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고등학교 개교 70주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5월 8일 9:00 오전

SPECIAL 2

 

서울예술고등학교 개교 70주년

예술가를 길러 역사를 바꾸다

서울예술고등학교가 탄생의 고고성을 울리던 1953년은 혼란의 소용돌이와 희망이 절정을 이루던 한국전쟁의 막바지였다. 초대 교장 신봉조와 지휘자 임원식은 예술의 조기 교육 필요성을 안고 메마른 땅에 물을 주듯 예술고등학교를 발족한다. 그리고 그 메마른 땅에서 자란 싹은 70년을 지나 세계무대를 누비는 예술가들을 열매로 맺었다. / 기획·총괄 임원빈

Part 1 전통과 역사 _임원빈

Part 2 서울예고 파고들기 _임원빈

Part 3 졸업생의 활약상 _홍예원

Part 4 서울예고의 현재 _이의정

Part 5 서울예고의 미래 _임원빈

 


Part 1. 전통과 역사

서울예술고등학교의 발자취

임시 수도 부산에서 피어나 서울 평창동 교사로 옮겨 성숙하기까지 70년

  초대 교장 신봉조

지휘자 임원식

한국전쟁 당시 임시 수도 부산은 시시각각의 전시상황이 집약된 나라의 심장부였다. 당시 2면으로 발행되던 신문 광고란에는 연일 경향 각지 중·고등학교의 학생 모집과 학원 수강생 모집 광고가 가득 차 있었다. 전시 상황에서도 한국이 얼마나 큰 교육열과 향학열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가늠케 한다. 실제 교육은 야외에서, 헐어진 교회나 공회당 건물 안에서, 임시 천막 교사 속에서 이루어 졌다.(※다음 글은 ‘서울藝高五十年史’(2003)에서 발췌·정리한 것이다)

 

서울예술고등학교 이전의 예술 교육은?

한국전쟁 이전, 광복과 함께 음악교육은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몇 개의 대학에만 음악과가 설치되어 있었을 뿐, 음악의 저변이 극히 제한적이었고 그 수준도 높지 못하였다. 이 시기에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교육 기관으로 각 대학에 음악과가 설치되었다. 해방 전부터 오랜 전통을 쌓아 온 이화여자전문학교(이하 이화여전)의 음악과는 이화여자대학교의 음악대학으로 승격되었고, 작곡가 현제명이 설립한 경성음악학교는 1946년 서울대로 편입되었다.

서울예술고등학교의 모태는 이화여자고등학교(이하 이화여고)이다. 이화여자중·고등학교는 1886년 내한한 미 선교사들에 의하여 설립 개교한 이래 스크랜톤, 아펜젤러 등의 외국인이 학당장과 교장직을 맡았다. 1938년 최초의 한국인 교장, 최초의 남자 교장으로 신봉조(1900~1992)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1946년 지휘자 임원식을 이화여고의 음악교사로 초빙하며, 신봉조 교장과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다. 임원식은 1942년 동경음악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 만주 하얼빈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활약했다. 이후 한국 최초의 오케스트라로 기록된 고려교향악단을 발족하며, 관현악계에 큰 반향을 불러왔다.

한국의 이화여고에서 음악을 가르치면서 기쁨과 보람을 맛본 임원식은 자신이 할 일이 바로 이런 학교를 세우고 교육을 통하여 음악의 이상을 세우는 일이라는 결심을 하게 된다. 전쟁으로 고려교향악단이 해산됨으로 지휘 활동이 줄어들게 되었던 임원식은 피난지 부산에서 이화여고의 합창과 연주활동을 지도하며 가슴에 간직한 꿈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는 신봉조 교장에게 예술에 있어 고등학교 과정의 조기교육 필요성을 강조하며 새로운 학교 설립을 제안하였다. 임원식과 뜻을 같이한 재단 이사회의 고문이던 정일형 박사도 신봉조 교장을 설득한다. 1951년, 신봉조 교장은 이화여고 교육을 통하여 실험과정을 갖고자 제안했고, 이화여고 학생 중 예술에 재능 있는 학생을 모아 음악 교육을 시작했다. 이것이 이화의 ‘미(美)반’의 첫 운영이었다.

 

서울예고 정기연주회 (1967년)

환도 후의 교사(1953~1957년)

이화여고 ‘미(美)반’으로 시작된 서울예고

오전에는 일반 학과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전공 수업을 진행했다. ‘미반’의 사례가 성공적으로 평가받으며, 부산 인근 지역으로 순회 연주도 시도했다. 이후 이화여고 미술 교사였던 김홍수는 미술반 지도에 합류하게 되고, 여러 차례 전시회를 통해 새로운 미술교육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무용과는 1958년 신설되었다.

서울예고의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52년 12월 중순이었다. 법인 이사회에서 신봉조는 이화가 음악과 미술에 깊은 연구와 노력을 가하고 있다며, 공연, 미술전람회 등을 개최한 실적을 보고하며 ‘이화예술고등학교 설치안’을 제출했다.

학교법인 유하학원은 1953년 2월 학교 설립 인가 신청을 문교부에 내어 같은 해 3월 21일 자로 이화예술고등학교(이하 이화예고) 인가서를 받는다. 이와 동시에 개최된 재단 이사회는 이화예고 초대 교장으로 이화여자고등학교 신봉조 교장을 임명할 것을 가결한다.

이화예고의 건학 이념은 ‘기독교주의의 기초’이며, 교육 목표는 ‘나라와 인류에 공헌하는 창의적 예술’이었다. 이처럼 서울예고는 이화여고가 개교 이래 종교교육과 함께 교회음악을 통한 음악 활동과 교육을 꾸준히 실천해온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이화여고의 체제를 그대로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1953년 8월, 광복절을 기하여 정부가 환도하자 피난지 부산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모든 공공기관이 상경했다. 이화여자중·고등학교도 같은 해 9월 서울 정동 교사로 옮겨온다. 전쟁 중 이화여고는 메인홀을 잃고, 남은 건물인 심슨홀과 프라이홀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화여고와 이화예고의 공생은 쉽지 않았다. 불타 버린 교사 속 극심한 교실난 등을 서로 겪어야 했다.

학교법인 유하학원은 그해 교명을 ‘이화예술고등학교’에서 ‘서울예술고등학교’로 개명할 것을 결의하고, 남·녀공학제 운영을 위해 11월 5일 새로운 인가를 받는다.

자매교인 예원학교의 등장과 넓어진 교정

1961년 초대 교장 신봉조가 정년퇴임하고, 후임으로 임원식이 제2대 교장으로 취임한다. 이어서 신축된 정동 교사로 이사함으로써 이화여고 안에서의 초창기 성장을 마치고 독립적인 학교로서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다. 여전히 예술 조기 전문교육 실현의 꿈을 그리던 임원식 교장은 1966년 서울예고와 교육이념을 같이하는 신설 예술중학교로 예원중학교를 발족한다.

하지만, 1968년 이른바 교육혁명이라 불리는 중학교 무시험 진학제도의 실시가 문교부에 의해 공포됨에 따라 예원중학교는 본래의 설립 취지인 예술교육의 시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폐교를 선언하고, 특수학교로 전환하여 폐교함과 동시에 ‘예원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이화여고와 공생하던 서울예고가 다시 예원학교와의 공생을 이어가자, 정동 교사 생활 5년 만인 1969년 다시 새로운 캠퍼스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재단 이사회는 서대문구(현 종로구) 평창동 소재의 소유 토지를 가용해 서울예고 신축 교사로 사용할 것을 결정하고, 1976년 5월, 창립 23주년 기념식을 겸하여 신축 교사 봉헌식을 거행하며 난계(蘭溪)학원 시대를 열었다. 난계는 조선시대의 악성(樂聖) 박연의 아호이다. 재단 이사장이었던 신봉조와 당시 제3대 교장이었던 정우현이 협의를 거쳐 사호를 난계라 정하였다.

정리 임원빈 기자 사진 서울예술고등학교

 


 

1953

1953년 개교

이화예술고등학교에서 서울예술고등학교로 변경

 

 

 

1956

제1회 졸업식 거행

 

 

 

1958

무용과 신설

 

1963

정동 신축 교사로 이전

 

 

 

 

1966

예원중학교 설립

 

 

 

 

 

 

1967

학급 감축 (음악과 270명, 미술과 180명, 무용과 90명)

1968

학급 증설(음악과 360명, 미술과 180명, 무용과 180명)

1976

평창동 신축 교사로 이전

 

 

 

1983

창립30주년 기념행사

 

 

 

 

1984

일본 청소년 예술제 무용공연

1988

이화학원으로부터 분리, 학교법인 이화예술학원 설립

 

1992

특수목적 고등학교로 지정, 영국 에버딘 국제 음악제 연주

 

 

1997

서울예고 오케스트라 뉴욕 링컨 센터, 산 호세, L.A. 연주

2002

월드컵 개막 전야제 기념

무용 공연

 

2007

서울예고 오케스트라 빈 무지크페어아인 황금홀 연주

 

 

 

 

2009

제1회 메트로전 경복궁역 메트로 미술관

 

 

 

 

2010

제9대 이사장 이대봉 취임

 

 

 

 

 

 

2012

학년당 무용과 43명(1학급), 미술과 137명(4학급), 음악과 180명(5학급) 인가

2018

무용과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참가

2019

제9대 교장 권영걸 취임

 

 

 

 

 

 

2023

서울아트센터 개관

 

 

 

 

 


 

Part 2. 서울예고 파고들기

다채로운 개성이 예술을 빚는다

일반학교와 다른 교과 과정, 입학·졸업·진로에 얽힌 이야기

예술을 전공하는 고등학생을 바라보는 시선은 일반 인문계 고교생을 바라보는 시선과 다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공의 길로 더 일찍 들어서면서 남다른 공부를 하기도 한다. 그런 맥락에서 서울예고에서는 전공별 수업을 포함해 대학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전문 수업을 고등학교 때 배우기도 한다. 영어는 기본이고, 무용과와 미술과는 프랑스어를, 음악과는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이수해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들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음악과

무용과

미술과

고정관념 벗겨내기가 우선 과제

서울예고에는 음악과·무용과·미술과가 있고, 국어, 체육 등을 익히는 보통교과가 함께 운영되고 있다. 먼저 무용과는 한국무용·발레·현대무용 전공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수업은 수준별 그룹 레슨으로 이루어진다. ‘안무’ ‘무용 감상과 비평’ ‘무용의 이해’ 등의 수업을 통해 무용의 기본적인 공부도 함께 한다. 정기적으로 교내 무용제를 열고, 각종 콩쿠르를 통해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미술과는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한국화·서양화·조소·디자인 총 네 가지 전공이다. 1학년 때에는 이론과 역사, 기초적인 표현기법 등을 익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재료와 매체 활용을 중점적으로 배운다.

음악과는 바이올린, 첼로, 트럼펫 등 관현악과를 포함해 성악과·피아노과·작곡과로 구성되어 있다. 작곡과에는 지휘 전공도 포함되어 있다. 서울예고의 가장 큰 장점은 합주 수업이다. 관현악과는 오케스트라와 실내악 수업을 통해, 피아노과는 피아노 앙상블, 성악과는 합창과 성악 앙상블 과정을 통해 일찍부터 합주를 익힌다. 정기연주회, 예고찬양제, 교내 콩쿠르 등 수업에서 익힌 실력을 입증할 무대도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입학은 어떻게?

매년 10월 쯤 원서접수가 시작되면, 중학교 성적과 실기고사 성적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합격자를 구별한다. 중학교 성적 40퍼센트와 실기성적 60퍼센트 기준이다. 전공별 실기전형이 다른데, 올해 입학 전형을 살펴보자.

무용과의 경우 공통 실기와 개인 작품을 나누어 평가한다. 공통 실기로 한국무용과는 3분 내외의 전공 연결 동작, 2분 내외의 기초발레를 본다. 발레과의 경우 센터, 포인트 연결 동작을 보고, 현대무용과는 2분 내외의 센터 연결 동작 등을 본다. 개인 작품으로 한국무용과는 2분 30초 이내 전통무나 창작 작품을 선보여야 하며, 발레과는 클래식 독무 바리아시옹이 요구된다. 현대무용과의 경우 첫 동작에서 마무리 동작까지 총 2분 이내의 개인 작품을 선보이면 된다.

미술과의 경우는 드로잉과 채색화를 각각 2~4시간에 그려야 하고, 드로잉 또는 채색화 중 선택해 4~6시간 이내 그린다. 혼합 표현 1문제 역시 4~6시간 이내 완성해야 한다. 모두 3절지 이내 그림을 그려야 하며, 작품에 대한 해설이나 주제 설명이 요구될 수 있다.

음악과의 경우 기출 문제가 악기별로 상이하다. 대부분 실기연주를 평가하지만, 작곡의 경우 작곡 전공과 지휘 전공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작곡과의 경우 화성법(20%), 단선율과 2성부 청음(20%), 각각의 피아노 실기와 작곡 실기(30%)를 평가한다. 이중 작곡 실기는 주어진 동기에 의한 두 도막 또는 세도막 형식의 피아노곡을 작곡해야 하며, 주어진 시에 반주를 붙여 가곡을 작곡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지휘 전공은 화성법과 청음의 비율이 작곡 실기와 동일하지만, 지휘 실기(60%)의 반영률이 높다.

 

중퇴가 많은 학교?

서울예고는 중퇴자가 많은 학교로도 유명하다. 재학생 중 일부가 재학 중 유학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특히 클래식 음악의 경우 독일과 미국 유학이 빈번하고, 발레와 미술과는 프랑스 유학이 많다. 이뿐만 아니라, 졸업생들의 대학 진학도 해외 대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를 위해 서울예고에서는 1학년부터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제2외국어 과정에 포함시켰다. 무용과와 미술과는 1학년 때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우며, 음악과는 독일어를 배운다. 영어는 기초 과목으로 가르친다.

임원빈 기자 사진 서울예술고등학교

 

서울예고를 이끈 역대 교장

신봉조는 서울예고의 모태인 이화여자중·고등학교의 최초의 한국인 교장을 역임했을 뿐만 아니라, 임원식과 더불어 서울예고 설립에 주축이 되었다.

9명의 교장 중 두 명이 지휘자 출신이다. 제2대 교장 임원식은 고려교향악단에서 활약했으며 서울관현악단, 해군정훈음악대(현 서울시향), KBS교향악단을 맡아 지휘했다. 제8대 교장을 지낸 금난새 역시 해설음악회를 통해 클래식 음악 저변 확대에 크게 힘쓴 지휘자로 평가받는다. 그 역시 서울예고 졸업생으로,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뒤, 베를린 음대에 진학하여 지휘를 배웠다. 이후 카라얀 지휘 콩쿠르 4위에 오르며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현재 성남시립교향악단의 예술총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피아니스트 김정규는 제5대 교장을 지냈다. 그는 서울예고 최초의 남학생이자 1회 졸업생이기도 하다. 1953년 남녀공학제로 바꾸기 위해 ‘이화예술고등학교’를 ‘서울예술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꿔 인가를 받았지만, 당시 3천여 명의 학생 중 남학생은 김정규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농고와 공고는 있어도 예고는 없던 시절이라 ‘한가하게 풍월이나 읊는다’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라고 회상했다. 서울예고를 졸업한 김정규는 도미하여 시카고 음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베를린 예술대학을 졸업했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한 바 있는 그는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이다. 권영걸은 2019년 제9대 교장으로 취임했다. 서울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대(UCLA, 디자인과)에서 수학했다. 이후 고려대(건축공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서울대와 이화여대에서 36년간 교수로 재직했으며, 서울대 미술관장·서울시 부시장 겸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 계원예술대학 총장 등을 역임했다(137쪽 사진 참고).

 

교장이 작곡한 교가

‘예고의 노래’란 서울예술고등학교의 교가를 지칭하는 말이다. 서울예고는 이화여고 안에서 생활하던 시기, 자체 교가가 없어 이화의 교가를 불렀다. 독립한 이후 새로운 캠퍼스를 갖게 되면서 1963년 교가 제정 논의가 시작되었으나, 큰 성과가 없었다. 그래서 1963년 졸업식과 1964년 입학식은 교가 없이 거행되었다.

당시 제2대 교장인 임원식은 이화여고 국어 교사인 신지식에게 작사를 의뢰했고, 그의 작곡으로 예고의 노래를 발표한다. 1964년 4월에 제정된 ‘예고의 노래’는 이화여고와 합동으로 거행된 개교 12주년 기념식장에서 처음 불려졌다.

 

 

 

 

 


 

Part 3. 졸업생들의 활약상

한국 예술계의 도약을 이끌다

동문은 다시 동문을 길러낸다. 서울예고 동문들의 활약상을 모두 모았다

 

무용계 기둥들을 배출하다

무용과의 초기 동문들은 현재 무용계 원로의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전 국립발레단 단장이자 현 제주국제무용제조직위원회 이사장을 맡은 박인자(1953~), 인천시립무용단 윤성주(1957~) 예술감독, 국립정동극장 정성숙(1958~) 대표이사 등이 서울예고 출신이다.

무대 위 무용수들도 건재하다. 무용예술상 ‘연기상’, 한국춤비평가상 ‘베스트 작품상’, 한국뮤지컬어워즈 ‘안무상’에 빛나는 무용수 차진엽(1978~)은 발레로 서울예고에 진학해 2학년 때 현대무용으로 전공을 바꾼 뒤,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 현대무용 전공으로 입학했다.

젊은 발레리나들의 우상이 된 파리 오페라 발레 에투알 박세은(1989~)은 2006년 서울예고 2학년 재학 중 USA 발레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해 무용 영재로 한예종 무용원에 입학했다. 이후, 2011년 준단원으로 파리 오페라 발레에 입단한 뒤, 모든 등급을 거쳐 2021년 파리 오페라 발레 역사 상 동양인 최초로 에투알(수석 무용수)에 지목됐다.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는 한국 미술의 맥

한국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미술과 출신 거장들의 작품도 눈에 띈다. 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대표 화가인 최욱경(1940~1985)은 서울예고에서 문학진·정창섭·김창렬 화백에게 그림을 배웠다. 이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가 현지에서 화가이자 미술 교육자로서의 활동을 이어나갔다.

원색의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는 서양화가 이두식(1947~ 2013)은 1962년 서울 정동 이화여자고등학교 4층에 세 들어 있던 서울예고 입시장에서 데생 시험 감독관이었던 김병기(1916~2022) 화백에게 후한 점수를 받아 입학하게 되었다. 그는 김창렬에게 데생 수업을, 김병기에게 미술사 수업을 받았다. 이두식의 서울예고 동기로는 조각가 박충흠(1946~), 동양화가 오용길(1946~)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서울예고 미술과는 화가 신성희(1948~2009), 서양화가 박항률(1950~), 문경원(1969~) 이화여대 교수, 양혜규(1971~) 슈테델슐레 교수 등 유명 화가와 교수를 배출한 바 있다.

 

교육자부터 국내외 콩쿠르 스타까지

서울예고 음악과 동문들을 제외하고는 한국 음악계를 논할 수 없을 만큼, 이들은 음악계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대 음대학장을 세 번 역임하며 교육자의 길을 걸어온 바이올리니스트·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김민(1942~)은 청소년 음악 교육과 영재 교육에 꾸준히 힘써왔다. 그는 지난 2016년 본지 인터뷰에서 “좋은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테크닉 연습과 분석도 필요하지만 그 밑바탕에 인문학적 지식과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그리고 인간에 대한 공부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라며 학생들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지난 3월 12일 음악계는 한국 바이올린계의 큰 별을 떠나보냈다. 김현미·이경선부터 신지아·클라라 주미 강·임지영 등 다수의 바이올리니스트를 길러낸 예술가이자 교육자였던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1949~2023)은 서울예고 출신으로 아직도 제자들의 마음속에 ‘매섭지만, 따뜻한’ 스승으로 남아있다.

지난 2021년 한예종 제9대 총장으로 취임한 피아니스트 김대진(1962~) 역시 손열음·김선욱·문지영 등 콩쿠르를 빛낸 젊은 피아니스트들을 여럿 길러낸 바 있다.

콩쿠르 수상으로 학교를 빛낸 연주자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1989~)은 제15회 밴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게 됐지만, 사실 그는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수석 입학 및 졸업한 인재였다. 센다이 콩쿠르·윌리엄 카펠 콩쿠르 1위를 비롯해 청중상 및 체임버상, 인터라켄 클래식 콩쿠르 1위를 수상한 그는 밴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전에도 이미 ‘한국인 피아니스트 최다 콩쿠르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제17회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며 ‘조성진 신드롬’을 일으킨 피아니스트 조성진(1994~)은 서울예고 2학년 재학 당시 제14회 차이콥스키 피아노 콩쿠르에 최연소로 참가해 3위에 입상하며 스타의 탄생을 예고했다. 이후, 유학을 위해 서울예고를 중퇴하고, 파리고등음악원에서 수학한 뒤, 꾸준히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브람스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린 비올리스트 이화윤(1996~)은 서울예고 1학년 재학 중 유리 바슈메트 콩쿠르에서 대회 역사상 최초로 대상을 수상했다. 2013년부터는 안네 소피 무터 재단의 후원을 받아 앙상블 무터 비르투오지의 멤버로 활동 중이다.

이 외에도 피아니스트 신창용(1994~),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1989~)·양인모(1995~/중퇴) 예고를 거친 등다수의 연주자들이 세계무대에서 그 실력을 입증하고 있다.

 

순수예술을 넘어 대중예술로

동문들의 활약은 연예계에서도 이어진다. 1968년 그룹 ‘트윈폴리오’로 활동하며 포크음악 열풍을 일으킨 가수 송창식(1947~/성악과 중퇴)과 지난 1월 예술의전당에서 초연한 창작 뮤지컬 ‘베토벤’의 주역을 맡아 성악 전공자로서 가곡의 매력을 한껏 선보인 뮤지컬배우 카이(1981~/음악과 수석 졸업) 그리고 지난해 드라마 ‘붉은 단심’으로 K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 부문 남자 우수상,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입증한 배우 이준(1988~/무용과) 등 무대와 브라운관 곳곳에서도 동문들을 만나볼 수 있다.

홍예원 기자

 


Part 4. 서울예고의 현재

 

한 마디로, 공사다망

공부와 콩쿠르 도전이 일상인 재학생들의 활약과 과제

한 반에 35명 또는 43명씩 30개의 학급, 약 1,100명의 전교생이 모여 있으니, 학교 규모는 서울에 위치한 여타 다른 고등학교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학교 홈페이지의 ‘수상소식’란에 들어가면, 학교의 비상함이 절로 느껴진다. ‘○○○ 학생 □□□ 대회 우승!’이라고 한 명씩 적었다가는 홈페이지에 과부하가 걸릴 것이다. 학생들이 받아오는 상이 너무 많으니, 1년 단위로 묶어서 게시하고 있다. 교외뿐만 아니라, 매년 학생들이 펼치는 정기공연의 모습에서도 높은 완성도를 확인할 수 있다. 정기공연과 최근의 콩쿠르 수상 소식을 모아 재학생의 활약상을 살펴보았다.

 

소수여서 더욱 빛나는 무용과

무용과는 한 학년 10개 학급 중 단 한 학급으로, 한 반의 학생 수는 약 43명이다. 그러나 한 해에 받은 콩쿠르 상은 100개를 가볍게 넘기며, 가장 최근 기록인 2021년엔 166개에 달한다. 수상자 한 명씩 이름을 부르다 보면 3학년 경우, 출석부와 다름이 없다. 한 명의 학생이 다양한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경우도 많지만, 거의 모든 학생이 콩쿠르에 참여하여 결실을 본다.

대부분 여러 협회 콩쿠르·대학 콩쿠르·아시아 국제 콩쿠르 등에 참여하며, 장르의 특성으로 인해 한국무용이 가장 많은 수상 이력을 자랑한다. 발레의 경우는 해외 콩쿠르인 스위스 로잔 콩쿠르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올해에는 김시현이 5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비교적 적은 학생들이 전공하는 현대무용의 경우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콩쿠르에 참가한 서울예고 학생들의 단독 연기를 영상으로 만나 볼 수 있다. 매년 ‘정기무용공연’과 ‘창작무용제’ 등을 올리고 있으며, 대학 입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1학년만의 무대도 존재한다.

 

전통의 강호 음악과

전교생의 절반에 달하는 음악과 역시 무용과처럼 화려한 콩쿠르 수상 목록을 가지고 있다. 해외 풍부한 콩쿠르와 국내·외 다양한 대회에 참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성과는 전공을 가리지 않는다. 같은 전공생끼리 같은 콩쿠르에 참여하는 일도 흔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희비가 더욱 엇갈리기도 하지만, 서로의 연습 시간을 공유하는 선의의 경쟁이 되기도 한다.

또한 교내의 정기공연을 통해 개인이 아닌 하나가 된다. ‘서울예고정기연주회’에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유스 오케스트라가 되며, ‘오페라 갈라 콘서트’에서는 모든 음악 전공생이 총출동한다. 해외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펼친 기록도 여럿 있으며, 국내·외 연주자를 초청하여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기도 한다. ‘서울예고정기연주회’는 학교의 공식 유튜브 계정으로 들어 볼 수 있다.

 

소리 없이 강렬한 미술과

학년당 4개 학급으로 이루어진 미술과는 매년 수많은 전시와 교내 대회를 치른다. 음악·무용과 다르게 콩쿠르가 존재하지 않고, 전공 또한 1년의 과정 이후에 선택하기 때문에 다양한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재학생이 참여하는 교내 대회는 개교기념미전, 메트로전, 테마여행스케치전, 인체드로잉전, 향상미전, 캐리커처전 등 다양하며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다.

미술은 객석을 두는 무대예술이 아니기에 재학생의 활약을 온라인에서 접하기는 어렵지만, 서울 지하철 경복궁역사에 마련된 ‘메트로전’은 서울예고 학생들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중요한 전시 중 하나이다. 여러 대학교에서 열리는 공모전 수상작에서도 서울예고의 이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의정 기자 사진 서울예술고등학교

 

책에 담긴 서울예고 재학생·졸업생들 이야기

서울예고 입학 그 후: 음악, 전공해도 괜찮을까?

김민서·이정민·권예은·김민정 외 공저|15,000원|키출판사

어린 나이부터 음악의 길을 꿈꾸는 학생, 그리고 그들의 학부모라면 자연스레 서울예고에 관심을 가진다. 그 관심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모아보지만, 직접 체험한 것이 아닌 ‘그렇다더라’로 뭉친 덩어리는 좀처럼 응집되지 않는다. 학교를 거쳐 간 선배를 만나는 것이 최고겠지만, 그 인연이 흔했다면 재학생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풀어낸 이 서적이 기획됐을 리 없다. 서울예고의 생생한 경험이 궁금하다면 13명의 재학생과, 18명의 학부모, 5명의 교사가 작성한 이 ‘꿀팁’을 들여다보자. 피아노·바이올린·비올라·첼로·플루트·트럼펫·타악기·성악까지 저자들의 다양한 전공은 다른 악기를 이해하는 데도 탁월하다. 나아가 책의 후반부인 4·5장과 부록에 수록된 재직 교사의 이야기, 학교생활 질의응답, 콩쿠르 리스트 등과 관련된 실용적인 조언이 가득하다.

 

서울예고 졸업 그 후: 인생을 연주하는 음악가의 기록

백선기·조정민·김민경·이승희 외 공저|16,000원|키출판사

‘음대 나와서 무얼 할까?’ 하나의 관용구가 되어버린 이 문장은 예술계의 취업 불안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일자리의 절대수가 적다는 게 하나의 이유겠지만, 음악 전공생이 예술계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족한 정보가 불안을 가중한다. 한순간의 음색에 반해 예술에 발을 들이는 계기도, 연습이라는 외길에 온전히 쏟아 붓는 어린 시절도, 직업에 대한 시야를 좁게만 할 뿐이다. 이 책은 그런 한숨을 받아 엮었다. 40대가 된 열 명의 서울예고 출신 직업인들은 어떻게 솔리스트가 되지 않고도 음악을 이어 나갈 수 있는지 말해준다. 책의 목차는 연주를 직업으로 삼는 오케스트라 단원부터, 반주 전문 피아니스트, 공무원, 서기관, 회사원, 마지막으로 목사까지 유연하게 예술과의 거리를 조절했다. “그 누군가가 나에게 미리 귀띔이라도 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적힌 그들의 집필 계기는 후배에게 도움을 건네는 솔직함으로 느껴진다. 오케스트라 오디션의 절차, 프리랜서로 스스로 일정을 조절하는 노하우, 미국·독일 유학 준비법, 이력서 쓰는 법 등 실질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까지 충실하다.

 


Part 5. 서울예고의 미래

학교의 전통과 미래가 만나는 장으로!

서울아트센터 개관과 새 도약을 앞두고 이대봉 이사장이 밝힌 포부

서울예술고등학교 이사장 이대봉

현재 서울예고·예원학교 재단인 학교법인 서울예술학원의 제9대 이사장인 그는 1975년 동아항공화물을 설립해 건설 제조업, 천연가스에너지와 관광레저 등 4개 분야에서 14개 기업을 거느리는 참빛그룹의 회장이다. 1988년 재단법인 이대웅음악장학회를 설립했고, 한국성악콩쿠르를 개최해 입상자들의 유학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참빛그룹 회장 이대봉은 2010년, 서울예술고등학교와 예원학교를 아우르는 학교법인 서울예술학원(전 이화예술학원)의 제9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의 가슴 아픈 사연도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87년 서울예고 2학년이던 장남 이대웅 군이 상급생들에게 폭행당해 갑자기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그는 이후 한 인터뷰를 통해 “학교를 다 부숴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하지만 그런다고 죽은 아이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동안 돈만 알고 모질게 벌어왔으니 이런 결과가 오나 싶더라. 돈에 집착하지 말고 모든 것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라고 회고했다.

어렵사리 가해 학생들을 선처하고, 용서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먼저 간 아들 이름을 따 이듬해에 이대웅음악장학회를 설립했다. 음악을 사랑했던 아들을 영원히 살아있게 할 방법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 장학재단이 계기가 되어 아들이 다녔던 서울예고를 인수한 그는 “아들처럼 뛰어난 학생이 많아 학교를 인수한 보람을 많이 느낀다”고 고백했다. 서울예고 설립 70주년을 맞는 올해는 서울아트센터 개관과 함께 또 한 번의 도약을 앞두고 있다고도 전했다.

 

올해 개교 70년을 맞아 특별한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서울예고 교사 내에 새로 건립된 서울아트센터가 개관한다. 1,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콘서트홀과 170여 평의 갤러리가 있어 예원학교와 서울예고 학생들이 마음껏 예술적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와 공간이 될 것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오는 5월 재학생과 동문이 서울아트센터에서 같이 어울려 음악, 미술, 무용 공연을 개최한다. 졸업생들과 동문이 재학생과 어울리고 모교와 소통하면서 서로 융합될 수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예고가 특수목적 고교이고, 특출난 학생들이 많다보니 외부에서 학교를 바라보는 시선도 중요하다.

외부에서는 세계적인 예술가를 배출하는 교육기관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모두가 노력한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고, 학생과 사회가 원하는 모습도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학교 운영도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진로가 다른 학생들보다 일찍 정해지고, 이로 인해 학교의 운영과 학생 지도의 방향도 남다를 것 같다.

대부분의 학생이 이미 진로를 정하고 입학한다. 이에 맞게 학교에서는 적정한 대학 진학에 관한 방향을 제시하고, 각자 정해진 전공에서의 확장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온라인 수업이 병행되고, 그에 맞춰 메타버스, NFT 등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예술도구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변화하고 있는 시대이지만 그래도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탄탄한 기초 교육이라 생각한다. 예술 분야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기초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꾸준히 다지면서 살아가는 인재, 그리고 사회에 기여하는 예술인을 육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사장직 취임 이후, 학교 운영의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으며, 중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 타개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취임 이후 현재까지 많은 과제를 해결하고 있다. 우선 과밀학급을 해소하기 위해 학급수를 증설했으며, 이를 통해 공정하고 안정된 운영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특수목적고라는 이유로 교육청에서 배제하고 있는 수업료 자율학교에 대한 시설지원금도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여전히 많다. 우선 우리 학생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계획이다.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임윤찬 같은 세계적인 예술인이 나올 수 있도록 시설 지원에도 더 힘쓸 것이다.

임원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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