았는데, 수상 발표 직후에 모든 관객이 기립 박수를 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자국민에 대한 프라이드가 엄청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피부로 와 닿는 순간 부러운 마음이 컸거든요. 이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까지 한 달밖에 남지 않아 고민이 많았는데, 고향에서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향한 발걸음이 저를 이 자리까지 이끌었네요. 
2007년 로돌포 리피체르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1년간 연주 생활을 하다가 왼팔을 다치는 바람에 몇 년 동안 악기를 놓아야 했죠. 당시에 준비하던 콩쿠르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행히 런던에서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 재활 치료를 한 끝에 2011년부터 다시 바이올린을 잡기 시작했어요. 2012년에 국제 콩쿠르 1위 수상자들만 참가할 수 있는 오션 클래시컬 어워즈에서 관객 투표로 수상자 1명이 선정되는데, 그때 상을 받으면서 독일 내에서 연주 활동을 할 수 있었어요. 이후 올해 에네스쿠 콩쿠르와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 참가했어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는 무엇보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따뜻하게 대해준 게 기억에 남아요. 그 자리에서 제가 좋아하는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연주할 수 있어서 더 기뻤어요. 무엇보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연주를 할 수 없었던 기간이 있었기에 지금 어디서든 어떻게든 연주할 수 있고, 그런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요. 
(‘객석’ 2014년 12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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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란(2006, 첼로)
임윤찬(2019, 피아노)
한재민(2022, 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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