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남성 피아니스트들의 힘이 느껴진 페스티벌 현장. “완벽했다”는 평으로 연주를 마친 임동혁과 신성 아브두라이모프 그리고 알렉상드르 타로를 만날 수 있었다
젊은 남성 피아니스트들의 힘이 느껴진 페스티벌 현장. “완벽했다”는 평으로 연주를 마친 임동혁과 신성 아브두라이모프 그리고 알렉상드르 타로를 만날 수 있었다
서른여섯 해를 맞은 피아노 축제, 라 로크 당테롱 페스티벌(이하 라 로크)이 7월 22일부터 8월 18일까지 열렸다. 약 한 달간 펼쳐진 페스티벌 가운데 젊은 남성 피아니스트들의 호연이 돋보인 8월 7~9일의 현장을 담는다.
라 로크를 사로잡은 임동혁
8월 7일의 하이라이트는 임동혁의 독주회였다. 오후 6시 플로랑 성에서 쇼팽 레퍼토리로 꾸민 그의 무대는 ‘디아파종’지나 ‘알프 프로방스’지를 비롯한 여러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아직 해가 뜨거워지기 전이던 당일 오전, 피아니스트들이 피아노를 고르는 현장에서 임동혁은 두 스타인웨이를 두고 무척 고심하는 듯했다.
그의 치밀한 성격 때문인지, 쇼팽의 녹턴 Op.27-2, ‘화려한 변주곡’과 ‘뱃노래’로 꾸며진 1부는 탁월한 기교와 음영의 뉘앙스를 잘 살려냈다. 임동혁 특유의 화성과 리듬의 직조가 크게 돋보인 연주였다. 특히 ‘뱃노래’는 서정적이고 동적인 리듬감이 묘하게 교차되며 섬세한 실크 같은 텍스처를 만들어냈다. 2부에서 이어진 24개의 프렐류드는 24편의 시처럼 화술적이면서도 독자적인 개체로 거듭났다. 뛰어난 테크닉에서 오는 속도감이 느껴졌지만, 어떤 면에선 조금 감상적이었다는 청중도 있었다.
임동혁은 라 로크에 올해까지 세 번 참여했다. 그 소감과 라 로크의 매력을 묻는 필자의 질문에 “거의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선 무대입니다. 그래서인지 많이 긴장했고, 또 올 여름의 마지막 연주라서 더욱 욕심이 났는데 무사히 끝내게 되어 다행입니다. 라 로크의 청중은 언제나 따뜻하게 아티스트를 맞아줘요. 그 점이 이 페스티벌의 매력입니다”라고 답했다.
임동혁의 쇼팽은 호평을 샀고, 특히 1부 프로그램은 청중의 입을 꼭 다물게 만들 정도로 완벽했다. 이번 무대가 “생각보다 잘 풀린 것”이라 말하는 겸손함을 보였지만, 임동혁은 어려서부터 이미 비범한 음악인이었다. 이점은 그를 끝까지 후원하는 아르헤리치의 태도를 통해 잘 알려진 바 있다.
일각에서는 프렐류드는 완전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들어야 하는 곡이라며 훤한 여름 해 때문에 임동혁이 2부 연주에서 마이너스를 받지 않았나 하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본인 자신은 “그런 것은 별로 상관없었어요. 매미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라 방해가 되진 않았습니다”라고 연주 환경에 대해 관대한 코멘트를 남겼다.
항상 바쁜 행보를 보였던 임동혁은 올해 더욱 촘촘한 스케줄을 소화했다. 조성진과 함께 한·불 수교 10주년 기념행사에 한국 음악계를 대표하는 문화사절로 랭스 등지에서 연주를 가졌다. 젊은 나이에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인이 된 느낌은 어땠을까.
“언제나 모범을 보여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위트 있는 대답이었다. 라 로크에서 마주한 임동혁은 아직도 소년다운 미소를 지녔지만, 그에게 주어진 자리들을 통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페스티벌에서 구멍 뚫린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바람에 현지 기자들에게 “덥지는 않겠다”는 농담의 소재를 제공하기도 했다.
앞으로 클래식 음악 팬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부분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겸허하게 “연주회에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지고,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청중이 제 삶의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라며, 앞으로도 꾸준히 연주 활동을 이어갔으면 하는 마음을 내비쳤다.
예술감독 르네 마르탱이 본 한국 연주자
16세이던 임동혁을 이곳에 데뷔시킨 후 지속적으로 그를 초대해온 예술감독 르네 마르탱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임동혁은 완벽했다”며 칭찬을 먼저 건넸다. 그러나 “몇 년 전만 해도 최고 수준의 커리어를 가졌지만, 나갈 필요가 없는 콩쿠르에 나가면서 명성이 떨어지긴 했다. 임동혁이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때까지 서포트해주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를 환상적인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또한 ‘한국의 기적’이라 불리는 콩쿠르 입상 현상은 놀랍다며 “세계 3대 콩쿠르 중 한국인이 입상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그럼에도 세계적인 커리어를 누리는 연주자는 드물다. 그래서 나는 서울에서 라 폴 주르네 페스티벌을 열고 싶다. 이를 통해 잠재력을 지닌 한국 연주자들을 세계적으로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페스티벌 관계자로서 본인의 관점을 밝혔다.
한국 연주자들이 재능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명성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조성진은 국제적인 커리어를 누릴 것이다. 에이전시가 프랑스에 있으니까. 내 생각에는 많은 유럽 음악 단체에서 아시아권 연주자를 조심스러워 하는 것 같다. 많은 유럽인은 아직도 ‘클래식 음악’ 하면 ‘독일인’이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버리지 못했다. 특히 흥행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름도 모르는 한국 연주자를 초대할 수는 없다는 논지다. 앞으로 클래식 음악의 흐름이 아시아권 연주자와 함께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라고 분석했다.
마르탱은 유럽인들의 선입견을 그들의 실수라고 말한다. 그 예로 “조성진이 1부 협연자로 참여한 ‘쇼팽의 밤’은 2000석이 팔렸고, 임동혁의 독주회는 1500석이 팔렸다”(참고로 플로랑 성의 좌석 수는 2020석이다)며 이제 한국은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중요한 거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브두라이모프와 타로 독주회
7일 오후 9시 연주는 또 한 번 돌풍을 예고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젊은 피아니스트 베조드 아브두라이모프의 독주회로, 쇼팽의 발라드 3번과 슈베르트의 ‘악흥의 순간’ 중 2·3번, 베토벤 소나타 23번 ‘열정’, 그리고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6번을 연주했다.
올해 26세인 베조드는 큰 키는 아니지만 낮게 앉아서 허리를 구부리고 연주하는 편이다. 등과 어깨에서부터 내려오는 힘으로 손가락을 높이 분절하며 치는 자세는, 아주 파워풀한 타건에서부터 손가락을 건반에 붙이고 굴리는 움직임까지 다양한 패시지에 자유자재로 적응한다. 프레이징 끝에서는 종종 반쯤 일어나며 마지막 음을 띄워 올리는 제스처도 보였다.
이날의 연주에선 그의 기교적 완성도와 놀라운 창의성을 가늠할 수 있었다. 이를 뚜렷이 증명한 작품은 베토벤 ‘열정’이었다. 스펙터클하고 강한 타건 위주로 연주할 거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아브두라이모프는 어떤 경우에도 건반을 때린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 메조 페달을 자주 사용했고 말쑥한 사운드를 창출했다. 피아니시모를 표현할 때는 거의 건반을 쓰다듬다시피 했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엄격한 구조감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확한 박자 감각으로 첫 음에 강박이 명료히 떨어지게 만들었으면서도, 크레셴도와 같은 다이내믹이 마디마다 변하는 베토벤적 언어에 충실했다. 어정쩡한 크레셴도나 루바토에서 느낄 법한 어색함은 전혀 없었다.
3악장의 종결부는 압권이었다. 마지막 주제는 엄격한 붓점 리듬을 따라 점점 빨라지며 발전한다. 빠른 스타카토에 이어 G와 C 화음으로 변하는 화성을 끼고 아코디언처럼 아첼레란도와 리타르단도를 반복하다 마지막 코다로 몰아치며 끝나는데, 이때 감지되는 중력과 균형미가 놀라웠다. 아브두라이모프는 굉장한 속도를 유지하며 거시적 구조 속에서 미시적인 화성구조의 비율을 완벽하게 나누고 있었다.
그는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와 비발디·바흐·코르토에 의해 편곡된 ‘시실리엔’을 앙코르로 선사했다. 특히 ‘라 캄파넬라’는 테크닉과 힘, 그리고 섬세한 프레이징과 충만한 공간감을 지닌 사운드로 청중의 숨을 죽였다. 센세이셔널리즘을 멀리한 채 센세이셔널한 음악성 자체를 지닌 아브두라이모프의 피아니즘에 큰 박수를 보낸다.
8월 8일 페스티벌의 열기는 정점에 올랐다. 오후 9시에 알렉상드로 타로의 ‘골르베르크 변주곡’이 예정되었기 때문이다. 타로의 마니아들은 플로랑 성을 가득 채웠다. 거의 6년 가까이 이 레퍼토리로 순회 연주를 해온 타로는 이번 무대에선 조용하고 사적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려주었다. 인 템포로 연속되는 아리아나 변주 파트는 아름다웠다. 다만 대위법적인 푸가나 다성부를 위한 코랄 패시지에서는 지나치게 타로적인 장식음 때문에 바흐의 형식미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전날 필자를 만난 타로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끝난 다음 브라보를 외치거나 박수를 치지 말고 기다려달라고 했다. 이 작품은 끝난 뒤의 침묵이 무척 중요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아리아가 끝나자마자 타로 마니아들은 열광적인 박수부대로 변신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신의 인기 때문에 정작 본인이 원하던 침묵을 맛볼 수 없었다.
8월 9일에는 타로의 인기보다 훨씬 격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조성진의 ‘쇼팽의 밤’이 있었다. 이날의 리뷰는 58페이지의 조성진 인터뷰를 참고하길 바란다.
사진 Festival International de Piano de la Roque d’Anthér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