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이 돌아왔다!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5월 8일 9:00 오전

WELCOME 1

©Jiyang Chen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

여왕의 귀환

화려한 왕관 뒤, 더욱 깊고 진한 삶의 노래

여왕이 돌아온다. 지난 20년간 세계를 호령한 ‘오페라의 여왕’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1971~)의 두 번째 내한 공연이다. 그는 이번 무대에서 베이스바리톤 니콜라 테스테와 여러 오페라에 등장하는 왕과 여왕의 음악을 노래한다.

2005년 ‘밤의 여왕’(마술피리)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후, 담라우는 다른 이름과 얼굴로 유수의 오페라 극장에 올랐다. 비올레타(라 트라비아타), 질다(리골레토) 등으로 거듭된 전성기를 맞고서도,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배역에 도전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더욱 풍성하고 깊어진 드라마틱 콜로라투라로 그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51세를 맞은 담라우가 그간 쌓은 무대 안팎의 경험을 반영한 자리다. 첫 내한 때 지난 전성기를 회고하는 대중성 있는 곡들을 주로 선보였다면, 이번엔 최근 새로 데뷔한 배역들을 아우른다. ‘오페라의 왕과 여왕’이라는 주제 아래, 로시니 ‘세미라미데’, 하지예프 ‘마리아 데실리바’, 도니체티 ‘안나 볼레나’ ‘마리아 스투아르다’ 등 천의 얼굴을 지닌 여왕의 노래가 펼쳐질 예정이다.

 

여왕의 기도

“왕관을 쓴 이들은 지극히 인간적인 문제를 두고 고군분투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것처럼요. 작곡가들은 그들의 고통과 영혼, 왕관의 장려함과 외로움을 그려냈어요.”

이 주제로 공연을 기획하게 된 건 몇 해 전이다. 담라우는 2020년 말, 도니체티의 여왕 3부작(안나 볼레나·마리아 스투아르다·로베르토 데브뢰)을 담은 ‘튜더의 여왕들’(Erato)을 발매했다. 취리히 오페라 극장 프로덕션을 통해 ‘마리아 스투아르다’(2018년)와 ‘안나 볼레나’(2020년)의 두 여왕 역을 자신의 레퍼토리에 추가한 참이었다.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오페라의 왕과 여왕들’은 유럽 곳곳에서 먼저 선을 보였고, 올해 한국을 포함해 싱가포르, 일본 등으로 진출한다.

“특히 ‘여왕 3부작’의 앞선 두 작품은 최근 몇 해 동안 많이 불렀어요. 제 삶과 공연 일정을 바꿀 정도로 아끼는 배역이 되었죠. 성악적 곡예를 펼치면서도 인물의 감정적 깊이를 표현해야 하는, 굉장한 성취감을 주는 작품들입니다.”

이번 공연에서도 담라우는 비운의 죽음을 목전에 둔 튜더 왕가의 두 여인을 노래한다. 아리아 ‘젊은 날에는 순진했었지, 아무도 나의 슬픔을 들여다보지 못해’에는 남편 헨리 8세의 총애를 잃고 처형당한 앤 불린(안나 볼레나)의 한탄이 담겼다. 듀엣 ‘오, 충성스러운 탤벗’은 엘리자베스 여왕 1세의 질투를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메리 스튜어트(마리아 스투아르다)의 고백이다.

파라슈케프 하지예프(1912~1992)의 오페라 ‘마리아 데실리바’는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담라우에게도 꽤 새로운 작품이다. 담라우의 오랜 음악적 동료이자, ‘오페라의 왕과 여왕’ 유럽 투어에 이어 아시아 투어에도 함께하는 지휘자 파벨 발레프의 추천으로 발견했다.

“‘오페라의 왕과 여왕’ 공연으로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를 찾았어요. 당시 공연 앙코르로 이 작품의 아리아를 처음 불렀죠. 마리아 데실리바가 불가리아의 여왕이었거든요. 아리아 ‘위대한 신이시여, 제 간청을 들어 주시옵소서’는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그녀의 기도예요. 곡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곧 있을 공연의 정식 프로그램에 넣었습니다.”

2010년 담라우와 부부의 연을 맺은 베이스바리톤 니콜라 테스테(1970~)는 보다 낭만성이 짙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프랑스인으로서 자신 있는 레퍼토리를 주로 택했다. 특히 형제를 죽인 클라우디우스 왕(토마 ‘햄릿’), 부드럽고도 강인한 목소리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솔리만(구노 ‘시바의 여왕’)은 서로 다른 인간 내면을 드러낸다.

“공연의 마지막은 ‘노르마’입니다. 드루이드의 여제사장인 노르마의 기도를 정말 좋아해요. 전쟁을 원하는 드루이드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평화를 위해 노래하죠. 곧바로 자신의 사랑과 행복을 위해 부르는 아주 사적인 카발레타가 이어집니다.”

 

 

왕관을 내려놓고 얻은 자유

평화를 노래할 담라우의 모습 위에 복수심에 불타오르던 혈기 왕성한 ‘밤의 여왕’이 겹친다. 그가 ‘밤의 여왕’으로 전성기를 보낸 건 10년도 훨씬 전이다. 1996년 독일의 뷔르츠부르크 극장에서 롤데뷔를 치렀고, 200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이듬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의 무대가 그녀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왔다. 이어 빈 슈타츠오퍼,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등에서도 날카롭고 완벽한 테크닉,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카리스마를 겸비한 ‘우리 시대의 밤의 여왕’을 만날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늘 백설공주의 심술궂은 계모가 되고 싶었어요. 준비된 ‘밤의 여왕’이었던 거죠. 나중에는 왜 그녀가 이렇게 화가 나 있는지 보여줘야겠다는 일념으로 노래했고요. 1996년 뷔르츠부르크 극장에서 롤 데뷔했을 때가 생생하네요. 6미터 높이의 달 무대장치에 20분 넘게 매달려서 제 두 번째 아리아가 나오길 기다려야 했어요. 모차르트에게 기도하면서 버텼어요. 그리고 달을 찢고 등장해 성공적으로 노래를 마쳤죠.”

담라우는 “‘밤의 여왕’은 삶의 특정 시기에 최고 기량을 펼칠 수 있는 배역”이라 말했다. 그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자신에게 무한한 영광을 가져온 이 왕관을 내려놓았다. “올림픽의 단거리 달리기 종목”과도 같은 배역에 안녕을 고하고, 성장과 미래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넓힌 레퍼토리 곡간은 베르디 ‘도적들’, 구노 ‘로미오와 줄리엣’, 도니체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마스네 ‘마농’ 등 수많은 작품으로 채워졌다. 2013년에는 현대 오페라 초연에도 참여했다. 영국 작곡가 이안 벨(1980~)이 화가 윌리엄 호가스의 동명 판화 연작에서 영감 받은 ‘매춘부의 편력(A Harlot’s Progress)’이다.

“오페라가 자라나는 모든 단계를 지켜볼 수 있었어요. 작곡가와 대본가가 논의하고, 그에 따라 주인공에게 숨을 불어 넣었죠. 엄청난 경험이었어요.”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과 함께

그의 장거리 달리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모국어인 독일어 오페라에 더욱 전념하는 것이다. 지난해 7월에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에서 R. 슈트라우스 ‘카프리치오’의 마들렌으로 데뷔했고, 올 12월 같은 극장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박쥐’의 로자린데로 처음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R. 슈트라우스의 마지막 오페라 ‘카프리치오’에는 ‘음악을 위한 대화’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각 등장인물은 촘촘히 직조돼 있고, 이들의 ‘대화’는 시와 오페라, 음악과 연극, 문화 등의 주제를 아우르죠. 여기에 더해진 매우 미묘하고 치밀한 음악이 사랑에 빠진 백작부인 마들렌의 마지막 장면으로 이끌어갑니다.

벨칸토 오페라와 비교해 노래하는 데 큰 차이는 없어요. 두 스타일에서 모두 목소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숨을 곳이 없습니다. 고도의 섬세함, 정확도, 기교, 개성, 그리고 소리의 아름다움, 즉 ‘벨칸토’가 필요하죠. 다만 슈트라우스 오페라의 선율은 굉장히 탄력적입니다. 그네를 탄 것처럼요. ‘탄력’을 뜻하는 ‘Schwung’이라는 지시어가 그의 음악에 종종 등장하기도 해요.”

누군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전성기는 짧다고 했다. 20년 가까이 최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페라계 여왕’의 장수 비결이 늘 궁금했던 터였다. 슈트라우스의 선율도 전진하게 한다는 ‘탄력’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꽂혔다. 담라우는 시간이 흐르며 변하는 몸과 마음에 탄력적으로 반응해 왔다. 그 순간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역을 유연하게 택하면서.

“삶은 셀 수 없이 많은 단계로 이어지더라고요. 정말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 흐름에 맡겨야 해요. 지금의 몸과 마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피면서요. 앞으로 새 작품들을 더해가겠지만, 모차르트와 벨칸토 배역들은 늘 제 레퍼토리로 남아있을 거예요.”

박찬미(독일 통신원) 사진 롯데문화재단

 

RECORD ‘튜더의 여왕들’

디아나 담라우(소프라노)/안토니오

파파노(지휘)/산타 체칠리아 국립

아카데미 오케스트라·합창단

Erato 9029528093

도니체티 오페라 ‘안나 볼레나’

‘마리아 스투아르다’ 등 아리아

 

 

Performance information

담라우·테스테 ‘오페라의 왕과 여왕들’

5월 18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파벨 발레프(지휘)/KBS교향악단

담라우 ‘아름답고 매혹적인 꽃’(로시니 ‘세미라미데’)

테스테 ‘나는 떨며 한숨을 내쉰다’(토마 ‘햄릿’)

담라우 ‘위대한 신이시여, 제 간청을 들어 주시옵소서’(하지예프 ‘마리아 데실라바’)

테스테 ‘그래, 4일 동안-여왕의 발 아래에서’(구노 ‘시바의 여왕’)

담라우·테스테 ‘오 나의 귀여운 탤벗!’(도니체티 ‘마리아 스투아르다’)

테스테 ‘그녀는 나를 사랑한 적이 없다!’(베르디 ‘돈 카를로’)

담라우 ‘넓은 날에는 순진했었지-아무도 나의 슬픔을 들여다보지 못해’

(도니체티 ‘안나 볼레나’)

테스테 ‘세상 모든 이들은 사랑을 안다’(차이콥스키 ‘예브게니 오네긴’)

담라우 ‘정결한 여신이여’(벨리니 ‘노르마’)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