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래틀의 부인’ 이전에 학구적인 성악가로 또렷한 존재감을 가지는 코제나의 바로크 프로그램
메조소프라노 막달레나 코제나의 세 번째 내한공연(1992년 5월 6일 호암아트홀 동구권 가수 갈라, 2013년 11월 19일 예술의전당 프리바테 무지케 앙상블)이 4월 17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이탈리아의 고음악 전문가 겸 음악학자 안드레아 마르콘이 리드하는 라 체트라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자신이 장기로 삼는 이탈리아 바로크와 현대곡을 ‘위기의 여인들’의 테마로 묶었다.
1973년 체코 브루노 태생의 코제나는 호감을 주는 외모와 그에 어울리는 단정한 음색, 잘 배운 기본기를 갖춰, 일찍부터 아르히프 레이블의 호연으로 빛났다. 2000년대 중반, 사이먼 래틀과 가정을 이루면서 클래식 음악계에선 세계적 명사가 됐다. 일찍부터 바로크에 공을 들여서 좀처럼 불리지 않는 작품에서 넘버원의 자리를 차지했다. 오페라 전막에선 바지 역할보다 상대적으로 가볍지만 따스한 울림을 들려줬다.
세 아이를 출산한 지금은 경쟁적인 오페라 무대에서 한 발짝 물러났다. 2018년의 오페라 지형도를 기준하면 조이스 디도나토, 엘리나 가랑차를 압도한다고 보기 어렵다. 오랫동안 함께한 도이치 그라모폰을 떠나 이적한 펜타톤 레이블의 작업도 궁금증을 불러 모은다. 펜타톤에선 래틀과 듀오 앨범을 출시하고, 수프라폰 레이블에 배급을 맡긴 앨범은 놀랍게도 콜 포터의 미국 뮤지컬이다. 실질적인 활동 전환기에 접어든 코제나와 전화 인터뷰를 나눴다.
2008년 베를린 필하모닉 아시아 투어 당시 일본 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건너와 부군 공연을 보던 장면도 기억난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고 얼마 안 된 시절이었다. 베를린 필 투어 때 본 서울 관객의 반응과 2013년 프라바테 무지케 공연 때 만난 청중의 호응은 또 달랐다. 한국 관객은 분명히 다른 장르보다 성악을 좋아하는 듯하다. 성악에선 느낀 감정을 표현하는 데 적극적이며, 요란한 환호성의 정도는 이탈리아나 스페인보다 더하다. 내 경우 바로크 공연이었는데도 열광적이었다.
2004년 정명훈/로마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콘서트 버전으로 모차르트 ‘이도메네오’를 함께 했는데, 그동안 한국 음악가들과의 교류는 어땠나?
정명훈이 고국의 오케스트라(서울시향)와 함께 했고 여러 성악가들이 한국에 갈 기회가 있던 것도 잘 안다. 로마에서 마에스트로와의 작업은 짧지만 강렬했다. 지휘자의 성향을 더 알고 싶었는데 같이 작업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가 오페라에서 이룬 성취에 대해 경탄하고, 앞으로 함께 할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유럽에 한국 성악가들이 많이 있지만 내가 극장에 있을 때 사적으로 친한 한국 가수는 잘 없었다. 요즘 사회생활이 많지 않아서 새롭게 친구를 사귈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도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연광철이 거둔 성과는 아주 놀랍고 평판도 잘 안다.
내한 프로그램의 주제 ‘위기의 여인’은 2013년 ‘사랑의 편지’와 비교된다.
공연 곡목을 거의 모두 바로크 곡으로 채웠다. 베리오 ‘세쿠엔차Ⅲ’은 현대곡이지만 바로크와 상통하는 맥락이 있다. 마르코 이바노비치의 ‘아리안나가 이상해’는 몬테베르디 ‘아리안나의 탄식’을 기초로 한 코미디 성향의 작품으로 작곡가에게 신곡을 의뢰했다. 이바노비치를 통해 신화 속 아리안나의 행적을 지금의 시각으로 해석하면서 캐릭터를 ‘여걸(Heroin)’에서 ‘모던 걸(Modern Girl)’로 번안했다. 오페라 원작이 대부분 유실됐기 때문에 재해석의 여지는 충분하다. 아리안나를 펍에 있는 영국 여인으로 설정해도 자연스럽다. 남자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적인 여인으로 위상을 부여했다. 재해석의 내러티브를 코믹하게 전개하면서 관객들이 ‘원작도 이러했으리라’고 상상할 공간이 더 넓어지는 효과를 기대했다.
공연이 처음엔 콘서트로 시작해서 서서히 세미 스테이지 오페라 형태로 변하는 구성이다. 가수로서 유의점은 무엇인가?
후반부에 에너지 조절을 잘해야 한다. 마지막 곡인 몬테베르디 ‘탄크레디와 클로린다의 싸움’에 나오는 3명을 혼자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르콘이 이 작품을 제안하면서 “나레이터와 탄크레디, 클로린다 역할을 한꺼번에 해보라”고 했다. 잠시 머뭇거리자 마르콘이 “막달레나 당신이라면 할 수 있다”고 부추겼다. “내가 이걸 잘할지 모르겠다”고 답변하자, 마르콘은 “세미 스테이지에 올리고 관객 반응을 보자”고 해결안을 줬다. 사실, 흔쾌히 해보겠다고 대답하지 못한 건 세 가지 소리가 서로 크게 달라서 금방 캐릭터를 전환해 부르기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소리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면 관객은 어느 캐릭터의 노래인지 혼란에 빠진다. 고민이 길어질 때 용기를 준 이가 무대감독 온드레이 하벨카(Ondřej Havelka)였다. 바로크 무대로 연출해 복장을 하고 무대에 나가면 관객도 그렇지만 가수도 목소리 전환이 편해질 것이라고 조언해줬다. 큰 도움이 되는 팁이었다.
유럽에서도 생소한 레퍼토리에 익숙하지 않은 구성인데 반응이 어땠나?
유럽에서도 바로크 공연이 그렇게 많지 않지만, 기존의 바로크 공연과 비교해도 그 틀을 조금씩 더 깨자는 시도로 받아들여져서 기뻤다. 비평도 그렇지만 흥행도 잘 돼서 제작진이 고무됐다. 개인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소중한 작품을 되살릴 때 세미 스테이지의 효용에 대해 고찰할 계기가 됐다.
바로크 연구를 시작할 때 어떤 과정을 통해 핵심에 접근하나? 음반이나 문헌을 참고하거나 고음악 전문가들의 카운슬링을 받나?
바로크 뿐 아니라 다른 사조의 작품을 볼 때도 악보 뿐 아니라 기존에 나온 음반과 학술 문헌을 참고하며 지식을 쌓는다. 내 몸에 맞는 노래가 무엇인지 감만으로는 부족하다. 공부를 하면서 얻은 기쁨이 무한하다. 초기 바로크 작품은 얼핏 듣기만 해도 아주 아름답지만, 그 미의 근원이 실은 얼마 안 되는 음표와 풍부한 내용의 시가 사이의 조화와 부조화에 있음을 전문가의 연구로 이해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바로크에선 언어 코치가 따라 붙어서, 단순 텍스트 번역이 아닌 캐릭터 내부에 숨겨진 의미를 같이 벗기는 기쁨도 크다.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순간을 설명한다면?
바로크 시대의 작품들을 죽 늘어놓으면 하나의 모자이크가 된다. 헨델과 로시니 오페라에서 보는 텍스트와 음악의 조합과는 또 다른 차원의 미학과 신비가 이 시대에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바로크가 재밌고 즐겁다.
이상적으로 삼는 바로크 가수상이라면?
어려운 악절을 어떻게든 소화하는 건 어쩌면 쉽다. 쉽고 자연스러운 곡을 찾아 그 매력을 자연스럽게 전하는 가수가 돼야 한다. 편안한 가창이 실은 더 어렵다. 텍스트를 아는 청중에게 그 뜻의 뉘앙스가 무엇인지 진실하게 전할 역량에 관한 담론이다. ‘노래하는 배우’가 ‘아름답게 가창하는 가수’보다 우위에 있다. 시간을 들여 바로크에 전념하면서 잊지 않으려는 가치다.
마르콘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도이치 그라모폰이 바로크 작업을 추진하면서 그를 추천했고 먼저 마르콘의 기존 음반을 들어보라 했다. 그와 만나니 실로 막대한 장서의 고음악 도서관과 만나는 느낌이었다. 모든 질문에 능통하게 답했고 해설은 명쾌했다. 고음악 전문가들이 많지만 마르콘은 즉흥적이고 직관적인 해석을 가수와 공유할 음악적 기교가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함께 한 앙상블이나 가수가 누구든지, 본연의 캐릭터대로 하라고 권유하면서 최상의 결과를 끌어내는 수완이 탁월하다. 헨델 작품을 함께 하면서 내가 막힐 때, 그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친절하게 물었고 방대한 바로크 지식을 바탕으로 중재안이자 해결책을 보여줬다. 공연으로 서로를 알 기회도 없었는데 그렇게 손을 내밀었다.
단기간에 진행되는 레코딩에 서로 모르는 상태로 만나면 갈등하기 쉬운데.
마르콘은 마치 재즈 뮤지션들의 만남처럼 서로를 풀어 놓자는 주의다. 리허설도 많이 하지 않고 서로를 믿기 전에라도 자신있게 기교를 풀어보라고 격려했다. 녹음 중간에 테이크를 함께 듣다보면 마르콘의 반주가 정말 환상적이다. 마르콘은 비발디와 몬테베르디에서도 케미스트리의 진수를 연달아 보여주고 있다.
요즘 활동을 보면 전막 오페라는 줄이고 콘서트나 레코딩 작업에 치중하는 양상이다. 세 아이의 교육이 활동에 영향을 주나?
그렇다. 오페라 전막은 필연적으로 가족과 장기간 떨어져 있게 되어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면 스케줄의 최우선 순위가 아니다. 보통 1년에 두 개 프로덕션에 한정하려 한다. 가수로서의 직업적 성공과 가정과의 균형을 늘 실험하며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하지만 나는 가족을 선택하는 편이다. 그래도 연기를 좋아하니까 요즘엔 콘서트 버전의 세미 스테이지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남편이 일하는 런던 심포니(LSO)에서도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그런 형태로 공연했다.
부군이 LSO와 계약했지만 가족이 런던으로 이사를 가지 않는다. 자식들의 교육과 주택 형태를 고려한 판단이 아닌가 싶은데.
베를린에 머무는 결정은 가족회의로 정했다. 남편은 1년에 4개월을 런던에 있어야 하는데 자식들은 모두 베를린에서 태어나 자랐다. 축구 클럽이나 음악 레슨으로 사귄 친구들이 여기에 있고 호숫가에 위치한 지금 집에도 만족한다. 전원에서 여유를 즐기는 삶이 런던에서 가능할지 모험하고 싶지 않았다. 베를린이 영국과 체코의 중간인 점도 거주지를 정할 때 참고했다.
메조소프라노 막달레나 코제나 & 라 체트라 바로크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4월 17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
몬테베르디 ‘전쟁과 사랑의 마드리갈’ 8권 중 ‘탄크레디와 클로린다의 싸움’ 외
글 한정호(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LG아트센터